◐ 여전히 말해지지 못한 것들이…

  산 자가 산 자 대신 말하는 대의민주제는 오늘날 완전히 희망을 잃은 듯 보인다. 그런 사정과 별개로, 죽은 자는 여전히 산 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해 말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산 자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배회하거나 같은 자리에 결박된 채 억눌려 있을 뿐이다.   금번의 포럼 ⟨여기에 뼈가 있다⟩는 경산 코발트 광산에 여전히 매장된, 최대 약 삼천 오백…

◐ 추모의 이상향과 우상향의 그래프

사회적 의무로서의 추모   특정 지역과 문화권마다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장례는 시신을 처리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부패하는 시신을 살아있는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격리시켜 질병의 창궐 따위를 막는 중요한 일이다. 조선 시대에서 풍수지리의 중요한 역할은 묫자리를 지정하는 건데, 최대한 시신이 빨리 썩어 흙으로 돌아갈 수 있는 양지바른 땅을 위해 바로 이 풍수지리가 작동했다. 시신이 썩지 못하면 지하수를…

◐ 세 페이지 소설 시리즈(1): ‘소인연구소’ 김XX소장 인터뷰-경산 코발트 광산 방문에 갈음하여

“딱 까놓고 말해 보자구. 남덜 힘든 걸 못 느끼는 게 그게 죄야?당신들 아니할말로 차별 없애자, 없애자 맨날 그러면서. 요새 뭐?공감 능력도 지능이라매? 그럼 지능 떨어지는 사람 차별하자는 거야 지금?”– 소인 연구소 김 소장 사전 인터뷰 중(2023.6) 기록관의 노트   아래는 2023년 7월의 어느 날 연락을 끊은 김 소장을 인터뷰 한 내용입니다. 방문 당일에 잠시 이루어진…

◐ 미완의 질문: 보도연맹 이후 서정시를 쓸 수 있는가?

“인간적 욕망은‘긍정적’으로 주어진 실재적 객체가 아니라다른 욕망을 지향한다는 사실에 의해서 구별된다.(…)이러한 본질적 차이를 무시해 버리면인간적 욕망은 동물적 욕구와 유사하다.”-A. 코제브(Alexandre Kojève)   나치가 기획한 홀로코스트가 600만 명의 유대인 사망자를 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것은 그 규모와 집행체계 면에서 인류의 경악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천인공노할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경악은 언제나 자연발생적인 것만은 아니다. 요컨대 거기에는 연합군의…

◐ 대구미래대, 그리고 사라진 사과

  경산에 코발트 광산이 있다. 한때는 이 공간을 언급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에 “아이고 말 다 못 합니다”(대구매일 1960년 5월 22일) 하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사회는 레드 컴플렉스가 깊게 박혀 있었고, 학살 피해자들은 보도연맹과 관련되어 있었다. 이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긴 시간이 흐른 뒤, 때가 찾아온 것은 2001년 어느 날이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제작이었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매주 일요일…

◐ 죽음은 해석의 문제

  종교, 사변, 환각, 임사체험. 어느 것을 통하더라도 산 자는 사후를 확정할 수 없다. 따라서 산 자에게 죽음은 해석의 문제다. 해석은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시도로, 산 자는 죽음의 현시와 그 개념을 어떻게 순화하고 받아들일지를 발명해야만 했다. 이러한 노력은 원시인류에서부터 지역을 불문하고 확인되었으며, 내세관과 장례의 긴밀한 결속은 정신문화의 주된 부분이 되었다.   개체의 생물학적 삶이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