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도 락이다! – 캔슬 컬처와 캔슬 할 수 없는 존재들

인터넷 방송 문화에서 인기 방송인의 몰락을 이르던 용어인 ‘나락’이 이제 와 확장된 의미를 가지게 된 일이 내겐 신기하게 느껴진다. 본래도 ‘나락(奈落)’은 ‘밑이 없는 구멍’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어원처럼 탈출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를 이를 때 종종 사용되곤 했으나, ‘나락도 락이다’ 밈과 피식대학의 유튜브 콘텐츠 <나락퀴즈쇼>의 성공을 계기로 인터넷 하위문화에서 사용하는 ‘나락’의 의미와 수평적으로 연결된 것 같다. ‘음지’ 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만화가 겸 유튜버 카광의 콘텐츠 <나락의 삶>은 서로 인접해 있는 나락의 두 의미를 시사교양 다큐멘터리의 문법 위에서 매끈하게 통합해 낸 사례인데, <나락의 삶>이 종합하고 있는 ‘나락’의 기호 체계는 음지 문화에서 십수 년간 축적된 밈 이미지들이 질서 없이 뒤섞인 혼성모방을 통해 성립한다. 이 과정에서 나락의 주변적 의미들이 지시하던 여러 수렁과 실패, 좌절들은 나락의 강렬한 이미지와 단어 자체의 말맛으로 인해 휘발되고 인터넷 밈의 지위를 획득했다.[1]

허공에 미치는 영향력

  미술계는 본래가 주기적이고, 각 주기는 대략 『아트포럼』 편집장의 임기 기간 동안 지속된다―잉그리드 시시 (1980-’88), 잭 밴코우스키 (1992-2003), 팀 그리핀 (2003-’10). 하지만 특정 양식의 유행과 개념적 담론들의 성쇠와는 별개로 ‘미술’(그러니까 현대 미술, ‘미술계’ 미술, 비엔날레에 전시되고, 주요 미술관들의 전시 공간과 어쩌면 나중에는 유통 시장 딜러들의 수장고를 채우는 미술)이라는 전면적인 문화 현상은 근대 문화계의 검열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선전 이후의 선전물들: 이대 시위에서 MC무현, 그리고 성재기까지

탈정치? 미적 정치의 재출현   2016년, 이대 시위라고 이름 붙여진 독특한 정치적 사건이 출현한다. 이 낯선 정치적 사건에선 과거의 시위나 운동을 표상하던 전형적 형식인 민중가요나 저항가가 울려 퍼지는 대신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의 대중가요가 불려졌다. 그리고 시위의 주최측은 ‘운동권 총학의 참여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집단 행위가 ‘정치색을 띤 어떤 외부세력과도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들은 이 사건이 흔히 생각하는…

폭★8의 시학, 심영물

  심영물만큼 오랜 수명을 지닌 밈은 없을 것이다. 2000년대 초중반에 생겨나 이제는 밈의 대명사라고 불릴 정도니까. 심영물은 〈야인시대〉의 64화 속 고자라고 진단을 받은 심영이 내가 고자라니!라고 외치는 장면을 절취한 것이다. DC합필갤에서 시작한 이 밈은 그때 유행했던 싱하형, 빠삐놈 등 당시 여러 밈들과는 다르게 혼자 생존해 유튜브에 살아남아 있다. 심영이 밈으로 처음 쓰일 때는 “내가 고자라니”라고…

<오징어 게임>: 게임의 수용소에 갇힌 시민들과 밈적 이미지의 존재론에 대하여

  <오징어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평자들은 보통 작품의 선정적 수위, 빈곤층에 대한 묘사, 그 외에도 개별적인 배역에 대한 묘사의 적절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한 지적들은 모두 나름의 타당성을 지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드라마의 더 본질적인 측면을 간과할 수밖에 없다는 인상을 준다. 여기서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앞서 언급한 평자들의 비판에 대해 지금까지 제출된 반론들을 떠올려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