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페이지 소설 시리즈(1): ‘소인연구소’ 김XX소장 인터뷰-경산 코발트 광산 방문에 갈음하여

“딱 까놓고 말해 보자구. 남덜 힘든 걸 못 느끼는 게 그게 죄야?당신들 아니할말로 차별 없애자, 없애자 맨날 그러면서. 요새 뭐?공감 능력도 지능이라매? 그럼 지능 떨어지는 사람 차별하자는 거야 지금?”– 소인 연구소 김 소장 사전 인터뷰 중(2023.6) 기록관의 노트   아래는 2023년 7월의 어느 날 연락을 끊은 김 소장을 인터뷰 한 내용입니다. 방문 당일에 잠시 이루어진…

◐ 미완의 질문: 보도연맹 이후 서정시를 쓸 수 있는가?

“인간적 욕망은‘긍정적’으로 주어진 실재적 객체가 아니라다른 욕망을 지향한다는 사실에 의해서 구별된다.(…)이러한 본질적 차이를 무시해 버리면인간적 욕망은 동물적 욕구와 유사하다.”-A. 코제브(Alexandre Kojève)   나치가 기획한 홀로코스트가 600만 명의 유대인 사망자를 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것은 그 규모와 집행체계 면에서 인류의 경악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천인공노할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경악은 언제나 자연발생적인 것만은 아니다. 요컨대 거기에는 연합군의…

◐ 대구미래대, 그리고 사라진 사과

  경산에 코발트 광산이 있다. 한때는 이 공간을 언급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에 “아이고 말 다 못 합니다”(대구매일 1960년 5월 22일) 하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사회는 레드 컴플렉스가 깊게 박혀 있었고, 학살 피해자들은 보도연맹과 관련되어 있었다. 이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긴 시간이 흐른 뒤, 때가 찾아온 것은 2001년 어느 날이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제작이었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매주 일요일…

◐ 죽음은 해석의 문제

  종교, 사변, 환각, 임사체험. 어느 것을 통하더라도 산 자는 사후를 확정할 수 없다. 따라서 산 자에게 죽음은 해석의 문제다. 해석은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시도로, 산 자는 죽음의 현시와 그 개념을 어떻게 순화하고 받아들일지를 발명해야만 했다. 이러한 노력은 원시인류에서부터 지역을 불문하고 확인되었으며, 내세관과 장례의 긴밀한 결속은 정신문화의 주된 부분이 되었다.   개체의 생물학적 삶이 어떤…

왜 사회주의인가?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쟁점들에 전문가가 아닌 자가 사회주의라는 주제에 관한 견해를 피력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나는 몇몇 이유들로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우선 그 문제를 과학적 지식의 관점에서 숙고해 보자. 천문학과 경제학 간의 본질적인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양쪽 모두의 영역에서 과학자들은 일군의 한정된 현상에 관한 일반적인 수용성의 법칙을 발견하고자 하며, 이는 이들 현상들의 상호연결을…

균질성과 시차

  자본주의적 시간은 폐허와 재건, 번영의 과정을 함축하는 땅의 시간이다. 이것은 하비의 자본순환 도식에서 건조환경 조성을 위한 구 건축물 및 지리환경의 파괴·재개발에 관한 언술이다.[1] 또한 자본이 토지 자연물을 사회체의 정박지로 재구축하는 시간에 대한 언술이다. 건조환경은 인간 생활자가 구조에 가깝게 인식하는 건축물의 총체다. 구조에 가까이 인식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건조환경은 생활자 개인이 경험하기 이전부터 이미 마련되어…

사변死變적 실재론, 벤 우다드의 암흑 생기론 해제

“때때로 생명은 지복이라기보다는 공포로서 경험되고,잠재적인 것의 충만함이라기보다는 철저히 의미 없는 공백으로도 경험된다”– 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  “위대한 가문이라니. 그저 종양 덩어리에 불과한 것을.제멋대로 수를 불리고, 무리를 짓고, 살아가다, 죽겠지.언젠가 별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필연의 때가 오면, 언젠가 잠들어 있던 옛것들이 다시 깨어나면,이 연약한 대지의 껍질을 깨고 다시 부화하면, 우리의 필연적인 종말은 찾아오는 것이다.(…) 파멸이 우리…

점액질의 존재론적 전회 The ontological revolution of slime

糸瓜咲いて/痰のつまりし/佛かな수세미 피어도/가래 응어리졌고/후불이려나[1]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플루타르코스는 질료, 형상, 결여privation로 대변되는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세 가지 원리를 신화적으로 해석했다.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신화에서는 필멸과 부조화의 악신인 세트 또는 튀폰이 상징하는 결핍steresis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엠페도클레스는 이 선한 원칙을 ‘우정’ 또는 ‘친근감’이라 부르기도 하며, 종종 화합Concord을 “차분한 표정짓기”라고 부르고, 악한 원칙을 ‘저주받은 싸움’과 ‘피로 얼룩진 갈등’이라고 불렀다. […]…

디자인 비엔날레의 무게

  ‘미술 전시’가 그러하듯, 근래 빈번해진 ‘디자인 전시’ 역시 종류가 다양하다. 아마도 이를 세 종류로 대별할 수 있을 듯하다. 하나는 자본주의 상품 시장에서 유통 중이거나 유통하려는 각종 디자인 결과물을 소개하는 데 치중하는 전시로, 대체로 ‘페어’ 혹은 ‘박람회’라는 이름이 붙는 유형이다. 두 번째는 어느 정도 시차를 가진 인물이나 사건에 주목하는 전시로, 보통 광범한 자료에 기반하며 종종 ‘아카이브’라는 수식어가 붙는 부류다. 세 번째는 디자인을…

돈 내고 모이는 시대 : 스터디 모임의 상품화 현상에 대하여

  취향 공동체. 이는 아마도 오늘날 2030 세대의 여가 생활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흔히 사용되는 단어일 것이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이루고 정기적으로 모이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혹자는 ‘소셜링 문화’라고 이름 붙이기도 하고,[1] 혹자는 사라진 ‘마을 공동체’에 대한 대안으로 삼기도 한다.[2] 이러한 문화적 현상에 대하여 학계에서도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본 고에서는 취향 공동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