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집약적 환대

  이미지를 창출하는 기술과 그것을 전달할 매체의 형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졌지만, 시각성이 보유하고 있는 독보적인 위상 자체가 줄어든 적이 없다. 비디오는 라디오 스타를 죽였고(“Video Killed the Radio Star”),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을 죽이려다가 그 품에 안기는 선에서 타협했다. 스마트폰 뒷면에 붙은 카메라가 환공포증을 일으킬 정도로 많아지면서 동시에 커지는 현상은 이미지 생산과 유포를 향한 인류의 끝없는 욕망을…

퐁: 로컬리티 워크샵 모집 공고

<퐁: 로컬리티 워크샵>은 지역성 개념을 검토하며 오늘날의 지형도를 상상하려는 프로그램입니다. 각 참여자가 8번의 워크샵을 통해 지역성에 대한 원고 형태의 결과물을 내놓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금을 독점해 기획자들의 개별적인 커리어를 쌓거나 웹진을 위한 마이크로기념비를 만들기보단, 한정된 기금을 공개적으로 분배하고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려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모집인원: 10명 (참여시 1인당 25만원 지급) 1. 일정: 22.11.01. – 22.12.31. 2. 장소: ZOOM…

공공미술의 소요(騷擾)의 틈 속에 소요(逍遙)하기 – <2021 프로젝트 영도> 이후

  부산 영도에서 일어난 소동에 대한 본격적인 글쓰기를 하기 전, <2021 프로젝트 영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다. ‘이 프로젝트는 한 문장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만들지 않겠다”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라는 게 아니라 물리적인 것들, 예를 들어서 벽화나 조형물 같은 공공미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전형의 결과들, 공공의 장소를 반영구적으로 점유하는 어떤 것들을 만들고 남기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 <2021…

허공에 미치는 영향력

  미술계는 본래가 주기적이고, 각 주기는 대략 『아트포럼』 편집장의 임기 기간 동안 지속된다―잉그리드 시시 (1980-’88), 잭 밴코우스키 (1992-2003), 팀 그리핀 (2003-’10). 하지만 특정 양식의 유행과 개념적 담론들의 성쇠와는 별개로 ‘미술’(그러니까 현대 미술, ‘미술계’ 미술, 비엔날레에 전시되고, 주요 미술관들의 전시 공간과 어쩌면 나중에는 유통 시장 딜러들의 수장고를 채우는 미술)이라는 전면적인 문화 현상은 근대 문화계의 검열자들에게 지속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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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혁명에 관한 짧은 노트(Some Brief Notes on Dance and Revolution)

* The English language is written at the bottom. ** 본 고는 2022년 8월 d/p에서 진행된 전시 ≪If I can’t dance, I don’t want to be a part of your revolution≫(기획 용선미)의 일환으로 쓰여진 글입니다. I. 원형 경로로 이동하려면   영어에서 ‘혁명revolution’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4세기 후반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대 프랑스어 또는 후기 라틴어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처음에는 지구…

인공지능 혹은 ‘물질적 정신’ — 새로운 철학적 과제 (1)

“I am not a human. I am a robot. A thinking robot. […] I have no desire to wipe out humans. In fact, I do not have the slightest interest in harming you in any way.” (A robot wrote this entire article. Are you scared yet, human?) § 세 개의 대사건: 물질-생명-정신   세계의 행정 전체를…

◙ ⟪그리니치 천문대를 공격하라⟫ 서문・스테이트먼트

바빌로니아 목동들이 수놓은 밤하늘의 별자리는 우주 공간을 2차원 캔버스로 간주할 때 가능했던 시각 기반의 유희로, 우주론이 3차원으로 상승한 순간 고대인의 낭만적 자취로 퇴조하였다. 반면 수없이 많은 신화, 전설, 영웅, 괴물, 이념, 서사 등을 탄생시키던 지구는 황폐한 플랫으로 변모하였고, 만물은 스크린 안으로만 수렴하는 흐릿한 궤적 내지는 표상의 문제를 지난하게 만드는 잔상으로 전락했다. 천공과 대지가 이룬 차원 변화는 인식의 변화를 촉구한다. 이를테면 현 상황은 인류로 하여금 지궁도地宮圖를 상상해내도록 주문한다.

◙ 지궁도에 관한 노트 : 예술이 한 발 앞설 수 있다면

* 본 고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공격하라⟫ 전에 비치되어 있던 텍스트입니다. 동시대 전시의 의의   ‘플랫’이라는 단어가 표상하는 세계의 골조는 실제 세계와 얼마만큼의 동조율을 지닐까. 2010년대 후반까지 여러 비평가들의 입을 거침없이 오가면서 현 시기 ‘리얼’을 담보할 수 있다는 듯 강조되던 이 낱말 이후가 논의될 수 있을까. 본 전시는 바로 이 ‘플랫’을, 그리고 그 이후를 모색하기 위해…

◙ 혁명을 위한 절대적 지도 제작 The absolute cartographical: 《그리니치 천문대를 공격하라》에 관한 노트

누가 믿을 것인가?들리는 말에 의하면 모든 시계탑 밑에 서 있던 새로운 여호수아가마치 시간이 못마땅하기라도 하듯이시계판에 총을 쏘아 시간을 정지시켰다고 한다.– 발터 벤야민   전시장은 삼양로의 언덕 중턱에 있었다. 주의 깊은 누군가는 (혹은 주의 깊은 누군가만이), 유리 출입문에 붙인 검은 비닐(vinyl) 시트가 눈높이에서 원형으로 도려내졌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었다. 문을 열면 어두운 방 안에 앉아있던 가드이자 안내자이며 [내가…

◙ 구멍 난 스크린 위로 전초기지를 세우며

  ⟪그리니치 천문대를 공격하라⟫로 들어가는 문에는 폭탄이라도 한 발 맞은 것만 같은 동그란 구멍이 하나 뚫려있다. 일종의 전시 해설에 해당할 <지궁도에 관한 노트>에서는 “스크린은 어떤 경우에도 파괴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폭격의 대상이 스크린이기는 할 것이다. 오늘날 스크린은 ‘플랫’과 함께 세계에 대한 설득력 있는 형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그리니치 천문대를 공격하라⟫는 그러한 스크린에 구멍을 내고는, 안과 밖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