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W YOUR MEME, 동시대 미술이라는 밈

생성형 AI 시대 이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이미지 자본주의하에서 무가치함=‘쓰레기’ 이미지를 담당하던 것은 (슈타이얼의 표현을 빌리면) ‘이미지-스팸’ 존재였지만, 이제는 스팸이 아니라 슬롭slop이다. 슬롭은 “쓸모없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인공지능 컨텐츠”를 의미한다.[28] 녹아서 흐르다가 굳은 지방, 거기에 달라붙어 엉긴 찌꺼기와 오물. 아말감처럼 항상 유동성과 접착성 이미지를 내포하는 슬롭은 유동성 시대에 걸맞은 쓰레기 존재의 최신 형상이다. 이러한 슬롭은 모델 붕괴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자기파괴를 일으킬 정도로, 데이터 유통의 ‘동맥경화’를 일으키며 원활한 유통과 흐름을 저해한다. 나아가 노출도, 트래픽 등 관심경제 하에서의 경제 활동을 위해 구글과 같은 대형 검색 사이트의 검색 엔진 최적화SEO 알고리즘을 추정하고 이를 공략하여 상위 페이지에 노출되기 위한 클릭베이트clickbait로서 막대한 쓰레기 이미지와 키워드를 담은 페이지 생성에 인공지능이 활용되기도 한다.[29] 이 경우 AI 이미지는 기묘한unheimlich 동시에 유해한 난치성unheilsam 이미지다.

밈기계로서 AI와 만담주의

그런데 선생, 숱한 사물들 가운데 무언가를 이해하길 바란다면, 이토록 막중하고 이토록 섬세한 장치가 닥치는 대로 아무나의 장난감이 된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폴 발레리, 『테스트 씨』 1.   2022년 12월 오픈AI의 거대 언어모델 챗봇 챗지피티(Chat GPT)가 등장하며 시작된 생성형 AI 열풍은 이제 최초의 과열된 흥분과는 어느 정도 결별한 모양새다. 당장은 주식시장에서 앤비디아 등 AI 관련주가 지나치게 고평가되어있는…

인터넷 밈은 미술에 도착할 수 있을까

1. 인터넷 밈의 나르시시즘적 주체성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심각한 밈 중독자가 되어서야 깨달은 사실이 있다. 인터넷 밈은 나 혼자서 스마트폰으로 보아야 제맛이라는 사실이다. 뜬금없고 당연한 말이라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맞다. 인터넷 밈을 모국어처럼 배운 세대라면 대부분 느끼는 사실이다. 아무리 웃긴 인터넷 밈이라도 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튼 다음에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순간 재미가 반감된다. 차라리 인터넷…

셀로판 행성에서 쓰는 글

  어딜 가나 그곳엔 카메라가 있는 것 같다. 국내에선 CCTV라는 명칭으로 통용되는 Security-Camera, 감시 카메라는 마치 모든 피사체를 동등하게 바라보는 듯한 기계의 시선을 장착했기에 객관적인 기록 장치라는 신뢰 하에 감시 수단으로 인정받는다. 공중파 뉴스의 앵커는 자료화면인 CCTV 영상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시간순으로 읊으며 사건의 전후 관계를 설명한다. 무생물은 결백하다는 법칙은 장비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공공장소에 설치된 카메라는…

무슨 표정-표면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

  현대 사회에서는 밈이란 단어를 개념으로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무엇이 밈인지 체득하고 있다. 개념적 정의를 모르더라도 인터넷상에서 누구나 능수능란하게 향유하고 있는 것이 밈이기도 하다. 그런데 밈은 단순히 인터넷에서 생성되고 유통되며 향유되는 강렬한 인상을 지닌 유머러스한 이미지나 컨텐츠 이상으로, 인터넷 환경의 전면화와 그 어느 때보다 정보화의 영향력이 강력해진 동시대에서 이미지를 다루고 감각하는 형식을 구성하는 가장…

This is not a MEME : 인터넷 하위문화의 배반

  이 글을 읽기에 앞서 한 가지 행위를 시도할 것을 요청한다. 스마트폰을 열어 스크린 타임을 확인해 보자. 지난 한 주간, 당신이 어떤 어플리케이션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를 말이다. 만약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현재는 ‘X’라 불리지만 입에 달라붙는 이름은 아니다)가 순위권에 있다면, 지금부터 전개할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밈(Meme)’. 이 단어를 보고 대개 가장 먼저 떠올리는…

밈 터널 속 광란의 질주

  밈화하면 안 웃긴 게 없다. 직장 상사의 잔소리도, 정치인의 연설도, 고대 학자의 촌평도 밈으로 낙인찍히면 그 무게와 의미는 순식간에 경량화한다. 밈이 된 무언가는 원래의 맥락과 전연 무관한 상황에 등장해 순간을 골려 먹는 광대 역을 부여받는다. 도리어 원본이 진중하면 할수록, 밈으로 강등 시 놀림의 강도는 세진다. 정색하는 놈이 지는 세상이다. 새삼스럽지만 밈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밈은…

밈친자의 기쁨과 슬픔 – 이은 작가론

1. 언젠가 세상은 인터넷 밈이 될 것이다.   분명히 이 작가는 밈친자다. 이 작업은 (작가의 말대로라면) “밈을 맨날 보고 저장하고 전송하고를 무한히 반복하는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이은 작가의 전시 《바라던 대로 Bibidi-Bobbidi-Boo》의 첫인상이었다. 전시에 입장할 때부터 인터넷 밈의 세례에 놀랐다. “(무한히 같은 행동만 반복하는) GIF의 디지털 움직임에서 시지각적 운동성을 포착하고 회화적 움직임으로…

카메라/센서-이미지/데이터: 시각성 이후 영상 비평을 위한 이론적 조건의 탐색(1)

따라서 재현적인 이미지의 세계와 기능적 이미지의 세계를 대비하며 후자를 우리가 처한 이미지 세계의 주된 지배종이라고 파악하는 것은 억지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세계를 드러내고 밝히는 재현적 이미지를 제작함으로써 현실을 상징화할 수 있도록 이끌었던 이미지의 세계가 재현적 이미지의 세계였다면 더 이상 우리가 볼 수도 없고 보지도 않는 수많은 이미지로 포화한 세계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이미지가 재현적인 시각적 객체로서의 이미지가 아니기에 그것을 이미지로 파악해야 하는지 아니면 범용 연산 장치인 컴퓨터가 수집, 저장, 분산, 공유, 전송, 처리하는 숱한 데이터 가운데 하나로서 정의하여야 하는지 여전히 옥신각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지의 리얼리즘이라는 꿈을 꾼다. 완전자율주행 자동차의 꿈이 시각 기계의 완벽한 리얼리즘을 향한 꿈이라면 어떨까. 예컨대 테슬라 Tesla나 포드 Ford, 메르세데스-벤츠 Mercedes-Benz, 현대의 자율주행 자동차는 인공지능 제어를 통해 인간 행위자의 개입과 참여 없는 완벽한 자율주행을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을 지탱하는 것은 이미지 센서가 포착한 이미지가 자율주행을 가능케 하는 완벽한 ‘보기’를 보장한다는 기대이다. 그러므로 자율주행이란 곧 주행을 위한 완전한 ‘보기’ 혹은 보기에 따른 운용(operation)으로서의 주행을 가리킨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단상들 : 서스펜스 스페이스suspence space

  1.   시계탑 내에서 톱니바퀴 틈새를 오가는 전투가 벌어진다. 도둑과 백작이 드디어 결판을 내는 것이다. 아직 국민들은 주연들이 떠난 결혼식에 남겨져 있다. 칼리오스트로 공국은, 세계는 곧 이전으로는 영영 돌아갈 수 없게 된다. 공주님은 벽의 계단에 붙어 전투를 관전한다. 해당 장면은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 성ルパン三世: カリオストロの城」(1979)의 결말부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시계탑 대결 씬은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