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위드’는 가능한가: 비평가 22인의 릴레이 인터뷰②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김철홍-영화   잘 모르겠다. 글을 쓰는 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그런 게 있을까 싶다. 그런 게 있다면 글을 쓰는 사람이랑 안 쓰는 사람의 삶에 어떤 차이가 있다는 것인데,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서 생각해보니까 떠오르는 게 있다. 더 피곤하다는 것이다. 때로는 글 같은 건 아예 안 쓰면서…

비평의 ‘위드’는 가능한가: 비평가 22인의 릴레이 인터뷰③

“글을 쓰는 것과 삶 사이를 이어줄, 지속 가능한 연결고리 같은 게 있을까요.” 이광호-영화   애초에 삶과 글이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 편이라, 그 둘을 동등한 대상으로 두고 다른 연결고리를 찾기보다는 삶 자체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것이 글쓰기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서정화-미술   위에서 이야기했듯 글쓰기와 삶이 별개의 것이 아니기에, 둘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라는…

포스트코로나 시대: 미술계와 관료주의적 작동방식(Modus Operandi)

포스트코로나 시대와 국공립 후원 프로그램   2019-2020년 코로나가 미술계에 불러온 지난 2년간의 변화는 전 세계적으로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정도로 크고 중요했다. 세계 대전 직후부터 있던 파리의 화랑이 닫는다든지, 뉴욕의 유명 화랑들이 합병을 하였다. 이미 국가와 문화의 경계선을 넘어서 존재하는 미술시장에 코로나가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또한 뉴욕이나 유럽의 주요 미술관에서 지난 20-30년간 구겐하임, 휘트니, 워커센터…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마음들

  그 길로 가지 않았더라면, 노인을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다른 노인이 다른 길에서 출몰했을 것이다.   노인은 길목에서 전단을 돌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발견하더니 이쪽으로 몸을 틀었고, 나는 그를 맞을 준비를 했다. 그는 터벅터벅 다가와서 종이를 내밀었다. 신축 오피스텔 매매 전단이었다. ‘역세권, 지금이 기회’라는 문구가 보였다. 여기까진 현대인이 흔하게 겪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동사로서의 페인팅

  페인팅에 필요한 조건을 적어보자. 캔버스와 페인트, 브러시, 팔레트가 먼저 떠오른다. 캔버스의 수직 각도를 맞춰 줄 이젤도, 페인트를 섞기 위해서 적절한 미디엄도, 그것들을 놓을 스튜디오(혹은 그에 준하는 장소)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대상(그것이 재현불가능한 어떤 것일지라도)과, 그것으로부터 페인터에게 떠오른 어떤 심상(그 장소가 머리인지 가슴인지는 단정할 수 없겠지만), 그리고 그 심상을 브러시로 캔버스에 옮길 몸도 필요할 것이다….

무빙/리빙 이미지로서의 VR에 관한 연속적 질문

  ‘무빙 이미지(Moving Image)’라는 개념은 그 명칭에서 드러나듯 직관적이고도 (여전히) 모호하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의 완벽한 재현보다는 사막에 버려져 동물이 서식하는 누더기 지도에 가깝다”는 말과 같이,[1] 그의 유형학은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동시에 무한히 팽창한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부터 탄생하게 된 여러 매체와 장르, 그리고 그들 사이의 경계가 무너져 내린 포스트-미디어적 순간들을 복기하는 대신, 우선 용어 자체의…

자본주의 스탈리니즘

이 세계의 문제   전체주의와 후기전체주의의 도식을 갈파함으로써 스탈린주의의 기조를 비판하려 했던 바츨라프 하벨의 노력은 오늘날 아이러니하게도 스탈린주의와 현 자본주의의 형식적 차이에 관한 명료한 인식을 제공한다. 하벨의 주장대로라면 후기전체주의 체제는 특정 집단의 선도적인 정치적 노선이 아니라 복잡하고 장기간에 걸친, 아주 교묘해진 ‘사회의 자기 침해’인데, 다음 다섯 테제가 사회적 자기 침해로서의 후기전체주의적 스탈린주의 비판을 위해 그가…

QR

  지겨운 이미지에 대해 말해볼까?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에 대해서 말이야. 자, 편안히 앉아봐. 아니 서 있어야 할까? 걸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눕고 싶다고? 누워도 상관없지. 편안한 게 중요하니까. 자 그럼, 편안히 있어 봐. 이제 눈을 감고 아무것도 없는 흰 상태를 상상해보자. 아무것도 없는 흰 상태. 이 흰 것은 꽉 막힌 듯 느껴지는 움직이지 않는 딱딱한 하얌이야. 눈을…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리얼리즘 운동, 혹은 아시아의 가능성: 수조요노(S. Soedjojono)의 작업 세계에 대한 간략한 일별」

  아시아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본,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등으로 나열될 수 있는 영토의 집합인가, 동북반구에 위치한 대륙인가, 유럽과 아메리카의 반대 항에 놓이는 위상학적 공간인가? 혹은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를 비롯한 제3세계의 기획들에서 보이는 일종의 유토피아적 장소인가?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제안이 가능하겠지만, 근본적인 의미에서 아시아적인 것이란 결국 공허한 보편 속에서 특수자의 자리를 찾는 기획과 관련되지…

목계지덕木鷄之德의 조증

  장자 외편外篇 달생達生에 목계지덕木鷄之德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닭 싸움을 좋아하던 왕이 ‘기성자紀渻子’라는 사람에게 맡겨서 최강의 투계鬪鷄로 기르도록 명하였고, 열흘이 지나서 물었다.“닭이 이제 싸울 만한가?”“아직 안 되었습니다. 지금은 쓸데없이 허세를 부리고 자기 힘만 믿습니다.”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물었다.기성자가 대답했다.“아직 안 되었습니다. 다른 닭의 소리와 그림자만 보아도 쉽게 반응하고 덤벼듭니다.”또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물었다.기성자가 대답했다.“아직 안 되었습니다. 간신히 참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