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그와 상동증

  로케이팅은 성공했다. 현실은 변조되었다. 더 정확히는 현실성이. 지난 4월 L.A.D에서 열린 ⟪STUCK⟫ 전은 작업을 보기 위한 전시라기 보단 공간을 이질적으로 개축한 코딩에 가까웠다. 환각의 가미를 위해 L.A.D의 공간성을 한껏 이용한 일은 영리했다.(L.A.D엔 정경을 1인칭 어드벤처 시점의 ‘맵’처럼 표상하는 효과가 기입되어 있다.) 공간을 두고 할 수 있는 여러 고민 중 ‘체험’에만 한정했을 때, 공간-전시-효과-체험의 사슬을…

19) 망가F타로의 죄와 벌 독해

※ 본고는 일본 만화가 망가F타로 작품 ‘죄와 벌’의 줄거리가 실려 있으며, 나체, 피, 구토, 설사 등 충격적인 이미지를 대거 포함하고 있기에 임산부, 노약자, 어린이, 심약자, 미성년자의 열람을 금하며, 본고에 실린 이미지로 인해 초래될 심리적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 ※ 본문에 등장하는 스틸 이미지는 각종 블로그 및 웹사이트에서 캡쳐되었습니다. 시각 자료는 글 해당 부분을 클릭하시면 새 탭에서 열기로…

백색 검열

눈엣가시가 최상의 확대경이다. ─테어도어 아도르노   글쓰기가 자신의 존재를 건 투쟁을 역사 내내 지속하는 동안, 검열은 한켠에 도사린 채 호시탐탐 글쓰기를 베어 먹으려 했다. 소음 없는 세계를 향유하려는 욕망은 검열로 둔갑해 초인종을 누른다. 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언어인가? 당신이 속한 사회의 의미구조를 결정하고 관통하면서 전체 장을 뒤흔들기 때문에. 한 톨의 재산도 지위도 없는 이라…

여가로서의 게임, 노동으로서의 게임, 상품으로서의 게임: 게임 읽기의 혼란과 비판적 개입

  게이머들 사이에서 노가다 게임이라는 비난의 표현은 이제는 상투적일 뿐이다. 하지만 게임에 관한 진정으로 상투적인 인식을 상기해보자면 이는 다소 어색하게 들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게임을 즐기는 일은 흔히 취미 혹은 여가 활동으로 여겨지고 이는 특히 무엇보다도 노동과는 전혀 상반되는 활동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당연하게도 노동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과도한 노동, 속된 말로 노가다를…

¿ 새로운 카바레 볼테르 혹은 새로운 컨벤션 홀 ?

 1.  늘 그래왔듯 무빙 이미지 작업에는 조각난 전자음들이 함께 재생된다. 나아가, 미술관은 이러한 음악들이 더 이상 시각 예술을 위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여기며, 할당된 공간을 점거할 수 있는 또 다른 예술 형식으로 전시한다. 예술가들은 사운드를 전시장에서 우두커니 바라볼 수 있는 무형의 오브제로 출품한다. 알다시피, 이러한 전략은 이미 한 세기 전부터 예견되어 왔다. 다다(Dada)를 거쳐 플럭서스(Fluxus)까지, 미술과…

그러므로 비평으로 돌아가자!

  베르톨트 브레히트(아직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좋으련만!)는 <서푼짜리 오페라>의 후속 작이자 확대판인 <서푼짜리 소설 Threepenny Novel>을 쓰면서 자신이 마주친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의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쓸모가 크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마주친 어려움은 또한 우리가 지금 맞닥뜨린 어려움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서푼짜리 소설>에서 그는 저 유명한 시카고의 선물(先物, futures) 시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