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액질의 존재론적 전회 The ontological revolution of slime

糸瓜咲いて/痰のつまりし/佛かな수세미 피어도/가래 응어리졌고/후불이려나[1]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플루타르코스는 질료, 형상, 결여privation로 대변되는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세 가지 원리를 신화적으로 해석했다.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신화에서는 필멸과 부조화의 악신인 세트 또는 튀폰이 상징하는 결핍steresis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엠페도클레스는 이 선한 원칙을 ‘우정’ 또는 ‘친근감’이라 부르기도 하며, 종종 화합Concord을 “차분한 표정짓기”라고 부르고, 악한 원칙을 ‘저주받은 싸움’과 ‘피로 얼룩진 갈등’이라고 불렀다. […]…

※퐁의 새 프로젝트 ⟨스피드런⟩ 창설을 알립니다.※

안녕하세요. 퐁입니다.작년에 ⟨퐁: 로컬리티 워크샵⟩을 진행하기 전 몇몇 워크샵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요.결과적으로, 퐁 역시도 정례적인 워크샵을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 워크샵은 정해진 참여자가, 몇 차례 모여,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또한 기금 경제에 의존해 부침을 겪지도 않습니다.우리는 폭죽처럼 여기저기서 화려하게 선보이는 전시들을 경유하기로 했습니다.우리의 워크샵 참여자는 그때그때 달라지며, 그날그날 모이고 흩어지며, 어떤 결과물도 요구하지 않습니다.우리는 이것을 노마딕워크샵으로…

시골에서 펼치는 로컬리티의 아나키즘적 사유

  먼지가 모여서 세계가 되고, 세계가 부서져서 먼지가 된다. 먼지를 떠나서 세계가 따로 없고, 세계를 떠나서 먼지가 따로 없다. 먼지는 먼지가 아니고 세계는 세계가 아님을 말한 것이다.[1]   나는 4년 전 제주도 서쪽 시골 마을에 위치한 전통 농가를 구해 귤나무, 닭, 개, 사람 그리고 무수히 많은 지상 지하 생명체들과 동거하고 있다. 미술관옆집이라 명명한 이곳에서 창작과…

로컬에서 살아남기

일하는 중에 문자 한 통이 왔다. 옆 가게 베어링집 사장님이 노가리를 숯불에 구웠다고 와서 먹으라는 문자였다. 행사 때 나눠 먹으려고 넉넉하게 주문한 노가리를 사장님께 드린 것인데, 본인 공장에 불이 잘 피워지는 미니 그릴을 장만하신 걸 자랑하실 겸 문자를 보내신 모양이다. 사장님께 이따가 놀러 가겠다고 답장을 보내고, 나는 다시 사무실 책상에 앉아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를 내며…

미술왕: 지방 미술대생 수기, 당사자라서 반박 안 받음

지방 미술대학 생활에 관한 짧은 수기   2012년 지방 미대의 디자인학과에 입학했다. 첫 1학년 동안은 그냥 재미가 있었다. 노는 것도 노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과제가 ‘잘’ 그리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 것과 미술에 대한 이해를 성숙시키는 일은 아주 다른 것이다. 당시 내가 미술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냐면, 학교에서 광주비엔날레를 데려갔었는데 아주 빠른 걸음으로 전시를 훑고,…

디자인 비엔날레의 무게

  ‘미술 전시’가 그러하듯, 근래 빈번해진 ‘디자인 전시’ 역시 종류가 다양하다. 아마도 이를 세 종류로 대별할 수 있을 듯하다. 하나는 자본주의 상품 시장에서 유통 중이거나 유통하려는 각종 디자인 결과물을 소개하는 데 치중하는 전시로, 대체로 ‘페어’ 혹은 ‘박람회’라는 이름이 붙는 유형이다. 두 번째는 어느 정도 시차를 가진 인물이나 사건에 주목하는 전시로, 보통 광범한 자료에 기반하며 종종 ‘아카이브’라는 수식어가 붙는 부류다. 세 번째는 디자인을…

돈 내고 모이는 시대 : 스터디 모임의 상품화 현상에 대하여

  취향 공동체. 이는 아마도 오늘날 2030 세대의 여가 생활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흔히 사용되는 단어일 것이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이루고 정기적으로 모이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혹자는 ‘소셜링 문화’라고 이름 붙이기도 하고,[1] 혹자는 사라진 ‘마을 공동체’에 대한 대안으로 삼기도 한다.[2] 이러한 문화적 현상에 대하여 학계에서도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본 고에서는 취향 공동체가…

만보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찰스 대너 뉴스를 찍어내서 소동을 일으키는 것이 신문의 의무다.– 시카고 타임즈   이것은 만보. 쉴 새 없이 치달리는 속보의 세계에서 후발선제의 묘리가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한 느릿한 송출이다. 나로 말하자면 <뉴스페이퍼>의 비공식 리포터이자, 합의되지 않은 54번째 참여자 되시겠다. 뉴스페이퍼 ISSUE NO.3는 각 필자들에게 ‘신세계’라는 단어만을…

그 마왕은 누가 쓰러뜨렸을까?: 비디오 게임에서의 플레이어와 루두스 장치

  <드래곤 퀘스트 11>의 한 전투는 이렇게 진행된다. 주인공 ‘용사’는 6개의 오브를 모아 용사의 검을 부활시킨다. 이때 그들의 뒤를 추격해온 마왕 우르노가의 부하 호메로스가 용사 일행을 습격한다. 이어지는 전투 시퀀스에서 호메로스는 ‘어둠의 오라’를 두르고 무적 상태가 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호메로스를 결코 쓰러뜨릴 수 없다. 이러한 게임 문법에 익숙한 플레이어 대부분은 그냥 패배를 하나의 서사로 받아들이고…

가장 동시대적 지역성으로서의 초지역: 어느 지리학자의 그림

* 이 원고는 문헌조사 및 사례취재를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에 허구적 상황을 가미한 사실적 픽션임을 밝힙니다. * 들어가며 *   안녕하십니까. 지리산대학교 지리학과 이지오입니다.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긴장되네요. 폭설로 교통이 불편한데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 주셔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오늘 이 대회에서 제가 발표할 주제는 ‘초지역적 거주의 발생 배경과 양상, 그리고 그에 따른 공간전략’입니다. 초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