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미래대, 그리고 사라진 사과

  경산에 코발트 광산이 있다. 한때는 이 공간을 언급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에 “아이고 말 다 못 합니다”(대구매일 1960년 5월 22일) 하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사회는 레드 컴플렉스가 깊게 박혀 있었고, 학살 피해자들은 보도연맹과 관련되어 있었다. 이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긴 시간이 흐른 뒤, 때가 찾아온 것은 2001년 어느 날이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제작이었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매주 일요일…

◐ 죽음은 해석의 문제

  종교, 사변, 환각, 임사체험. 어느 것을 통하더라도 산 자는 사후를 확정할 수 없다. 따라서 산 자에게 죽음은 해석의 문제다. 해석은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시도로, 산 자는 죽음의 현시와 그 개념을 어떻게 순화하고 받아들일지를 발명해야만 했다. 이러한 노력은 원시인류에서부터 지역을 불문하고 확인되었으며, 내세관과 장례의 긴밀한 결속은 정신문화의 주된 부분이 되었다.   개체의 생물학적 삶이 어떤…

조재연×엄제현의 티티카카 [5]작은 이야기

엄제현(이하 U) 대망의 최종장. 밥 먹이고 달래 가며 만들어낸, 조재연 기자와의 마지막 시간이군요. 조재연(이하 C) 견디고 읽다보면 늘어가는 아트 지식! 티티카카의 마지막 화! 지금 시작! U 오늘 대주제는 ‘작은 이야기’네요. 그전에 기획의 모태가 된 3월 호의 동시대 미술 키워드 제작비화 들려줄 만한 것 없어요? 키워드 받아본 후 편집부의 반응이나. C 티티카카를 이어오면서 매번 이 키워드가 무슨 의미일까, 왜 나왔을까…

조재연×엄제현의 티티카카 [4]현실참여

문화정치  엄제현(이하 U) 요사이 미술계의 머리가 되어버린 비평적 대안, <티티카카>의 네 번째 날입니다. 아트인컬처의 차기 편집장을 꿈꾸는 기자 조재연 씨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문화정치 이거는 동시대 미술 주제로 보기 어려운데… 이동연 선생 창창할 때 하던 말 아니에요? 조재연(이하 C) 맞아요. 『문화과학』이라는 잡지도 그러한 기반을 가지고 있죠. U 이동연 선생이 편집위원으로 있는 그 잡지는 뭐였죠? C 그게 방금 제가 말한 거예요. U 이걸 왜 또…

조재연×엄제현의 티티카카 [3]친환경, 매체

자연, 전시의 환경 윤리 엄제현(이하 U): 세 번째 만남이군요. 조재연(이하 C): 난 오늘이 마지막인 줄 알았어. U 그러니까. 뭔가 많이 달려온 느낌이야. 자네가 자꾸 약속 펑크해서 그래요. 미루고 뭐 하고 막 이래서. 회사 때문이죠? 제가 자네 대표랑 정상회담 좀 할게요. 자네 내일부터 퐁으로 출근시키겠다고. C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라고 하고 싶은데 제게 가오가 있을까요… U 오늘 보여주세요. 친환경 차례에요. 탈인간…

조재연×엄제현의 티티카카 [2]정체성, 인간

LGBTQ+ 엄제현(이하 U): 두 번째 토크가 밝았습니다. 오늘 역사에 남을 준비되셨나요? 조재연(이하 C): 감당할 수 있다. U 오케이 땡큐입니다. 정체성으로 묶인 키워드는 크게 끌리지 않는 낱말들이 많았어요. 인간도 그렇고. 그래서 오늘은 두 챕터를 한꺼번에 다루려고 합니다. 정체성부터 하죠. LGBTQ+가 머리네요. 먼저 한 번 느끼는 바를 말해주시죠. C 왜 맨날 제가 먼저에요. U ㅋㅋㅋ제가 호스트고 당신이 게스트니까 그렇죠. C LGBTQ+ 정체성을 지닌…

조재연×엄제현의 티티카카 [1]테크놀러지

본 기획은 미술전문지 『아트인컬처』의 23년 3월호 특집 「동시대미술 키워드」의 톺아보기로, 아트인컬처의 기자이자 비평가인 조재연과 함께합니다. 엄제현(이하 U) 뭐라고 시작해? 운 한번 띄워보세요. 조재연(이하 C) 지금부터 조재연과 엄제현의 티티카카를 시작하겠습니다. U 작위적이네요. 이번 토크로 몇 명의 적을 만들 각오까지 하셨죠? C 저는 단 한 명의 적도 만들 생각이 없는데요. U 그럼 여기서 접죠, 그냥. C 응 U 이거 하다보면 뭐 어차피 실명 나오고 할 수밖에 없어요. 피 튀길 수밖에 없어, 그렇지 않아?…

왜 사회주의인가?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쟁점들에 전문가가 아닌 자가 사회주의라는 주제에 관한 견해를 피력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나는 몇몇 이유들로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우선 그 문제를 과학적 지식의 관점에서 숙고해 보자. 천문학과 경제학 간의 본질적인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양쪽 모두의 영역에서 과학자들은 일군의 한정된 현상에 관한 일반적인 수용성의 법칙을 발견하고자 하며, 이는 이들 현상들의 상호연결을…

균질성과 시차

  자본주의적 시간은 폐허와 재건, 번영의 과정을 함축하는 땅의 시간이다. 이것은 하비의 자본순환 도식에서 건조환경 조성을 위한 구 건축물 및 지리환경의 파괴·재개발에 관한 언술이다.[1] 또한 자본이 토지 자연물을 사회체의 정박지로 재구축하는 시간에 대한 언술이다. 건조환경은 인간 생활자가 구조에 가깝게 인식하는 건축물의 총체다. 구조에 가까이 인식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건조환경은 생활자 개인이 경험하기 이전부터 이미 마련되어…

사변死變적 실재론, 벤 우다드의 암흑 생기론 해제

“때때로 생명은 지복이라기보다는 공포로서 경험되고,잠재적인 것의 충만함이라기보다는 철저히 의미 없는 공백으로도 경험된다”– 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  “위대한 가문이라니. 그저 종양 덩어리에 불과한 것을.제멋대로 수를 불리고, 무리를 짓고, 살아가다, 죽겠지.언젠가 별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필연의 때가 오면, 언젠가 잠들어 있던 옛것들이 다시 깨어나면,이 연약한 대지의 껍질을 깨고 다시 부화하면, 우리의 필연적인 종말은 찾아오는 것이다.(…) 파멸이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