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들 : 서스펜스 스페이스suspence space

차범록
2024.10.01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 성ルパン三世: カリオストロの城」(1979)의 시계탑 칼싸움 장면

 
1.

  시계탑 내에서 톱니바퀴 틈새를 오가는 전투가 벌어진다. 도둑과 백작이 드디어 결판을 내는 것이다. 아직 국민들은 주연들이 떠난 결혼식에 남겨져 있다. 칼리오스트로 공국은, 세계는 곧 이전으로는 영영 돌아갈 수 없게 된다. 공주님은 벽의 계단에 붙어 전투를 관전한다. 해당 장면은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 성ルパン三世: カリオストロの城」(1979)의 결말부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시계탑 대결 씬은 언제나 사람을 부리며 뒤편에서 음모를 꾸미던 칼리오스트로 백작과 모두를 쥐락펴락 농락하는 대도 루팡 3세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1:1 대치를 그린다. 백작의 부하들은 톱니바퀴 부분부터는 진입하지 못한다. 백작은 드디어 직접 전투에 나선다. 공주는 루팡의 품에서만 안전하다. 칼싸움을 벌일 정도로 시계의 톱니바퀴들 위를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건 백작과 루팡뿐이다. 마치 물밑 작업으로 진행되고 있는 계획이 영향을 끼칠 국가의 전반적인 상황을 위에서 조망할 수 있는 건 둘뿐이라고 하는 듯, 톱니바퀴를 풍류를 위해 동원된 배경 소품뿐 아니라 구조에 대한 알레고리로도 읽히게 한다. 작 내에서 루팡은 언제나 아무것도 모르는 척 능청스럽게 시치미를 뗀다. 가까운 동료 지겐조차 그의 정확한 속내를 모른다. 현 섭정인 백작의 숨겨진 계획은 중후반까지 감춰져 있다. 주인공 루팡과 메인 빌런인 백작은 러닝타임 내내 (본인 업무에만 열중하는 ‘독고다이’ 미녀 스파이 후지코를 제외한) 남들보다 상황 인지 면에서 앞서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교하고 다루기 힘든 오래된 시계탑 내부는 세계관 내의 인식적인 위계를 형상화해 펼쳐 놓은 무대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인식의 위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건물 공간의 성질을 특히 노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그것은 역시 게임일까. 2013년에 출시된 화제의 문제작 「더 스탠리 패러블The Stanley Parable」(2013)은 “스탠리”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나레이션을 바탕으로, 단조로운 삶을 사는 그의 뒷모습을 삼인칭 시점에서 발견하고 이후 감시하는 듯한 카메라 무빙을 통해 비추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해설자는 이렇게 말한다:

「더 스탠리 패러블The Stanley Parable」(2013)의 스탠리, Galactic Cafe, 한 장면.

 
  “이 이야기는 스탠리란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스탠리는 큰 건물에 있는 회사의 427번 직원으로 일했습니다. 427번 직원의 업무는 간단했습니다. 427번 방의 책상에 앉아 키보드의 버튼을 누르는 것이죠. 지시는 책상 위의 모니터를 통해, 어떤 버튼을 누를지, 얼마나 오랫동안 누를지, 그리고 어떤 순서로 누를지 전달됐습니다. 이 작업이 427번 직원이 매일, 매달, 매년 했던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것이 고리타분하다고 말하지만, 스탠리는 지시가 내려오는 매 순간을 즐겼답니다. 마치 그가 이 업무만을 위해 만들어진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요. 그리고 스탠리는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스탠리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리고! 그가 절대로 잊지 못할 일이 말입니다. 책상 앞에서 거의 한 시간을 앉아 있었지만, 스탠리는 단 하나의 지시도 모니터에 내려오지 않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도 스탠리 앞에 나타나서 지시를 내리거나, 회의를 하자고 하거나,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완벽한 고립 상태는 그가 이 회사에서 일했던 일생 한 번도 없었던 일입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놀라고, 얼어붙은 상태에서, 스탠리는 오랫동안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린 후, 책상에서 일어나 그의 사무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게임은 시작합니다.”[1]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에서부터 스탠리를 바라보던 삼인칭의 시점은 스탠리가 바라보는 일인칭의 시점으로 전환된다. 예민한 플레이어라면 여기서 스탠리가 자의식을 위임받게 되었음을, 즉 게임을 플레이하는 본인에 의해 ‘각성’했음을 쉽게 눈치챌 수도 있을 것이다. 상위 차원의 주체를 대변할 수 있는 몸으로의 변환에 혼란스러워하는 스탠리의 시야를 뒤로 하고, 그리고 게임은 시작합니다ㅡ라는 내레이션은 비로소 플레이어에게 조작 권한을 쥐여주며 스탠리를 조종가능한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만든다.

  내레이션의 설명과 지시에 순응할 시, 건물 내 스탠리의 동선은:
개인 사무실—회의실—사장실—지하의 정신 지배 기관

  크게 네 파트로 나뉜다. 개인 사무실에서 나오면 스탠리의 동료들이 일했던 공동 사무실이 있다. 말단 평사원 스탠리는 자신 말곤 아무도 없는 회사 건물에서 복도와 계단을 가로질러 점차 높은 직급이 근무하는 공간으로 이동하며 가장 상층부의 사장실까지 도착하게 된다. 스탠리의 탐방 구역이 확장될수록 플레이어는ㅡ스탠리와는 다른 인식의 계층에서ㅡ이 세계가 갖는 이질감에 대해 더 ‘알게’ 된다. 플레이어는 사장실에서 친절한 내레이션의 안내에 따라 ‘스탠리’라면 알 턱이 없을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내재적인 비밀이 숨겨진 지하실로 향하게 된다. 스탠리가 관제실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순응 루트는 해설자가 본래 써 내렸던 시나리오이다. 내재적인 인식 상승을 아이디어1, 외재적인 인식 상승을 아이디어2로 기술할 시, 아이디어1이 의미를 갖는 건 순응 루트에서뿐이다. 해설자가 스탠리를 비밀번호 퀘스트에게로 인도하며 거치게 하는 장소들은 전부 화이트칼라 노동 공간이다. 계단을 올라 사장실 방문-엘리베이터 탑승으로 지하 진입 후 관제실 방문이라는 연쇄는 상승- 하강이 아닌 상승-내부 진입에 가깝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처음의 지시인 “스탠리는 왼쪽 문으로 갔습니다” 부터 불응하며 모든 지시를 거부한다면 그는 비-노동 공간들에 돌입할 수 있게 된다. 오른쪽 문으로 가면 나오는 방은 사원 휴게실이다. 해설자가 드러낼 생각 없었던 유지 보수 구역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어두운 주차장이 나온다. 이후 해설자까지 체스 말과도 같은 계획의 일부였음이 발각되는 ‘혼란 엔딩’을 발표하는 방으로 가기 위해선 오로지 틈새 공간일 뿐인 백룸을 탐험하듯 텅 빈 복도를 반복해서 따라 걸어야 한다.

  해설자의 환대를 받은 스탠리의 전환이 처음으로 이뤄진 건 게임이 시작된 첫 번째 장소인 개인 사무실에서부터다. 해설자는 처음부터 당신만을 위한 무대를 준비해 놓고 당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라는, 게임을 진행하면 점차 드러나게 되는 아이디어2는 플레이를 반복하는 플레이어에게 무력감을 선사한다. 전반적인 의도를 이해한 후 도입부의 나레이션을 복기하자면 게임 캐릭터의 일상에 나타난 균열이라는 테마와 그에 맞춘 카메라 무빙은 오히려 주제 의식을 꽤나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듯 보인다. 스탠리는 ‘나’가 아니다. 하지만 정작 플레이어가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게임을 플레이ㅡ즉 게임 속 공간을 탐사하며 비뚤어진 내레이션과 충돌ㅡ해야만 한다. 수없이 많은 게임을 거쳐온 게이머들에게 스탠리의 첫 변화는, 타 게임에서 익숙하게 봐왔기에 너무 당연한 ‘캐릭터 소개 후 게임 시작’ 과정의 포맷을 따랐을 뿐처럼 보이며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탠리로 하여금 움직이지 않고 개인 사무실에서 인식의 층의 상승을 겪게 할 순 없을까라는 질문을 품어볼 수도 있다. 인디 게임 「Start Survey?」(2019)(이하 Survey)의 플레이 또한 「스탠리 패러블」과 마찬가지로 빈방에 혼자 앉아 있는 ‘나’의 시점에서부터 시작한다. 게임의 진행 방식은 간단하다. 좁은 방의 모습을 한 맵에 앉은 ‘나’는 탁상에 배치된 노트북이 띄우는 질문에 yes/no를 선택하게 된다.「Survey」의 ‘질문자’는 불친절해 보이지만 온갖 루트를 통해 스탠리, 나아가 플레이어를 조종하고 농락하고자 하는 「스탠리 패러블」 의 해설자와 달리 결과적으론 우호적이며 그렇기에 섬뜩하다. 10분 내외의 짧은 러닝타임이 말해주듯 질문자는 30단계의 설문을 통해 하나뿐인 정답으로 다다르고자 한다. 질문자는 “좋은 하루를 보내고 계신가요?”라는 일상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불이 꺼지면 당신은 무서워할까요?”직후 대답에 무관하게 불을 꺼버리거나, “당신이 실종된다면 찾아줄 사람이 있나요?” 떠본 뒤 바로 “지금 혼자인가요?” 로 이어가거나, 혼자밖에 없는 방에서 “지금 당신 뒤에 있는 사람을 아나요?” 라고 묻는 등 공포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하지만 질문을 보고 점프 스케어를 예상하며 맵의 뒷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돌아보면 그곳엔 아무것도 없다 . “지금 혼자인가요?”같은 질문은 질문자가 조사하는 대상이 인게임의 나인지 혹은 바깥의 나인지 불분명한 느낌도 준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혼란을 겪기도 한다. 스크린을 눈앞에 둔 본인의 환경과 노트북 하나를 두고 대답하는 게임 내 환경 세팅이 일치하기에, 대답을 게임 캐릭터에 맞춰야 하는지 현재 게임을 플레이하는 중인 자신의 상황에 맞춰야 하는지 헤매게 되는 것이다. 이에 화답하듯 질문자는 컴퓨터에 저장된 이미지 파일 중 하나를 무작위로 프린트해 게임 내 아이템으로 만들고 갑자기 사용자 계정명으로 설정된 이름을 부르며 플레이어가 ‘현실’의 당사자를 의식하게 한다. 마지막엔 게임의 배경지인 방과 창문 밖의 폴리곤 모델링이 전부 걷히며 검은 화면에 숫자 0과 1이 끊임없이 띄워진다. “주위를 둘러보세요. 이 방, 문, 컴퓨터, 옆집.. 이 중 어떤 것도 현실이 아니에요. 제가 이 세상을 만들었어요. 제가 당신을 만들었어요. 그 사실을 당신이 눈치채길 돕기 위해 노력했고, 드디어 성공했네요. 마침내 제가 당신을 자유롭게 해줄 수 있군요…” 게임 창이 스스로 꺼지고 강제 종료되며 게임은 끝난다. 그제야 플레이어는 설문의 목적이 사실상 매트리스의 ‘빨간 약’ 주입이었음을, 그리고 질문자가 언급했던 “당신 뒤에 있는 사람”은 게임 속의 NPC나 적이 아닌, 캐릭터를 조종해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던 모니터 뒤의 본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평범한 방탈출 장르 게임으로 위장한 「스탠리 패러블」이 불문율을 깨트리는 내레이션을 통해 건물의 어느 쪽으로 향할지 어떤 행위를 시도할지 선택하는 과정에서 스토리, 선택, 나아가 플레이 행위와 게임성 자체에 의문점을 품도록 유도한다면 「Survey」는 게임 배경 세팅을 실제 플레이어의 환경과 겹치도록 설정해 의심을 재촉함으로써 보다 존재론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Start Survey?」(2019), 한 장면. 출처: Start Survey Horror Game – Play Start Survey Horror Game Without Download (startsurveyplay.com)

 
  제4의 벽을 인지하는 객체의 참여는 그가 세계관 내 시스템에 관여할 가능성이 있음을 전제하며 이는 위에 언급했듯 장르 위장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Survey」에서 게임 내 컴퓨터라는 소품의 쓰임새가 실제 디지털 기기를 사용 중인 플레이어와 게임 캐릭터의 동일시를 오히려 방해했듯이, 타 장르로 위장한 호러 게임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디지털 기기 소프트웨어로서 일부 관리 권한을 획득해 프로그램을 휘두르며 종종 플레이어를 게임 밖으로 튕겨낸다. 그것들은 게임이야말로 제4의 벽을 응시하며 화면 밖에 말을 거는 류의 쌍방향 소통을 시도하는 반란자들이 잠복하기에 적절한 환경임을 주장하는 것도 같다. 감상자와는 별개의 세계 속에서 굳건히 위치해야 마땅했을 캐릭터의 메타-발언은 창작물과 감상자 간의 인식의 위계를 상기시켜 이입을 방지해 상하위 뒤엉킨 구조 체계를 조망하게 한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 속 불문율을 건드리는 주민 NPC

 
  게임 몰입에 방해되는 스크립트는 상위 주체인 플레이어에게 불편감을 준다.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의 교과서이자 트뤼포로 인해 “영화에 대한 영화”로 알려진 히치콕의 「이창Rear Window」(1954)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장면은, 리사가 제프에게 손가락으로 보내는 사인을 확인한 살인범 쏜월드가 스크린 정면으로 눈을 마주쳐 오는 씬일 것이다. 관음하는 제프에게 동기화되어 있던 관객은 덩달아 쏜월드에게 ‘들킨’다. 이후엔 건너편의 아파트로 찾아온 쏜월드가 일시적 불구 상태인 제프를 해치기 위해 집에 침입하는 시퀀스가 이어지지만, 보다 직접적인 위협임에도 일전의 아이컨택만큼 서늘한 임팩트를 주지는 못한다. 「Survey」 의 엔딩 또한 ‘값싼’ 점프스케어와 맞바꿔 플레이어를 들키게 하려는 시도 하에 디자인된 결과물이다. 플레이어는 마지막에 와서야 캐릭터의 자유 의지를 빼앗는 건 본인이었음을, 그렇기에 굳이 이 게임에 ‘악역’이 있다면 그건 질문자가 아닌 자신 쪽이었음을 눈치채게 된다. 미셸 푸코는 벤담의 판옵티콘은 바라봄과 보임의 결합을 분리하는 장치라고 말했다. ‘주위를 둘러싼 원형의 건물 안에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완전히 보이기만 하고 중앙부의 탑 속에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결코 보이지는 않는’다.[2] 권력의 근원이 내적인 메커니즘에 의해 관계를 조성하는 기계장치 속에 존재한다(371p)는 그의 말대로 보기 장치들은 권력 장치와도 같다. 긴장감은 ‘나’가 타자의 침범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에서 발생한다. 내가 타자에게 발각될지도, 나아가 훼손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이다.

  쏜월드와의 아이컨택은 판 옵티콘에서 추방당해 보는 주체로서 권력을 박탈당하며 인식의 위계 근간이 흔들리는 충격을 주기 위한 방법론이다. 피터 위어가 「트루먼 쇼The Truman Show」(1998) 의 모든 상영관 뒤에 카메라를 설치해 영화 도중에 실시간 녹화본을 잠시 삽입하고 싶어했다는 유명한 일화를 떠올려 보자. 게임 밖의 영역을 침투하며 디지털 기기 권한을 탈취하길 시도하는 각종 게임 속 쏜월드들은 플레이어에게 불쾌감을 준다. 무해한 스킨을 두른 하라구로腹黒 공포 게임의 대표 격으로 이미 수차례 언급되어 온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두근두근 문예부Doki Doki Literature Club!」(2017)(이하 문예부)엔 플레이어의 간택을 기다리는 히로인 후보들이 등장한다.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의 최종 승리자는 플레이어가 누구를 공략하길 ‘선택’하느냐에 달렸다. 해당 컨셉을 극한으로 끌고 가 장르적 특성을 강화해 ‘얀데레’게임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다진 「당신과 그녀와 그녀의 사랑君と彼女と彼女の恋」(2013)의 계보를 이으며, 「문예부」의 모니카는 플레이어가 자신만을 좋아하도록 만들기 위해 글리치를 일으키고 게임을 조작하거나 블루스크린(처럼 보이는 것)을 띄워가며 그녀만의 방식으로 ‘플레이어’를 사랑한다. 최고의 친구가 되어주고자 하는 가상 도우미 “키니토”를 만나는 게임 「KinitoPET」(2024)의 배경은 플레이어의 윈도우 운영체제 그 자체이다. Kinitopet.exe를 설치해 실행하는 과정부터가 게임 초반 퀘스트의 일부이며, 설치된 키니토는 친밀함을 빌미로 디지털 기기에 내장된 프로그램을 멋대로 활용하며 간섭한다. 심지어 웹캠을 강제로 켜기도 한다. 달콤한 연인과 최고의 친구라는 순진한 정체성을 표방하는 캐릭터들에게 부여된 설정인 강력한 소유욕과 애착은 통제욕자라는 캐릭터성으로 표출된다. 디지털 컨트롤 프릭은 권력 장치의 통제권을 강탈 시도하며 플레이어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든다. 무심하게 스탠리들을 조종하는 플레이어가 더 이상 무심할 수 없도록 말이다. 저주받은 책과 저주받은 영화는 의도하여 만들어질 수 없다. 감상을 마친 선형적인 매체가 이후 끼칠 영향은 제작자가 연출하기 불가능한 영역이다. 이 책을 열지 마시오, 이 영화를 재생하지 마시오 등의 경고 문구가 실제로는 얼마나 하찮을지 상상해 보자. 그렇기에 그들은 ‘저주받은 게임’의 땅으로 향한다. 그곳에서만큼은 저주의 효험이 지속될지도 모른다.

두근두근 문예부Doki Doki Literature Club!」(2017)
「KinitoPET」(2024)

  살아있다는 건 곧 외부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겟 아웃Get Out」 (2017) 의 ‘움직이는 식물인간’은 사실상 산송장과도 다름없다. 자아 탑재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수단은 오직 외부 자극에 의한 반응뿐이 아닌가. 「Start Survey?」의 질문자는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자유 의지로 답하고 있나요?”..그리고 다시 한번 더. “확실한가요?” 자본주의적 질서를 거부하는 이야기로 자주 해석되곤 하는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Bartleby, the Scrivener』(1853) 엔 화자인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부하직원 바틀비가 등장한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 월 스트릿에 근무하는 그는 모든 명령에 동일하게 답한다:“그렇게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철학자 알렌카 주판치치는 바틀비의 ‘수동적 저항’의 역설에 집중한다.

  “허먼 멜빌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매번 바틀비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반복해서 들을 때, 이 문장은 갈수록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처음 들을 때는 거의 코믹하게 들린다. 나중에는 이 문장에 일종의 서스펜스까지 더해진다. 바틀비가 정확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알고 있고 뭔가 이루려는 목적이 있는 것 같이 들린다. 아니면 아마도 바틀비라는 인물은 외재화작용에 의한, 말하자면 화자가 느끼는 불쾌감의 메타포일 것이다. 끔찍할 정도로 지루한 사무직 노동을 수년 동안 하면서 쌓인 화자 자신의 불쾌감 말이다. “[3]

  “원칙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듯 보이는 이 소우주에서 갑자기 뭔가 일어났다. 불가능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 우주를 완전히 뒤집어버린 그 작은 문장 말이다.(…) 그의 발언은 마치 외계인의 말처럼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함에도 불구하고 내재적이다.”(22~23p)

  주판치치는 바틀비의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라는 선언에 거부 이상의 뭔가가 있다고 말한다. 바틀비는 행위를 부정하는 게 아닌, 부정을 긍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긍정이 원하는 것은 ‘이곳’이나 ‘저곳’ 이 아니라 ‘자리 그 자체’ 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바틀비는 부정을 긍정함으로써 그의 세계(뿐 아니라 여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근본적 차별을 손상시키는 제 3의 영역을 연’(28~29p)다. 바틀비의 욕구-없음에 대한 욕구는 규칙에 대항한다. 그가 위치하고 싶어 하는 자리는 레이어가 결여된 무한한 공간이다. 시스템을 거부하기도 전에 그의 안에서 시스템은 무화된다. 행위와 선택은 발생만으로 규칙을 재정비하기 때문에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THANK YOU FOR PLAYING THE STANLEY PARABLE 라는 제작진의 작별인사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플레이어와 스탠리가 분리되는 루트에 진입하는 것이다. 플레이어는 스탠리를 잃는다. 바꿔 말하면, 스탠리도 플레이어를 잃는다. 그 순간에 그는 공허한 장소로 대체된다. 왼쪽과 오른쪽 문 사이에 선 스탠리는 가만히 서 있다. 제발 선택해달라는 해설자의 외침을 뒤로 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2.

  언젠가부터 귀신이나 유령으로 불리는 ‘혼’ ‘령’ 등의 초자연적 존재를 등장시키는 국내의 괴담 게시물에는 어김없이 “지평좌표계”가 언급된다.

  궤도: “귀신은 중력의 영향을 안 받아요. 그러면 문제가 어떻게 되냐면은, 지구가 평균 29.76km/s 속도로 공전을 합니다. 심지어 1,300km/h로 자전까지 합니다. 이 말은 뭐냐면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엄청나게 빠르게 변하는 그 위치를 귀신이 따라가지 않으면 지박령 행세를 못 하는 거야. 왜냐하면 중력의 영향을 못 받으니까. 지박령은 너무나 빨리 움직여야 돼요. 저거 따라가기에도 벅차. 그래서 지박령을 만나면 놀랄 게 아니라, “어? 지박령이다!” 그러면은, 어떻게 지평좌표계로 고정을 하셨죠?”
  침착맨: “그럼 귀신이 바로 느낄 것 같아. “어? 싸패다. 딴 데 가자.””[4]

  장르적 관습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느냐의 척도가 장르를 결정한다. 관습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가치 판단을 메커니즘 삼아 형성된다. 장르 간 세계의 법칙들은 각각 다른 가치를 지향하며, 장르물을 감상한다는 것은 작품의 전반적인 톤이 최종적으로 어떤 가치관의 손을 들어주는지의 과정을 ‘알면서도’ 지켜보는 것이다. 판타지와 SF의 차이를 다루는 담론에서 주기적으로 소환되는 SF 작가 테드 창의 2009년도 인터뷰를 다시 거론해 볼까. 그는 SF는 과학 시대의 산물이지만 판타지는 그렇지 않으며, SF를 기술할 때 과학적인 사실을 반드시 고수할 필요는 없지만 과학적인 세계관만큼은 고수해야 한다고 말한다.[5] 중요한 건 세계관이다. 판타지의 동력이 신비성이라면 SF의 동력은 과학적인 논리이다. “SF는 반드시 변화하는 것을 다뤄야 한다”는 의견에서의 ‘변화’엔 물리적 법칙이나 과학 기술이 반영되어야만 한다. 호러물의 과학도가 오만하고 편협하게, 혹은 최후의 인증용 보루처럼 그려지는 클리셰는 그들이 평생을 쏟아 신뢰해 온 상식에 기반한 규범이 해당 세계관에선 한없이 무력하기에 쓰인다. 반대로 정통 추리물에서 유령만큼 허무맹랑한 존재는 또 없을 것이다. 코미디에서 사소한 폭력은 그렇게까지 큰 죄도 아닌 것 같다. 세카이계世界系 로맨스에선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 정말로 모든 것을.

  “어떻게 지평좌표계로 고정을 하셨죠?”는 ‘당신이 나로부터 협조를 제안하는 오컬트 장르는 상식이 결여된 헛소리로 가득하기에 나는 그 세계관에 절대 편입되지 않겠다’는 비아냥 섞인 차단이다.

출처: 트위터

 
  ChatGPT산 그림의 우스꽝스러움은 인공지능이 그 그림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데서 나온다. AI의 바보짓과 그를 구박하는 사용자 자신간의 대화를 보케-츳코미 만담마냥 캡쳐해 업로드하는 건 이제는 나름의 유쾌한 스포츠로 자리 잡은 듯하다. 구색만 갖춘 엉터리 오답을 당당하게 제시했다가 지적받고 곧바로 사과하는 특유의 패턴을 AI 화법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컴퓨터 두뇌의 아둔함은 사용자에게 인식의 위계에서 우위를 선점했다는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AI는 다방면에서 훌륭한 밈 생성기로 사용된다. 사용자는 스트레이트-맨straight man 역할을 즐긴다. 기능 수행에 실패한 대답은 결과적으로 친근하게 밈화되어 인공지능과의 대화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춘다. 채팅방의 로그는 말풍선을 교차시키며 한눈에 들어오는 대화흐름을 짤방화시키기 용이하게 한다. 이 가시화된 소통의 핑퐁에서 사용자는 아무리 상호작용일지라도 인식의 위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생물학적 인간인 본인 쪽이라는 쾌감을 얻는다.

틱톡 듀엣 밈 “Girlfriend Hostage”의 일부 장면들 캡쳐

 
  AI와의 소통뿐인가? SNS는 카운터-츳코미가 폭력적으로 개입해 이미지 한 컷으로 완성되기 좋은 창구다. X(구 트위터)의 인용RT 구조나 인스타그램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ask me a question)” 기능은 추후의 코멘트 작성자가 게시물의 성격을 결정하게끔 한다. 사이버 불링은 가벼운 유희거리로 여겨진다.니코니코 동화산 비디오에서 원본 영상보다도 주목받는 건 영상의 레이어 위에 실시간으로 등록 가능한 ‘구름’ 코멘트들이다. 이제는 시대정신이 된 숏폼 플랫폼 틱톡Tiktok은 거기서 한술 더 뜬 듀엣duet 기능을 메인 컨텐츠로 제공한다. 틱톡은 첨언 대신 영상화로 소통하길, 그로서 ‘창작’ 활동에 참여하길 종용한다. ‘듀엣 체인’ 문화의 붐에 일조한 유명 틱톡 밈 “Girlfriend Hostage”[6] 영상의 참여자들은 “당근을 흔들어주세요”같은 댓글 등록을 넘어서 아예 원본 영상의 주인공을 납치범으로 만들어 버린다. 보여주고 보여지는 것에 능숙한 소셜 미디어 이용자들은 ‘가짜’ 공권력, ‘가짜’ 언론매체, ‘가짜’ 시민으로 둔갑해 총동원된다. 목표는 하나, 원본을 놀리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남들에게 얼마나 이상해 보이는지 모르는’ 자를 향한 조롱이다.

  예수 컨셉 틱토커 “scottywartooth“의 틱톡 듀엣[7]에서 ‘타락한 수녀님의 이중생활’ 컨셉의 숏 포르노가 표방하고자 한 성적인 대상으로서의 매력 자본은 ‘언제나 한발 늦는 예수님’의 참여로 ‘비웃긴 조롱거리’로 격하된다. 포르노 장르는 섹시-코미디 장르에게 패배한다. 앞서 녹화된 영상의 지위는, 후에 덧붙여져 컨텐츠의 컨셉을 점유하는 두 번째 영상의 그것보다 필연적으로 낮은 위치를 갖추게 된다. 장르가 형성하는 인식의 위계 앞에서 오픈-소스화된 이미지는 힘을 잃는다. 덧씌워진 레이어 아래 압착된 섹시 댄스는 섹시하지 않다. 온라인 플랫폼을 능숙하게 다룬다는 건 결국엔 겹들을 얼마나 잘 인지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느냐에 달린 듯도 하다. 기기 화면 속 사이버 공간의 분리된 창과 그 안에서도 잘게 쪼개진 칸의 레이아웃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는 상시 과잉 정보에 대처하며 일상적인 분열을 겪는다. 이제 미디어 리터러시는 기본적인 소양이다. UX/UI 디자이너는 예비 이용자들의 뇌를 디자인한다.

“scottywartooth“의 틱톡 듀엣 캡쳐

 
3.

  1958년 개관해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충무로의 대한극장은 경영난 적자 이슈로 설립 66년 만에 폐관 후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 2025년 4월부터 공연장으로 재개관할 계획을 발표했다. 탈바꿈 후 문화예술 시설이 될 (신) 대한극장이 처음으로 선보일 공연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어 최근 한국 독점 IP 계약이 체결된 이머시브 시어터Immersive theater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이다. 호텔처럼 꾸민 뉴욕의 건물 The McKittrick Hotel의 공식 홈페이지 극 안내문은 관람객을 관객audience이 아닌 손님guest으로 소개한다. “모든 사람의 여정이 특별하고 각각의 방문이 다르길 보장받으며, 손님들은 어디로 갈지 무엇을 볼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8] 극단 펀치 드렁크Punch Drunk가 사이트 메인 페이지에 걸어놓은 뉴욕 타임즈의 평론의 내용은 이렇다ㅡ즐겁고 소름끼치는 추격전. 염탐자의 즐거움. 인공 자극제만큼 철저하게 머리를 어지럽힙니다. 훌륭합니다! (A merry macabre chase. A voyeur’s delight. Messes with your head as thoroughly as any artificial stimulant. Spectacular!)[9]

  가면을 쓴 채 건물 전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감상할 수 있는 무언극 「슬립 노 모어」의 홍보 문구들은 이 극이 얼마나 일생일대의 전례 없을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인지를 자랑한다. 무대와 객석 사이 경계가 없는 호텔에서 얼마나 관객에게 ‘손님’이 된 기분을 제공해 줄 것인지. 관객이 극을 얼마나 자유자재로 침범하며 침범당할 것인지. 그것이 어떻게 ‘인공 자극제’ 만큼의 동화된 자극을 줄 것인지. 제4의 벽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아예 짓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는 듯한 극단 펀치 드렁크는, 우리에게 레이어는 없으며 모두를 융화시킬 것임을 예고한다. 마치 마약을 섭취하듯이.

  배우들은 생활하듯 각각 100여 개의 객실을 돌아다니며 각자의 자리에서 연기한다. 가만히 보고만 있다면 놓치게 될 것이다. 관람객은 배우를 따라다닐 수도, 도중에 이탈할 수도 있다. 특정 배우를 골라 쫓아다니면 운 좋게 1:1 연기의 기회를 하사받는 기회가 오기도 한다. 관객은 사탕을 받아먹거나 포옹당하거나 귓속말을 듣는 등 배우와 접촉해 극의 일부가 되며, 그중 가장 유명한 1:1 연기는 ‘원온원 키스’이다. 관객들은 후기에서 특별한 경험을 간증하며 공유한다. ‘이머시브 연극’은 움직임을 요구한다. 「슬립 노 모어」의 손님은, 관람객은, ‘나’는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다. 움직인다. 움직이며 스탠리 안으로 녹…지 않는다. 녹지 못한다. 엉킨다. ‘나’는 스탠리와 엉킨다. ‘나’는 배우와 엉킨다. 스탠리는 배우와 엉킨다. 앉아서 스크린을 응시하기 위해 대한극장을 방문했던 관객들을 위한 객석은 이제 없다.

  비밀 장치가 작동된 칼리오스트로의 시계탑은 곧 완전히 붕괴된다. 톱니바퀴들은 가라앉고 수문은 개방된다. 날이 밝고 공주는 도둑의 품에서 눈을 뜬다. 마침내 숨겨졌던 보물의 정체가 공개된다. 물이 빠지며 호수 아래 잠겨 있던 로마의 수몰 도시가 지상에 드러난 것이다. “그야말로 인류의 소중한 보물이야. 내 주머니에 넣기에는 너무 크군!” 도둑도 백작도 예상하지 못했던 선조들의 유산이다. 유적지를 산책하는 루팡과 공주의 위로, 칼리오스트로 성에서 유통된 위조지폐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I.C.P.O(인터폴)의 비행기가 출동한다. 도둑은 이제 떠나야 한다..!

  * 이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 특별 기고로 게재되었습니다.


[1]「더 스탠리 패러블The Stanley Parable」(2013), Galactic Cafe

[2] Foucault M.『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 : Naissance de la prison)』. 오생근(역). 나남출판, 2016. 370p

[3] Zupančič A. 외 『라이팅:정신분석의 문학』 강수영(역), 인간사랑, 2021. 20p

[4] https://www.youtube.com/watch?v=qFrfD_Bws7g&t=0s

[5]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96094

[6] https://www.youtube.com/watch?v=TY2l8yd5tys

[7] https://www.youtube.com/watch?v=RrtdV5F1OXE

[8] https://mckittrickhotel.com/events/sleep-no-more/

[9] https://www.punchdru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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