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누가 지구를 대변해줄까?: 천문학의 인류사적 의의에 관하여


“Every thinking person fears nuclear war,

and every technological state plans for it.
Everyone knows it is madness,
and every nation has an excuse.”
– Carl E. Sagan

  2023년 2월 2일에 나는 이스라엘 남부에 위치한 와이즈만 천문대를 방문 중이었다. 그곳의 천문학자들과 우리 팀 연구원에게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는데, 중력파 신호가 발생했을 때 최대한 신속하게 망원경의 고개를 돌려 중력파의 기원지에서 킬로노바를 포착하는 일이었다. 당시는 중력파 탐사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우리는 부푼 희망을 공유한 채 선의의 경쟁을 기약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2023년 10월 7일을 기점으로 그들과의 약속은 포화 속에 흐려졌고, 미래의 협업을 떠올리는 것은 감당하기 힘든 무게로 우리를 짓눌렀다.

  작금의 시대를 새로운 감각을 틔운 인류의 새로운 시작점이라 소개했지만, 우리가 현재 공동의 미래를 위해 전 지구적인 협업을 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그 누구도 섣불리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연이은 전쟁으로 인해 세계 진영은 극명히 갈려 섰고, 급변하는 정세에 따라 서로의 이익 관계는 어느 때만큼이나 냉혹하게 다뤄진다. 전쟁이 장기화되는 사이 우리는 쌓여가는 시신에 둔감해지는 법과 상대가 품 안에 숨긴 핵에 예민해지는 법을 동시에 배우고 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천문학적 꿈에 부푸는 것은 어쩌면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은 것이 아닐까?

  1980년대 냉전의 살얼음판을 살아가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라면 분명 마지막 말에는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 지구적 위협에 대해 천문학자로서 대중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던 그의 실천적 발자취는 분명 현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천문학자에게도 좋은 귀감이 된다. 그의 사상은 태양계 탐사 위성 보이저 1호가 1990년 2월 14일에 지구로 전송한 한 장의 사진,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에 축약되어 있다. 보이저가 먼발치에서 되돌아본 작고 창백한 지구의 모습은 공허한 우주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유혈이 낭자했던 인류사의 제국주의와 패권주의의 덧없음을 설파하는 이미지로 사용되었다.

창백한 푸른 점¹

  핵전쟁의 위협 속에서 칼 세이건이 주창한 메시지는 광기와 무장의 해제였다. 이러한 배경의 대척점에는 무장을 통한 균형인 핵억지력에 관한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마침 칼 세이건도 그의 저서 『코스모스』의 마지막 장인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 줄까’에서 미국의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의 말을 인용한다. 키신저의 논리에 따르면 핵억지력은 서로의 공갈을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심리적 태도에서 기인하며, 이것은 협박을 허풍으로 오인하거나 상대를 완전히 정복하려는 시도보다는 덜 소모적인 전략이다. 이러한 태도는 냉전 중반에 미국이 중국과의 데탕트를 통해 소련을 견제하거나, 소련과의 협상을 통해 베트남 전에서 철수하는 등의 사례를 남겼다. 그러나 칼 세이건이 같은 글에서 지적하듯, 심리성에 기반한 억지력은 언제까지고 지속될 거란 확신을 주지 못한다. 우리는 반복된 협박이 억지력의 효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을 언젠가 맞이할 것이고, 한 지도자의 비이성적 판단이 반복된 역사를 되돌아보았을 때 실질적 핵 위협을 이용한 정치를 하는 것은 크나큰 오판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따라서 그는 최선의 이성에 기반하여 광기에 대항할 방법을 모색하였다. 수많은 천문학적 탐구의 종착역으로 그가 택한 과제는 전 인류가 합심하여 추진할 수 있는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프로젝트였다. SETI를 통해서 칼 세이건은 인류가 생명 간의 상호작용을 갈구하는 존재임을 다시금 각인시켰고, 외계 문명과의 소통 가능성을 가시화함으로써 서로를 겨누고 있는 모습을 외부의 시선에서 환기할 기회를 제공했다.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 줄까’라고 묻는 그의 말에는 아직 우주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인류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하나의 목소리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공멸의 운명을 피해나갈 길을 모색하자는 뜻이 담겨있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다시금 전쟁의 위협이 어디로 치달을지 가늠하기 어려워진 오늘날, 천문학은 칼 세이건과 같은 영향력으로 국제 정치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평화에 대한 그의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2024년의 한국은 1980년대 미국과 입장이 전혀 다른 만큼 새롭게 생각해 볼 점 또한 적지 않다. 천문학적으로 인류사를 해석하는 것은 보다 긴 시간과 넓은 공간적 스케일로 일상의 현상들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때때로 지구상의 모든 사건과 갈등이 사소하고 부질없는 것이란 착시를 일으킨다. 창백한 푸른 점의 이미지는 칼 세이건의 의도대로 시민들의 마음에 희망을 심는 데에는 성공적이었지만, ‘인류는 하나다’라는 구호는 분열된 진영의 경계면에서 다양한 국가들이 서로 다른 목적으로 투쟁을 해왔다는 복잡성을 뭉그러뜨린다. 데탕트 이후 UN을 나가야 했던 대만, 종전 협약 이후 2년 만에 적화통일된 베트남, 서방과 러시아의 전장이 된 우크라이나, 그리고 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 세계의 역사를 생각해 보라. 강대국이 주도한 협의는 이들에게 평화가 아닌 갈등의 시작이었고, 앞으로도 이들이 가진 고유의 역사적 배경은 단 하나의 질서로는 정의되기 어렵다.

  이제는 지구를 하나의 점으로 귀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의 모든 경계에 대해서 높은 해상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그동안 패권 국가들의 논리에 밀려 쉽게 간과되었던 경계 국가의 이미지가 더 많이 노출되어야 한다. 조국을 떠난 노동자들, 난민의 2세들, 통합되지 못한 민족들 혹은 미처 흐려진 줄도 몰랐던 다양한 삶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그전까지 한 번도 탐사되지 않았던 태양계 행성들의 이미지가 인류에게 스스로를 성찰할 기회를 준 것처럼, 멀리서 보더라도 자세한 시선으로 지구 곳곳을 되돌아보며 외면받은 공동체의 이미지를 목격하는 것 역시 인류의 현재를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다양한 역사적 배경을 존중하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점은 하나의 통합된 정의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는 연대적 논리이다. 아슬아슬한 힘의 균형이 내포하는 공멸의 가능성을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그동안 유일하게 잘 작동한다고 믿어왔던 현실주의적 정치론에서 탈피하여 이타적 국가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혹자는 이것이 외계인을 찾겠다는 발상만큼이나 허무맹랑한 생각이라 판단할지 모른다. 그러나 규모와 양상의 차이일 뿐 인간 관계에서 이기적 선택이 이득을 주는 균형과 이타적 선택이 이득을 주는 균형은 모두 실존한다. 그동안의 국가 관계는 물질과 정보의 제약으로 인해 야생성을 벗어나지 못하였지만, 현대의 지구는 실시간으로 좁아지고 세계 각지의 정보에 관한 즉각적 상호관계를 필요로 하기에 ‘고해상도 푸른 지구’는 분명히 열려있는 미래 가능성 중 하나이다. 나는 그 시대가 도래했을 때에도 여전히 국익이라는 절대적 가치 하나만으로 세계 정치를 정의할 수 있을 거라 생각지 않는다. 

  물론 세계화와 기술 발전의 잠재력만을 맹신하여 이타적 선택으로 균형을 이루는 미래를 낙관할 수는 없다. 우리는 여러 혁신적 기술들이 역설적으로 자본의 불균형과 정보의 편향을 심화하며 현실을 암울하게 만드는 사례를 목격해 왔다. 그렇기에 더더욱, 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천문학이 필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곳에는 언제나 공허한 우주 속에서 인류와 같은 복잡성이 피어난 의미에 대해 되새기고, 그 삶의 의미에 충실해지는 성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천문학의 인류사적 의의는 그 어떤 절망적인 순간에도 인류 공통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가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하는 점에 있다. 이러한 성찰이 언젠가 전 지구적으로 서로를 돕는 것이 공동의 이득이라는 선택으로 귀결한다면, 칼 세이건이 그렸듯 인류는 다시 한번 우주적 성장의 초입에 서서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¹사진의 우측 중앙에 있는 희미한 점이 60억 km 밖에서 촬영된 지구의 모습이다. 함께 촬영된 빛줄기는 태양빛이 산란된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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