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not a MEME : 인터넷 하위문화의 배반
이 글을 읽기에 앞서 한 가지 행위를 시도할 것을 요청한다. 스마트폰을 열어 스크린 타임을 확인해 보자. 지난 한 주간, 당신이 어떤 어플리케이션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를 말이다. 만약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현재는 ‘X’라 불리지만 입에 달라붙는 이름은 아니다)가 순위권에 있다면, 지금부터 전개할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밈(Meme)’. 이 단어를 보고 대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들은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유행적인 이미지, 그리고 문구 등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필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밈도 당신이 이해한 그 밈이 맞다. 또 다른 유행적 단어인 ‘도파민(dopamine)’과 합성시켜 ‘도파밈(dopamine+meme)’이라고 부를 정도로 한 번 접하면 강한 중독성을 보이고, 일상생활에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이러한 ‘밈’에 왜 우리는 마치 설탕처럼 푹 절여졌을까. 본 글은 이 작고 소소한 호기심에서부터 출발한다.
이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된 밈이라는 단어의 유래까지 알아보며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이 밈에 대한 이미지 연구, 혹은 조금이라도 의미에 대해 궁금함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것이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의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1976)에서 유전자처럼 복제하는 문화의 전승을 주창하고자 밈이라는 단어를 제시한 것을 알 것이다. 도킨스의 밈은 문화적 진화의 단위를 의미한다. 문화적 요소인 아이디어와 전통, 습관 등과 같은 것이 마치 유전자처럼 복제되고 진화하는 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이 밈의 특성을 생산성, 충실성, 영속성으로 분류한다.
도킨스의 관점에서 인간은 이러한 문화적 유전자를 전달하는 매개자의 역할로 위치한다. 또한 문화 유전자인 밈이 위에서 아래로,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흐르는 선형적 전승 형태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대중이 향유하는 밈의 개념과는 상이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2024년 현재 온라인을 통해서 행해지는 이 밈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 밈
‘인터넷 밈’이라는 것은 SNS, 커뮤니티 등을 통해서 공유 및 확산되는 일종의 문화적인 아이템으로, 인터넷 네트워크 문화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위 단계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터넷 밈’이라는 개념은 마이크 고드윈(Mike Godwin, 1956-)이 처음 언급하면서 사용된 개념이다. 그는 인터넷 밈을 제창하며 도킨스의 밈은 원천에서 전달자를 통해 공유되는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복사되어 전달되는 데에 반해 인터넷 밈은 유통되는 과정에서 노이즈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문화보다 커뮤니케이션적인 양상으로 전유된다고 설명한다.[1] 밈을 대화의 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 관계를 맺고 소통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에 의해 인터넷 밈은 이를 활용하는 사용자들 사이에 결속력을 발휘한다.
도킨스의 밈이 문화를 구성하는 진화 단위라면, 인터넷 밈은 단편적으로 픽셀, 이미지, 하이퍼텍스트로 단위화할 수 있다. 즉, 온라인에서 가지각색으로 파생되는 이미지, 문구 등에 모두 밈이 될 수 있는 구성 물질, 조직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이미지, 문구들은 밈으로 변화 가능한 잠재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최근 가장 핫했던 밈인 ‘럭키비키’를 사례로 들여다보자. 이 밈은 유명 아이돌 아이브(IVE)의 멤버 장원영이 어떠한 상황이 (그게 부정적인 상황일지라도) 오더라도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모습에서 파생되었다. (장원영의 영어 이름이 ‘Vicky’라서 펀치라인을 줬다는 것은 안 비밀이다.) 실질적으로 이 ‘럭키비키’가 인터넷 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장원영의 팬이 이를 패러디한 글을 트위터에 업로드하면서부터다. 트위터의 특성상 한 가지 이슈화될 수 있는 요소만 발견되어도 쉽게 재게시되고 인용되는데, 이 과정에서 아이브의 팬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도 이 밈이 노출되면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기업 브랜딩 세미나와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이 밈을 활용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본 사례는 앞서 언급한 무엇이든 밈이 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가시화하는 가장 최근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밈이 변형되고 유통된 과정은 고드윈이 주시했던 인터넷 밈의 개념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시기부터 최근까지 밈의 흐름 전반에서 밈을 분석한 김경수는 한국 인터넷 밈의 유희적 측면, 그리고 정치적인 측면에 대해서 논의한 바 있다. 그는 안젤라 네이글(Angela Nagle, 1984-)가 온라인 극우주의 문화정치를 분석하면서 밈의 기원을 아는 것이 사용자들 사이의 유대감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을 인용하여 밈의 확산되고 정치적 조건이 되는 힘은 밈이라는 텅 빈 기표에 있는 것이 아닌, 이를 의미화하는 사용자 집단에 있음을 시사한다.[2] 즉 같은 이미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밈의 내용은 일상의 유희일 수도, 혹은 정치적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밈은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활용법이 나타날 수 있고 이에 대한 가치 판단은 이를 활용하는 사용자들에게 제시된다.
이 이미지밈은 ‘불타는 피자짤’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밈으로 처음에는 난장판이 된 상황에서 활용되었으며 현재는 무언가 큰 화제, 혹은 정보가 휩쓸고 간 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주로 사용되는 밈이다. 모두 공유하고 있는 정보를 자신만 모를 때 ‘대충 불타는 피자짤 상태야’라고 언급하는데, 다소 부정적일 수 있는 상황을 유쾌하게 풀어낸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사용되는 밈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본래 밈의 원본 내용은 참담하다. 이 밈의 원본은 미국의 시트콤 ‘더 커뮤니티’의 에피소드 중 하나로, 모임에 참석한 이들에게 불행이 겹치고 겹쳐 벌어진 참혹한 상황을 피자를 가지러 다녀온 한 인물이 뒤늦게 마주하는 장면이다. 실제 본 밈을 사용하는 사용자들 중 본래의 에피소드를 알고 사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본래 에피소드의 내용을 모르더라도 보여지는 이미지에서 읽을 수 있는 내용만으로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밈을 생산해 낸 것이다. 이처럼 인터넷 밈은 이미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석하는 것보다 주어진 이미지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도파밈? 데페이즈밈!
앞서 살펴본 사례와 같이 인터넷 밈은 확산되는 과정에서 그대로 인용이 되기도, 혹은 이미지만을 해석해 시기적절한 상황에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1차원적인 밈의 반복은 그 밈을 불안하게 만든다. 빠른 시일 내에 사용되지 않는 고전 밈, 즉 ‘죽은 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때문에 밈은 다양한 합성 소스들을 통해 처음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맥락으로 진전되거나 혹은 동일한 밈 이미지 안에서 변주를 줌으로써 더 다양한 내용들을 담아낸다. 이 밈 분야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고전밈인 ‘페페 개구리’가 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몇 년 새에 큰 사랑을 받은 ‘잔망 루피’를 들여다본다.
본래 잔망 루피는 아동 애니메이션 ‘뽀롱 뽀롱 뽀로로’의 ‘루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뽀로로의 친구 중 하나였다. 그런데 한 트위터 사용자가 커뮤니티 내에서 유행하던 ‘군침이 싹 도노’라는 게시물과 이 루피를 결합하면서 사악한 표정의 루피 캐릭터를 업로드한 것이 이 잔망 루피의 시초였다.
여기에서 파생된 잔망 루피는 이후 여러 밈들과의 합성을 통해서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본래 가지고 있던 ‘아동 애니메이션 캐릭터’에서 ‘유행하는 밈 캐릭터’의 성격을 더 강하게 띄기 시작했다. 현재는 루피를 창작한 캐릭터 회사에서 잔망 루피와 새롭게 등장하는 밈과 결합해 업로드하는 전용 계정을 운영할 정도로 작은 합성에서 시작한 인터넷 밈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인터넷 밈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잔망루피와 같이 이미지와 텍스트를 결합하거나 여러 이미지를 합성하여 재탄생시키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전혀 다른 엉뚱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새로운 조합과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것. 이것은 데페이즈망(Dépaysment)적 표현과 유사하다.
초현실주의 예술의 대표적인 기법인 데페이즈망은 현실적인 사물들이 가진 본래의 용도, 기능, 혹은 의미를 현실적 맥락에서 이탈시키는 ‘낯설게 하기’의 기법이다. 원근 및 현실을 모방하는 형태가 나타났던 예술 사조들과는 달리 비현실에 집중한 초현실주의는 인간의 의식을 자유롭게 표현하기에 집중하며, 이를 위해 데페이즈망 기법을 고안해 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데페이즈망 기법이 이를 사용하는 작가의 의식, 감정 심리 등에 대한 표현 욕구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3] 그리고 사물에 대한 관습 및 관념에서 탈피함과 동시에 상상력을 확장시킨다는 점이다. 특히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의 데페이즈망 작품은 낯선 병치를 통해 역설적인 메시지를 던지거나 관람자로 하여금 일상적 오브제의 의미를 확장하기 위하여 의식 및 이미지를 조합하였는데,[4] 마그리트의 데페이즈망과 인터넷 밈을 비교 분석한다는 것이 다소 비약적이지만 이를 통해 밈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1927년부터 단어와 이미지를 결합한 ‘언어그림’을 연구하던 마그리트가 발표한 〈이미지의 배반〉(1929)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그려진 파이프 이미지가 특징이다. 보이는 시각적 효과(그림과 글의 결합), 그리고 인식의 환기 등 보았을 때, 마그리트의 작품과 밈은 유사한 지점들이 있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은 그림이 자명하게 ‘파이프’를 재현하지만 언어가 이를 부정함으로써 작품 내에 ‘파이프’라는 사물이 존재하지 않게 하는 역설적인 이미지를 구현했다. 결국 마그리트의 작품은 그 속에 내재한 진짜 형상은 보여지는 화면이 아닌 화가 자신, 그리고 감상자의 머릿속에 있음을 암시한다. 여기에서 마그리트가 작품이 예술로서의 가치보다 예술가, 감상자 간의 이해 및 소통의 수단으로써 더 짙은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소통 수단으로써의 이미지’는 앞서 마이크 고드윈이 제시한 밈의 주된 성격이기도 하다. 밈은 사용자들이 얼마나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가치의 유무가 달라진다. 즉 제시되는 이미지, 혹은 텍스트보다 이를 이해하고 향유하는 다수의 사용자의 경향이 밈이 되는 결정적인 조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보는 밈은 (마그리트 작품을 차용하자면) ‘밈이 아니다.’ 소스를 결합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제작자의 의도와 이를 파악하고 전파하는 사용자의 행위가 밈의 본질이며, 이미지와 텍스트는 그 본질을 이동할 수 있게 하는 표상이다. 결국 밈은 사용자를 통해 확산되는 문화적 파급력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에서의 밈
오랫동안 제기되어온 예술의 엘리트주의와 이를 탈피하고자 하는 작업적 경향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여전히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대중이 예술과 자신의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과 더불어 예술 또한 거리감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보수적인 예술에 밈을 접목하면 어떻게 될까. 최근 몇몇 SNS 계정들에서 밈을 활용해 예술계의 이야기를 전파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 인사가 된 제리 고고시안(@jerrygogosian)은 팬데믹 직전에 유머러스하게 예술계의 자기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플랫폼을 만들어보고자 인스타그램을 개설했다고 밝혔다. 2018년부터 대중이 단순한 방식으로 예술 생태계의 속 사정을 엿볼 수 있도록 예술과 관련한 뉴스레터와 밈을 제작해 오고 있으며, 마침 팬데믹과 맞물려 SNS를 활용하는 사용자가 늘어난 점은 본 계정을 더 큰 성공으로 이끄는 효과를 이루었다. 계정에 등장하는 밈들은 새로운 이미지이기보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인터넷 이미지들을 차용해 문구를 더함으로써 예술계의 이야기로 재치 있는 재맥락화를 시도한다. 소더비(Sotherby’s)가 제리 고고시안의 계정주 힐데 헬펜슈타인(Hilde Helphenstein)에게 ‘제리 고고시안’으로서 전시 큐레이팅을 제안했다는 점만 보아도 그녀가 만들어낸 예술 생태계의 전달자(혹은 고발자)가 꽤나 큰 영향력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리 고고시안이 밈을 활용해서 예술계 내부의 이야기들을 세계적으로 공유하고 이에 대한 효과를 얻었다는 점은 밈이 줄 수 있는 영향력을 보여주는 선례라고 볼 수 있지만, 본 글을 집필하는 필자도 한국인, 이를 읽을 독자도 한국인이니 K-정서에 더욱 걸맞는 사례를 제시한다. ‘컨템포러리 아트 밈(@contemporary_arts_meme)’ 줄여서 ‘컨아밈’은 예술계 범주 안에서도 ‘한국 예술계’에 집중하는 계정이다. 2022년 10월 16일에 오픈된 이 계정은 한국 미대, 예술가 및 화제들을 밈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풀어내고 있다. (계정주의 말을 빌리자면) 작품 창작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해소되지 않은 종류의 불만을 가벼운 소재로 풀어내 다른 방식으로 창작 및 교감을 해보고자 한 것이 이 컨아밈 계정의 시작이었다.
컨아밈이 업로드하는 게시물은 익살스러움과 동시에 현대미술에 대한 직관적인 통찰이 있다. 컨아밈의 이미지를 접하는 SNS 사용자는 밈을 소비함과 동시에 말 많고 탈 많은 예술계의 썰까지 한 번에 들을 수 있으니 말 그대로 럭키비키니시티다. 매주 수요일에 진행되는 ‘컨아밈 상담소’라는 팔로워들과의 소통 창구 또한 꾸준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는 중이다. 컴아밈은 밈 이미지가 가진 대중성에 예상치 못할 문구들을 더함으로써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간결하고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다. 현재 컨아밈 계정의 팔로우는 현재 3만을 넘어 4만을 향해 가고 있는데, 짐작해 보자면 비평을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독자 수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 정도를 보여줌과 동시에 줄글로 된 문화 비평은 읽기를 포기하지만 이미지로 미술 관련 정보를 흡수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즐기고 있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왜 독자는 비평적 메시지를 담은 밈 이미지에 반응을 보일까. 이에 대한 답변은 컨아밈의 밈으로도 가능하다.
많은 매체가 언급하듯, 그리고 작게는 주변의 목소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금은 이미지의 시대다. 정보를 줄글로 접하기보다 요약된 버전, 혹은 이를 모두 함축하고 있는 이미지로 소비하기를 선호한다. 영상 시청의 형태만 보아도 한 회차당 60분을 할애해야 하는 드라마 시청 대신 유튜브에서 10분짜리 요약본을 시청하고, 이것 또한 길게 느껴져 쇼츠(Shorts)를 감상하는 등 그 형식이 점차 압축된 버전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아날로그 미디어가 디지털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정보들이 분절되고,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수용하게 된 경향에서 발생한다. 문화 비평문의 독자보다 컨아밈의 밈 계정에서 구독자들의 더 큰 반응을 볼 수 있는 것 또한 이와 연관이 있다. 논집에서 웹진으로, 그리고 SNS로 이동하는 예술 담론은 변모를 거듭할수록 논의가 함축되어 이를 읽는 독자가 빠른 시간 내로 소비할 수 있다. 또한 밈은 딱딱하고 무거운 내용을 조금은 가볍게 소화할 수 있는 유희적인 성격 덕분에 밈으로 비평을 소비하는 독자는 일반적인 비평문을 읽는 독자보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환경 속에서 예술 비평을 접할 수 있다.
줄글 형식이며 비평에서 독자로 향하는 비평문의 선형적인 전달 방식과는 다르게 컨아밈이 SNS를 통해서 개진해 온 예술 비평 밈은 좋아요를 통한 공감의 수치화, 댓글을 통한 개인적인 의견 공유, DM 및 스토리를 통한 밈의 확산 등 독자들과 양방향의 소통이 가능하다. 이러한 비평 형식의 밈은 독자를 적극적으로 개입시킨다. 오프라인에서 장을 마련하면 입을 닫지만, 가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상에서는 유독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길 좋아하는 K-정서에도 이러한 댓글과 답글로 이어지는 논의 방식은 알맞다.
그러나 밈이 파급력과 전파력을 가지고 있는 점, 그리고 지나치게 유희적으로만 소비되 수 있다는 점과 이러한 비평 소비가 담론의 가치를 하락시킬 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담론 이해도 또한 저하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밈이 원본의 저작권에 대해 주의하지 않고 확산을 위해 더 자극적인 요소를 추구하는 점은 도덕적으로 검열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결정적으로 밈을 좋아하는 주 소비 대상이 아닐 경우 메시지가 명확히 전달되지 않아 밈을 또다시 해석하는 행동이 요구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소외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결점이 현재 인터넷 밈이 가진 한계라고 보인다. 때문에 밈을 비평의 한 방법으로 채택하고자 할 때에는 밈의 결점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제기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1960~70년대부터 제시된 미디어 리터러시는 다양한 매체를 분석 및 평가할 수 있으며 매체를 활용해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인지적 발달을 넘어서 미학적이고 도덕적인 계발까지 가능케 하기 때문에 앞서 제기된 밈의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결점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이라는 미디어 환경이 더 이상 가상의 공간이 아닌 우리 삶의 일부가 된 지금, 미디어 정보의 가치 및 적절성에 대한 판단은 더욱이 필요하다. 정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가치를 발굴할수록 인터넷 밈의 사용은 더 유익하고 유용해질 수 있다.
온라인에서도 소수의 소통 수단이었던 밈은 이제 대중 매체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 같은 오프라인 소통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더 큰 문화로의 발전 동향을 띄고 있다. 인터넷에서 머물던 밈이 일상으로 침투된 이러한 현상을 보았을 때, ‘밈은 인터넷 하위문화’라는 정의를 전복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밈이 인터넷을 넘어 문화의 중심이 되는 중이라면, 이에 대해 분석 및 연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본 글은 이러한 입장에서 밈의 활용성을 더 넓혀보고자 하는 일각의 의견이다. 따라서 앞서 제기된 주장은 밈의 가치를 확장시키고 싶은 일종의 관심 표현일 뿐, 프로파간다적인 주장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밈에서 출발한 글이니 매듭도 밈스럽게 지어보자.
본 글에 반론을 제기할 시 당신 말이 다 맞(진 않)다.
* 이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 특별 기고로 게재되었습니다.
[1] 김경수,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 연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23, 6p
[2] 앞의 글, 11-12p
[3] 박은성, 『르네 마그리트 회화의 데페이즈망 기법에 관한 연구』, 강원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3, 13p
[4] 이일순,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에 나타나는 데페이즈망 기법에 관한 고찰」, 『유럽문화예술학논집』13, 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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