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 보고서의 언어
계량언어학적 분석은 국제 금융 기구들의 운영과 전망에 관해서 무엇을 알려줄 수 있을까? 첫 눈에 보기에 세계은행 연례 보고서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된 단어들은 한결같이 연속적인 것 같아 보인다.[1] 어떤 시기의 보고서에도 세 개의 명사(은행, 차관, 발전)와 네 개의 형용사(재정의, 경제의, 금융의, 민간의)로 구성된 이 일곱 단어는 거의 항상 최상위권에 있다. 이들의 칠중주에 몇몇 다른 명사들도 함께한다. 국제부흥개발은행, 국가, 투자, 이자, 프로그램, 프로젝트, 원조, 그리고 처음에는 자주 등장하지 않았지만 나중에서야 나타나는 대부, 성장, 비용, 부채, 무역, 물가도 있다. 두 번째로는 보다 특색 없는 일련의 형용사들이 있다. 다른, 새로운, 그런, 순 최초의, 보다 더, 일반적인. 추가적으로 농업의도 있는데 이는 1990년대부터는 부분적으로 농촌의로 대체된다.[2] 메시지는 명백하다. 세계은행은 발전, 특히 남반구의 농촌에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 돈을 빌려준다. 그래서 세계은행은 차관, 투자, 그리고 부채에 연루된다. 세계은행은 프로그램과 프로젝트를 통해서 작동하며, 무역을 경제적 성장의 핵심적인 원천이라고 본다. 세계은행은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경제, 금융 그리고 재정 문제들을 다루며, 민간기업들과 연계한다. 모든 것이 아주 간단명료하다.
그러나 이렇게 단일해 보이는 외양 뒤에서 주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세계은행의 보고서가 1958년의 세계를 어떻게 묘사했는지 보자.
현재 콩고의 교통체계는 주로 수출무역에 맞춰져 있다. 이는 하천의 수상운송, 그리고 하항에서 광물과 농산품의 생산지로 이어지는 철도를 근간으로 한다. 대부분의 도로는 도시에서 근교로 뻗어나가며 농장과 시장을 연결한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시장이 성장하고 농경법이 개선되면서 도로의 운송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이제 반세기가 지난 2008년의 보고서를 보자.
글로벌 이슈의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기
역내국가들은 글로벌 문제의 핵심적인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으며, 세계은행의 역할은 남-남 협력을 지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현명한 대화 및 행동을 위한 혁신적인 플랫폼을 통해서 역내국가들과 협력함으로써 그들의 노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는 의미론적, 문법적으로 다른 언어나 마찬가지다. 곧 살펴보겠지만, 주요한 단절은 대부분 첫 번째 30년과 마지막 20년 사이인 1990년대 전환기에 나타나는데, 이 시기에 작성된 보고서들은 보다 정형적이고 자기-참조적이면서 일상어와 동떨어지게 바뀐다. 이어지는 글의 주인공은 바로 이 은행어[Bankspeak,(*역자주: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신어 newspeak를 자용함)]이다.
1. 의미론적 전환
세계은행 보고서의 중심에는 명사가 있다. 1950년에서 1970년까지 첫 20년 동안, 가장 빈번한 명사를 두 개의 핵심적인 군집으로 묶을 수 있다. 일단 첫 번째는, 당연하게도 세계은행의 경제적 활동들을 망라한다. 차관, 발전, 전력, 프로그램, 프로젝트, 투자, 설비, 생산, 건설, 공장. 그 다음으로는 회사, 시설, 산업, 기계장치가 있다. 그 뒤에 구체적 용어들이 이어진다. 항만, 도로, 철강, 관개, kWh, 강 고속도로, 철도, 그리고 목재, 펄프, 석탄, 철, 증기, 철강, 기관차, 디젤, 운송, 댐, 다리, 시멘트, 화공의, 에이커, 헥타르, 배수, 작물, 소, 가축. 세계은행이 각종의 사회기반시설 투자 프로젝트를 촉진하기 위해서 차관과 (위의 단어들 중 유일하게 명시적으로 금융 용어인) 투자를 제공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단어들은 모두 납득 가능하다.[3]
두 번째 명사 군집은 12단어 뿐으로 훨씬 작지만 세계은행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보여준다. 당면한 요구들에 부응하기 위해, 세계은행의 전문가들은 수치들을 분석하기도 하지만, 현장방문, 설문조사와 현지조사도 수행한다. 이는 복잡한 상황에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전형적 방법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교화하기 위한 전문가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 그이 이후에 세계은행은 국가들에 자문을 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며, 현지 정부를 원조하고, 차관을 배분한다. 수사적으로 보면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가 경제적 발전과 사회발전을 이끈다는 기본적인 이념에 맞게 현지 경제의 필요에 따라서 투자프로그램이 설정된다. 매 회기가 끝날 때 세계은행은 대여되고, 소비되고, 지급되며, 판매된 것을 명시하고, 작동하기 시작한 설비-댐, 공장, 관개시설 등을 설명한다. 실증적 지식과 자금 순환 그리고 산업시설의 건설 사이에 명백한 연관관계가 성립된다. 지식은 현장의 실제 상황과 세계은행의 본사에서 행해지는 계산과 결부되어 있고, 자금흐름은 대출협상과 개별 국가들에 대한 투자에 얽혀있으며, 항만과 발전소 등의 건설은 이러한 전반적인 과정의 결과다. 이렇게 명백히 시간적인 순서 속에서 전문지식, 차관, 투자, 그리고 물질적 구현은 강력한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이 기간에 작성된 보고서들에는 세계은행 외에도 국가와 정부, 기업과 은행 및 산업, 엔지니어와 기술자 및 전문가라는 세 유형의 사회적 행위자들이 등장한다. 이 사회적 존재론은 전후 재건을 산업적이고, 포드주의적, 케인즈주의적인 관점으로 설명하는 표준적 해석을 보여준다. 제조기업과 일하는 사업가와 은행가, 국가가 주도하는 국가적 프레임 워크 내에서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경제학자와 엔지니어들이 경제 성장의 주역이다. 경제는 관리의 대상이다. 티머시 미첼에 따르면 경제는 주어진 지리적 공간 내에서의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분배, 소비 관계의 총체 또는 자율적 구조(192)이며, ‘이 계산과 통치의 근대적 장치'(189)는 경제의 성과를 최적화한다.[4] 정부는 세계은행의 도움을 받아 국가의 근대화를 이룩하기 위해서 투자와 재정 지표들을 조정한다. 다시 말해 경제를 산업화하기 위해 기본적인 물적 인프라 구축부터 시작한다. 이는 ‘경제 성장의 단계: 반공산당 선언’의 저자이자 아이젠하워부터 존슨까지 미국 정부의 핵심정인 정책 고문이었던 월트 휘트먼 로스토의 유산이다. 발전은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도약’은 원재료의 생산, 인프라 구축 그리고 수출중심의 농업 부문에 의해 촉발된다.
1969년 보고서의 한 구절을 간략히 살펴보자. 이 구절은 보고서 개요의 농업차관에 관한 부분에 등장하는데, 여기의 언어는 매우 단순하다 못해 밋밋해 보이기까지 한다.
많은 개발도상국은 농업을 전화시킬 필요가 있다… 세계은행 그룹[*역자주: 국제부흥개발은행, 국제개발협회, 국제금융공사, 국제투자보증기구,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를 총칭하는 단어, 흔히 세계은행이라고 하면 앞의 두 기관을 말한다.]은 1969년 회계연도에 7,720만 달러에 달하는 농업 발전에 대한 차관을 대출하였고 이를 통해 이런 추세를 계속해서 촉진하고 있다…. 부룬디에서 전통적인 전통적인 커피 생산이 평균수준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카메룬, 다호메이, 코트디부아르와 파푸아의 팜오일 개발과 잠비아의 조림을 지원하고, 수단의 수수, 참깨, 목화 농업의 기계화를 지원하기 위해 제공된 차관과 융자는 새로운 현금 수입의 원천을 제공하는 새로운 작물로의 다각화나 기존 작물의 개선된 생산을 장려했다…. 인도에 대한 1,300만 달러의 세계은행의 차관은 새로운 높은 생산성을 지닌 곡물 품종의 종자 생산의 자금을 지원할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7백만 에이커에 새로운 품종들을 심기에 충분한 종자를 생산할 것이다. 이는 세계은행이 종자 생산을 위하여 처음으로 제공한 차관이다.
농업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첫 부분의 권고를 차치하면, 주된 강조점은 물량, 국가들, 원료, 생산활동, 투자목적과 같은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것들이다. 명사들은 빈번하게 사용되지만 형용사들은 드물다. 내용은 서술되지만, 선전되지는 않는다. 조장하다, 제공하다, 개선하다, 지원하다, 다각화하다, 생산하다, 자금을 조달하다와 같은 동사들은 연관된 행동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시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고한다. (세계은행은… 계속해서 촉진하고 있다.) 프로젝트가 아직 개시하기 전이라면 미래 시제로 바뀌고, (차관은 종자 생산에 자금을 조달할 것입니다.) 반면에 과거시제는 이미 종료된 것들을 설명한다(다각화를… 장려했습니다. 7,220만 달러에 달하는 … 차관을 대출하였습니다). 이런 시제 구조는 과거의 성취들, 현재의 활동들, 필요한 정책들과 미래의 프로젝트들을 명확하게 구분함으로써 초기 보고서들의 사실적인 인상을 강화한다.
금융, 경영, 거버넌스
이제 가장 최근의 몇십 년을 살펴보자. 1990년대 초부터 세계은행의 언어를 특징짓는 세 개의 새로운 의미론적 군집이 나타난다.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군집은 금융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예상가능한 형용사들(금융의, 재정의, 경제의)과 명사들 (차관, 투자, 성장, 이자, 차관, 부채)들을 차치하면 공정가치, 포트폴리오, 파생상품, 발생주의, 보증, 손실, 회계, 자산의 홍수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아래로는 자본, 헤지, 유동성, 부채, 신용도, 디폴트, 스왑, 클라이언트, 적자, 확충, 환매, 현금 등이 이어진다. 빈도와 의미의 밀도라는 점에서 이 군집은 1950년대와 60년대의 물질적인 인프라들에 비견된다. 이제 농업과 산업 활동들은 금융 활동의 압도적인 우위로 대체된다. (그림 1)은 세계은행의 새로운 우선 순위를 잘 보여준다.
포트폴리오는 처음부터 보고서의 본문에 나타나긴 하지만, 다른 용어들 또한 빈도가 증가하던 1990년대에 5~10배의 아찔한 증가세를 겪는다.
두 번째 군집은 경영과 관련이 있다. 이는 절대적 용어(Absolute terms)로 [*역자주: 절대적 용어(Abosulte terms)는 피터 엉거(Peter Unger)의 개념으로 상대적인 정도가 아니라 이상적인 속성을 나타내는 용어를 의미한다. 엉거 본인의 예를 들자면 ‘평평한[flat]’은 ‘굴곡진[curved]’와 다르게 상대적인 정도를 나타내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절대적 용어는 플라톤의 이데아와 마찬가지로 어떤 이상적인 속성을 이른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필자는 경영[management] 담론에서 경영이 차지하는 위치를 드러내기 위해서 이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절대적 용어에 대해서 상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할 것. 한성일. (2005). 지식귀속은 민감하게 이뤄지는가? – ‘안다’에 대한 맥락주의 및 주체-민감주의 의미론 비판 -. 논리연구, 8(2), 109-144.] 최근 10년 간 두 번째로 빈번하게 등장한다. (차관보다는 적지만, 리스크와 투자보다는 자주 등장한다!) ‘경영’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목표와 아젠다를 가지며, 기회와 도전 그리고 위기상황에 직면하면서 전략을 짠다. 1950~60년대에는 설문조사와 현장조사를 수행하고, 보고서를 발간하며 원조하고,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조언을 하는 전문가들이 이슈들을 탐구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것의 새로움을 가늠할 수 있다. 경영의 도래로 무게중심이 주안점, 강조점, 그리고 실행으로 이동한다. 이제는 모니터링하고, 통제하고, 감사(audit)하고, 등급을 매겨야 하며(그림 2), 사람들이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을 도우면서, 모든 것들이 적절히 수행된다는 것을 보증해야 한다. 경영자의 수중에 있는 많은 도구들(지표, 기구, 지식, 전문가, 연구)은 효과성, 효율성, 퍼포먼스,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말할 것도 없이 혁신을 촉진한다.
경영은 한 번도 세계은행의 어휘 목록에서 빠진 적이 없긴 하지만, 1970년대 후반에 부채가 중심 문제로 부각되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점차 신자유주의적 공세인 과격한 ‘구조조정’ 정책과 연관되어 왔다. 그러다가 경영담론은 1990년-2000년대에 이르러서 최전성기를 맞았는데, 이는 세계은행의 활동들이 가장 발전된 수단과 최고의 전문가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평가받고, 인증을 받는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렇기에 세계은행은 신중하게 숙고된 투자활동을 하고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볼탕스키와 시아펠로가 <새로운 자본주의의 정신>에서 말했던 이 ‘경영담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작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빈곤’과 ‘빈곤감소’라는 두 가지 연관된 표현을 골라, 각각의 연어, 즉 긴밀하게 인접해서 가장 자주 나타나는 경향들이 있는 단어들을 비교하면서 1990년부터 2010년까지 이 단어들이 나타난 경우를 추적하였다. 빈곤 근처에서는 경제적 리얼리즘이 지배적인 어조였다. 은행이 가장 빈번한 단어였고, 두 번째는 백만, 그리고 총, 비용, 인구, 소득, 서비스, 문제, 노동, 생산, 고용, 자원, 식량, 건강, 농업 순이다. 이는 이들이 실제로 빈곤의 경계를 규정하는 용어들이기 때문에 자연스럽다.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것은 그 단어들 중에 서비스, 노동, 자원, 건강이라는 네 단어만이 빈곤 감소 근방에서 다시 나타난다는 점이다. 빈곤은 문제고 빈곤 감소는 이를 다루기 위한 정책이기에, 두 단어는 다수의 핵심용어를 공유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나 빈곤 감소의 가장 특징적인 연어들은 생산이나 고용은 말할 것도 없고 비용, 인구, 소득조차도 아니다. 대신 전략, 프로그램, 정책, 주안점, 핵심, 경영, 보고서, 목표, 접근법, 프로젝트, 프레임워크, 우선순위, 서류가 빈곤감소의 연어다. ‘경영담론’의 전성기이다. 고용과 소득 따위는 잊어라. 주안점, 핵심, 접근법, 프레임워크가 빈곤 감소를 위한 핵심적인 용어다. 목표와 우선순위, 그리고 세계은행 보고서를 사로잡은 두문자 따기에 따라서 부서들 사이에서 PREM(Povery Reduction Economic Management)이라고 일컬어지던 서류들과 함께, 정책은 서류작업으로 바뀌었다.
최근 20년간의 세 번째 의미론적 군집은 거버넌스[*역자 주: 해당 글에서 governance는 지배구조와 협치라는 의미를 모두 가지고 사용되었기 때문에 음역하여 거버넌스로 표기하였음.]와 도덕적 행위로 이뤄져 있다.[5] 먼저 세계은행 언어의 쉽볼렛[*역자주: 성경의 사사기에 등장하는 말로 특정한 집단이 외부인을 구별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단어 및 어구 등을 의미함.]인 거버넌스는 1990년의 보고서의 천박한 문장에서 처음 등장했다. ‘경영기관과 그 인원들의 능력과 거버넌스의 질 또한 개혁 정책이 실제로 잘 실행될 것인가를 결정한다.’ 그 후 거버넌스는 점점 더 자주 등장하여 이제는 ‘식량’만큼 자주 등장하고, ‘법률’보다는 10배 이상, 그리고 ‘정치’보다는 100배 이상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림 3)[6]
‘거버넌스’의 거침없는 상승기 동안, 이는 꾸준히 긍정적이며, 심지어는 도취된 듯한 다음과 같은 단어들과 연관되었다. 좋은[good] [*역자주: 흔히 good과 governance가 함께 사용될 때는 음독하여 굿을 사용하거나, 좋은, 참된, 바람직한, 건전한 등으로 번역됨. 여기서는 일괄적으로 ‘좋은’으로 옮김], 개혁, 조력, 성장, 노력, 역량, 투명성, 교육, 효과/성, 진보, 안정성, 보호, 건강, 접근, 실행, 인간, 새로운, 견실한, 지속가능한, 우수한, 나은, 더 나은, 최선의. 동사도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동사는 거버넌스라는 개념과 끊임없이 계속되는 활동을 등치하려는 듯 보통 진행형으로 쓰인다. 개선하다/중 이다/했다[improve/ing/ed], 강화하다/하고 있다[strenghten/ing], 지원하다/하고 있다[support/ing], 포함하고 있다[including], 건설 중이다[building], 촉진하고 있다[promoting], 돕는다/돕고 있다[help/ing], 재건 중이다[restructuring].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부패이다. (우리 중 한 명이 세계은행의 직원에게 거버넌스의 의미에 대해서 물었을 때 ‘부패의 반댓말이죠’라고 답했다.) 바꿔 말하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심지어는 정말 나쁠 수도 있는 정부와는 다르게, 거버넌스는 항상 좋기만 하다. 정치적 담론의 용어가 이렇게 한 차원으로만 기울어져 있는 경우는 생각하기 어렵다.
거버넌스의 거침없는 전진을 글로벌의, 환경의, 시민의라는 세 개의 형용사가 뒷받침한다. 그리고 이 형용사들을 대화, 이해당사자, 협업, 파트너십, 공동체, 원주민, 책임성, 이에 더해서 기후, 자연, 숲, 오염 등이 보완한다. 심지어는 건강과 교육까지도 거버넌스의 영향권 안에 들어왔다.
시민의는 다년 간 여러 명사와 연결되어 왔지만, 1980년대의 부상은 시민사회 및 시민사회단체(CSOs)라는 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담론은 주로 시민사회단체(CSOs)와 비정부기구(NGOs)와 함께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성장했으며, 다른 국제기구(WTO, IMF, UN 등)와의 프로젝트가 빈번해지는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파트너/십[partner/ship]이 등장한다. 이런 흐름은 거버넌스의 제도적 의미에서 미묘한 변화들을 나타낸다. 환경은 1970년대에 처음 나타나서 1980년대에 급격하게 증가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십년 후 브룬트란트 보고서가[*역자주: 유엔환경계획의 세계환경개발위원회가 출간한 보고서, 「우리 공동의 미래」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을 제시함.] 1987년 발표 이후에 등장한다. 경제적 성장과 환경보호 사이의 조잡한 대립을 넘어서려는 의미론적인 줄타기로 인해 이는 1995년 이후 환경 만큼이나 중요해진다. 실제론 대부분은 기업환경[business climate]과 관련되어 있긴 하지만, 기후변화라는 의미에서의 기후[climate]는 2000년대에 들어서서 환경에 대한 언급을 상당부분 대체하면서 중요해진다.
마지막으로 거버넌스의 의미론적 군집은 동정심, 관대함, 청렴, 또는 세계의 문제에 대한 공감을 표현하는 일련의 용어들을 포함한다. 이전 수십년 간 실상 존재하지 않던 이런 윤리적인 주장은 1980년대 중반에 등장하고, 책임있는, 책임성, 노력, 의무, 개입, 공유, 돌봄이 갑작스레 만연해진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는 제2의 본성이 된다.[7] 세계은행은 연약[fragile]하고 취약한[vulnerable] 사람들을, (1995년에 신임 총재인 제임스 울펜손이 재조명한) 빈곤을, 그리고 인간적인 모든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그림 6). 또한 이 군집은 권리, 법률, 정의 그리고 (반)부패를 포함한다. 사람들, 행동, 결과는 특출나며, 중요하고, 적절하며, 일관성있으며, 우수하고[strong], 좋으며[good], 더 낫다[better]. 적합하고, 공평하고, 견실한 것을 향상기키고 또 촉진하는 것은 세계은행의 신조다. 전반적으로 헌신과 의무가 강조된다. 세계은행이 느끼는 책임성은 이의 효율성만큼이나 경탄스럽다.
다시 보고서의 한 단락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분석에 깊이를 더해보자. 아래는 2012년 보고서의 도입부다.
세계은행은 목표를 달성하고 이에 관하여 소통하기 위해 의무를 다하고 있다.
빈곤을 극복하고, 개발도상국의 국민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헌신하는 과정에서 세계은행은 내적으로도, 현장에서도 모두 발전하고 있으며, 세계은행이 국가 클라이언트[*역자 주: 통상적으로 수원국으로 번역함]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을 개선하고 있다.
세계은행이 바라보는 세계는 빈민들이 그들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지천에 널려있는 세상이다. 이 시나리오 안에서 세계은행의 활동은 다양한 이니셔티브가 번창하기 위한 법적, 문화적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어떠한 의미에서는 여전히 사회기반시설을 뜻하지만, 더이상 돌과 철로 만들어진 것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세계은행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헌신하고, 의무를 다하며, 고심하고, 투자한다. 세계은행은 미래지향적이고, 끊임없이 헌신하며, 빈곤국들을 개선하고 이에 봉사하기 위하여 쉴 새 없이 고민하는데, 이들이 바로 세계은행의… 클라이언트다.
클라이언트라고? 이 단어는 언뜻 보면 어색해 보인다. 헌신이 도덕적 정의의 세계를 암시한다면, 클라이언트는 비즈니스와 합리적인 이익, 그리고 권력관계를 나타낸다. 그러나 세계은행은 의도적으로 하나의 문장안에서 둘을 연결함으로써, 둘이 더 이상 상충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시민사회와 세계은행 스스로가 그렇듯이, 오늘날의 비즈니스는 주주만큼이나 이해관계자들에게도 주의를 기울인다. 비즈니스는 사회적, 환경적 책임을 지며, 다수의 파트너십으로 구성된 지속가능한 거버넌스 하에 있다. 윤리는 비즈니스 세계와 그 세계 속 계약 관계의 핵심이다.
복합성과 위기
세계은행의 담론에는 대조되는 두 패러다임이 존재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하나의 패러다임으로부터 다른 패러다임으로 이르게 되는 과정을 간략히 그려보자. 몇몇 조정을 제외하면, 50년대와 60년대에 세계은행의 운영을 규정했던 지적 프레임워크는 1970년대 후반까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 관개, 화학적 투입물, 녹색혁명 그리고 산업과 인프라의 시너지는 여전히 경제적 도약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선형적 접근법에 대한 믿음은 바래간다. 1960년대가 끝나가면서 인프라의 건설은 비교적 쉽지만 장기간의 안정적인 운영은 쉽지 않다는 것이 점차 분명해졌다. 이는 전문가, 숙련 노동자 그리고 전기와 같은 핵심 품목들의 지속적인 공급을 필요로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남반구 국가들에게는 일상적인 것들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국제무역 또한 세계은행의 바람이나, 로스토의 발전이론과도 부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남반구의 경제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농산물 원자료의 가격은 안정적이지 않고, 가격 회복이 어려운 큰 폭의 하락을 겪고 있다. 이런 불안정성은 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개발도상국은 선순환 경로를 지속할 여력이 없어진다. 더 이상 원재료의 수출로 인프라를 성장시킬 수도 없고… 게다가 외채 상환에 자금을 투입할 수도 없다. 자신들의 투자에 신경 쓰는 세계은행에게는 근심거리인 셈이다.
보고서의 언어는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수력발전소나 시멘트와 같은 단어들보다는 상품이나 개선과 같은 단어들로 분석의 추상 수준을 높인다. 그리고 단지 물적 인프라에만 의지해서는 더 이상 세상을 선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장은 물론이고, 특히나 ‘인적 요소’와 같은 다른 ‘요소’들을 고려한다. 로버트 맥나라마가 1967년에 세계은행의 총재가 되었을 때, 그는 린든 존슨의 ‘빈곤과의 전쟁’을 세계은행의 전략의 핵김으로 삼았다. 이는 소규모 농장과 협동조합의 시기(탈식민화와 사회소요의 희미한 반향이 느껴진다), 농부(이전까지는 세계은행의 정책의 핵심이 아니었다)의 시기, 그리고 가족(그리고 곧 여성)의 시기다. 이제 교육은 학교, 초등, 중고등, 교육의, 훈련과 함께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는 도시[town](와 판자촌)의 인구 폭발, 농촌 이주, (포괄적인 의미믜 형용사인) 도시의[urban] 삶의 방식의 질적 저하, 이외에도 주거, 배수, 하수 등의 새로운 문제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시기다.
1970년대 후반부의 석유 파동은 새로운 외생적 요소를 도입한다. 부채, 차입[borrowed], 차입금[borrowing]과 같은 단어는 한 국가의 신뢰도(혹은 신뢰도의 부족)를 언급하는 단어들(비용, 수출, 협조융자)와 함께 더 빈번해진다. 개혁담론은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하는데, 이는 곧 상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부채가 물가의 상승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물가 또한 세계은행의 보고서에서 더 두드러지게 된다(사실 그동안 어떻게 물가가 드러나지 않았던 것인지 신기하다). 석유 파동은 세계은행의 실상이 은행이라는 것을, 그것도 자신의 대출금을 회수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은행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 사실은 꽤 명백해 보이지만, 그때까지는 대부분 쉬쉬해왔던 것이다.
이 모두에 대해 대응하여, 차관과 발전, 투자와 경제 발전을 연결하는 인과관계는 확장되어 가족과 교육, 영세농과 배수관까지 포함하기에 이른다. 이는 비현실적인 조정이 아닐 뿐더러, 부채 이면의 논리조차도 여전히 합리적이고 간명해 보인다. 차관, 불안정한 수출, 상환의 어려움 사이의 내적 연관성은 명백하고 명료하다. 그러나 세계은행 보고서를 통해서 보는 세상은 이전보다 덜 선형적이게 된다. 사회-경제적 동학들은 풀어내기가 더 어려워지고, 예측 불허의 사건들을 마주하는 것도 크게 놀랍지 않게 된다. 때때로 이러한 놀라움이 정말 진짜처럼 보일 때도 있다. 만약 그게 진짜라도(그러나 이게 가능할까?), 이는 전후 시기의 발전에 대한 미망을 시사할 뿐이다. 인프라를 통한 성장 정책이 부분적으로 동요하면서, 모든 것들이 간명하고 거의 필연적이었던 이전의 수십년과는 극명하게 대조적으로 우유부단하거나 심지어는 개방적이기까지 한 분위기도 나타난다. 그러나 개방성은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1970년대 말에는 ‘구조조정’으로 가는 길을 향한 자동조정 시스템이 다시 설치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채와 구조조정
1980년대의 보고서는 남반구의 부채와 구조조정이라는 그 당시의 키워드로 점철되어 있다. 악화, 적자, 하강, 채무[indebted], 이슈, 곤경과 같은 위기의 의미론이 편재하면서, 신규 차관을 받으려는 어떠한 국가든 갖춰야 하는 국제수지, 경상수지, 채무변제의 기준치를 설정한다. 경제회복에 대한 희망은 그다지 자주 보이지 않는다. 이 시기의 ‘발전 철학’인 자유주의적 처방은 오직 성장으로의 회귀만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를 보장하고자 한다. 이는 무역의 확대, 민간 영역의 확대, 경쟁력의 향상을 의미한다. (더 자유로운 방향으로) 경체활동의 규칙은 재정의되어야 하고, 국가의 역할은 축소되어야 한다. 공공 영역이 자유화되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효율적이고 비용-효과적이 되도록 배우고, 성과를 관리하고, 인센티브를 개발해야 한다. 세계은행은 해결책들의 밑그림을 그리고, 협상을 위한 여지를 거의 남겨두지 않은 채로 해결책들이 실행되기를 요구한다. 구조조정과 채무 재조정만이 채권자를 안심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몇 가지 연대기적인 세부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1982-89년의 주된 의미 군집은 둔화, 침체, 저하, 가치저하, 평가절하, 하락, 악화, 극심한 등으로 여전히 우울하다. 1990년대에는 공공 기관의 자유화와 민영화를 뜻하는 은어인 시장지향적 활동과 기관 형성과 함께, 민간 부문, 민영화, 민영화한, 금융 부문, 신용도로 이동한다. 국제 금융의 어휘 목록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자연, 환경, 시민사회의 어휘 목록은 퍼지기 시작했다. 한편 경영은 세계은행에서 처방한 혹독한 정책들을 표현하는 일련의 동사들로 자신의 족적을 남겼다. 대처하다, 목표하다, 촉진하다, 지원하다, 구조조정하다, 실행하다, 개선하다, 강화하다, 겨냥하다, 성취하다…
개별적인 단어들 뿐만 아니라, 세계은행이 사용하는 언어의 성격 자체가 점점 더 추상적이고, 구체적인 사회 생활과 거리가 멀어진다. 즉 세계은행의 언어는 일상적인 의사소통에서 유리되어서 부채의 상환에 중요한 경제적 요소들까지 긴축해 버린 기술적인 문법으로 변화한다. 해결책은 어떠한 구체적인 상황과도 무관하며,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채무불이행의 가능성에 직면하여, 세계은행의 제일의 목적은 더 이상 개발이 아니라, 단순히 민간 채권자를 구제하는 것이다. (아르파공 [*역자주: 몰리에르 작 <수전노>의 주인공]이 외친다. “아아! 내 불쌍한 돈! 내 가없은 돈!![신정아 역, <수전노>, 제4막 제7장, 열린책들, p98.]”) 은행가들은 클라이언트보다 먼저 보호받아야 한다. 의심은 사라지고, 세계은행의 핵심적인 믿음은 거듭하여 강조된다. 경제는 군살빼기를 통해서 탄탄해져야 한다. 민간 사업과 시장에게 호의적인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 공공 부문은 반드시 구조조정되어야 한다. 국가는 축소되고 더 효율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해결책’들은 단순히 부채위기에 대응하는 것을 넘어서, 타협 불가능한 자유주의로의 회귀를 통한 사회 변동을 목표로 한다.
2.문법 유형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는 꽤 단순하다. 경제적 상황이 점차 전개되어 나갈수록 정책과 언어 또한 변한다. 반면 세계은행 자체는 변하지 않고 남아있다. 우리는 이제 언어의 측면 중 아주 조금씩, 그리고 아주 천천히 변화하는 부분을 살펴볼 것이다. 혹자가 세계은행의 ‘관료화’ 담론이라고 일컫는(실은 이보다 더 광범위하지만) 담론은 세계은행이 스스로를 몇몇 원칙들을 중심으로 조직한 뒤, 자신의 메시지를 만들어 내기 시작하는 방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우리가 이 글의 서두에서 인용했던 두 개의 단락으로 돌아가서 이를 설명해 보자. ‘현재 콩고의 교통체계’라는 1958년의 단락은 하천과 농장, 시장, 철도, 항만, 광물, 도시로 꽉 들어차 있어, 더할 나위 없이 명료하다. 2008년의 두 번째 단락은 이와 다르다. 다시 살펴보자.
글로벌 이슈의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기
역내국가들은 글로벌 문제의 핵심적인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으며, 세계은행의 역할은 남-남 협력을 지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현명한 대화 및 행동을 위한 혁신적인 플랫폼을 통해서 역내국가들과 협력함으로써 그들의 노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슈, 플레이어, 문제, 노력, 플랫폼, 대화, 뒷받침[ground]… 조지 오웰이 <정치와 영어>에서 ‘현대 산문은 대체적으로 구체성으로부터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역자주: 조지 오웰의 <정치와 영어>, 디 에센셜 조지오웰, p.611]고 했다. 오웰의 말은 1946년이나 지금이나 옳다. 세계은행은 핵심, 글로벌, 혁신, 재조명 등으로 발언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이 단어들은 절망스러울 정도로 불명확하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혹은 숨기려는 것일까’
‘라틴어 단어들이 사실 위로 보드라운 눈송이처럼 내려앉으면…'[<정치와 영어>, p.618]
이 불명확함을 이해하기 위해서, 위 단락을 보다 작은 단위들로 쪼갠 뒤, 이 단위들의 ‘구체성으로부터 멀어지는’ 움직임부터 살펴보자. 2008년의 단락에서 행동(action)과 협력(cooperation)은 흔히 ‘명사화형(nominalization)’ 또는 ‘파생추상명사(derived abstract nouns)’로 알려진 단어의 일종이다.[8] 이들은 동사 행동하다(act)와, 협력하다(cooperate)에서 파생되었다. 영어에서 그런 단어들은 -tion, -sion, -ment와 같은 전형적인 어미로 식별할 수 있다. 실행(implementation), 확장(extension), 발전(development)…) 따라서 우리는 세계은행의 보고서에서 그런 어미를 갖는 단어를 모두 추출한 후, 직접 상위 600개를 (‘station’, ‘cement’와 같은 것들을 제외하기 위해서) 일일이 확인했다. (그림 7)은 그 결과를 보여준다. 코퍼스 언어학에 따르면, 학술적인 산문에서 동사과 명사화된 단어는 평균적으로 1.3%의 빈도를 보인다. 세계은행의 보고서에서는 3%에서 시작해서, 1950년 즈음 고점을 찍고, 느리지만 꾸준하게 성장하여 1980년에서 2005년 사이에는 4%에서 안정적으로 높은 상태를 유지하다가, 그 후 약간 감소한다.
한 종류의 단어들이 유사한 담론들에서보다 2~3배 더 많이 사용된다.[9] 왜 그럴까? 명사화형의 역할이 무엇이길래 세계은행의 보고서는 이토록 명사화형의 사용을 견지하는 것일까? 보고서는 ‘행위나 과정’을 가져다가 ‘추상적 대상’으로 바꿔 놓는 표준적인 언어를 정의한다.[10] 서로 협력하는 국가들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남-남 협력(cooperation)’을 지원한다. 추상화 속에서 시간성은 사라진다. 1990년의 보고서는 ‘빈곤감소(reduction) 정책의 수립(formulation)을 지원하는 사회적 서비스와 국가 평가(assessments), 그리고 실행(action) 계획을 제공(provision)’ 한다고 쓴다. 이 5개의 명사화형은 각자 꽤 뚜렷하게 구분되는 일련의 행위들에 일종의 동시성을 부여한다.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실행 (1))은, 지원한다(2). 정책의 수립을(3), 빈곤감소를 위한(4). 이를 실행하려면 매우[very]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보고서의 언어 안에서 이 모든 단계들은 단번에 실현 가능해 보이는 하나의 정책으로 집햑된다. 실로 마법이지 않은가.
계속해서 코퍼스 언어학 저자에 따르면, 명사화형에서 행위나 과정은 ‘인간 참여자들로부터 분리’되어 있다.[11] 즉 서로 협력하는 국가가 아니라, 협력(cooperation)이다. 또 다른 최근의 세계은행 보고서는 ‘오염(pollution), 토양 침식(erosion), 토지의 황폐화(degradation), 산림파괴(deforestation), 그리고 도시 환경(environment)의 악화(deterioration)’를 한탄하지만, 놀랍게도 거기에는 어떠한 사회적 행위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암울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에 누구도 책임이 없단 말인가? 부채위기가 닥칠 것으로 보이자 ‘우선순위 설정(prioritization)’이 세계은행의 보고서에 등장한다. 단순히 말하면 모든 채권자가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채권자는 즉시 변제를 받을 수 있고, 다른 채권자들은 나중에 변제받는다. 일부는 전액을 변제받고, 나머지 채권자들은 그러지 못한다. 물론 X가 Y와 다르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기준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우선순위 설정은 이를 은폐한다. 왜 X는 되고 Y는 아닌가? 이는 우선순위 설정 때문이다. 그 단어 앞에서 아무도 결정에 관여한 구체적인 주체를 볼 수 없고, 심지어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다. ‘렌디션(rendition)’은 미국의 비미루정보기관이 타국 국민을 납치한 후 그들을 고문할 나른 나라의 정보기관에 그들을 넘기는 일이다. ‘렌디션’이라는 말에서는 이 모든 내용이 사라진다. 실로 마법이지 않은가.[12]
이렇게 사회적 힘을 추상적 개념으로 반복하여 전환함으로써 세계은행의 보고서는 기묘하게 형이상학적인 문서가 되는데, 여기의 주인공은 주로 경제적 행위자가 아니라 원칙들이고, 너무나도 보편적인 자연의 원칙들이기에 이에 반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글로벌 이슈의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기. 그 누구도 이 말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누구도 이 단어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말(그런 관념들)은 너무나도 일반적이고, 대개 단수이다. 발전, 거버넌스, 경영, 협력.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19세기 후반의 사유에서 이런 ‘단수화’를 발견했다. ‘다양한 역사들이 복수로 존재하던’ ‘역사들’은 ‘역사 일반’이 된다. 또한 다양한 기술적, 지적 분야의 ‘진보들’을 단일한 ‘진보’로 수렴하는 등으로 단수화 된다.[13]
코젤렉에게 단수화는 ‘점점 복잡해지는 경제적, 기술적, 사회적, 정치적 구조(385)’의 결과이다. 이에 따라 사회이론의 범주들은 ‘고도로 보편화(386)’된다.[14] 단수의 추상명사들이 종합과 일반화를 가능케 하며, 그렇기에 지식의 구성에 필수적임은 물론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은행의 보고서는 일차적으로 지식이 아닌 정책을 다룬다. 정책에서의 단수화는 더 높은 수준의 일반성이 아니라, 외려 더 강력한 제약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오직 하나의 발전 경로, 한 종류의 경영, 한 유형의 협력을 위한 하나의 방안만이 있을 뿐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의견이 불일치[to disagree]한다는 동사는 세계은행의 보고서에 등장하지 않는다. 의견 불일치[disagreement]는 70여년 간 2번 등장한다.[15] 마가렛 대처의 유명한 말처럼, 대안은 없다. 단수화는 이를 논증이 아닌 반복되는 문법 유형이라는 무언의 ‘사실’로써 단언한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세계은행의 정책은 변화하지만, 단수화는 변화하지 않는다. 각각의 새로운 정책은 가능한 유일한 정책일 뿐이다. (그림 8)[16]
세계은행 역사상 첫 10년과 가장 최근의 10년의 보고서에서 각각 사용 빈도가 높은 25개의 명사화형을 비교한다면, 매우 상이한 두 개의 정치적 군집이 나타난다. 첫 번째 집단은 설비, 생산, 건설, 관개, 운영, 분배, 재건, 완료, 전달 등의 용어들로 정의되는 반면, 두 번째 집단은 경영, 공급, 사업보고[statement], 조정, 가치평가, 실행, 평가, 참여, 부패, 옵션으로 정의된다. 25개의 용어들 중 7개 만이 두 집단 모두에서 사용되며, 특히 발전은 양쪽 모두에서 월등하게 빈번히 사용된다. (표는 각 두 집단에서 발전을 제거하는 경우의 빈도를 보여준다.)
의미론적 군집으로부터 문법구조로의(즉 이 에세이의 첫 번째 부분에서 두 번째 부분으로의) 관점 전환은, 달리 말하면 특정한 추세변화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림 1~6)의 5배 혹은 10배씩 증가하는 극적인 궤적과 비교해 볼 때 (그림 7)의 완만한 경사는 인상적이지 않다. 그러나 문법적 구조의 더딘 변화는 우리에게 그만큼 중요한 것을 알려준다. 모든 변화의 이면에서 제도적 ‘양식’의 첫 번째 요소는 성공적으로 확고해졌다. 명사화형은 다수의 상호연관된 방식으로 ‘작동’했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빈번하게 나타났다. 명사화형은 결정의 주체를 숨기고, 대안을 제거했으며, 선택된 정책에 원칙중심과 즉각적인 실현이라는 후광을 부여했다. 명사화형에 의한 추상화는 점점 더 탈영토화되는 자본의 완벽한 반향이었다. ‘우선순위설정(prioritization)'(제발!)와 같은 명사화형에 의한 참을 수 없는 추악함은 명사화형에 다소 현학적인 신뢰를 부여했다. 명사화형에 의한 불명확함은 세계질서를 평온하게 유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작은 조정들을 가능하게 했다. 그래서, 이 라틴어 단어들은 ‘어떻게 정책에 대해서 말하는가’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특정한 의미장은 그의 지시물과 함께 흥망한다. 누군가는 이를 정치적 언어의 사건사[histoire événementielle]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법은 규칙과 반복으로 이뤄져 있고, 문법의 정치는 사건보다 더 긴 주기를 갖는 구조와 동행한다. 문법은 세계은행의 개별 정책을 규정하기보다는, 모든 정책들이 언어화되는 방식을 규정한다. 이는 세계은행이 스스로를 비춰보고, 자신을 기관으로 인식할 수 있게끔 하는 마법의 거울이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우리는 (그림 3)을 설명하면서 거버넌스의 연어에 대해 논했지만, ‘그리고[and]’가 그 어떤 연어보다도 많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논하지 않았다. ‘그리고’라니? 모두가 알다시피 영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는 ‘the’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리고’가 목록의 최상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1999년 보고서의 두 문단은 이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기업지배구조 그리고 경쟁정책 그리고 개혁 그리고 공기업의 민영화 그리고 노동시장/사회보장 개혁을 촉진한다.
이는 품질, 반응성 그리고 파트너십, 지식공유, 그리고 고객지향, 그리고 빈곤 감소에 대해 더욱 중점을 두고 있다.
문법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흉물스러운 첫 번째 문장이 인내심 많은 독자들을 위한 작은 선물이라면, 더 조심스럽게 쓰인 두 번째 문장은 우리의 논의 대상인 수사학을 조금 더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식공유는 고객지향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빈곤감소와도 상관이 없다. 그것들이 함께 나타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리고’는 어떠한 논리도 없음에도 그것들을 동등한 것으로 연결하고, 그들의 병렬적 조잡함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는 해야 할 수많은 일들이 있다. 우리는 고상할 여유가 없다. 그래, 우리는 우리의 고객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은행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러나 또한 우리는 지식과 파트너십 그리고 공유와 그리고 빈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사용한 ‘은행어(Bankspeak)’는 오웰의 유명한 신조어를 차용한 것이다. 그러나 1984의 사전 편찬자와 세계은행의 대필자들 사이에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전자는 단어를 말살하는 일에 매료되어 있는 반면에 (…단어를 없애버리는 일의 재미… 해를 거듭할수록 단어는 자꾸 줄어들고 의식의 범위도 좁아지게 될 테지, <1984>, 열린책들, 64p.), 후자는 단어를, 특히나 명사를 증식시키는 일에서 유아적인 만족감을 느낀다. 학술적인 산문에서 명사의 빈도는 보통 30% 미만에 불과하지만, 세계은행의 보고서에서는 항상 확연하게 더 높으며, 해가 갈수록 느리지만 꾸준히 증가한다. 이는 ‘세계’를 ‘은행’ 안으로 가져오기에 완벽한 수사학이다. 즉, 이는 끊임없이 확장되는 우주를 시사하며, 비판적인 이해보다는 경탄과 놀라움을 느끼도록 하는 이질적인 현실의 (레오 스피처의 표현을 빌리자면) ‘혼란스러운 열거’이다.
위에서 인용된 ‘고객 지향’과 ‘빈곤 감소’에 대한 두 번째 문장은 세계은행 담론의 또다른 신경증적인 버릇을 잘 보여주는 예시이다. 즉, 명사를 수식하기 위하여 또다른 명사를 사용하는 것 말이다. 2012년 세계은행의 보고서에서 흔히 ‘명사 부가어(adjunct nouns)’라고 일컬어지는 이런 예들을 살펴보자.
은행 운영과 지식활동의 품질과 목표지향성, 대출 포트폴리오의 성과, 은행 운영에서의 젠더 관점의 주류화, 고객 피드백, 그리고 은행의 수원국 시스템 사용을 포함하는 세계은행의 운영효과성.
우리의 의제는 성평등, 식량 안보,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 인프라 투자, 재난 방지, 금융 혁신 그리고 포용성을 포함한다.
롱맨 그래머[*역자주: Longman 출판사에서 나온 문법책 시리즈로 한국에도 Longman Grammar라는 이름으로 시리즈 중 일부가 출판됨.]는 명사 부가어를 전치 수식의 한 형태로 설명한다. 예를 들면, ‘빈곤감소(poverty reduction)’에서 ‘빈곤(poverty)’은 ‘감소(reduction)’를 앞에서 수식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후치 수식의 사례인 ‘빈곤의 감소(the reduction of poverty)’에서는 ‘빈곤’이 뒤에서 수식한다.) 롱맨 그래머의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전치수식어가 ‘전반적으로 후치수식어보다 더 축약되어 있’기 때문에, ‘의미 관계를 파악하기에 덜 명맥하다’는 점에서 후치수식어와 구분된다.[17] 더 축약되어 있고 덜 명백하다. 바로 이거다. 먼저, ‘축약’이란 빠르고 효율적인 수사학으로서, 간결하고, 심지어는 조금 성급하기까지 하다. 즉, 이는 할 말은 많지만 낭비할 시간은 없는 이들의 언어이다. 이제 남은 것은 ‘명백함’의 문제이다. ‘빈곤의 감소(the reduction of poverty)’를 예시로서 계속 사용하자면, 이 문구의 경우 개별 단어들의 의미를 안다면, 문구 자체[the expression]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즉, 전체적인 문구는 단지 부분들의 합이 아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는 ‘경영 담론(management discourse)’의 기호체계를 사용한 표현이며, 그 의미는 ‘고용’이나 ‘소득’보다 ‘접근법’이나 ‘프레임워크’와 상관이 있다. 그렇다면 2012년 보고서가 언급하는 ‘식량안보(food security)’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선, 이는 ‘식량 불안정(food insecurity)’의 반댓말인데, ‘식량 불안정(food insecurity)’이란 기존에 ‘기아(hunger)’라고 불렸던 말에 대한 일부 개념상의 개선, 일부 관료적 완곡어법의 일환으로서 만들어진 UN 신조어이다. 이런 새로운 기호 체계를 모른다면, 개별 단어들은 별 의미가 없다.[18]
여기서 (‘운영 효과성[operations effectiveness]’, ‘결과 지향성[results orientaiom]’, ‘재난 방지[disaster prevention]’ 등과 같이 명사 부가ㅏ어와 명백히 선택적인 친연성을 가지고 있는) 명사화형의 출현과 동시에 시작된 과정은 정점에 달한다. 이러한 ‘라틴어 단어들’은 ‘경영 담론’의 내적 기호체계와 함께 짝을 이뤄, 사회적 현실을 점점 더 인식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어떻게 그리도 뒤틀린 표현 방식이 현 세계의 주요 담론이 될 수 있었을까?
지상에서 영원으로
브루노 라투르와 스티브 울가는 그들의 책 「실험실 생활(Laboratory Life)」서 과학적 가설들의 기묘한 운명을 탐구한다. 처음에는 온갖 반대에 부딪히며 존재 자체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진술’이었던 아이디어들이, 어떤 순간에 가까스로 ‘안정화’에 성공하고나서는 순수하고 명료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가설들 말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즉, 존재 가능한 모든 정책들 중에서도 세계은행의 논쟁적인 아이디어가 어떻게 ‘자연스러운’ 시각으로 인정될 수 있었을까? 라투르와 울가는, 결정적인 수(手)는 ‘장소와 시간이라는 결정요인과 그것의 생산자(…)에 대한 모든 언급’으로부터 주장을 ‘자유롭게’ 하는 데에 있다고 설명한다.[19] (그림 10과 11)은 세계은행이 그런 ‘결정요인’들을 얼마나 단호하게 다루는지를 보여준다.
1946년과 2008년 사이, 시간부사(‘현재(now)’, ‘최근(recently)’, ‘이후(later)’ 등)의 빈도가 50% 이상 감소하였다. 이러한 부사들이 시간 좌표 체계 하에 사건들을 배치하는 가장 쉬운 방법임을 고려하였을 때, 이들이 사라진다는 사실은 세계은행 보고서 내에서 시간에 대한 감각이 급격하게 약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1950년대에 민족국가에 대한 언급이 증가했고, 1960년대에는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들을 인정하면서 안정적인 수치를 유지하였다. 몇십 년간 평형 상태를 유지하였던 국가(state)와 두음문자는 1970년대 후반부터 급격하게 분기하기 시작하여 급기야 현재는 후자가 전자보다 약 4배 가량 자주 쓰인다. 이는 ‘장소라는 결정요인’이 지극히 중요한 지정학적 행위자들이 초국가적 단체들에 의하여 힘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초국가적 단체들은 UN, IMF, WTO 또는 FAO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COSO[Committee Of Sponsoring Organizations], FASB[Financial Accounting Standards Board, 국제회계기준위원회], PRSP[Poverty Reduvtion Strategy Papers, 빈곤감소전략] 등 공간을 완전히 초월한 것처럼 보이는 기타 단체들을 포함한다.
장소와 시간에 점점 더 무감해지는 것은 단지 양적인 문제가 아니다. 세계은행 보고서를 설명하는 문단들을 살펴보면, 한 가지 사항이 눈에 띌 것이다. 바로 보고서의 종결어미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여기 1955년 보고서의 예시를 보자.
국제부흥은행의 자금 조달로 핵심적인 커피생산의 중심지인 짐마 근처에 현대적인 커피 가공 공장이 완공되었습니다(was completed).
자동 전화교환기가 아디스 아바바와 곤다르에 설치되었고(has veen installed), 다른 도시들에는 수동 교환기가 설치되었다.
이는 금속산업이나 화학공업 같이 대규모의 전력을 사용하는 산업에 대한 투자를 촉진시켰고, 또한 이는 노르웨이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높은 1인당 발전설비용량을 개발할 수 있게 했다(has led).
짐마, 아디스아바바, 곤다르, 노르웨이. 이 문장들에서 드러나는 강렬한 지리적 특정성은 시간에 대한 동등하게 강렬한 감각을 수반한다. 커피 농장은 ‘완공되었다(was completed)’. 전화교환기는 ‘설치되었다(have been installed)’. 투자는 ‘할 수 있게 했다(has led)’. 초점은 결과에 맞춰져 있고, 과정이 끝남과 동시에 단락도 끝난다. 이와 관련된 무넙범주(동사의 시제라는 ‘측면’)는 어떤 행동이 완료되었음을 나타내는 ‘완료시제’이다. 1948년의 아래 단락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는 보다 복잡한 문단들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
조사단의 결론은 필리핀에서 유리한 외환 포지션을 만들어 왔던(had produced)요소들이 일시적(were temporaty)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면서(stresses), 환율을 보전(conserve)해야 한다는 점,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지역 금융의 제한(restrict)이 필요하다는 점, 예상되는(expected) 달러 수입 감소의 충격을 완화(lesson)시키기 위한 대책을 취할(take) 필요가 있다는 점, 그리고 구체적인 개발 프로젝트 계획에서(in the planning) 기술적 지원을 보장(secure)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pointed out).
이를 분석하자면, 최초의 성취에 대한 감각(‘강조하였다'(pointed out), ‘만들어 왔던'(had produced))은 현재(‘보전'(conserve), ‘제한'(restrict))에 대한 해석으로 이어지며, 이는 곧 보다 다층적인 미래에 대한 해석으로까지 이어진다. 즉, 필리핀은 ‘대책을 취하여'(take measures)(곧) ‘예상되는 수입 감소'(expected reduction in receipts)(그 후)로 발생할 ‘충경을 완화'(to lessen the impact)(비교적 가장 먼 미래에)해야 한다. 시간성은 복잡하지만 그 차원은 명징하다. 과거는 결과의 영역이고, 현재는 결정의 영역, 미래는 가능성의 영역이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 이 차이는 희미해졌다. 2003년 보고서의 한 단락의 마지막을 보자.
국제개발협회는 프로그램 융자를 통해서 이러한 전략들을 지원하는(supporting)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has been moving).
프로그램 융자가 뭐든지 간에, 국제개발협회는 실제로 이를 수행하지 않았다. 그렇다, 국제개발협회는 ‘나아가고 있'(has been moving)지만 그게 전부다. 게다가 무언가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도 아니고, ‘지원하는'(supporting)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최근에 우리는 ‘책임성’에 대한 너무도 많은 연설을 들었고, 결국 ‘책임성’은 무엇을 했는가(done)를 통해서만 평가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은행의 언어에서 과거시제가 쏟아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은행의 보고서에서 과거시제는 더 이상 문장을 ‘결말짓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행형과 동명사(이 둘의 빈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50%가량 증가했다)가 보여주는 흐릿하고 조금 형해화된 시간성을 발견할 수 있다. 몇 가지 사례들을 살펴보자.
두 번째 지구(地區)개발 프로젝트[The Second Kecamatan Develoment Project]는 농촌 거주민들에게 공동체를 발전(developing)시키기 위한 도구를 줌(giving)으로써 2천5백만에서 3천만 명의 농촌 거주 인도네이사인에게 혜택을 제공(benefiting)하고 있다. (2003)
세계은행은 국가 클라이언트[수원국]들의 기후변화 대응을 돕기 위한 노력을 가속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핵심 사명의 다른 측면을 준수(respecting)하고 있다. 개발도상(growing)국들에 현대적 에너지원의 공급을 도움(helping)으로써 경제개발과 빈곤감소를 촉진(promoting)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2008)
세계은행은 가속하고 있지만, 가속하는 것은 단지 노력일 뿐이다. 그리고 이 노력은 도움(help)을 줄 뿐이고, 도움을 받는 자들은 대응을 할 뿐이다. 이러한 도움과 대응은 개발도상국을 도움(helping-또 다시!)을 주는 일을 촉진(promoting)하는 것을 준수(respect)해야 할 것이다. 보고서의 내용에서 이 단락들의 의미를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정책결정과 -ing 어미 사이의 근접성이다. 보고서 본문의 틀을 결정할 무수한 헤드라인의 메시지들은 다음과 같다. ‘최빈국과 함께 일하기(working)’, ‘시기 적절한 분석을 제공하기(providing)’, ‘지식을 공유하기(sharing)’, ‘거버넌스를 향상시키기(improving)’, ‘민간 부문과 금융 부문의 발전을 육성하기(fostering)’,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활성화하기(boosting)’, ‘사회적 격차를 메꾸기(bridging)’, ‘거버넌스를 강화하기(strengthening)’, ‘글로벌 이슈의 운동장을평평하게 하기(leveling)’. 모두 극도로 고양되고 있고 그만큼 산만하다. 동명사의 기능은 한 행동의 결과를 불확정적으로 남겨두는 것이고, 그래서 명확한 의미의 윤곽을 결여시키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확장된 현재가 등장하고, 그 속에서 정책들은 항상 진행 중이다. 그러나 단지 진행 중일 뿐이다. 약속들은 넘쳐나지만, 사실들은 매우 적다.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것이 지금과 같이 남아있기 위해서.’ 람페두사의 표범에 등장하는 문장이 여기서 똑같이 반복된다. 변화투성이인데, 성취되는 것은 없다. 변화투성이인데, 미래는 없다.
* 본 고는 NLR(New Left Review, 92 March–April 2015 )의 동의를 얻어 번역되었습니다.
원문 링크: https://newleftreview.org/issues/ii92/articles/franco-moretti-dominique-pestre-bankspeak
역자 나성채는 회계사로 일하면서 은행 및 금융기업을 감사하고 재무자문을 제공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재무금융을 공부하고 있다.
[1] 다른 분과학문에 종사하는 두 학자가 상대방의 연구에 대해서 배우고, 장기간의 프로젝트를 함께 허심탄회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얻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2013년 봄 베를린 고등학술연구소에서 우리에게는 꼭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났고, 이후에 스탠포드 문학 연구소의 연구자들이 도움으로 우리는 막연한 아이디어를 일련의 견실한 발견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 연구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준 모두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2] 우리의 코퍼스는 예산과 모든 재무자료표를 제외한 1946-2012년의 텍스트를 전체를 아우른다. 이 보고서에서 은행은 보통 세계은행을 언급하는 것이다. 국제부흥개발은행은 최초의 세계은행의 기구로 1944년 브레튼우즈에서 설립되었으며, 이제 민간 투자 기관과, 보험업, 중재포럼 그리고 국제개발협회[1960년에 최빈국들에게 양허성 차관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함]을 포함하는 세계은행 그룹 안에 속해있다. New Haven, ct 2005.세계은행 내부에서 작성된 세계은행의 역사에 대한 설명으로는 Devesh Kapur, John Lewis and Richard Webb, eds, The World Bank: Its First Half Century, 2 vols, Washington, dc 1997를 참고하고, 비판적인 역사가들의 논의는 Michael Goldman, Imperial Nature: The World Bank and Struggles for Social Justice in the Age of Globalization, New Haven, ct 2005를 참고할 수 있다.
[3] 세계은행의 최초의 수십 년간의 공고한 ‘물질적인’ 세계에서 형용사는 드물다. ‘재정의’, ‘경제의’ 그리고 ‘금융의’를 제쳐두면 ‘전력의’, ‘수력발전의’만이 유의미하게 등장하고, 이후에는 건강, 농업, 그리고 가족생활과 연관된 ‘낙농의’가 합류한다.
[4] 티머시 미첼,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옮김, 탄소민주주의: 화석연료시대의 정치권력, 생각비행, 2017. 189, 192.
[5] Dominique Pestre, ed., Le gouvernement des technosciences: Gouverner le progrès et ses dégâts depuis 1945, Paris 2014.
[6] 이 단어의 사용이 빈번해져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자, 단어의 용법은 통제 불가능하도록 폭증했고, 이윽고 그 누구도 이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수석 경제 평론가 마틴 울프는 2014년 5월 21일의 인도 총선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모디의] 모토 “더 작은 정부 그리고 더 큰 거버넌스”는 대중 정서를 포착했지만, 실제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지는 불분명하다. 그리고 세계은행의 전임총재이기도 한 로버트 졸릭은 같은 신문에 중국의 정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개혁은 경제적 거버넌스와 현대화에 방점을 찍을 것이다, 서구인들에게 이런 용어들은 아마 불명확해 보일 것이다…’[2014년 6월 13일] 이제 재치 있는 언어의 전유를 통해서, 세계은행이 개발도상국들을 질책하기 위해 휘두르던 용어를 바로 그 개발도상국들이 서구의 감시에 대응하기 위해서 방어용 위장으로 사용한다.
[7] ‘공정 가치’란 표현은 윤리적으로 감화된 형용사가 명사가 함의하고 있는 사업적인 현실주의를 완화시킨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흥미롭다.
[8] 명사화형에 관해서는 다음을 확인하라. 더글라스 바이버, 수잔 콘라드, 랜디 레펜, 유석훈, 김융영 옮김, 바이버의 코퍼스 언어학, 고려대학교 출판부 2015, p77. 그리고 Douglas Biber, Stig Johansson, Geoffrey Leech, Susan Conrad and Edward Finegan, Longman Grammar of Spoken and Written English, London 1999, p. 325ff.
[9]물론 이것이 모든 명사화형의 빈도가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앞에서 묘사한 의미론적 이동과 같은 선상에서, (제정(legislation), 대표(representation))처럼 정치적 과정에 연관되거나, (협정(agreement), 교섭(negotiation))과 같이 외교에 연관되거나, (검토(examination),조사(investigation))처럼 비판적인 감시의 형태인 많은 용어들의 빈도는 해가 갈 수록 눈에 띄게 감소한다. 협정은 초창기의 보고서에서 명사화된 단어 중 5번째로 자주 등장했었으나, 이제는 15번째이며, 제정은 31번째에서 99번째로 추락하는 등 이와 유사한 사항들이 계속된다. 반면 어떤 용어들은 빛을 보게 되었다. 세계은행의 활동이 시작하던 시기에 경영(management)은 18번째로 자주 사용되는 명사화된 단어였으나, 이제는 두 번째로 자주 사용된다. 실행(implementation), 조정(adjustment), 가치평가(evaluation), 헌신(commitment) 그리고 평가(assessment)는 모두 명사화 된 단어 중 사용빈도가 높은 100번째 내에 들지 못했으나 이제는 각각 8번째, 9번째, 11번째 13번째와 14번째이다. 아래의 (그림 9)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1] 바이버의 코퍼스 언어학,p 80.
[10] 바이버의 코퍼스 언어학,p 80.
[12] 이 마법은 흑마법이다. 오웰은 1946년 에세이에서 이 같은 것을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서 정치적인 말과 글은 대부분 옹호할 수 없는 것을 옹호하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616)’고 썼다. 흥미로운 점은 오웰도 명사화형이 그가 묘사한 현상들과 뒤엉켜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오웰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라틴어 단어들이 사실 위로 보드라운 눈송이처럼 내려앉으면 그 기본 윤곽은 흐릿해지고 상세한 내용은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된다.(618)’ ‘무방비 상태의 마을이 공중 폭격을 당하고….분쟁 제거’라고 부른다. (617)’, ‘농지를 강탈당한 수백만의 농민들이 갖고 갈 수 있는 것만 간신히 챙겨 피난길에 오르면 정치적 언어는 이를 ‘인구이전’이나 ‘경계조정’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재판도 받지 못하고 수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거나, 목 뒷덜미에 총을 맞고 죽거나, 북극의 벌목장에 끌려가 괴혈병으로 죽으면 정치적 언어는 이를 ‘불신분자 제거’라고 부른다. (617)’ (‘정치와 언어’, 조지오웰 디 에센셜, 민음사, p 616~618.)
[13] 라인하르트 코젤렉, 한철 옮김, 지나간 미래 중 ‘역사의 생산가능성’과 ‘근대’ , 문학동네, 1998. 293.
[14] 물론 이는 유럽이 점점 타대륙을 강제로 지배해나가던 18세기의 특정 맥락에서 ‘역사들’이 ‘일반적인 역사’가 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측면에서 단수화는 지식과 위계를 동시에 만들어내며 단일한 유럽의 관점에 세계체계를 종속시켰다.
[15] 믿기 어렵겠지만 세 명의 독립적인 사람이 네 차례 걸쳐서 확인했고 결과는 항상 동일했다. 의견이 일치한다(agree)와 의견일치(agreement)의 경우에는 각각 88번과 1,773번 등장했다.
[16] 명사화형에서 행위들이 전적으로 명사로 흡수된다는 사실은 일차원적인 세계라는 감각을 더 강화한다. ‘경영하는 사람들(managers)’에 대해서 말할 때는 우리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들의 행위를 한 가지보다는 더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경영(management)’에 대해서 말할 때는 이미 그 용어에 특정한 형태의 행위가 새겨져 있고, 결정되어 있다.
[17] Biber et al, Longman Grammar of Spoken and Written English, pp. 588, 590
[18] 요점은 세계은행이 기호체계 안에서 소통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빈곤’ 과 ‘빈곤감소’의 연어에 대한 실험을 최초 구상할 때는 지금과는 조금 달랐었다. 우리는 ‘빈곤감소(poverty reduction)’와 ‘빈곤의 감소(the reduction of poverty)’를 비교해서, 전치수식과 후치수식의 의미론적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었다. 그러나 ‘빈곤감소(poverty reduction)’는 1,198번 등장했던 반면, ‘빈곤의 감소(the reduction of poverty)’는 단지 38번 등장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당초 구상을 포기해야 했다. 이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적어도 세계은행에게 전치수식과 후치수식이 동등하지 않다는 사실은 명명백백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세계은행은 뻔뻔스럽게도 두 구문 중 보다 불가해한 쪽을 선호한다.
[19] 브루노 라투르, 스티브 올가, 이상원 옮김, 실험실 생활 : 과학적 사실의 구성, 한울아카데미, 2019, p133, 134, 135, 229,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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