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 뷔페: 파편 사이 유랑아[3]
3-2). 극장 월드: 장소성의 허물
TV 시리즈 <커뮤니티Community>[1]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단연 각종 장르물의 도식을 응용한 패러디들이다. 드라마는 “그린데일”이라는 ‘꼴통’ 전문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첩보물, 서부극, 스페이스 오페라 등의 각종 장르 문법에 맞춰 과장하며 전개한다. 물론 캐릭터성에 기대어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진행시키는 시트콤이라는 장르적 특성에 맞게, 장르물의 도식은 대부분 이후의 스토리에 끼칠 영향력보다는 인물들의 고정된 역할에 살짝 변주를 주어 캐릭터성을 강화시키며 웃음을 자아내는 재료로 이용된다. 이것은 전형적인 역할극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극의 배경이 되는 커뮤니티 칼리지이다. 드라마는 엄격하지 않은 커뮤니티 칼리지라는 캐주얼한 배경 설정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장르물의 근엄함과 진중함을 비튼다. 가공의 전문학교 “그린데일”은 실존하는 전문대학에서는 결코 일상적으로 발생되지 않아 마치 조롱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황당무계한 이벤트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지만, 동시에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이 실행되기도 하는, 어쩔 수 없이 발 붙이고 있어야만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프레드릭 와이즈먼 Frederik Wiseman이 <내셔널 갤러리(2014)>, <뉴 욕, 라이브러리에서(2017)>, <시티 홀(2020)>등 여러 편에 걸쳐 긴 러닝타임 내에서 지난하면서도 치열하게 담아내고자 하는 것은, 공공 기관을 공공 기관으로 만드는 건 바로 그런 ‘장소성’이라는 진실이다. 미술관에선 미술관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이, 도서관에서는 도서관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이, 시청에서는 시청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이 발생한다. 공공장소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장소가 가진 사회적 함의를 직조하는 데에 참여한다. 이 때의 함의는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만들어내는 규범에 그치지 않고, 생활함으로써 형성되는 삶의 양태 자체인 것이다. 리미널 공간이 이런 함의들을 의도적으로 지워내는 동시에 일깨우는 공간적 모델로 제시됐다면, <VRchat> 속 오픈 월드들은 함의들이 조성한 장소성이 남기고 간 허물에 가까워 보인다.
가장 활성화된 월드만 올라갈 수 있는 트렌드 월드 순위 내에 항상 자리를 굳건히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극장 월드들은 영화관을 3D 모델링으로 그대로 재현한 공간에서 비디오 감상을 가능케 하여 마치 극장에서 관람하는 것과도 같은 효과를 준다. 유저는 텅 빈 극장 내 원하는 자리를 선택해 착석하고, 화면 아래 url 입력창에 원하는 링크를 입력해 영상을 자유롭게 재생/정지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극장을 극장으로 만드는 것이 오직 큰 화면에서 영상을 관람하는 체험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극장의 지리적 위치, 배급사 선정 과정, 당대의 상영표와 같은 ‘불순물’ 들이 편리하지 못하기에 제거되어야 마땅한 것으로 취급되는 곳이 오픈 월드 사이버스페이스라면, 그곳에서 정말로 ‘삶’ 이라는 것이 유지될 수 있을까? 그런 불순물들이야말로 <안녕, 용문객잔不感(2003)>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들이자, 월드들이 놓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월드는 공간으로밖에 기능할 수 없으며, 장소는 컨셉화하기 쉬운 특유의 ‘무드’를 제공하는 원천에 불과하게 취급된다. 공간은 거닐고 싶은 에스테틱 이미지, 폐장시간 없는 테마 파크, 사이버 섹스를 위한 컨셉추얼 러브 호텔이 된다. 다소 허망한 물놀이를 제공하는 수많은 항구-월드들과 “레바숄”의 항구 도시 “마르티네즈”[2]의 경관은 결코 같을 수 없다.
레딧/Vrchat의한 사용자는 <VRchat>이 좋은 이유로 “수익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꼽으며 500이 넘는 수의 “UP”을 받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입장료 없이도 어디론가 갈 수 있고 누군가가 당신들에게 제품을 팔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광고 폭격에 익숙해져 한 공간에 완전히 무료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는 주장은 마치 그가 <VRchat>을 자본주의에서 벗어난 유토피아로 상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확실히 월드에선 상업적인 것들조차 단지 무심하며 재미있는 대상으로 포장된다. <VRchat>에서 연간 2회 열리는 “Vket”은 모든 가상 공간에서 열리는 행사들 중 가장 규모가 큰 상업 마켓이다. 대부분의 투자 금액을 월드 구현에 쏟은 공간답게 시즌마다 테마를 변경하며 2022년 겨울엔 파리의 에펠 탑, 삿포로의 니카 전광판 도로, 나고야 성 등을 ‘평행도시’로 구현하고 2023년 여름엔 라스 베가스와 가면 무도회를 컨셉으로 차용하는 등, 넓고 사치스럽게 꾸며진 일회성 축제에선 다양한 판매 부스가 열린다. 마켓에선 인게임에서 사용될 수 있는 3D모델링 아바타나 의상은 물론이며 실제 음식이나 의상, 심지어 차량까지도 판매된다. 부스라는 것의 본래 존재 의의와도 같은 시음이나 시착 등을 실제로 해 볼 순 없으나, 제공하는 판매 링크를 통해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상품들은 판매되고는 있지만 강매되지 않으며 흥미롭고 매력적인 공간에서 단지 스쳐지나칠 수 있는 오락거리처럼 진열된다. 하지만 모두가 짐작하고 있듯 현 시대의 자본의 포섭은 가시적인 재화 거래의 유무보다도 세상을 감각하는 ㅡ즉 개인이 자본이 주조한 이미지 체계가 형성되는 과정 자체에 동참하는ㅡ방식에 스며드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Vket”은 월드가 스스로 내세우는 ‘볼거리’로서의 강점을 극대화하며 압도적인 상업화에 체화된 라이프스타일을 답습시키는 기획이자, 환대적인 상품시장의 축소판처럼도 보인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가장 많은 수의 부스를 갖춘 버추얼 마켓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던 2021년의 Vket의 테마는 ‘평행 세계의 아키하바라’로, 상업시설이 다수 위치한 ‘오타쿠 성지’ 도쿄 아키하바라의 주요 건축물을 나름 충실하게 흉내냈다. 한가운데에 대형 초호기[3] 모형이 있는 광장엔 이동통신사 “NTT도코모docomo” 로고가 미디어 아트처럼 떠다녔다. 참여 기업 부스 목록엔 일본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편의점 “로손Lawson”도 포함되었다. 로손 부스가 가진 최고의 ‘컨텐츠’는 닭 튀김 반죽 오브젝트를 ‘튀김’으로 만들 수 있는 체험적인 성격의 상호작용 기능을 가진 게임과도 같은 요리 이벤트로, 튀겨진(?) 모델링은 유저의 아바타를 스크린샷으로 본떠서 출력된 포장지 오브젝트에 담겨서 완성된다.
야마하Yamaha의 슈퍼스포츠 바이크 YZF-R1를 본딴 모델링은 탑승하면 축제 부스를 한 바퀴 돌 수 있게 프로그래밍되었다. 스폰서 기업의 투자로 제작된 상호작용 오브젝트들은 재미있는 유희거리로 주의를 분산시킨다. VR이라는 신체-매개 체험 기술을 통해 오고가며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참여형 놀이’는 스트리밍 문화가 흔하게 만연해 있는 <VRchat>에서답게 라이브 방송으로 중계되거나, 유튜브의 ‘투어 영상’에 소개된다. 대기업은 신기술 분야에도 발을 뻗었음을 으스대며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한다. 이용자는 그저 관광객으로서 즐길 수 있는 것을 즐길 뿐이지만, 오락 행위와 그로 인해 얻는 관심은 전부 화폐로 변환된다.
4. 스펙타클 공장: 셀프 모에화 기계들
4-1). 스펙타클 우로보로스: 인터넷 플랫폼
작금의 현대인이란 디지털 기기라는 기관을 부착한 사이보그이며 스마트폰은 소울 젬[4]일 지도 모른다. 매체론가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의 유명한 고전『미디어의 이해』에선 “지구상의 모든 도구와 엔진들은 인간의 수족과 감각의 연장일 뿐이다”고 말했던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을 인용하며 미디어를 ‘인간의 연장’이라고 칭한다.[5] 눈의 연장으로서의 휴대폰 카메라는 인간의 시야각을 최대한 흉내낸 전통적인 3:2의 가로 방향 포맷보다도 기기의 규격에 맞춰진 세로 방향으로 긴 포맷이 보다 실감나고 현장감 넘친다고 취급되게 만든다. 영상 너머로 감지되는 ‘기기로 촬영하는 나’로서의 감각은 이젠 ‘육안으로 구경하는 나’만큼(혹은 어쩌면 그 이상으로) 자연스럽다. 촬영 대상이 되는 생경함조차 ‘캐주얼’하고 지극히 일상적인 범위 내로 들어선다.
스마트폰의 보급화가 찍고 찍히는 행위를 무감해지게 만들었다면 SNS의 일상화는 소비하고 소비되는 것에 무감해지게 만든다는 진부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짚을 필요가 있다. 취향이 곧 자신을 대변하기에 소비 행위로만 주체성을 획득 가능한 소비지상주의의 시대 정신은, 스스로를 전시되는 것에 익숙하게끔 만드는 이미지 중심 플랫폼에서 취향을 장착하고 소화해냄으로서 소유해야 하는 것으로 취급하게끔 종용한다. 1장에서 언급했던 다크 아카데미아 플레이리스트의 청취자 중 누군가는 분명 해당 에스테틱을 귀감삼으며 ‘다크 아카데미아’ 그 자체가 되고도 싶을 것이다. 애당초 에스테틱 이미지 문화는 정체성을 선택가능한 이미지로 표현하길 제안하며 주류화되었다.
각각의 컨셉으로 세분화된 ‘예쁘고 귀여운’ 사진들이 묶여 있는 게시물은 “Find your Aesthetic”, “Choose your Aesthetic” 등의 문구로 이 심미성은 네가 입을 수 있는 것이며, 곧 당신 자신이 되는 것이라고 꼬드긴다. 찾고 고를 수 있는, 끌리는 ‘에스테틱’을 성공적으로 소화하기 위해선 역시 소비가 동반된다. 모두가 미적인 라이프스타일은 판매/구매가능한 상품임을 알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교활하게도 이런 류의 욕망을 캐치하며 정체성 확립 ‘무드 보드’를 개인 계정에서 꾸며볼 수 있도록 ‘앨범 피드’를 제공한다. 취향은 개인을 설명해주는 지표이며 경험은 일시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소비 대상으로 비춰진다.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 모호한 경계에서 경험 전시는 일종의 창조적인 행위이기도 하며,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 ‘컨텐츠’ 등의 조잡한 호칭들이 갖춘 영향력은 비웃어 넘길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선 지 오래이다. 뭔가를 지속적으로 소비하지 않을 시 동원되는 주입된 불안감은 창조적인 인간상이 되는 데에 실패했다는 열패감마저 준다.
매년 네바다 주 블랙 록 사막에서 개최되는 대형 페스티벌 “버닝 맨Burning Man”은 1986년 소규모 모임으로부터 출발해 임시 지역 내에서 상업주의에 반대하는 공동체로 군집을 키워나갔지만 현 시점에서 그들이 반-자본주의를 표방한다는 것을 믿는 자는 없다. 일주일에 걸쳐 “블랙 록 시티”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약 7만 명이 모여 독특한 의상을 입고 조형물 제작, 음악 연주 등의 창조 활동을 하며 최소한의 자원으로 ‘생존’해야 하는 이 서바이벌의 단골들이 ‘신흥 귀족’인 실리콘 밸리의 재벌인 점은 이미 수없이 지적당해 왔다. 거기서 한 차례 나아가, 축제와 인터넷 간의 연결점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버닝 스토리즈Burning stories” 포럼을 위해 쓰여진 미디엄 블로그의 한 글[6]에선 “버닝 맨” 축제를 현재의 질서에 완벽히 부합하는 ‘꿈의 광산’ 내지 ‘관심 공장’ 에 비유한다. 글은 축제의 인기로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수혜자는 콘텐츠가 공유되는 플랫폼이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주목 경제의 노동자들은 버닝맨의 참가자이며 인플루언서 자신이라고 말한다. 인플루언서가 거머쥐는 부는 플랫폼이 관심 경제로 인해 독차지하는 이득에 비하면 미미하기만 하며 플랫폼은 그런 점에서 금융자본처럼 기능한다는 것이다.
축제나 이벤트 등의 단기적인 참여 문화의 성행은 그것이 전시되고 공유되는 플랫폼에 힘을 실어준다. 플랫폼의 권력은 ‘풍요로운 경험’으로 선전되는 이미지의 권력으로 이어진다. “스펙타클은 자본의 지배력을 선전하는 수단이자 이미지들에 의해 매개된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7]임을 떠올렸을 때, 수많은 ‘핫 플레이스’들은 멈추지 않고 가동되는 ‘스펙타클 공장’ 이다.
팝 업 스토어 전성시대라고 불리우는 지금, 각종 브랜드들이 박차를 가해 거액을 들여가며 규모를 키우고 더 화려하고 새로운 컨셉을 고안하는 것 또한 방문 자체로 하나의 성공적인 경험을 주는 ‘핫 플레이스’를 탄생시키기 위함이다. 백화점 “더현대 서울”이 2022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오픈한 “사운즈 포레스트 LA GARNGE”는 1000평을 들여 크리스마스 마을을 통째로 꾸며낸 팝 업 스토어이다. 눈이 쌓인 겨울 북유럽 어딘가의 통나무집 마을을 본 따 13m의 트리, 120그루 나무,11개의 오두막과 6000개의 조명으로 조성된 이 임시 공간은 ‘연말 느낌 물씬 나는 크리스마스풍 포토존’으로 각광받으며 열풍을 일으켰다. 핫 플레이스는 필연적으로 도태되고 싶지 않다는 강박을 동반한다. 그건 하나의 가능했던 선택지를 두고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서는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라며 설득당할 때의 부담감이다. 탁월한 해소 방안으로 소비가 상냥하게 권유되고, 우리는 언제나 지갑을 열기를 종용당하며, ‘오직 여기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값진 경험’에 기어이 그 값을 지불한다. 입장을 위해선 예약이 필수이고 특별한 참여형 이벤트가 진행되거나 인기 많은 상품을 판매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더현대”는 평일임에도 400팀에 육박하는 웨이팅을 1~2시간에 걸쳐 감당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고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대성공을 거둔다. 훌륭한 체험은 단지 감각적 만족에서 끝나지 않고 나르시시즘인 자기의식을 거쳐 상품화된다. 특별하고 근사한 장소를 방문했다는 사실은 게시를 통해 매력 자본이 되고, 업로더의 가치를 상승시키며 그가 신자유주의적인 측면에서 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는 우월한 인적자본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수단이 된다.
4-2). 스펙타클 가속 액화기: 풍경 필터
어떤 장소를 미적 경관으로 구성하고 그것을 경험하는 것이 곧 자신의 경험의 주요 자원으로 등록되는, 즉 풍경 이미지의 소비와 신자유주의적 자아 증강의 상호 피드백 관계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분야는 수많은 여행 컨텐츠들이다. 이미 작금의 SNS에서 여러 방식의 여행 인증샷은 계정이 갖춰야 할 미덕이나 필수품으로 자리잡은 듯 보인다. 제목에 여행지의 이름을 달고 있는 수많은 V-log들은 경관과 그 곳을 거니는 인물의 쇼트를 교차시킨다. 틱톡/릴스 등의 숏 폼 SNS의 ‘travel transition’ 트렌드[8]의 경우, 매치 컷 기법을 사용해 관광지 배경을 마치 아바타가 ‘스와이프’로 갈아입을 수 있는 필터처럼 편집하며 여행의 경험을 아예 10초 내외로 응축시킨다. 인물이 춤을 추거나, 달리거나, 추락하는 등의 동작을 취할 때마다 배경이 전환되며 ‘변신’하는 장면은 신체를 적극적으로 연출 재료로 삼는다.
본래 성공적인 화보 촬영을 위해 해외 출장을 나가거나 관광 명소를 방문하는 일은 언제나 패션계의 흔한 관례였지만, 이제는 가시적인 대중 문화로서도 일상화된 듯 보인다. 여행사는 분위기나 감성 등 ‘가 봐야 알 수 있는’ 특별한 현존감을 강조하고,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등의 수식어를 남발한다. ‘인생샷 명소’는 흔한 여행지 홍보 마케팅 포인트가 되었다. 흠모하는 셀러브리티의 파리 관광 사진을 예찬할 때 쓰이는 ‘퍼컬(퍼스널 컬러[9])이 파리’ 라는 괴상한 유행어에서의 파리는 실존하는 파리와 직접적으로 동일하지 않은 ‘환상적인 낭만의 수도’로서의 파리이다. 미디어 속 파리가 자아내는 자유로운 예술의 도시의 거리의 분위기를 패션의 일부로 완벽하게 소화했다는 동경 담긴 찬사는 인스타그램에서 14만에 육박하는 개수의 핀이 꽂힌 위치 ‘Paris, The City Of Love’ 에 첨부된 파리여행 인증샷들이 갈망하는 그것일 것이다. 각자가 마법사가 아닌 발렌시아가로서의 ‘해리 포터 챌린지’를 하게 되는 셈이다. 스크롤을 내리고 내려도 끝나지 않는 위치 핀 꽂힌 셀피들의 압박감은 빔 벤더스Wim Wenders의 “풍경이 주인공이 되고, 그 속에 서 있는 사람은 엑스트라가 된다.”[10]라는 말을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것 같다.
물론 자본주의 하의 분열감을 지금 시점에서 국민 공동체의 소속감을 통해 회복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오히려 안일하다. 민족주의 역시 축소되지 않고 어느 지점에서는 되려 팽창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를 구축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이미지의 습격에 몸을 내맡기는 것이 최선은 아닐 것이다. 작금의 시각 문화는 두 개의 캐치프레이즈로 설명 가능하다. ‘아이 캐칭’과 ‘킬링 타임’, 시선은 사로잡히며, 시간성은ㅡ죽는다. 눈과 몸은 즐겁다. 아니, 과연 즐거운가? 경험하고 성장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고 체험하고 발전하는 이벤트만이 즐비한다. 관광의 정서가 반드시 해악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만, 관광의 미감이 너무나 천진하게 컨텐츠화되며 매혹적인 모든 것이 사실상ㅡ직접 출연하지 않더라도ㅡ셀피화된 현장엔 피로감이 난무한다. 비장함은 미덕을 잃고 과한 것으로 취급되며 느슨하고 ‘쿨’한 인간상이 선호되는 작금의 정서는 되려 컨셉추얼함에 끊임없이 현혹당하는 미성숙한 자아 모델 부화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에스테틱으로 ‘모에화’된 풍경은 소비재가 됨은 물론 풍경 속 스스로를 인식함으로서 분위기를 ‘착용’하는 개인들의 현재성까지 모에 요소로 환원시켜 하나의 체계를 조직해 확산시킨다. 풍경 이미지들은 서사성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도 못한 채 서사성의 배반에 복무한다. 이른바 대 ‘셀프 모에화’의 시대에서, 나를 둘러싼 것들이 전부 ‘나’로 수렴된다. 견고한 모든 것들이 대기 속으로 녹아든다ㅡ는 경구를 새삼스레 다시 가져오자면, 심미성은 유독 액화를 가속시키는 특수한 대기처럼도 보인다.
5. 글을 마치며
2023년 9월, 메디슨 스퀘어 가든 컴퍼니는 5년에 걸쳐 야심차게 건설한 돔 공연장을 마침내 개장했다. 라스 베가스 한복판에 위치한 “MSG 스피어” 라는 이름의 구체 공연장은 세상에서 가장 큰 규모와 높은 해상도의 초대형 LED스크린과 16만개의 스피커를 자랑하며 내부에서나 외부에서나 압도적인 ‘실감형’ 볼거리를 제공한다. 구형의 조형에 맞춰 단장하며 거리를 압도하는 외부는 물론, 내부의 360 풀 스크린은 전례 없던 화려한 ‘미디어 아트’ 를 선보인다.[11]
만약 이머시브(immersive)한 경험을 특정 생물에 빗댈 수 있다면, 최종 보스 몹[12]일 것이 분명한 이 건축물은 그야말로 관중들을 이미지의 시공 내에 ‘녹여내린’다. 개장 후 2개월도 되지 않아 범세계적인 화제가 되며 세속적인 유흥 도시 라스베가스의 새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거대한 공은 지역을 넘어서 미국의 랜드마크, 더해 자본의 식민지로서의 한 시대의 랜드마크이다.
표면의 이모지(emoji)가 비행기의 움직임을 감지해 고개를 돌리며 깜찍한 표정으로 환영하는 영상[13]은 모든 것을 압도하며 녹이려 드는 경관과, 역시 모든 것을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녹이려 드는 개인들의 팽팽하고도 병리적인 공생(처럼 겉으로는 보이는)관계를 함축시킨 것도 같다. 대도시 한복판에 놓인 거대한 구체 눈알은 실로 섬찟하기까지 하다.
그것은 어쩌면 이렇게 묻고 있다.
계속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보고 보여질 것인가? 허물을 입고 벗을 것인가?
소비하고 소비될 것인가? 착취하고 착취될 것인가?
[1] Community, NBC(S1-S5), Yahoo! Screen(S6), (2009~2015)
[2] RPG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Dysco Elysium(2019)> 의 주 무대.
[3] <에반게리온エヴァンゲリオン> 시리즈에 등장하는 생체 병기.
[4] TVA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魔法少女まどか☆マギカ(2011)>에 등장하는 아이템. 인물의 영혼이 담긴 보석 단지로, 육체와 100m 이상 격리될 시 그는 뇌사하며, 파괴 시 사망한다.
[5] Marshall McLuhan, 『The Medium is the Message』, Penguin Books, 1967, 26p
[6] https://medium.com/@hugiasgeirsson/burning-man-the-internet-and-late-stage-capitalism-fc0514436cff
[7] Guy Debord, 『La société du spectacle』, Buchet-Chastel, 1967
[8] https://www.tiktok.com/search?q=travel%20transition&t=1700616397956
[9] 대중화된 미용 이론 용어.개개인마다 가장 잘 어울리는 색상이 정해져 있다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다.
[10] 빔 벤더스Wim Wenders, 이동준 역, 『한번은,』, 이봄, 2011, 12p
[11] https://twitter.com/Context_less/status/1726655468863685008?t=JylC0Atfli-etHaz2uwJyg&s=19
[12] 대장격 몬스터. 게임 용어로, 플레이어에게 적대적인 몬스터 NPC 중에서 가장 강한 대장boss를 칭한다. 보통 마지막에 무찌름으로서 게임을 최종 클리어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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