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미술) 번역의 단맛과 쓴맛

박재용

  멋모르고 예술(이 글에서는 지금부터 ‘미술’로 통칭하도록 한다) 번역에 뛰어든 건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0 《Trust》에서 웹과 뉴미디어 담당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던 때였다. <베이루트의 불문율과 쓰여지지 않은 슬로건들>(Beirut’s Unwritten Laws and Graffiti)라는 제목으로 도록에 실린 잘랄투픽(Jalal Toufic)[1]의 글을 번역하면서였다.[2] 도록에 실을 글에 대해 여러 번역가가 ‘이건 도저히 번역 작업을 할 수 없다’고 거부한 탓에 난관에 처한 큐레토리얼 팀 회의에서 누군가 “재용씨, 번역도 한다고 했죠?”라는 말을 꺼냈던 것이다. 2009년 《플랫폼 인 기무사》 전시로 미술 ‘일’에 입문한 뒤 대체로 의욕이 넘치는 상태였는 나는 “그 글, 제가 한 번 번역해 보겠습니다”라며 출사표를 던졌다.

  전문 번역가들은 왜 투픽의 글 번역 작업을 기각했을까?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무엇보다 그가 아랍어를 모국어로 삼으며 프랑스어로 교육을 받고서 영어로 글을 쓰는 레바논 사람이었다는 점 때문이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러니까, 분명 로마자 알파벳으로 쓰인 글이긴 하지만 영미권의 영어라기보다 프랑스-아랍식 영어에 가까운 어떤 것이었으리라는 이야기다. 또한, 레바논의 당대 정치 맥락이 강하게 개입된 투픽의 글은 애초에 영어로 읽는다고 해도 노력 없인 이해가 쉽지 않은 글이기도 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고 원문을 이해하기 위해 투입해야 할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전문(혹은 전업) 번역가의 입장에선 투입(작업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 또는 관심과 애정) 대비 산출물(번역료)이 절대적으로 빈약한 작업이었을 테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을 보라. “결국 국회의원 후보들이 지난 2000년 선거 때처럼 베이루트 시내의 벽면과 나무를 자기들의 사진으로 뒤덮게 하는 걸 단념시킬 만한 여러 슬로건들을 칠하고 또 휘갈기는 것도 시위대가 해야 할 일의 하나가 아니었던가?” 2000년에 레바논에서 진행된 선거가 과연 국회의원 선거였는지, 베이루트 시내 건물의 벽과 가로수를 비롯한 나무에 사진이 뒤덮이는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 글의 제목에서 ‘그래피티’라고 언급된 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래피티가 아니라 ‘구호’에 가까운 ‘슬로건’인지 따위에 대해 가능한 많은 방법을 동원해 확인하지 않으면 전혀 엉뚱한 내용으로 옮기기 십상인 문장이다. 투픽의 글에는 한 문장 건너 한 문장 꼴로 이런 내용이 가득했다.

  이처럼 귀찮은 번역 과업을 자청해서 맡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미술계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인 2008년,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일어난 무슬림 학살을 다룬 아리 폴만(Ari Folman)의 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Waltz with Bashir, 2008)[3]을 인상 깊게 극장 관람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고, 그저 내게 진지한 텍스트의 번역이 맡겨졌다는 사실 자체에 기뻐 눈이 멀었던 건지도 모른다. (물론, 돈을 받고 번역을 한 게 처음은 아니었다. 대학을 다니던 2000년대 중반,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무급에 가까운 돈을 받으며 대학의 대외홍보처에서 번역 담당 조교(?) 일을 했다. 대학 소식지에 실리는 교수들의 연구 결과 요약이나 치적을 홍보하는 벅찬 문장들을 열심히 가다듬었다.)

  모두가 마다한 텍스트 번역에 힘을 쏟은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당시 도록 편집을 맡은 출판사 대표님이 박재용이라는 사람의 존재를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는지, 알음알음 작고 큰 규모의 미술 관련 번역 의뢰를 받기 시작했다. 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0 이후 주한영국문화원이나 일민미술관, 아시아문화전당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나 연구원, 큐레이터로 일을 할 때도 퇴근 후 늦은 밤이나 주말이면 항상 번역해야 할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언어 사이를 오가는 노동의 대가로 과연 얼마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로 그저 배움의 즐거움을 쫓아 시작한 미술 번역 일은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다.

  그런데, 미술 번역이란 과연 ‘일’로써 할 만한 것일까? 종종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곤 하는데,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것’이‘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미술 번역이란 원수에게 권하기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술에 별다른 관심도 없는 누군가에게 영어 한 단어당 백 몇십 원, 한국어 (공백 포함) 한 글자당 백 몇십 원으로 책정되는 텍스트 번역을 생계 수단으로 삼으라고 권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때로는 두껍고 비싸고 서점에서 구하기도 힘든 국내외의 미술 도록이나 몇 부 출판되지 않은 자료 따위를 잔뜩 구비해두어야만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버는 만큼 써야만 하는 일이 바로 미술 번역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역시나 누군가는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텐데, 거기에 대해서 내가 뭐라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미술 번역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특히 한국어로 쓰인) 많은 미술 관련 텍스트가 필자와 스무고개를 하듯 읽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미술 텍스트의 필자들이 이처럼 알쏭달쏭한 글을 쓰려고 애쓰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시각 언어로 사유하는 바를 글쓴이 자신도 꽤나 고통스럽고 거칠게 문자 언어로 옮긴 듯한 글도 많다. 애초에 한국어라는 언어가 다른 언어와 구조적 유사점이 많지 않은 고립어로 여겨지기도 하기에, 미술 텍스트 번역을 하기 위해선 작가적인 혹은 큐레이터적인 혹은 비평가적인 상상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미술 텍스트를 떠나 한국어만의 묘한 매력이라 할 수 있는 함축과 생략의 미덕이 번역가에겐 맥락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의 도약대가 된달까? 물론, 이 부분에 있어서도 결국 ‘미술의 언어’를 알지 못한채 무턱대고 도약을 남발하다간 그야말로 선무당이 사람 잡는 꼴을 면치 못할 노릇이다.

  언젠가는 일일이 다 세어보고 싶지만, 짧게는 한 장이 채 되지 않는 간략한 작가 노트나 프로젝트 소개글에서부터 길게는 수백 페이지의 단행본이나 두꺼운 전시 도록에 수록되는 여러 편의 비평이나 인터뷰, 영상 자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술 텍스트를 번역했고, 지금도 번역하고 있다. 번역 작업물을 담아 둔 컴퓨터 상의 폴더를 일정한 규칙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2011년부터 지난해인 2023년까지 과연 몇 개의 작업 폴더를 생성했나 살펴보니, 그 기간 동안 어림잡아 적어도 800건은 족히 넘는 번역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길든 짧든 무언가 번역해야 하는 마감을 매주 적어도 하나 이상 해왔던 것이다. 이렇게 숫자로 파악하고 보니, 언제 이렇게 많이 즐겁게 번역을 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와중에 통역이나 글쓰기, 출근을 하던 미술 관련 직장(서울시립미술관, 일민미술관 등)에서의 기획 관련 일, 독립적으로 프로젝트를 병행했고 병행 중이라는 걸 생각하니 나 자신의 이야기가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까지 쓴 내용이 나 스스로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조차 처음 읽는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돌아보니,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기도 하다. 번역가로서 여러 언어와 문화를 오가며 제3의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입장을 떠나, 큐레이터나 필자의 입장에서 번역 대상에 아쉬움을 느끼지는 않나? 물리적으로 결코 적지 않은 작업량을 소화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영어나 한국어 외에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가? 미술이나 예술 관련한 번역뿐 아니라 통역에도 열심인 걸로 아는데, 번역과 통역은 또 어떻게 다른가? 큐레이터나 필자로서의 활동 역시 번역 작업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나? 미술 텍스트의 번역에 있어 충실한 번역이란 과연 무엇이라고 보는가? 등이다.

  《비평웹진퐁》의 편집진이 내게 미술과 관련한 번역에 대해 무엇이든 써보라는 연락을 취하게 된 것 역시 위의 질문들에 대한 나름의 의견이나 답변을 들어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각각의 질문이 글 한 편씩은 써야 어렴풋하게나마 해소할 수 있을만한 것들이지만, 이 글을 빌어 간략하게라도 답을 한다면 이렇다. 먼저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이 1987년 7월에 월간지 《SPACE》에 기고한 <미술비평의 반성>의 한 구절을 빌려보자면, “그림에 대한 글들을 읽을 때에 나에게 고통스러운 것은, 내가 자꾸만 작문 교사의 위치에 서 있게 되는 것”[4]이다. 김현의 글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알려졌는데, 그로부터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상황이 그리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이건 미술 번역의 쓴맛이라면 쓴맛이라 할 수도 있겠다.

  나 스스로도 놀라버린 작업량을 소화하는 비결은, 없다. 회사(미술관)에서 일할 땐 출근 전에 작업을 했고, 육아를 하는 요즘엔 해뜰녘 아기가 잠에서 깨기 전에 작업을 하려 노력 중이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번역가로서도 살고 있는) 생활에서 유흥이나 여흥이라는 단어는 애초에 설 자리가 없(었)다. 내 모어인 한국어와 두 번째 언어인 영어 외에 문자 체계나 문법이 다른 여러 언어를 익혀보려는 노력이라도 하는 건 큰 도움이 된다. 예컨대 독일어를 조금 공부하면 아주 기본적인 수준의 네덜란드어에서 영어와 독일어 사이 어디쯤의 향기를 맡게 되고, 이탈리아어를 살펴보다 보면 루마니아어와 이탈리아어가 많은 어휘를 공유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다 라틴어 기초 문법을 보면 왜 이제서야 이걸 알게됐나 하는 마음이 들고, 러시아어나 아랍어 알파벳과 문장 구조 따위를 익히려는 시도라도 해보면 그곳 출신의 사람들이 영어로 쓰는 글을 더 잘 음미할 수 있다.

  통역에 대해선 정말로 별도의 지면에 써야 할 것 같지만, ‘일’이라는 관점에서 통역과 번역은 무엇보다 시간성이라는 면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번역 작업이 장거리 달리기라면 통역은 100미터 달리기 혹은 현장 퍼포먼스에 가까운 일이다. 번역은 스스로를 독방에 가두는 일이라면 통역은 군중 앞에 나서서 공개 처벌을 받는 일이라는 고약한 농담을 던져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글쓰기나 큐레이팅 작업은 번역과 어떻게 연관지을 수 있을까? 번역 작업으로 접하는 정보나 지식이 내 글쓰기나 큐레이팅에 도움을 준다고만 할 수는 없다. 외려 내가 보기엔 시각적인 경험을 텍스트로 풀어내는 글쓰기나 작가들의 아이디어를 전시라는 매개로 펼치는 전시 역시 언어를 오가며 진행되는 번역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작가들이 자기만의 언어를 구사하는 고유한 존재라면, 그들에겐 그들의 세계와 다른 세계를 이어줄 훌륭한 번역가가 필요하다.

  미술 텍스트에 있어 충실한 번역이란? 미술 텍스트의 번역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닐텐데, 결국 번역이란 출발어와 도착어라는 두 언어만이 아니라 이를 둘러싼 문화와 맥락을 잘 변환하는 데 그 본질이 있다고 본다. 요컨대 번역된 텍스트를 읽는 사람이 그저 주술관계가 잘 맞아떨어지는 문장 다발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의미를 찰떡같이 알아듣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충실한 번역 아닐까. (여기서 직역주의자와 의역주의자의 대립은 잠깐 내려놓도록 하자.) 내년 초 출간을 목표로 한글로 옮기고 있는 책 《SCHOOL》(Sternberg Press, 2017)[5] 번역 과정에선 대부분의 독자에게 생소하리라 여겨지는 비서구권의 여러 기관과 인물, 프로젝트들에 대해 원문에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 안내성 각주를 덧붙일 요량이다. 더 나아가, 전 세계의 대안적 교육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이 책을 한국 상황에 비추어 어떻게 볼 수 있을지 단서를 제공하기 위해 매 챕터를 번역할 때마다 초역본을 함께 읽는 모임을 열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이, 나는 번역의 일부라고 본다. 대개 많은 맥락과 설명이 생략된 채 덩그러니 독자의 앞에 놓이고, 때로는 글쓴이조차 언어적인 엄밀함보다는 이미지를 그리듯 써내린 듯한 미술 텍스트의 번역 말이다. 누구도 그렇게까지 하라고 한 적은 없지만, 그 빈틈을 채우는 데서 느껴지는 짜릿함이야말로 미술 텍스트 번역의 단맛이다. 나처럼 미술 텍스트 번역을 멈추지 않고/못하고 있는 번역가라면 분명 이 단맛이 주는 기쁨이 텍스트의 다른 그 어떤 맛보다 압도적이라고 느끼고 있을거라고 본다.


[1] https://jalaltoufic.com/
[2] 디자이너 슬기와민의 웹사이트에서 해당 도록과 잘랄 투픽의 글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sulki-min.com/wp/media-city-seoul-2010-catalog-kr/
[3] https://ko.wikipedia.org/wiki/%EB%B0%94%EC%8B%9C%EB%A5%B4%EC%99%80_%EC%99%88%EC%B8%A0%EB%A5%BC
[4] https://vmspace.com/archive/archive_view.html?base_seq=NTcyOQ==&base_numbering=MjM5&s_key=&s_start_numbering=&s_end_numbering=
[5] https://www.sternberg-press.com/product/school-a-recent-history-of-self-organized-art-education/

댓글

  1. 번역만 하시고 글은 쓰면 안될듯

    익명
  2. 그저 싱거운 글이네요. 아쉽습니다.

    자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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