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 터널 속 광란의 질주
밈화하면 안 웃긴 게 없다. 직장 상사의 잔소리도, 정치인의 연설도, 고대 학자의 촌평도 밈으로 낙인찍히면 그 무게와 의미는 순식간에 경량화한다. 밈이 된 무언가는 원래의 맥락과 전연 무관한 상황에 등장해 순간을 골려 먹는 광대 역을 부여받는다. 도리어 원본이 진중하면 할수록, 밈으로 강등 시 놀림의 강도는 세진다. 정색하는 놈이 지는 세상이다. 새삼스럽지만 밈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밈은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창안한 단어이다. 모방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미메시스(Mimesis)’와 영어 ‘유전자(Gene)’를 합성해 인간의 유전자처럼 자가 복제를 통해 후대에 전달되는 문화 요소를 밈(Meme)으로 정의했다. 밈은 한 사람이나 집단에서 다른 지성으로 생각 혹은 믿음이 전달되는 사회 문화적 현상을 총칭한다. 유전적 방법이 아닌 인공적 모방을 통해 전달되는 문화 요소가 밈인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현재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인터넷 밈’은 리처드 도킨스의 밈이 아니다. 유행하고 복제되고 퍼진다라는 뉘앙스만 남아있을 뿐, 인터넷 밈은 익명의 폭발적 참여로 이미지, 사운드, 영상 등이 온라인을 잠식했다가 금세 사라지는 (또는 오프라인으로 튀어나와 커뮤니티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가던 밈으로서의 역할 수행이 강제 종료되는) 게릴라성 게임이다. 지금의 인터넷 밈은 시쳇말로 ‘짤’ 정도로 풀이된다.[1]
남다현은 밈을 미적 질료로 사용한다. 그에게 밈은 원재료이자 결과물이다. 드로잉, 조각,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횡단하지만 종국에는 작업으로 기존의 밈을 밈화하거나, 현실을 밈화하거나, 작가 자신을 밈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작가에게 물리적 요건은 부차적이다. 중요한 건 작업을 밈화해 매일 새로운 전시 정보가 쏟아지는 미술인의 피드에서 남들보다 더 가시화되거나, 언급과 주목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 작업은 강한 전파력을 지닌 ‘미디어 바이러스’가 되어 온라인을 떠돌고, 관객을 숙주 삼아 현실을 역습한다.[2] 후술할 글은 복제, 가공, 유행 세 가지 차원에서 남다현의 작업을 밈의 화신으로 읽는다.
복제
남다현은 작업 초기부터 기존의 문화 요소를 재활용하는 인용(appropriation)의 방법론을 활용해 왔다. 밈의 조건에 내재한 복제의 전술이 그의 작업을 관통한다. 책 한 권이나 종이 신문 한 부를 수작업으로 베낀 <#9>(2014~19), <#19>(2019~21), <#15>(2019~20), 드라마 야인시대의 “내가 고자라니”씬, 이말년이 눈을 까뒤집며 “5/5 도발 왜 하냐고”씬 등의 짤로 통용되는 장면을 그린 <#104>(2021), <#105>(2021)가 직접적으로 모방의 방법론을 드러낸 대표작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취미로 해온 필사가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이후 전시장 인근의 세탁소를 그대로 옮겨 또 하나의 가짜 세탁소를 만든 <#21>(2019), 서울 중구 필동 일대의 슈퍼와 주택가 풍경, 한옥마을 일부를 전시장에 그대로 구현한 <#24>(2021) 등의 설치작업부터 1만 원권 지폐를 따라 그려 전시장에서 한화 1만 원을 지불하면 작가의 작품으로 바꿔주는 <환전소 프로젝트>(2021~), 제프 쿤스의 <Balloon Dog> 모양 그대로 강아지 풍선을 불어 1,000원에 판매하는 <제프쿤스 파격세일>(2023~) 등의 퍼포먼스를 행해왔다. 작가는 사물, 공간, 작품, 경험 등을 닥치는 대로 복제해 오고 있다.
남다현은 토론토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실기가 아니라 이론을 베이스 삼아 데뷔한 케이스이다. 때문에 현대미술에서 인용이 차지하는 의미를 모를 리 없었을 터.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부터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의 팝아트, 1980년대 이후 전개된 컷업, 리믹스, 샘플링 등을 노골적으로 활용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을 거치며 축적된 인용의 미술사적 의미를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모더니즘이 표방해 온 오리지널리티의 신화를 전복하려는 시도라든가, 아우라를 결여한 복제 시대로의 이행 등 인용을 활용하는 순간 따라붙는 미술사적 수식어에 선행적 지식을 갖추고 있었겠다.
그러나 인용의 역사도 어언 100여 년. 우리는 안다. 모방과 복제를 작업의 도구로 들여올 때 동시대미술에서 이미 보편화된 인용이라는 문법이 당대 문화에 대응하는 날선 비판의 칼날을 가지고 있는가, 혹은 그 인용을 통해 작품은 새로운 가치와 타당성을 품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동반된다는 점을. 인용을 활용한 작품들이 쏟아내는 목소리는 그다음 대안의 목표가 약한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3] 그러나 남다현은 ‘그다음 대안’ 따위의 의구심에 흥미를 갖지 않을 것 같다. 때로 작가는 젠트리피케이션을 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미술계 제도 비판을 시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는 작업에 일관된 문제의식을 투영하고 있다기보다 과잉 소비 사회, 시스템의 모순, 세대 갈등과 봉합, 레트로 미학 등등 미술계를 방랑하는 온갖 담론의 외피 자체를 빠르게 복제하고 있다. “작업이 재밌어서 사람들이 한 번쯤 들여다보면 된다”라고 하는 그가 방점을 찍고 있는 지점은, 동시대미술계의 쟁점마저 밈화하는 태도이다. 그의 작가적 진정성은 특정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아니라, 보게 만드는 힘, 즉, 시각(예술)과 이미지의 매혹성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가공
밈이 되는 전제 조건이 있다. 하찮아야 한다. 밈에는 고도의 테크놀로지가 결여돼 있다. B급 아마추어리즘의 감수성이 숭배된다. 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 알고리즘, 증강현실 등 현란한 기술력과 막대한 자본이 작정하고 만들어낸 것들은 감히 밈이 될 수 없다. 혹은 그것이 밈이 될라치면 하이 엔드 퀄리티의 아우라를 끌어내려야 한다. 밈에는 집단과 익명 창작자의 손에 의해 하향 평준의 가공이 들어간다. 더덕 더덕 누끼를 따거나, 얼렁뚱땅 그림판과 포토샵의 흔적, 놀려 먹기 딱 좋은 발 캡처의 수준이 밈에게는 제격이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티가 나면 이미지가 밈이 되는 게 아니라, 도리어 그 공력이 밈이 된다. 왜냐, 밈은 온라인 호사가들을 순식간에 휩쓸고 가는 가벼운 감염증적 증상이기에 이성과 사고, 철학과 비판이라는 뇌의 고기능을 깊게 건드려서는 안 된다.
남다현의 조형 언어는 ‘허술함’이다. 설치든, 영상이든 원본보다 노골적으로 엉성하게 모방해 왔다. 밈의 로우 퀄리티 속성이 그의 작업에도 적용된다. 이는 스펙터클의 1인용 키트화에 가깝다. 거대 자본과 선진 기술이 투입된 창작물을 개인의 노동 집약적 차원으로 변환해 낸 결과물이라고 할까. 가령 <UAS> 연작(2022)은 ‘포켓몬’을 원형으로 삼는다. 작가는 ‘자! 이제 시작이야(내 꿈을~)’로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중후반생의 심금을 울리는 포켓몬의 오프닝을 <UAS-#3(언제 언제까지나 진실한 마음으로)>, <UAS-#4(언제 언제까지나 하나가 되어)>, <UAS-#5(언제 언제까지나 최고가 되는)> 세 가지 버전의 영상으로 제작했다. 각각 그림판 짜깁기, 점토 피규어에 드로잉과 합성, 3D 프로그램 등으로 포켓몬의 오프닝을 비루하게 복제했다. 오프닝 영상의 퀄리티를 의도적으로 다운그레이드하고 이를 여러 차례 반복, 제시해 어이가 없어 싱거운 실소가 나오는 B급 이하의 감수성을 창출했다. 이 외에도 점토로 포켓몬 피규어를 만들어 이를 가챠에 집어넣고 구매할 수 있는 <UAS-#1(Bandai Launches First Gen Pokémon Kids Figures To Celebrate Let’s Go Pikachu And Eevee)>, 포켓몬의 부활을 알린 포켓몬 빵과 스티커를 아크릴릭, 스티로폼 등으로 모방한 <UAS-#2(명품 가방 구매처럼 오픈런…‘포켓몬빵’ 인기 언제까지)> 등이 이 시리즈의 일부였다. 전시장에서 이 작품들은 1~3만 원대의 저렴한 가격에 누구든 살 수 있었다.
최근에 남다현은 미술사의 밈화를 시도한다. 개인전 《MoMA from TEMU》(2024, 황금향)는 현대미술의 전당 뉴욕현대미술관의 전후 미술 소장품을 일상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조악하게 제시한 전시였다. 마크 로스코의 <Untitled>(1968), 제프 쿤스의 <Three Ball 50/50 Tank(Two Dr. J. Silver Series, One Wilson Supershot)>(1985),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Untitled(USA Today)>(1990) 등 뉴욕현대미술관의 대표 컬렉션을 각각 다이소에서 구한 스펀지, 테무에서 산 탱탱볼, 바구니, 정리대, 쿠팡에서 구매한 고려 홍삼 캔디, 맛고을 유카 캔디 등으로 축소-열화-복제했다. 미술사의 캐논을, 예상보다 허접하다는 뜻의 밈인 ‘테무에서 산’ 버전으로 변형했다.
오제성과의 2인전 《The Year Book: Class of ‘24》(2024, 스페이스엑스엑스)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미술사의 밈화를 꾀했다. 전시는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 한자리에 모여 동문회를 연다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남다현은 앤디 워홀, 콘스탄틴 브랑쿠시, 우고 론디노네의 조각 등을 폐기물 쓰레기와 스티로폼 등으로 재구성했다. 전시의 일환으로 작가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 <예술가가 여기 있다>(2010)의 재연해 영상작업으로 만들었는데 남다현은 아브라모비치 특유의 붉은 드레스를 패러디하듯 빨간 악마 ’Be the Reds’ 티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남다현은 옛 연인 울라이 역으로 분한 오제성과 진지하지만 장난스러운 연기로 현대 퍼포먼스사의 가장 명장면을 우스꽝스럽게 재연출했다.
특정 세대의 추억을 상품화한 노스탤지어 마케팅, 미술사의 명작을 난데없이 작업의 맥락으로 끌어와 이것을 조형적, 기술적으로 ‘후려치기’하고, 이를 익명의 군중과 간편하게 나누는 일. 남다현 작업은 마치 히토 슈타이얼식 ‘빈곤한 이미지’의 물질적 현현으로 읽힌다. 빈곤한 이미지는 수없이 복제되어 원본에서 멀어진 저화질의 사본이다. 이는 무한정의 복제 과정에서 해상도를 잃지만 저용량을 원동력으로 삼아 전송과 확산의 ‘스피드’를 얻는다. 빈곤한 이미지의 대표적 예인 밈은 온라인을 동시다발로 잠식하며 상징적 의미를 획득하고, 이를 공유받은 집단의 공감대를 징표 삼아 대안의 여론을 형성한다. 남다현은 밈의 존재론을 작업 방법으로 끌어와 밈을 현실의 물질로 숨을 불어넣고 관객의 진입 장벽을 낮추어 예술의 ‘편의점화’를 꿈꾼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은, 작가는 광속으로 달리고 결국 소멸하는 밈의 휘발적인 숙명을 어떻게 뒤바꾸어 낼까?
유행
밈은 ‘뇌절’해야 밈이다. 1절, 2절을 넘어 불필요할 정도로 폭증하는 과잉의 속성이 밈의 힘이다. 밈은 누구인지도 모를 최초 생산자의 손을 떠나, 익명의 일사불란한 전파자를 거쳐 이미지가 닳고 헐을 때까지 온라인 세상을 떠돌아야 한다. 밈은 흥해야 밈일 수 있다. 밈이 유행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진입 장벽이 낮아야 하고, 다양한 상황에 맞추어 변신해, 말초적인 유희와 쾌락을 끊임없이 제공해야 한다. 밈은 하나의 ‘놀이’가 되어 생을 연장한다.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 문명은 놀이라는 속성을 통해 발전해 왔다고 주장한다. “놀이는 일상생활의 바깥에서 벌어지고, 진지하지 않으며, 독립돼 있는 자유로운 행위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완벽하게 몰두하게 만든다. 놀이는 사회적 집단의 형성을 촉진하고 그 집단은 은밀함 속에서 자신을 감추면서 평범한 세상에서 벗어나 있음을 강조한다.”[4]
유사하게, 남다현은 현실과 이미지를 놀이도구로 가공한다. 특히 그는 퍼포먼스와 이벤트로 밈화한 작품들이 활개 치는 놀이터를 구축해 왔다. 작가는 스무고개 형식의 질문과 힌트로 진행되는 ‘묻지마 경매 퍼포먼스(2024년 10월 6일 예정)’를 열어 자신의 작품을 공개하지 않은 채 작품가 1,000원에서 출발해 이를 최종적으로 판매하는 이벤트를 벌이거나, 전시의 차원에서 자연스러운 관객 참여를 유도해 퍼포먼스 당사자의 일부로 외부인을 끌어들이기도 했다.(<부정 승차의 유혹> 등)
최근 웁서울에서 이마트를 콘셉트로 근현대미술의 명작을 99.99% 파격 세일하는 <Em̷art>(2024) 이벤트가 퍼포먼스의 정점이 되었다. 작가는 마트 특유의 요란스러운 전단지를 만들어 배포하고,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메디언>, 아니쉬 카푸어의 <Cloud Gate>, 아이 웨이웨이의 <Sunflower Seeds> 등의 작품을 각종 싸구려 용품과 식료품으로 따라 만들어 1,000~5,000원 사이의 떨이 가격으로 팔아치웠다. 예를 들어 단호박 표면에 ‘땡땡이’ 무늬를 직접 칠한 사물을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5,000원에 판매하는 식이었다. 누구나 ‘합리적인’ 가격으로 미술품(사실은 겉만 엉성하게 흉내 낸 짝퉁 사물)을 살 수 있는 장터를 연 것이다. 밈이 된 남다현의 작업은 다시 인스타그램의 ‘남다현식 유머라는 밈’이 되어 사진으로 돌고, 또 돈다.
또한 그는 대개 작업에서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는 편인데, 포켓몬의 주인공을 직접 연기할 뿐 아니라, 각종 홍보물과 이벤트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짱구 캐릭터에 자신의 얼굴을 기묘하게 합성하는 일부터 Em̷art의 카운터 직원, 1호선 자르반 84세 등으로 분장하고 연기한다. 심지어 작가의 웹 사이트(www.dhnam-007.com)마저 구글의 메인 화면을 본떠 그림판체로 만들었다. 남다현은 자기 작품의 열렬한 콘셉트충이자 미술계의 관종으로 무한 증식해 스스로 밈이 되길 꿈꾸는 듯하다. 이는 한국 동시대미술계에 ‘헤로스트라투스의 명성’을 얻어 미술인과 관객의 이목을 끌려는 마케팅 전략이기도 하다. 그래야 미술로서 이 시대를 풍미하고 살아남을 수 있으니깐.
남다현의 자기 밈화의 행보는 사회적 차원에서 ‘관심 경제’의 일환으로 풀어볼 수도 있다. 1990년대 중반 미국의 잡지 『와이어드』는 21세기 디지털 세상을 “디지털이라는 부동산은 무궁무진하지만 인간의 주의력은 한정돼 있으며, 그저 하루에 일인당 ‘눈동자 굴리는 시간’만 엄청나게 늘어날 뿐”이라고 예견했다.[5] 관심이 ‘화폐’로 성장하고, ‘관람할 가치가 있는’ 개인의 모든 일상이 상품화된 오늘날, 남다현은 젊은 미술인이라는 제한된 자원을 두고 끝없는 게임에 돌입하게 된 현 상황을 가속도의 밈으로 돌파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작가는 관객의 시간이라는 관심 화폐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 속 ‘관람 가치’를 생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남다현은 어디가 끝인지 모를 밈의 길고 긴 터널에서 복제, 가공, 유행이라는 그의 생존력마저 ‘베껴’ 광란의 질주를 당기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회성의 밈스러운 유행을 롱 리브 ‘클래식’으로 전환해 내려면 그는 어떤 태세를 취해야 하는가? 더 더 빠른 속도? 아니면 밈아일체의 경지?
* 이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 특별 기고로 게재되었습니다.
[1] 본고는 김경수의 저서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필로소픽, 2024)이 풀이하는 밈의 정의와 분석을 참조했다.
[2] 한병철, 『정보의 지배』, 김영사, 2023, p.43.
[3] 김복기 아트인컬처 2004년 6월호 에디토리얼.
[4] 요한 하위징아, 이종인 역, 『호모루덴스』, 연암서가, 2010.
[5] 임홍택, 『관종의 조건』, 웨일북,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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