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선후배 문인 여러분께


  비평웹진 ⟪퐁⟫은 기본적으로 시각예술을 다루는 웹 저널입니다. 

그러나 최근 문예계의 소설가 이기호가 제기한 <대한민국예술원법> 문제는

문인, 영화인, 미술인을 막론하는 사안이라 여겨집니다.

<echo>는 텍스트 크리틱을 통해 비평에 관한 토론을 촉발하는 동시에,

예술계 저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가시화하고 기록하는 목적 또한 가지고 있기에

저자의 동의를 받아 페이스북에 게재된 전문을 수록합니다.

문제에 동참하는 서명은 아래 링크를 통해 가능합니다.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JYJG5SMD2Fx58v8ZpnFlT2MFaqv1kNNu1uaYuvEVr9ScuTg/viewform


  안녕하세요.

저는 소설을 쓰는 이기호라고 합니다.

  제가 오늘 이렇게 갑작스러운 메일을 보내는 이유는 <대한민국예술원>의 개혁과 <대한민국예술원법> 개정에 동료 선후배 문인들께서 함께 해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리기 위함입니다.

  동료 선후배 문인 여러분.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대한민국예술원>이라는 곳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그냥 원로 예술인 선생님들의 모임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작년 우리나라 문학 관련 예산에 대해 천천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문학 쪽 예산은 다른 분야에 비해 정말 미미한 수준인데, 유독 <대한민국예술원>에는 2021년 32억 6천 5백만 원의 예산이 책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올해 ‘아르코청년예술가 지원사업’의 경우 지원자 급증으로 인해 심의일정과 결과 발표가 지연되는 사태에 이르렀고, 예산 부족으로 총 2172건 중 108건만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업에 들어간 총 예산은 9억 6천만 원(전년도는 약 20억이었는데, 올해 이렇게 줄였다고 합니다)이고, 이 중 문학 부문 청년예술가에게 지원된 예산은 고작 7명 선발에 총 4천만 원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예술원이 어떤 단체이기에, 어떤 대단한 사업을 수행하기에 이런 막대한 예산과 14명이나 되는 공무원 인력을 쓰고 있는지(예술원 사무국에는 14명의 문체부 공무원이 파견되어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2021년 대한민국에 아직도 이런 ‘특수예우기관’이 존재한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대한민국예술원>의 사업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술원 회원에 대한 정액수당 지급, 그리고 또 하나는 <대한민국예술원상>에 대한 선정과 시상. 이 두 가지가 예술원 예산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말하자면 사업이 회원들에게 ‘정액수당’을 지급하는 일인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자세하게 얘기하자면 정말이지 단편소설 한 편 분량이 필요합니다(그래서 정말 소설도 썼습니다). 이 자리에선 짧게 몇몇 문제점들만 적어 보겠습니다.

  1. 예술원 회원의 자격은 ‘예술 경력이 30년 이상이며 예술 발전에 공적이 현저한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게 대한민국예술원법 제4조입니다. 도대체 ‘공적이 현저’한 것을 누가 판단한단 말일까요? 그 법 조항의 추상성에 대해선 뒤에 따로 <대한민국예술원>의 뿌리를 설명하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 그 ‘공적이 현저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기존의 예술원 회원들입니다. 신입회원은 기존 예술원 회원들에 의해서 선출되는데, 각 분과 별로 2/3 이상의 찬성표를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시를 잘 쓰고, 소설을 잘 써도, 예술원 회원과 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예술원 회원 중엔 아동문학 쪽 문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쪽과는 친분이 별로 없다는 뜻입니다.

  3. 예술원 회원이 되면 매달 180만 원의 정액수당을 받습니다. 평생 지급되는 이 돈 외에도 여러 경비와 창작 지원금 등이 지급됩니다. 노태우 정권 때 회원이 된 시인 한 분은 벌써 30년째 이 정액수당을 지급받고 있습니다.

  4. 예술원 회원들 중에는 유난히 대학교수 출신(혹은 그 배우자)이 많습니다. 문학 쪽도 그렇지만, 음악이나 미술은 거의 전부가 대학교수 출신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대학교수들은 퇴직하면 연금을 받습니다. 적으면 월 3백만 원, 많이 받는 사람은 월 5백만 원도 받습니다. 연금엔 엄연히 국가 예산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월 180만 원의 국가 예산이 더 지급되는 것입니다(참고로 ‘원로 문예인 복지사업’이라고 생계가 곤란한 원로 예술인에게 60만 원씩 지급하는 지원사업도 있는데, 이때는 ‘연금 혜택자’이면 해당이 안 됩니다. ‘원로 문예인 복지사업’의 총 예산은 일 년에 1억 1백만 원입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에게는 매달 지급되는 180만 원의 정액수당 외에도 창작 지원금과 각종 보조금이 더 지급됩니다.

  5. 불과 얼마 전에도 예술원 신입회원이 새로 선출되었는데, 문학 분과에선 서울대 교수 출신의 평론가가 그 직함을 얻었습니다.

  6. <대한민국예술원상>은 이전까지 상금이 5천만 원이었는데, 올해부터 1억 원으로 상향되었습니다. 수상자는 당연히 예술원 회원들끼리 알아서 선정합니다.

  7. 정액수당 외에 작년 예술원 문학 분과에서 쓴 예산은 작품집 발간 지원에 2억 7천만 원, 예술창작활동에 3천만 원, 예술특별강연회에 4백만 원 등이었습니다.

  8. 다른 나라의 경우, 그러니까 우리나라 예술원 성격과 비슷한 프랑스의 ‘아카데미 보자르’나 미국의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Letters’, 독일의 ‘독일예술원(이름이 어려워서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알 수 없음)’은 회원에게 정액수당을 지급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원로 회원들이 회비를 걷거나 기부를 합니다. 그래서 그 돈으로 신인예술가들을 지원합니다.

  9. 원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의 임기는 4년입니다. 연임 조항이 있어서 계속 회원의 신분을 유지했지요. 한데, 지난 2019년 11월 26일 대한민국예술원법 6조가 국회에서 개정되었습니다. ‘회원의 임기는 4년으로 하되 연임할 수 있다’에서 ‘회원의 임기는 평생 동안으로 한다’로 개정된 것입니다. 개정사유는 ‘4년 연임에서 종신제로 변경함으로써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서의 사회적 책임감과 위상을 제고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같은 법 개정을 이뤄낸 당시 예술원 회장단은 그 공로로 만장일치로 회장단 연임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10. 사실 <대한민국예술원법>의 뿌리가 된 것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8월 7일 공포·시행된 <문화보호법>입니다. 전쟁이 난 와중에도 문화예술인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참 가상하구나, 생각하기 쉽지만 그 내막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1952년 부산 정치파동과의 연관성 문제도 있는데, 그 또한 복잡하니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11. 반공문화전선을 표방한 우익단체인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이하 ‘문총’)>의 노력으로 탄생한 이 법은, 말하자면 문화예술인의 반공 선전에 대한 대가이자 포상 성격이었습니다. 이때 각고의 노력을 한 ‘문총’ 멤버가 박종화, 모윤숙, 조연현 등이었습니다. 이 법에 의해 1954년 <예술원>이 처음 창설된 것입니다. 이후 박종화, 모윤숙, 조연현 등은 오랫동안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습니다.

  12. 예술발전의 ‘현저한 공적’이란 추상성이 나온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예술원 설립의 뿌리가 박혀 있습니다. 조연현의 진술처럼 ‘대공문화전선을 조직, 지휘해온 문단의 투사’ ‘문단주체세력’ 같은 현저한 공적입니다.

  13. <문화보호법>은 전두환 정권 시절 다시 <신문화보호법>으로 개정되는데, 이때 지금의 예술원 회원 선출방식이 거의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4. 말하자면 <대한민국예술원>의 모태에는 반공 선전에 대한 나라의 ‘은전’이 있었다는 것. 문학의 순수성이나 자율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철저히 경제 논리를 따르고 있다는 것. 그게 <대한민국예술원>의 핵심입니다.

  동료 선후배 문인 여러분.

  사실 저 또한 지금 대학교수와 소설 쓰는 일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문단 경력은 아직 30년이 안 된, 22년 차 작가이고요, 그 어떤 문인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부장급 소설가’입니다. 대학교수와 소설가의 일을 병행한다는 것은 어쩐지 좀 양념 반 후라이드 반 같은 일이기도 하지요. 내가 지금 예술을 하고 있는지, 교육에 종사하고 있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왕왕 있습니다. 뭐지, 난 왜 이렇게 조직에 잘 적응하지? 이럴 때가 많고요, 어이쿠야, 역시 난 예술적 재능은 없구나. 그런 생각도 가끔 듭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제 또래 전업작가나 후배 전업작가에 대한 경외와 존경 같은 걸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예술가랍시고 누군가에게 예우와 우대를 받을 생각 같은 것은 해본 적 없습니다. 그건 저만의 어떤 윤리적 감각이 아니고요, 제 또래 작가들은 누구나 갖고 있는 ‘염치’ 같은 것입니다. 따로 밥벌이가 있으면 국가 지원금은 신청하지 않는 것. 그게 제가 배운 문학이었습니다. 대한민국예술원을 보면서 제가 느낀 부끄러움은 아마 거기에서 왔을 겁니다.

  동료 선후배 문인 여러분.

  저는 현재 이 문제를 가지고 청와대 국민청원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국민신문고와 국민 제안에도 민원을 넣어둔 상태입니다. 대한민국예술원을 둘러싼 많은 문제는 제가 처음 제기한 것이 아닌, 이전에도 여러 선배 문인들께서 목소리를 냈던 사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예술원의 철저한 무응답과 동료 문인들의 침묵과 무관심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다른 누구보다 제 또래 ‘부장급·과장급’ 문인들과 청년작가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예술원 회원이신 선생님들을 비난하기 위해서 내는 목소리가 아닙니다. 그분들의 문학을 폄훼하거나 공격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예술원 조직법을 개정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또한 그것은 어느 선생님의 말씀처럼 우리 문학 앞날에 대한 진지하고 엄숙한 문제 제기라고 생각합니다.

  동료 선후배 문인 여러분.

  저는 이제 이 문제를 들고 국회의원들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예술원은 예술원법에 의해 규정된 국가기관인 만큼 법 개정이 필수적입니다. 저는 기존 예술원법 가운데 회원의 선출, 임기, 대우에 대한 개정 노력을 하려고 합니다. 그 운동에 동료 선후배 문인 여러분께서 동참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를 위해 그 어떤 단체도, 집행부도 꾸릴 마음이 없습니다. 동료 선후배 문인 여러분과 느슨한 연대로, 각자의 문장으로, 노력해볼 작정입니다. 그 첫 단추가 ‘대한민국예술원법 개정을 요구하는 문인 성명서’라고 생각합니다. 첨부한 성명서를 살펴보시고 함께 하실 마음이 있으면 ‘성명(장르)’만 짧게 회신해주시길 바랍니다(이 성명서는 공개될 예정입니다). 많이 참여해주신다면 국회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료 선후배 문인 여러분.

  저는 우리의 이런 노력이 신인작가와 예비작가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어떤 작가는 조금 더 기다려주는 시간을 필요로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그런 동료에게 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상상하고, 행동해주십시오.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십시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기호 올림

※  

제 이메일(antigiho12@naver.com)이나 카톡, 페북 메신저에 ‘성명(장르)’만 적으셔서 회신 하셔도 됩니다. 이 성명서는 공개 예정입니다. 각자의 생각과 사정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고민 후 결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일정상 8월 22일까지만 회신을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이런 일을 나서서 하는 것이 처음입니다. 그러자니 서투르고 놓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동료 선후배 여러분께서 많이 지적해주시고 조언해주시길 바랍니다. 몸으로 뛰는 것은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예술원법>의 전면적인 개정을 요구하는 문인 성명서

  대한민국예술원은 예술창작에 현저한 공적이 있는 예술가를 우대·지원하고 예술창작활동 지원사업을 행함으로써 예술발전에 이바지하게 한다는 의도로 지난 1954년 설립되었다. 문학·미술·음악·연극,영화,무용 등 총 4개 분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 91명의 회원이 소속되어 있다. 한 해 지원되는 국가 예산은 32억 원이 넘으며, 이 예산의 대부분은 회원 개개인에게 매달 180만 원씩 지급되는 정액수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예술원이 지금과 같은 제도로 운영되는 것에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다음과 같이 <대한민국예술원법>의 개정을 요구한다.

1. 대한민국예술원법 제5조 (회원의 선출)의 개정을 요구한다.

– 현재 대한민국예술원의 신입회원이 되려면 본인이 입회원서를 내거나 기관이나 단체가 추천한 자를 기존 회원이 심의, 전체 회원 2/3 이상의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말은 제 아무리 예술적 공헌이 뛰어나다고 해도 기존 회원들의 승인을 얻지 못하면 입회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예술적 공헌보다도 기존 회원들과의 ‘친교’가 회원 선출의 더 중요한 잣대가 되어 온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회원 대다수가 특정 학교, 특정 장르 출신이라는 오명도 쌓고 있다. 이를 전면 개정해서 기존 회원들만의 의결이 아닌, 별도로 구성된 외부 추천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를 거칠 것을 요구한다.

2. 대한민국예술원법 제6조 (회원의 임기 등) 또한 개정해야 한다.

–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의 임기는 ‘평생’이다. 원래 연임제였던 것이 2019년 11월 법 개정을 통해 ‘평생’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그 어떤 공적 자리의 임기가 ‘평생’ 동안 보장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것은 전근대적인 ‘신분제’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회원의 임기를 ‘4년 단임제’로 바꿀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3. 대한민국예술원법 제7조 (회원의 대우)는 우리시대 예술의 위상과 역할에 맞게 개정되어야 한다.

–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은 매달 180만 원씩 정액수당을 지급받고 있다. 정액수당 외에도 각종 창작지원금도 지급되고 있다. 회원 중 대다수는 정년퇴직한 교수로 이미 국가 예산이 상당 부분 포함된 연금 혜택자들이다. 이런 예술계 상위 1% 회원들에게 또다시 국가 재정으로 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이중지원이며 분배정의에 어긋난 특혜이다. 예술원 회원들의 명예는 수당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무보수 명예직으로 전환하여 예술의 독립성을 더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

예술은 늘 ‘종결 없는 생성’을 추구한다. 해체하고 끊임없이 재구축하는 과정을 통해 예술은 비로소 예술의 이름을 얻는다. 우리는 쉼 없이 변화하는 예술원을 원한다. 이것은 ‘세대’와 ‘공정’의 문제가 아닌 ‘상식’의 문제이다. 국가의 문화예술 예산 방향성은 언제나 새로운 것, 신인 쪽으로 집중돼야 한다. 그래야 정책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대한민국예술원>의 진정한 개혁과 <대한민국예술원법>의 전면적인 개정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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