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 가능성을 다시 쓰기 위한 전략

응우옌 탄 떰(Nguyễn Thanh-Tâm)

※ 일러두기
1. 본문 속 작품명, 인명 및 지명의 경우 국내에 소개된 적 있는 이름은 소개된 이름을 따르고 그 외의 이름은 국립국어원의 베트남어 자모표기 세칙을 최대한 준수했습니다.
2. 국문 번역 원고들에는 기존과 같은 들여쓰기를 적용했습니다.
3. 전시명은《》, 프로젝트나 작품 명은〈〉, 책은『』, 원고나 논문은「」로 표기하였습니다.
4. 세 단어 미만의 영어는 원어 표기하였으며, 이상의 단어들은 번역 병기하였습니다.
5. 저자들의 영문 각주는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의 예술 작품이나 예술 행사가 밟아야 할 검열과 허가 절차는 여전히 베일에 쌓여있다. 이 터무니없이 모호한 제도를 둘러싼 담론은 ‘견디기 힘든 상황’, ‘비극적 희극’, ‘녹슨 기계들’과 같은 이미지에 은유적으로 기대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지 말고 베트남에서 행해지는 검열 관행을 바라보는 대안적인 방식은 없을까?

  검열의 까다롭고 지난한 절차를 지켜보아 온 나는 이 글을 통해 예술 작품과 검열이 어떻게 서로에게 접속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교류하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즉, 현대예술 본연의 반항적 성격을 촉발하는 요소이자, 작품과 제도적 권위 사이에서 신념/이데올로기의 상호작용을 유발하는 요인으로서의 검열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는 한때 놀이적 언어가 규칙과 구조를 뒤엎는 자극제라고 정의했다. 현대예술의 가변성, 그리고 검열 매커니즘은 그가 언급한 언어적 놀이를 활용하여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예술이 규정하는 놀이성은 우리가 상상력, 기억, 그리고 다양한 삶의 경험에 있어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는 발상에서 비롯되며, 이로써 경계를 열어젖힌 채 튀어나온 여러 요소들은 현실 속에서 환상을 야기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상상력, 기억, 삶의 요소들이 얽히고 섥힌 상태는 현대예술이 하나의 규격에 획일하게 맞춰질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검열은 극도로 경직돼 있다. 마치 고대 미라처럼 철저하게 봉인된 채, 절대로 다가오지 말 것을 경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술작품은 본질적으로 무질서와 혼돈을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검열을 받는 과정에서조차 권력의 규칙에 장난을 걸기도 한다.

  여기서부터 예술 작품과 검열은 서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는 게임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 둘 간의 지속적인 ‘밀당(밀고 당기기)’은 어지럽고 무질서하지만 바로 이 무질서로 말미암아 생명력이 극대화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검열이 단순히 고정된 담론에 묶여 있거나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검열은 유기적인 존재와 혼란스러운 현실을 관조할 수 있는 거리감을 마련해 준다. 따라서 검열은 그 자체로 존재의 혼란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예술을 인정하는 행위일지 모른다.

  베트남 최초의 큐레이팅 컨퍼런스 세션에서 큐레이터 응우옌 뉴 후이(Nguyễn Như Huy)는 이데올로기 부산물로서의 검열에 관해 비판적인 시각을 내놓으며, 기존의 관점을 확장하여 검열을 재구성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나는 이에 응답하고자 2022년 호치민시 Alpha Art Station에서 열린 한 전시를 여기에 소개한다. 바로 베트남의 화가이며 시인인 부이 찻(Bùi Chát)의 개인전 ⟪Improvisation⟫이다.

  이 전시는 일대 사건에 휘말린 것으로 유명하다. 전시회 당시, 부이 찻은 행정 처벌을 받는 것 외에도 허가 위반으로 지목된 전시작 스물아홉 점을 파기해야 했던 것이다. 린 레(Linh Lê)의 「베트남 예술의 자유 보고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형 (Artistic Freedom Report Vietnam: An ever-changing terrain)」에 따르면, 지난 12년 동안 허가 서류 미비로 인해 제재를 받은 예술 행사 사례는 81건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검열 사례의 수가 매년 적게는 두 배, 많게는 세 배까지 증가하는 가운데 ⟪Improvisation⟫이 여타 사례보다 특별히 주의를 끌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29점의 그림을 철거하라는 요구

호치민에서 철거된 부이 찻의 그림들(2022), Photo by VnExpress/Mai Nhat

  허가서가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빌미로 호치민시 인민위원회는 행정 처벌을 내리는 것은 물론, 작가 스스로 그림들을 철거할 것을 명령했다.

  어쩌면 ‘철거’라는 단어가 너무 과격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사실상 이 단어는 베트남의 검열 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여느 용어들보다 훨씬 더 엄숙한 뉘앙스를 담는다. 액면 그대로 증거물이나 전시물의 제거와 연관 지어 사용되면서 유죄로 판명된 범죄자를 암시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당 검사들이 발부한 과태료 부과서는 작품의 철거를 명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철거’ ‘폐기’라는 단어가 억압적 권력이나 횡포를 연상시킬수록 우리 안에 억눌려 있던 집단적 불만이 반향을 일으키고, 꾹 누르고 감춰온 겹겹의 목소리가 증폭되어 울려 퍼진다.

  이렇듯 예술가와 검열 관리자는 명백히 이분법적인 위치와 계층 구조 안에서 대치한다. 그리고 이 같은 구도는 예술가를 검열의 위협 앞에서 연약하고 무기력한 처지로 몰아붙이며, 베트남 예술계의 생기 넘치는 풍경을 자꾸만 밋밋하게 만든다.

  그동안 검열은 통제와 억압의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검열을 단순히 기관의 폭력적인 조작이나 권력불균형의 문제로만 간주하기보다 이제는 이에 대안적인 접근 방식을 촉구하고자 한다. 오랫동안 묻혀있던 베트남 문학과 미술의 가능성을 새롭게 상상하는 전략으로 검열을 이해해 보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왜 ⟪Improvisation⟫을 두고 행해진 검열이 역설적으로 축복이며 잊혀진 가능성에 생명을 불어넣는 힘이 되는지를 이해하려면 부이 찻의 깊은 영향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이 찻은 베트남에서 사미즈다트 출판 형식을 선도한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출판사 ‘Scrap Paper(Giấy Vụn)[1]’를 이끌고 있다. 종래의 제도권 출판 방식이 시 문학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한 Scrap Paper는 새로운 시 출판 패러다임을 고안했다. 대중적 흥행이 미흡할 것으로 예상되는 젊은 작가들의 다소 예술적이고 난해한 시를 낱장의 종이에 다량 인쇄하여 사이공의 거리 곳곳에 흩뿌리는 것이다.

  부이 찻은 기존의 전통적인 미학 관념에 도전하는 시도를 했는데,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쓰레기 시’, ‘더러운 시’, ‘묘지 시’와 같은 새로운 시 개념의 창안이었다. 이런 독특한 개념들은 부이 찻이 시적 언어에 새로운 공간을 내려고 한 의도를 보여준다. 그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날카로우면서도 풍자적이고 꾸밈없는 언어를 사용해 시를 더 자유롭고 놀이적인 형태로 구현하고자 했다.

쓰레기 시

쓰레기에서
나는 시를 가지고 놀아
모래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아이가 다른 것들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2]

  분명 틀에 박힌 성직자 같은 인물은 아니다. 그는 자질구레하고 일상적인 주제들을 다루지만, 그가 언어를 다루는 방식은 천진해 보이면서도 규범에 도전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련의 불행한 사건들[3] 이후, 부이 찻의 문학 활동은 좌초되었고 그의 사미즈다트 출판물도 훼손되거나 유실되면서 명맥을 잇기 어려워졌다. 그에 따라, 베트남 문학사의 스타처럼 각광 받던 부이 찻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빠르게 잊혀져 갔고, 그가 일으킨 문화적 영향력 또한 “정치적 혼란(Nhã Thuyên, 2012)” 속에 가려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부이 찻은 차츰 아주 가끔씩만 회자되는 이름쯤으로 축소된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Improvisation⟫이 겪어야 했던 극단적인 검열 사례가 예상치 못한 행운을 가져오기도 했다. 물론 검열은 1차적으로 현대예술의 성장을 방해하고 위축시키는 장애물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파생된 나름의 창의성과 생산성은 옳음과 그름, 존중와 횡포를 구분하려는 강박에 균열을 내고, 그 틈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히는 뜻밖의 순기능을 한다. 그리고 ⟪Improvisation⟫을 두고 벌어진 무질서와 논란, 공적 제재가 계속되면서 우리는 부이 찻의 정체성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다시 되짚어보게 되었다. 그가 대체 어떤 시인이었고, 어떤 작품을 썼는가? 우리는 문학과 미술의 흐름 속에서 그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Improvisation⟫의 철거 요청 사건이 촉발한 무수한 소문들과 검열을 둘러싼 무성한 논의로부터 목하 대중은 더 많이 알 기회를 제공 받는다. 뿐만 아니라, 이런 역사적인 검열 사태를 기점으로 부이 찻과 시대적 공감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 다른 세대를 경험 중인 사람들마저 다시 과거로 돌아갈 계기를 얻는다. 단편적인 정보의 흐름을 깊이 파고드는 동안 기억 속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것들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BBC와의 인터뷰에서 부이 찻은 ⟪Improvisation⟫의 작품들이야말로 순전한 예술, 이른바 예술을 위한 예술이었을 뿐 어떠한 숨은 의도도 들어있지 않았다고 밝혔다.[4] 그리고 사실상 여기에 전시된 작품들에서 그가 한때 열렬히 감행하던 반규율적 시적 실천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추상화와 그의 시 쓰기 활동이 같은 사람의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둘은 너무나 서로 독립적이고 분리된 것처럼 보인다. 이때 주목할 것은 검열 자체가 사람들의 관심을 자석처럼 강하게 끌어당기며 창조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서로 다르게 보였던 부이 찻의 문학과 미술이 다시금 연결되고, 문화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이 하나로 묶이게 된다. 그러하여 우리 또한 부이 찻이 남긴 하나의 역사적 단면에 궁금증을 품고, 그것을 탐구하고픈 충동을 느끼지 않는가.

  그의 그림을 철거하라는 당국의 결정은 한 달 만에 철회되었고 스물아홉 점의 그림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의 전말은 검열의 층위와 복잡성을 단순화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과거 베트남의 검열과 현재를 비교할 때, 과연 검열이 개선되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의사결정 과정의 변화는 적어도 검열이 “예” 아니면 “아니오”와 같은 한두 가지 답변으로 축소될 수 없으리라는 희망을 어느 정도 불러일으킨다.

  검열은 예술을 기획하고 실행하고자 하는 이들을 소진시킨다. 그러나 그 비탈에서 미끄러져 내기리를 계속 반복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검열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까? 이제부터 밝혀내야 할 희망의 빛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대화의 동력으로. 바로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권력불균형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이다. 권력자들이 지우려 했던 것을 드러내기 위해 그들의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저자 소개
2006년생 응우옌 탄 떰은 번역, 시 창작, 퍼포먼스 작업을 다루고 있다. 그의 시는 The 『Offing』과 『The Arkansas International』의 과월호에 실렸거나 차월호에 실릴 예정이며, 그가 번역한 작품은 도쿠멘타 15(documenta fifteen), 마이애미도서전(Miami Book Fair), 카라치비엔날레(Karachi Biennale)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역자 소개
김보슬은 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국제교류 사업 매니저로, 실내건축, 공공예술, 지리학을 전공한 뒤 미시적 접근과 거시적 접근을 아우르는 다양한 스케일의 장소 기반 콘텐츠를 만들어 왔다. 국제대회의 문화행사, 아티스트의 해외 진출, 지방정부의 로컬 브랜딩, 글로벌 기업의 디지털 브랜딩 등 공공과 민간 부문을 넘나들면서 초국적 공간에서의 문화 마케팅 활동과 예술 프로젝트를 다룬다. 지도와 사전 읽기를 좋아하여 공간과 언어를 오랫동안 벗삼고 있으며, 도시와 인물을 취재하고 글을 쓰며 번역 작업을 진행한다.


[1] 사미즈다트: ‘사미즈다트’는 러시아어로 ‘자신’을 뜻하는 ‘sam’과 ‘출판’을 뜻하는 ‘izdatelstvo’를 결합한 단어다. 사미즈다트는 저자의 통제를 받지 않고 문학 작품과 정치 뉴스를 비밀리에 간행・유통하는 전복적인 출판 운동을 의미한다.

[2] 부이 찻의 시집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베트남어로 ‘rác rưởi’는 쓰레기를 뜻하며, ‘thơ jác/ từ jưởi’는 ‘쓰레기 시, 쓰레기 말’을 의미한다. 부이 찻은 이 단어를 반으로 나누고, ‘rác rưởi’의 일부 글자를 다른 글자로 바꿨다. 예를 들어 ‘r’을 ‘j’로 대체한 것이다.

[3]  2011년에 부이 찻은 IPA 출판 자유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귀국과 동시에 경찰에 구금되었으며, 그가 받은 상과 그가 소장한 책들이 압수되었다.

[4] https://www.bbc.com/vietnamese/vietnam-62516403

참고 문헌
Kristeva, J., & Moi, T. (2002). The Kristeva Reader. Blackwell.
Le, L. (n.d.). Artistic Freedom Report Vietnam: An ever-changing terrain. ArtsEquator.
Nhã-Thuyên. cuộc nổi dậy của rác thải [1].
Tạp chí Da Màu. https://damau.org/26332/cuoc-noi-day-cua-rac-thai Thơ việt, từ hiện đại đến hậu hiện đại. (n.d.). Inrasara.
Mai-Thụy. Xử phạt triển lãm không phép của bùi chát, giao họa sĩ tự tiêu hủy tranh. Tuổi Trẻ.

https://www.bbc.com/vietnamese/vietnam-62516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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