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볼텍스 Voice Vortex : 영화 <그녀>와 <아노말리사> 속 목소리의 풍경

신효진

발성 영화에는 위압적이고 모두 볼 수 있는 명령권자인 음성 존재들 옆에,
완전한 지(知)와 시각이 부여받지 못한 의심하고 있는
또 다른 종류의 음성 존재들이 언제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미셸 시옹 『영화의 목소리』

0.

  내 나이 스물하고도 세 살 무렵, 조금은 특별한 이유로 이비인후과에 간 적이 있다. 통상적인 진료를 목적으로 병원을 찾은 것이 아니라 목소리 교정을 위해 먼 압구정까지 한동안 통원하였다. 그 시절 나는 소위 말하는 남성스러운 목소리를 가지기 위해서 비싼 병원비를 지불할 용의가 있었나 보다. 목소리를 획득하는 것, 즉 사회적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내 안에 여성성을 버려야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젠더 스테레오타입에 얽매여 나를 갉아먹던 숨기고 싶은 과거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인생의 한 페이지. 내게 목소리는 몸을 통해 만들어내는 단순한 물질적 소리를 넘어 정체성을 드러내는 의미화된 육체성이었을 것이다. 나는 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지 못하였을까? 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세이렌이 되지 못하였을까?

1.

  목소리는 육체성을 담보하는 시그널일 뿐 아니라 내면의 정신세계까지 포괄한다. 하이데거는 내면적 말과 외면적 발화 사이의 경계에 대해 『존재와 시간』에서 이야기한 바 있는데, 폴 리쾨르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내면적 말하기는 실존적 구성을 지칭하며, 외면적 발화는 경험 세계 속에 들어오는 세속적 양상을 지칭한다.” 하여 내면적 말하기의 일차적 규정은 발화가 아니라 침묵하기-경청하기라 할 수 있다. 경청이라는 것은 듣기로부터 가능하고 이 듣는 행위는 오직 이해하는 것으로부터만 가능하다. 만약 인간이 말을 한다면 그것은 결코 인간이 발성 기관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를 발견하고 있는 그대로 세계를 투사하는 기점”에서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즉 목소리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한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되며 세계를 대면하는 인간의 중추적 기능으로서 역할을 한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포괄하는 목소리. 영화에 있어서 목소리는 인간 이미지의 리얼리티를 생성하는 데 필요한 조건 중 하나이다. 달리 말해 이미지의 재현에 목소리라는 청각적 요소가 더해지는 것은 세계를 기계적으로 스크린 위에 재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는 영화-기계라는 구도를 재확인하며 목소리를 타자의 위치에 놓이게 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타자’로서의 목소리를 분리 이전의 실재이자, 유아기 트라우마의 기원으로 본다. 이 언어 이전의 소리는 자신을 비롯한 세계를 설명해주는 에로틱한 경험이며 동시에 볼 수 없는 것에 귀 기울이게 하는 선제적인 소리가 된다.

2.

  스파이크 존스의 <그녀>는 삭막한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외로운 주체가 마주하는 ‘트라우마의 기원’을 기계의 목소리로 드러낸다. 근거리 미래, 한정된 인간관계 속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대필 편지 작가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며 성장하는 운영체제의 소통을 그린 영화 <그녀>. 이 작품은 가상운영체제의 목소리를 통해 두 주체의 사랑의 공간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주인공인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컴퓨터 운영체계인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를 이어폰을 통해 들으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이어폰을 끼고 사만다의 목소리를 듣는 행위를 지속할수록 관객은 테오도르에게 감정 이입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사만다가 자신이 작곡한 노래(The moon song)를 테오도르에게 들려주는 숏이 등장하는데, 이는 육체가 없는 ‘그녀’의 실체를 확인하는 생경한 경험을 제공한다. 비디제시스적 요소인 배경음악과 함께 사만다의 목소리가 관객에게 돌출시키는 이 장면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시각적으로는 부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 어딘가에도 영화의 디제시스는 존재한다. <그녀> 외화면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관객들은 그녀를 보지 못하지만 완벽하게 현존하고 있다고 느낄 것이며 그녀만의 공간과 시간이 있을 것이라 믿게 한다. 물론 그 시공간은 가시적인 질서에 속하지 않는다. 테오도르를 비롯하여 수많은 타인과의 관계가 포함된 비선형적이고 비인과적인 시공간일 것이다. 이 지점에서 목소리의 주인이 할리우드에서 가장 관능적인 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관객은 보이지 않는 목소리에서 스칼렛 요한슨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 이항 대립을 넘어서 그 어딘가로 관객을 유도하고 있다.

<그녀 Her>(2013), 스파이크 존즈, 한 장면.

3.

  <그녀>가 인공지능의 육감적 목소리를 통해 현대인의 근원적 외로움을 표현하였다면 찰리 카우프만과 듀크 존슨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아노말리사>는 본인 외의 모든 타인을 동일 인물로 인식하는 ‘프레골리 딜루젼’을 통해 무수하고 똑같은 ‘목소리’로 뒤덮인 세계 속에서 현대인이 겪는 실존적 불안함을 그려낸다. 고객 서비스 전문가이자 스타강사인 중년의 주인공 마이클 스톤(데이비드 튤리스)이 한때 살았던 도시 신시내티로의 짧은 출장이 이 영화의 주된 내러티브이다. 마이클 스톤의 눈에 타인은 모두 똑같이 생겼고 똑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이런 마이클에게 불현듯 ‘타인들’과 구별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리사(제니퍼 제이슨 리)이다. 영화는 마이클과 리사의 짧지만 강렬한 하룻밤을 다루고 있다.

  두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인물이 발화하고 있는 동일하고 기계적인 목소리는 외적 삶은 물론 인간 내면세계까지 기계적으로 변해가는 현시대에 대한 강력한 풍자 모티프이다. <아노말리사>의 상상력은 데카르트나 칸트를 비롯한 관념론자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을 인간이 되게 하는, 인간 이해에 있어 중요한 오감성을 배제시킨다. 오감을 통한 인간의 경험은 진정한 경험도 아니고 궁극적인 인식도 아니다. 오감성은 결국 전혀 감각적이지 않은 상위의 것 즉 오성이나 이성의 통제를 받고 체계화될 때 비로소 인식하고 지각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영화가 지워버린 감각적인 목소리는 모든 것이 기계와 같이 천편일률적으로 굴러가는 세계에서 동시대 인간 현존재의 소통 가능성에 대해 되묻는다.

<아노말리사 Anomalisa>(2015), 찰리 카우프만, 듀크 존슨, 한 장면.

4.

  <그녀>의 사만다는 육체가 없다는 것만 빼고 테오도르에게 완벽한 존재이다. 그녀(의 목소리)를 사랑하게 된 테오도르에게 신체의 결여가 관계의 근본적인 결함은 아니다. 테오도르에게 ‘그녀’는 불만족스러운 현실 속 인물과는 다르게 완벽한 데이트 상대이자 섹스파트너이다. 그리고 지독한 권태 혹은 망상을 겪고 있는 <아노말리사> 속 마이클에게 리사의 다른 목소리는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 과정에서 목소리는 이 둘의 관계 진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결국 사만다는 ‘단어와 단어 사이 무한한 공간에서 자아를 발견했다’라는 깨달음을 전하며 다른 OS들과 떠나간다. 마이클 역시 리사와의 잠자리 이후 특별했던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목소리로 변모한다.

  <그녀>는 완전하고 육감적인 지(知)의 목소리를 통해 <아노말리사>는 동일한 목소리의 형태를 통해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근원적 한계에 대해 질문한다. 두 영화에서 목소리는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자 그 삶을 드러내는 태도 일체를 포함하며 이를 통해 소통의 (불)가능성에 대해서 들려준다. 또한 이미지 주변에서 피동적인 상태로서만 사유의 대상이 되었던 목소리를 그 중심부로 위치시킴으로써 감각이 재지정되는 경험을 획득한다. 이제 다시 경청과 이해를 통해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는 리쾨르의 해석을 곱씹어보자. 진정한 발화는 목구멍을 닫고 귓구멍을 열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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