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치
엄제현(이하 U) 요사이 미술계의 머리가 되어버린 비평적 대안, <티티카카>의 네 번째 날입니다. 아트인컬처의 차기 편집장을 꿈꾸는 기자 조재연 씨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문화정치 이거는 동시대 미술 주제로 보기 어려운데… 이동연 선생 창창할 때 하던 말 아니에요?
조재연(이하 C) 맞아요. 『문화과학』이라는 잡지도 그러한 기반을 가지고 있죠.
U 이동연 선생이 편집위원으로 있는 그 잡지는 뭐였죠?
C 그게 방금 제가 말한 거예요.
U 이걸 왜 또 동시대적이라고 꼽았을까.
C 이미 보편적인 단어죠.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과 다르지 않고요. 무엇의 옳고 그름을 넘어서 지향하는 가치와 이해가 도덕적으로 우월하게 느껴지게끔 어젠다를 작용시키는 건 이미 현실 정치의 오랜 방법론이잖아요.
U 그러면 동시대적이라고 이렇게 등판시키면 안 되죠. 최근에 이런 얘기를 하는 분이 있었어요. “어쨌든 문화 정치가 활발했던 시절에는 문화가 현실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어.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살았어. 정말로 어떤 부분은 바뀌었어. 이젠 뭘 할 거냐”는 말이었어요. 문화정치는 유서 깊죠. 프랑스 혁명기에 포르노그라피 서적 수가 폭증하는 현상이 있었는데요. 왕정을 공격하기 위한 문화적 심급에서의 총공격이었고, 혁명 이후엔 또 급감했어요. 그땐 뭐 서가에도 왕의 성생활과 정치가 같은 카테고리였다고 하니. 앙시엥 레짐에서 정통성은 중차대한 문제니까요. 탄핵정국 때 등장한 <더러운 잠>이 얼핏 생각나는데, 이 작업은 맥락이 뒤죽박죽이라 나중에 좀 잘 뜯어봐야 할 것 같아. 정치적인 것, 성차, 외설성 등 배선이 복잡해요. 한국 소재로 문화정치 예좀 들어줘요.
C 민중미술이 부상했던 7, 80년대엔 예술가와 활동가, (정치적 주체로서) 시민이 구분되지 않았어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현장에 있거나, 그들이 있는 곳이 곧 현장이 됐어요. 거리는 미술관이자 아고라, 걸개그림은 작품이자 프로파간다였죠. 그러나 오늘날 예술가는 다른 정체성과 양립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요. 정치적인 미술은 ‘미술이 곧 정치’라는 형식에서 벗어나 정치를 주제 삼은 미술로 축소되었죠. 그래서 저는 이 주제에 진보적 주제를 던지는 작가나 비엔날레 등을 예시로 들기보단 오히려 아직까지 남아있는 활동가형 예술가를 얘기하고 싶어요. 노원희나 노순택 같은 유명한 작가를 말할 수도 있겠지만, 더 방점을 찍고 싶은 아티스트는 따로 있어요. 사진가이자 노동당 전 대표인 현린, 아니면 설치예술가이자 노동당 문예위의 사무처장 적야, 집회장을 난장으로 만드는 행위예술가 야마가타 트위스터(한밭)과 같은 이들이죠. 희망버스부터 시작해 임대차 보호와 공유지 문제, 블랙리스트 진상 규명, 예술인복지법 등 생각보다 많은 전선에서 예술가, 문화활동가들이 앞장섰어요. 예술가만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 없이 불가능했던 ‘작업’들이었거든요. 저 역시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에서 7년 넘게 활동을 해오고 있어요. 이건 몇 없는 제 자랑 중 하나에요.
U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제로지겐이 생각나네요. 오사카 만박을 반대하던 그 전설적인 그룹이요. 장외에서 갤러리로 들어가는 파워게임 공식과 상관없이 외려 갤러리에서 거리로 나왔죠. 한국에선 새만금 개발을 반대하며 거기다 장승, 솟대를 설치한 최병수 작가? 자본의 앞잡이가 된 새만금 락 페스티발을 까려고 락 해골을 만들고, 부안 해창에서 새만금 락페에 반대하는 살살페스티발을 열어 대응하기도 했고요. 이런 기억을 잘 보존해야 해요. 영화는 보존이 용이한데, 예술은 많은 프로젝트들이 망각되네요. 의도적인지, 포맷이 그런건지… 김기덕 <해안선> 같은 경우는 새만금이 외상적으로 잘 남겨져 있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당신이 말하듯 현장이 중요하다면 오늘날 문화 정치의 핵은 퀴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매년 요란하게 조직되고 공공 안에서 논의를 만들어내는 실천은 퀴어 퍼레이드잖아요. 반대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그 반대가 또 동력을 생산하기도 하고 있고요.
C 거기엔 페미니즘도 넣고 싶어요. 지난번 페미니즘미술이 지닌 한계를 얘기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문화정치라는 관점으로 볼 땐 활동가 정체성과 가장 일치하는 아티스트가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장은 역시 페미니즘이에요.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은 ‘아니다’가 아니라 급진적인 동력을 다시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것이고요. 이어서 얘기하자면 문화정치라는 키워드를 다룰 때 주제로서 정치를 활용하는 작업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실제로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작업에 주목했으면 해요. 부산을 기반으로 노동, 기후 위기, 인권, 다양성 등 다양한 이슈에 예술연대 활동을 펼친 ‘신진문화예술행동 흥’, 콜트콜택 농성장에 아뜰리에를 차리고 작업으로 몸으로 투쟁에 연대했던 화가 전진경, 집회 현장에서 퍼포먼스, 전시, 문화제 등을 기획해 온 ‘문화연대’ 등이요. 예술가니까 예술로만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조심스럽지만 저는 여기에 조금 선을 긋고 싶어요. 예술도 정치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정치도 예술이란 지점에 닿을 때 문화정치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요.
U 작업과 실천은 다르고, 작업은 실천이라는 맥락에서 옹호될 수만은 없다? 터프한 얘기네.
행동주의
U 방금 대단히 과감하게 작업과 실천을 두 쪽 내버리셨는데, 여러 미디어를 활용한 전술이나 캠페인의 조직, 대안 문화의 활성화, 감각의 회복 등과 관련된 여러 작업들도 사실은 실천이잖아요.
C 네, 그것에 관해서라면 저는 보수적인 기준을 갖고 있어요. 제현 씨가 담론적인 규칙들을 작업에 끌어들였다고 해서 진보성을 담지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당연히 반대로 활동가로 작업을 병행하는 이들의 작품이 곧 미학적 성취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나 구분은 해야 해요. 행동주의형 아티스트를 평가할 때, 그렇지 않은 작가와 똑같이 작업만 가지고 얘기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투쟁, 연대를 비롯한 실천 역시 예술가의 정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한에서,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들에겐 실천 역시 작업인데 화면으로 표출된 작품만 가지고 평가한다면 그건 반쪽 짜리에 불과하죠.
U 그렇죠. 표명된 의미와 적합한 실천의 조응 없이 작업을 통한 주장만 거듭하는 작가들은 진정성만 보여줄 뿐이겠죠. 바로 그 진정성이 전무하다는 점을요. 어떤 작업들은 퀄리티만 가지고 얘기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재밌네요. 확실히 작업의 퀄리티가 예술의 성패를 결정한다는 주장은 백 년 전에 파괴되었죠. 그러면 이런 건 어때요? 얼마 전 흑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인어공주가 시끌벅적했잖아요. 부족한 완성도를 PC로 때운다고.
C 작업으로만 말하는 사람들한테는 작업을 기준으로 평가해야죠. 반대로 행동주의에 관해서라면 작업만 가지고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요. <인어공주>도 마찬가지예요. 인어공주를 흑인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을 반영론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죠. 근데 그건 활동가가 현장에서 운동을 경유해 연대로서의 작업물이 아니라, 블랙박스에서 정치를 테마 삼은 작품을 발표한 것이잖아요.
U 한편으로는 우리가 행동을 어떤 방식으로 재규정할 거냐는 요청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민중미술에게 행위라는 건 자명했죠. 아까 말한 최병수 작가의 글을 좀 가져올게요. “나의 작품이 그저 전시장에만 내걸렸다면 내 작업이 작업실에서만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그건 죽어있는 것을 그린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내가 현장에 달려가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그 현장에서 내 작품이 생명을 얻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그림으로 민중과 만나고 소통한다. 독재정권에 항의하는 학생, 자본의 불합리와 싸우는 노동자, 농토를 빼앗기고 삶의 보금자리를 잃은 농민과 어민, 나는 나의 그림을 그들과 함께 나눈다.”[1] 리스펙. 기금 따서 자기 커리어 치장하는 일로 축소되어 버린 작금의 작은 예술계와 달라도 너무 다르네요. 화폐공식이 M-M’인 것처럼, 더 크고, 더 많은 기금으로 뒷받침된 전시와 경력으로 이어지기 위한 활동들… 오늘날의 행동이라는 건 무엇에 관련시켜야 할까요.
C 비겁한 말일 수도 있는데, 저는 그냥 두 손 두 팔 다 들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더 이상 담론이나 진정성을 가지고 작품을 평가하는 건 저한테 거의 불가능이거든요. 우리가 토론을 이어오면서 이미 말한 부분이잖아요. 모두가 다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PC, 생태주의, 성평등을 말하지 않는 작가는 드물고, 누구나 자본주의와 문명이 불러온 소외에 대해서 지적해요. 그렇다고 모두가 사회참여형 예술을 하고 있느냐는 물음엔 저는 긍정하지 못하겠어요. 물론 예술 본질의 일부가 교환 가치와 불화를 일으키고, 사회의 타자로서 예술가만이 예민하게 관찰할 수 있는 현실이 있죠.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분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고요. 모든 게 다 행동이라고 명명하게 되면, 결국 행동이라는 게 사라져 버릴 것 같거든요. 고백하자면 제가 비평으로서 생산하는 이야기들은 사실 투쟁하고 거리가 멀 때가 굉장히 많아요. 그것들을 의식하고 있을 뿐이고, 때때로는 변했다는 비난도 받고요. 대신 행동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노동당에서 여태껏 활동해 왔어요. 그게 저에겐 저를 지키는 마지노선이에요. ‘이론은 투쟁이다’. 이걸로는 저 스스로가 용납이 안 될 것 같아요.
U 극기했군요. 좋아요. 한편으론 행동과 작업을 분리하는 논의의 함정도 있죠. 제 생각에 주류문화에 개입하고 교란하는 작업 형태는 분명 실천에 가까운 것 같아요. 다만 오늘날의 인간이 은폐된 진실을 발견하고 변화되는 타입도 아닐뿐더러, 예술 자체가 너무 형이상학적인 단어로 무장되다 보니 발산의 위력이 떨어지지 않나 싶어. 정치구호는 단순하잖아요. “금지를 금지한다!” 그렇다고 마냥 갤러리에 있다고 해서 그것의 실천성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전선으로서의 미술관을 양도해버려야 하는 문제도 있고요. 진정성 이슈도 이런 논의의 함정이죠. 결국 진정성 그거 판별해서 뭐 할건데? 뭘 위해서 판별하는데? 사실 그냥 눈꼴시려도 좀 봐줘야 해요. 자네 말대로 상징권력 쥐려고 맨날 지 맘에도 없는 소리 하는 사람 있어도, 평생 그 소리하면 그것도 진정성이죠, 뭐.
C 보리스 그로이스의 『아방가르드와 현대성』에선 관료와 당직자 등으로 직접 정치인이 되고자 했던 러시아 아방가르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이들은 아티스트가 작업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정치의 일선에서 예술의 정치는 물론 정치의 예술을 펼치려고 했어요. 알렉산더 로드첸코 같은 경우에는 예술노조 조합원이자 볼셰비키정부박물관국 책임자였어요. 티나 모도티는 멕시코 공산당 당원이자 코민테른의 비밀 요원이었고요. 이런 식으로 만약에 행동주의에 대한 키워드를 우리가 제안한다면, 저는 ‘예술가들이여 정당 운동에 뛰어들자’라고 말하겠어요.
U 옳으신 말씀입니다.
C 노동당 문예위에선 매년 좌파예술 시상식 ‘레드 어워드’를 개최해요. 저도 꾸준히 조직과 집행에 참여해 왔고요. 작년에 제현 씨에게 찬조를 요청드렸었는데, 그때 보내주신 문구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당에서도 그 글을 읽고서 너무 감동받았다고 했거든요. “우리는 당파적으로 예술합니다.”라는 문장이요. 환경, 페미니즘, 퀴어, 이민 같은 이슈를 작업으로 다루는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고 멋있는 일임엔 틀림없어요. 근데 우리의 무대가 미술관이나 갤러리, 비엔날레로 한정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건 제 스스로한테도 해당되는 이야기에요. 저도 게으르고 겁이 많아서 현장에 잘 못 나가거든요. 근데 좋은 글, 좋은 작품이 이 현장에서 연대로 존재하면 얼마나 더 멋진 일일까 종종 생각해요. 우리가 점령해야 할 건 전시 공간만은 아니에요.
U 예술의 위치가 참 복잡하네요. 여전히 말보다 행동이 우월한 지표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뭐, 말 나온 김에 레드 어워드 받은 작가들 얘기 좀 해 주세요. 이참에 밀어주죠.
C 레드 어워드에서 ‘주목할 만한 형식’을 수상했던 《끈적이는 바닥》전을 얘기하고 싶어요. 공간힘에서 개최한 단체전으로 여성 청소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에요. 우리가 살고 있는 바닥은 늘 매끈하고 반짝이죠. 그러나 그 매끈함과 반짝임을 만들어내는 건 끈적임과 싸워야 했던 청소 노동자죠. 여기서 모티프를 얻어 기획했어요. 전시는 사회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노동을 도맡아온 여성이 어째서 괄시와 차별마저 감내해야 하는지 물어요. 윤혜주는 불교 종파 중에 하나인 진각종에서 수행을 위시해 낮은 임금을 강요받는 여성 신자를, 조영주는 출산과 육아, 가사노동에 점철된 소외에 주목했죠.
U 공간 힘! 너무너무 멋진 공간이죠. 제가 사랑하는 공간 넷 있어요. 합정의 L.A.D. 을지로의 pie, 경산의 보물섬, 그리고 부산 수영의 공간 힘. 힘에서 제일 좋았던 실천은 공공벽화 가지고 밀어붙인 이슈들이에요. 이건 단지 예술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세계가 어떤 형태여야 할 것이냐, 세계를 어떻게 대할 것이냐는 물음이기 때문에 매력덩어리였죠. 관행적 공공미술을 거부하고, 난상토론을 이끌어낸 역량을 격하게 지지할 수 있어. 이런 공간에 연 10억은 줘서 어떤 프로젝트 할 수 있나 기대해 줘야 돼요. 많은 공간들이 관으로 도약할 발판이자 기금 경제에 공모하는 옆집이 되었기 때문에, ‘진짜로’ 대안적인 실천을 하려는 공간들에 매료되죠. 덧붙이면 L.A.D.는 익히 아는 컨템포러리 문법과는 다른, 독자적인 미감을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에, pie는 서브컬처 전시에만 매진하기에, 보물섬은 코발트 광산을 활동의 거점으로 두고 오랜 시간 투쟁해오고 있기 때문에 반했습니다. 모두들 어려운 성취를 해내고 있어요.
C 김민도 빼놓을 수 없죠. 도시 재개발, 강제 철거, 세월호 참사, 대기업 정리해고, 해군기지 및 송전탑 건설 등 숱한 집회, 시위 현장을 기록해 온 활동가이자 사진가예요, 특히 흑백 사진 연작 〈Yes We Cam〉(2012–16)은 경찰의 채증 활동을 역으로 촬영한 작업으로 ‘채증하는 경찰을 다시 채증’함으로써 통제의 수단이 된 카메라의 존재 양식을 되짚어요. 데이터베이스화된 사진이 집회 현장의 인물을 판독하고 처벌하는 데 사용된다면, 기록의 양식으로서 사진의 가치는 무엇인지 따져보자는 것이었죠. 김민이 사진을 무화시킴으로써 혹은 부정하는 방식으로 사진에 접근한다면, 홍진훤은 사진이 ‘기록’이 아닌 ‘사유’를 담아낸다는 것으로써 사진의 존재론을 흔들어요. 용산에서 후쿠시마까지 다양한 전선에 포커스를 맞추지만, 거기엔 불행의 스펙터클도 뾰족한 윤리도 존재하지 않죠. 그의 사진에서 중요한 건 질문처럼 느껴져요. 이게 세상의 일부라면, 이 외부에 무엇이 있는지 또 어디서 출발해 지금의 장면에 도달하고 말았는지, 그래서 우리는 다음 장면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 물음을 멈출 수 없게 만들어요.
U 저는 최황의 영등포구 무주물 동상 사건을 기리고 싶네요. 영등포구에 있던 군부대가 이전하면서 고 박정희의 동상을 남겨두고 가요. 원래라면 그게 영등포구청으로 관리이전 되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 거죠. 최황 눈엔 그게 엄청나게 이상하게 보였나 봐요. 관리책임 소재 파악 후, 그걸 무주물로 규정한 작가는 동상을 훼손하죠. 그러고 법원에 가서 재판을 받고 벌금형을 받아요. 이런 배짱 튕기는 예술들이 계속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란종으로써의 예술이기 때문만은 아니고요. 세계 어느 틈바구니에 볼수록 이상하게 덜렁 놓여있는 그 사물을 냄새 맡는 후각부터, 무주물로 규정하기까지의 서치, 반달에 수반되는 책임에 이르기까지의 콤비네이션을 보세요. 귀감이라 할 만해요. 별개로 이런 벌금 아르코가 대신 좀 내줘야 할 것 아니야. 내일부터 민원 폭탄 예고할게요.
재난
U 우리 사회는 사실 재난의 사회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 같아. 삼풍백화점, 세월호, 이태원, 최근엔 오송지하차도도 잠겼죠.
C 보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재난은 서해교전, 연평해전이겠죠.
U 그렇죠. 죽음도 좌우가 있고 유골도 좌우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좌파가 규명하는 죽음의 비극이 민간인 학살이라면, 우파가 지지하는 죽음은 국군들이죠. 예술가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재난의 이미지들을 찾죠. 근대를 탐사할 땐 증언과 맞물려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 같고요.
C 조금 못난 발언일 수도 있는데 예술가한테 재난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난 회차 때 얘기했듯이 재난이 ‘세계’를 만들어주기 때문이에요. 세계를 바꾸려면, 그전에 먼저 세계가 있어야 된다고 했었잖아요. 세계에서 각자가 따로 있거나, 혹은 각자가 표상하는 N개의 세계에선 싸워나갈 전선을 만들 수 없어요. 근데 재난은 그 공통의 지평을 만들어줘요. 감각과 내러티브를 사용하긴 하지만 그게 보편성을 담보해주진 않아요. 각자 처해 있는 맥락과 배경이 다르니까요. 반면 재난은 개개인이 겪는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경험하는 사건이에요. 광주 이후, 세월호 이후, 이태원 이후라는 말이 가능한 것은, 우리 중 누구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죠.
U 저는 이걸 암흑 숭고dark sublime라고 부르고 싶어요. 기존의 숭고는 자연-무한과 관련되었죠. 이제는 인공-극대유한과 관계 맺는 감정인 것 같아요. 와, 몇 명이 죽었대. 하고 놀라버리잖아요. 초래된 결과에 대해 우리가 무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간에 쌓아 올린 모든 매뉴얼, 안전조치와 장치들이 실제 기능이 아니라 그럴 거라는 신념 체계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는 순간에까지 공백은 들이닥치죠. 한편, 재난에 대한 이미지들은 대부분 앱스트릭 한 것 같아요. 불분명하기 때문이겠죠. 제 직장도 사람을 살리는 게 일이지만 이 안에서도 재난은 버겁고, 명료하지 않고, 혼란스러워요.
C 암흑 숭고라는 단어에 적극 동의해요. 그리고 그 안에는 두 번의 무력감이 존재하죠. 칸트가 말한 숭고는 자연의 스펙터클처럼 인간의 인식을 뛰어넘는 무언가에서 얻는 인상이잖아요. 재난은 인간이 성취한 제도와 시스템 같은 합리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숭고를 일으키죠. 그러나 암흑 숭고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두 번째 숭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다시 한번 정상화된다는 거에요. 비극이 일어났어요. 그럼 어떡해야 해요. 오류가 있다면 수정하고, 극복해야죠. 근데 수정도 극복도 없이 세상은 한 재난을 그저 ‘지나갈’ 뿐이에요. 흔히 소설론에서 사건과 사고를 구분할 때 이런 기준을 둬요. ‘사고’는 한 이벤트가 일어났을 때, 상황을 그 이벤트 이전으로 되돌리려고 하는 인식이에요. 여기서 주체는 변하지 않아요. 그저 상황만을 복구하면 그뿐이죠. 마치 교통사고처럼요. 그러나 사건은 달라요. ‘사건’은 그 이벤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요. 이때 변해야 하는 대상이 상황이 아니라 주체죠. 마치 사랑이 시작된 후 바뀌는 게 오직 사람인 것처럼요. 세월호와 이태원은 분명 사건이지만, 지금의 세계는 그것을 사고라 지칭해요. 무엇도 수정하거나 극복하지 않았는데, 그 이벤트가 없었다는 것처럼 우린 다시 일상성을 회복하고 제자리로 돌아왔어요. 두 비극은 발생에서 무력감을 느끼게 했고, 그리고 이후에 세계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시 무력감을 느끼게 하고 있죠.
U 우발적인 사고인 것처럼 기능한다는 거죠, 하나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우리가 역사에 대해 말하면서 사건은 없고, 사고만 있다고 말했죠. 저는 사건 역시도 소급적이라고 생각해요. 사건이 되려면, 사고에 그치지 않으려면 원인규명과 책임, 재발방지에 이르는 광범한 노력이 필요하죠. 그건 일종의 내러티브라고도 볼 수 있어요. 근데 안 그래요. 내러티브를 생산할 정치가 부재해요.
C 세월호 터졌을 때 당시 여당이 제일 많이 했던 워딩이 교통사고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잖아요. 매년 교통사고로 이 정도의 사람이 죽는다고 했던가요. 호들갑 떨지 말라는 거였죠. 정쟁하지 말라는 거였잖아요.
U 그렇죠. 재연 씨는 그런 재난과 스스로가 연루된다고 느낀 적이 있어요?
C 의식화하려고 노력하는 쪽에 가까운 것 같아요. 감각이라기보다 의식으로. 누가 말한 것처럼, 한 비극이 텅 빈자리를 마음속에 만들었다고 말한다면 저게는 거짓말일 거예요. 저는 그다지 좋은 사람은 아니어서인지 밥만 잘 먹었는데요. 오히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사고가 사건으로 이행되기 위해서 중요한 건 인식이에요. 즉 감정적인, 인상적인 충격뿐 아니라 의식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일환으로서 재난에 매진하는 작가 역시 그것을 인식적으로 사건화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제현 씨는요?
U 저도 체감 잘 못해요. 그래서 가끔은 재난에 윤리적 포커스로 접근하는 작가들 전부 사기꾼 같아요. 제가 의료인이다 보니 죽음에 무뎌진 걸 지도요. 한편, 재난이 진짜 일어났던 일이라면 재발방지에 총력을 다해야 하는데, 당신 말대로 그게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니까 체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체감이 제 문제가 아닌 거죠. 그때 그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되었지. 하는 식이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으니까 ‘이게 진짜 일어난 일이긴 한가?’ 싶은 거죠. 코로나19는 달랐죠. 너무 선명했어. 마스크를 쓰고, 백신을 맞고, QR코드로 입장을 제한하고, 수시로 방역을 하는 등 명백한 변화가 있었어요. 근데 이태원 참사 이후로 접하는 뉴스 응급실 뺑뺑이잖아요. 몇 차례의 재난을 겪어도 한 사람을 이송하는 일조차 제대로 작동 안 하는 세상을 살고 있어!? 그러니까 지금의 정치가 우리 삶을 유지시킬 수 있는 일관되고 모범적인 체계로써 기능하고 있냐는 생각이 들고, ‘이게 나라냐’는 물음이 지극히 온당했다 싶죠.
C 다시 작업 얘기로 돌아가면 저는 여기에 홍순명 작가를 언급하고 싶어요. 우리가 아까 말했던 공통의 지평을 만들기 위해 대학교 운동권이 제일 먼저 실시하는 교육이 뭐 의식화에요. 우리가 노동자가 아닌데 노동절 집회에 왜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따지는 문제죠. 해당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아도 어째서 노동 운동, 여성 운동, 장애 운동에 참여하는지에 대해서요. 세월호 사건을 의식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 비극이 단순히 안산 앞바다에서 일어난 특정한 누군가가 죽은 사건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죽을 뻔한 사건이고 우리가 모두가 죽을 수 있는, 앞으로도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과정이에요. 이런 관점에서 홍순명의 그림은 특정한 재난을 소재 삼지만, 그 이벤트가 직관적으로 떠오르지 않은 상황으로 관객을 내몰아요. <사이드 스케이프> 연작이 그런 전략을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작품이고요. 작가는 비극의 중심이 아니라 재난 주변에 있는 바다와 해일, 도로변을 그려요. 그때 재난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우리 삶의 어떤 맥락에서도 출현할 수 있는 일반명사로 나타나요. 어떤 바다를 보든 홍순명의 그림 이후 우리는 세월호가 침몰했던 그 바다가 끊임없이 연장되고 있는 감각을 목격해요.
U 얼룩말 세로가 탈출했던 그 사건이 생각나네요. 오영진 교수가 되게 재밌는 말을 했었거든요. 「얼룩말 세로의 탈출: 우리 시대의 초현실」[2]이라는 칼럼 일부인데, “우리는 온갖 ‘비현실’을 창조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대를 사는데도 대낮에 출현한 얼룩말의 ‘초현실’에 놀란다.”고 해요. 재난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문장 같아요. 초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문명사회면서도, 지상에선 트래픽에 의한 참사를 겪는 도시를 살고 있죠. 광주의 아파트가 붕괴한 일 보세요. 그 이후에 검단의 아파트가 지하주차장부터 망가지죠. 기시감이 계속해서 일어나니까 반복이 현실을 일깨우는 감각이 아니라 현실의 부재를 일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져요. 차이와 반복이 현실의 원리가 아니라 비현실의 원리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죠. 무의미가 구조화되고, 반복 안에서 차이가 뭉개져요.
애도
U 이론부터 시작해 보죠. 프로이트가 애도를 상실을 극복하고 상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했지만 데리다는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상실 이전이 아니라 대상을 삶 안에서 통합하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 그걸로 나아가는 거라 말했죠. 당신은 애도의 경험이 있어요?
C 이별의 과정 자체가 애도랑 굉장히 닮아 있지 않아요? 자기 삶에서 굉장히 밀접하게 지냈던 사람이… 물리적이고 생물학적인 죽음은 아니지만. 사실상 내 인생에선 사별이죠. 이제 더 이상 그 사람을 볼 일이 없어지는 거고 그 사람의 흔적들을 치우고 버리고 한다는 점에서 사실 사람이 죽고 나서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과 다를 바가 없어요.
U 애도 많이 하셨나 봐요.
C … 사실 재난하고 연장선상의 이야기인데,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 중에 부재의 존재론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얘기가 맞는지 모르겠다. 부재가 존재를 증명한다고 해서. 핸드폰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핸드폰 없이 살아보면 된다. 이별을 아까 애도의 일환으로 얘기했는데 그것도 마찬가지죠. 사랑하는 사람이 진정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 사람 존재 자체를 알기 위해서는 이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죠. 그가 나한테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는 무감각하게 되니까요.
U 저는 평범한 인간답게 지나간 연인들의 소중함은 지나고 알았어요. 너무 공기 같아서. 있을 때는 진짜 지극히 당연하지만 없으니까 질식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을 느꼈던 것 같아요.
C 너무 편한 사람, 너무 고분고분한 연인은 공기와 같고, 너무 편한 팬티는 입지 않은 것 같고, 너무 편한 신발을 신지 않은 것 같잖아요.
U 빤쓰로 문학해버리시네.
C 사회적인 애도는 나하고 아무 연고도 없고 상관없는 사람의 이웃이 되고, 가족이 되는 일이잖아요. 그 사람들이 없다고 해서 내 삶에서 기능적으로 하자는 없어요. 세월호와 이태원에서 죽은 사람들이 내 삶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게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고요. 근데 그 부재를 애도한다는 것은 그 사람들이 어떤 기능, 사회적인 가치나 그러니까 GDP 따위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 자체 그 하나하나에 주목한다고 볼 수가 있죠. 그런 측면에서 애도의 미학, 예술의 가치는 기능으로 치환되던 존재자를 다시 존재 자체로 되돌리는 계기라고 생각해요. 하이데거식으로 얘기했는데, 한술 더 뜨면 눈앞에 없는 존재를 눈앞에 있도록, 현존하게 만드는 과정인 것이죠.
U 사회적 애도를 수용해야 할 어떤 필요성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그런 거겠죠. 민간인 학살 같은 무고한 학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절차가 있어요. 정확한 원인 규명을 해야 해요. 그리고 가해자를 찾아 처벌해야 돼요. 피해자에겐 보상을 하고요. 이후로 재발 방지책을 세우고, 위령제를 지내고, 추모공원도 만들어야 하죠. 기억의 정치로까지 이어지는 개괄적인 흐름이에요. 그런 면에서 애도는 언제나 불순하죠. 순수한 감정만으론 절대 안 되니까요. 그러니 일베 같은 데서 뭔 관련도 없는 사람인데 슬퍼하냐, 이런 건 한심한 말이죠. 애도는 감정의 차원에서 종결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당연히 일면식도 없는 인간을 어떻게 내 일처럼 슬퍼해요. 반쯤은 주술, 반쯤은 가식, 반쯤은 세뇌, 반쯤은 위선이죠. 반쯤은 진심일 테고.
C 반이 몇 개나 있는 거야.
U ㅋㅋㅋㅋ 아무튼 애도가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전제부터 뒤집어야 될 것 같아요. 의식이죠. 애도는 의식이고 성숙한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참여적 제례인 거고 사회적인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죠. ‘진짜 나 이거 너무 슬프다. 이거 그려야겠어.’ 음. 그럴 수 있죠. 근데 그게 매번 새로운 듯 경악하고 슬퍼하면서 소재로 삼고 끝내는 일은 정치만큼 무책임한 거죠. 내 앞에선 진짜 그러지 말기를!
도시공유재탈환
C 왜 이게 동시대 미술 안의 키워드로 왜 들어왔는지 솔직히 어떻게 저 스스로 설명하기 좀 어려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하고 연관되는 것을 찾자면 젠트리피케이션을 얘기할 수 있겠죠.
U 현실참여-반자본주의-공유재탈환-예술에 이르는 의미의 사슬을 한꺼번에 다뤄 사유한다면 사적 소유는 천부적 권리로 표명되고, 공유는 극단적으로 취약해진 시대를 살고 있어요. 자본주의는 화폐를 자본으로 전환해 생산물보다 이후 더 많은 화폐로 되돌리는 데 전력하는 체제인 동시에 생산 수단을 사유화하는 체제잖아요. 이때 사유는 분명 공유의 지대와 대립하죠. 자본에 잠식당한 공공 부문을 재탈환하려면 다른 방식의 감각과 삶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줘야 하죠. 다른 삶의 감각 역시도 다른 방식의 물질적 토대와 그 구성의 논리를 통해 작동할 거란 말이죠? 그러니 공유재를 탈환할 거라면 예술 안에선 탈환한 공유재를 어떤 방식의 대안적 삶의 이미지로 제시할지 분투해야 해요. 실제로 사회주의 프로그램 중에 그런 것들이 있대요. 국민연금으로 돈 많이 쌓이잖아요. 그걸로 기업을 사들이자. 그래서 국유화하자. 그래서 점진적인 사회주의 하자.
C 북유럽식 사민주의 모델이잖아. 사회 구성체만이 아니라 진짜 물리적인 공유제를 얘기하기도 하죠. 토지 공개념도 그렇고요.
U 마르크스가 인권을 비판했던 지점 중에 하나는 우리를 자꾸 원자 레벨로 분할시킨다는 주장이었는데. 분명 개인을 보장하면서 자유주의가 세계를 견인했지만, 이제는 인권의 사적 성격만 주장하느라 인권 자체가 위협받는 역설 상태에 처해 있다고 생각해요. 근사한 예로 최근엔 서이초 사건이 있었죠. 질문을 바꿔야 해요. 사회권은 어떤 방식으로 주장할 수 있지? 나의 사회적 존재로서의 형식은 무엇이어야 내가 그 내용으로써 온당하고 행복하게 존재할 수 있지? 그걸 예술이 이미지로써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젠트리피케이션 얘기 해주세요.
C 젠트리피케이션이야 말로 예술가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회적 문제일 것 같아요. 젠트리피케이션 자체는 젠트리 계급 이른바 중산층이 저개발 지역에 들어오면서 그곳이 개선되는 현상을 가리키잖아요? 근데 한국 모델에서는 중산층이 주체가 아니야. 예술가와 흔히 말하는 골목 상인으로서 소자본이 주체지. 자본이 개발해서 인프라가 생기는 게 아니라, 싼 땅을 찾아 정착한 예술가와 상인이 인프라를 만들면 임대업자, 기업들이 권리 행사를 시작하면서 원주민을 내쫓는다고. 작업이 안 팔리고, 돈 없는 거야 그냥 예술가 ‘종특’이라고 칠 수 있어. 근데 홍대 이태원, 성수, 문래동 등에서 겪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아티스트가 성취해 놓은 무언가를 눈 뜨고 빼앗기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는 토지 문제나 공유재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어. 차지량이 빈 집, 공터, 공사 현장 등을 점거하고 그곳에서 퍼포먼스와 낭독회를 벌인 <뉴홈>, 두리반 철거 농성, 예술가와 활동가 여기에 재개발이나 임대료 상승으로 자리를 뺏긴 상인이 모여 공유지를 점거해 마을과 공원을 조성했던 ‘경의선공유지’ 등이 대표적인 사례죠.
U 재연 씨는 토크에서 항상 작가들을 예시로 드는 모습이 진짜 미술 비평가 같더라고요. 보기 좋습니다. 저는 안 그렇게 사는데. 배우고 싶어요.
C 공유재 앞에 ‘도시’라는 말을 붙여서 그렇지, 공유는 예술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키워드에요. 예술 최고의 위치는 인류 공통의 자산으로 공유되는 것이잖아요. 예술의 정의를 내리긴 쉽지 않지만, 적어도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감각엔 예술의 기준선(예술을 예술로 인지하게 만들거나, 예술처럼 보이게 하는)이 있는 것이고, 전위는 그것을 부수고 고유한 감각을 공유된 감각의 형태로 미술관에 입성하고자 하죠. 예술가는 자신이 만든 예술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란 사실을 직감한다고 생각해요. 태그만 붙어있을 뿐, 자신의 소유가 아니게 될 수도 있고, 자신이 숱한 작가노트를 붙여낸다고 하더라도 해석을 통제할 수도 없죠. 처음부터 ‘공유’란 말에 열려 있다고요. 근데 그걸 자본과 기업이 땅문서를 들이밀면서 가져가려고 하다니 기가 차지.
U 인간에게 공간은 지속적인 착취의 대상이에요. 토지를 일궈 농작물을 주는 지주-소작인에게 토지는 면에 해당되었는데, 화폐의 사납은 3차원 면체의, 더욱 입체적이고 효율적인 착취로 변했죠. 전 여기서 구체적 행동보단 미학적인 반경에서 새로운 감각만 제시해도 충분하다고는 생각해요. 왜냐하면 대안적인 삶의 모델들이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고갈되어 있으니까요. 젠트리피케이션이 공유재탈환과 잘 맞는 이야기인 건 분명해요. 우리가 만들어낸 어떤 커뮤니티가 있어. 연남동, 홍대, 성수, 문래 등이 그렇죠. 근데 쫓겨나야 해요. 잘할수록 쫓겨날 위협이 커져요. 갑자기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예술가의 도시를 만들어라!!! 정부가 그냥 땅을 줬으면 좋겠어요. 예술가들만 거주할 수 있는 예술지구. 그냥 온갖 협동조합의 형태로 살 수밖에 없는 단위를 형성해요. 이제 강제적으로 진정성 있는 예술만 있는 거야. 예술을 하고 싶어? 그럼 넌 농사도 해야 되고, 마을회의도 해야 되고, 향악과 두레를 해야 하는 거야. 치외법권으로 그냥 저기 망해가는 창녕 같은 데 내놓으라고 해야 돼요. 비과세도시로. 청년관 같은 주장 하품 나오죠. 예술 지구가 훨씬 섹시해, 안 그래요? 땅을 내놔라. 우리가 지구에 달을 만들어 줄게.
C 예술특별자치도로 만든다?
U 예술특별자치도로 만들어 주세요. 제주도 서귀포시에 땅 일부 떼어가지고 반 갈라서 그렇게 해주세요. 대성동이나 미군기지처럼 완전 이질적인 공간 구성하자 이거에요. 전시 끝난 처치곤란 작업들 전부 갖다 놔서 일타이피 해버리고, 남는 땅은 미래세대 예술가들을 위해 놀리고, 그 안에서 전인적인 활동을 해야 돼요. 난 그런 점에서 몇몇 사이비 단체를 사랑해요. 막 에덴동산 지구에 만들겠다고 밭 일구고, 하나님 말씀 듣고.
C 작은 공산주의죠.
U 너무 아름답잖아요. 그런 삶을 살고 싶어. 사이비를 진심으로 믿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시대는 진짜 예술과 삶이 가장 비극적으로 일치한 사회예요. 아방가르드의 꿈이 최악의 형태로 달성되었죠. 이제 우리가 요청할 거? 예술과 삶의 분리. 유미주의 식의 분리 말고. 예술을 새로운 범주로 개작할 수 있는 현실적 분리가 필요해요.
급진성
U 저는 작년 카셀 도큐멘타 그거 급진적이라고 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거기는 저자성도 희박해 보였고, 작품들이 덩어리 져 보였고, 작품과 공간의 더께라는 게 희미해져 있었기 때문에 작품 자체가 사라진 것처럼 보였었어요. 지원을 받아 시도했지만 루앙 루파가 표를 팔아 누린 초과이익을 어떻게 분배할 거냐는 얘기로까지 나아갔었기 때문에 굉장히 저는 급진적인 어떤 실천 중 하나였다고 생각해요. 근데 타링 파디였나요? 그 사람 회화 작품에서 좀 다윗의 별 몇 개 그려져 있다고 서구의 역린을 건드려서 그 큰 테마를 포기하고, 히토는 보이콧하고, 그런 식으로 공격하는 거야말로 서구센트럴하죠. 아시아의 방식으로 유대인과 다윗의 별을 받아들이고 표상할 수 있잖아요. 시온주의자로 상상할 수도 있는 건데 말이에요. 어쨌건, 카셀은 특정한 관념 자체를 탈구시키거나 변형시켜 버리는 실천을 보여줬고, 그런 게 급진적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 저자성과 깊숙이 매개된 예술, 앞으로도 지속될 스타 시스템은 카셀15에 의해 제껴졌어요.
C 동의합니다.
U 직후에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베니스 비엔날레 봤었는데, 아직도 국가관 예술한다는 게 끔찍하게 후져 보이더라고요. 무슨 국가대표 나왔어? 우리가 ‘어우 한국은 뭐 하나’ 하는 방식으로 예술 안 보잖아요. 한국 이런 거야? 이런 거 아니잖아요. 이번에 김윤성이 나갔던데 그 사람이 나갔다고 우리가 K-과학하고 뭐, 테크-아트에 진력하고 그런 거 아니잖아요. 아따, 어쩌냐. 말하고 보니까 또 그런 것 같은데?
C 급진성은 실험성에 차이를 두고 싶어. 실험적인 게 미학적이고 감각적인 차원에서 새로움을 시도하는 방법이라면, 급진성은 그 실험성보다 더 엄격하게 예술적으로 새로운 것은 물론 그게 정치적 진보성까지 담보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아방가르드를 급진으로 칭할 때 그것은 그들이 삶과 예술, 그리고 정치가 일치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들이 체제를 바꾸려는 움직임까지 포괄했기 때문에 그런 말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재현 씨가 카셀도큐멘타 얘기했지만, 저는 하나 덧붙이자면 마니페스타 얘기를 하고 싶어요.
U 저는 잘 모르는 얘기라 좀 알려주세요.
C 제현 씨가 아까 예술가한테 도시를 주라고 했잖아? 나는 마니페스타가 그 슬로건에 가장 부합하는 행사라고 생각해요. 마니페스타는 매 회 도시를 바꿔가면서 진행되는 이주형 비엔날레에요. 그리고 선정의 기준은 올림픽이나 엑스포, 잼버리처럼 마니페스타란 행사를 잘 치룰 수 있는 역량이 되느냐가 아니야. 오히려 반대지. 시가 제출하는 마니페스타 유치 의향서엔 빈민, 쓰레기, 내전, 위생과 같은 해당 지역이 앓고 있는 다양한 문제가 기술돼요. 도시는 마니페스타에게 이러한 사안을 함께 예술로서 치료해 보자고 제안하는 것이지. 주최는 도시 문제의 심각성이나 시의성, 그리고 예술적인 가능성을 토대로 판단해 비엔날레 지역을 선정하는 것이고요. 마니페스타의 본질은 ‘개입주의’야. 단순히 전시를 열고 예술작품을 보여주는 이벤트라기보다는, 사회에 개입해 도시 문제에 구조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무브먼트’에 가깝죠.
U 좋은데?
C 작년엔 코소보에서 14번째 마니페스타가 열렸어요. 1998년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후 내외전이 끊이지 않는 분쟁 지역이죠. 도시가 당면한 문제로서 학교나 극장, 미술관과 같은 인프라에도 많은 프로젝트가 동원됐지만 무엇보다 마니페스타14가 신경 쓴 부분은 시민과 예술가 사이, 또 시민과 시민의 연대 구축이었어요. 외부 단체가 개입해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다음의 문제는 그 결과를 이어 나가거나 발전시키는 거에요. 연대는 후자를 가능하게 만들죠. 시민이 토론할 수 있는 공간과 문화를 만들고, 대응할 수 있는 구심점을 찾는 게 마니페스타14의 목표였어요.
U 국제적 행동주의네요.
C 대주제를 전시와 운동의 병행으로 이행한다는 점에서 그러니까 예술과 정치적 실천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니페스타는 분명 급진성을 담보한다고 얘기할 수가 있겠죠.
U 좋네요. 황금마차 같은 예술 아니어서. 근데 한편으로는 올림픽이 전지구적 번영과 평화를 얘기한다고 하지만 각 도시를 폭력적으로 착취하고 재구조화하는 명분으로 삼잖아요. 마니페스타에서 도시 문제는 관료 엘리트가 상상하는 문제기도 한데, 올림픽처럼 누군가 피해를 받는 문제는 없나요?
C 시정과 맞물린다는 점에서 또 외부인이 현지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엘리트주의적인 부분을 피할 순 없죠. 그러나 마니페스타는 올림픽처럼 외부의 관광객을 향해 열리는 행사가 아니에요. 올림픽은 도시의 존재를 관광 자원 내지 관광 상품으로 만들면서 타자화하지만, 마니페스타는 도시민을 주체화하고자 하는 기획이죠. 당연히 도시의 예술가와 큐레이터가 행사에 결합하고, 그 개입의 어느 하나 도시민의 영향력과 주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게 대원칙이에요.
U 들리는 말이 너무 나긋해서 상품화된 비엔날레보다 훨씬 기대를 품을 만하네요. 저도 좀 찾아봐야겠어요.
이주
U 디아스포라에 관한 작업들은 되게 많이 봤던 것 같아요. 20세기는 뭐 이주의 역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니까. 다만 20세기는 스탈린적 강제이주라면, 21세기는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죠. 캄보디아에 있는 남자가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청주 흥덕구의 산단에 가서 일을 하지만, 오롯이 자기 선택의 문제로 보이는 것처럼요.
C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이주해 가거나, 러시아, 연변으로 이주한 사례도 있고 6.25 전쟁 당시 피난민이 부산으로 이주하거나 아니면 이북으로 넘어간 사례도 존재하고요. 대표적으로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이주했다가 거기에 정착한 자이니치를 언급할 수 있겠죠. 2019년도 경기도미술관에서 디아스포라 기획전을 열기도 했었죠. 그때 기억나는 작가 중에선 리정옥이 있어요. 자이니치 3세 출신이고, 여전히 일본 사회에서 작동하는 혐오와 차별을 다루는 화가에요. 아시아에서 이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작가라면 아이 웨이웨이를 빼놓을 수 없고요. 아이 스스로도 중국 정부의 탄압을 피해 독일에 망명 중인 작가이기도 하고요. 자신의 디아스포라적인 정체성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난민을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이주’ 그 자체를 다룬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난민의 난파선을 재현한 조각, 난민의 동선을 레고로 표현한 회화 등등.
U 재연 씨가 정체성으로 얘기했으니까 저는 작업으로 얘기하고 싶네요. 《뉴스 리플리에게》전에 나온 스코픽 〈난민들〉이에요. VR기기를 쓰면, 그리스 레스보스 섬 연안으로 상륙하는 난민 중 한 명으로 현현하게 만들어요. 일시적 여행은 경제의 논리로 시시각각 집계되고, 그보다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은폐되고, 최악의 형태인 난민은 거부되는 세상. 말로 하고 보니 새삼 놀랍네요.
C 법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게 디아스포라의 가장 큰 특징일 것 같아요. 이 세계의 민낯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는 대목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리고 세계 인권 선언에서 보면 인간은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모두가 존중받아야 하고,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갖고 있고, 교육의 권리를 갖고 있고, 어떤 정체성에 의해서도 차별받지 않는다고 나와 있잖아요. 이걸 동의한다고 190여 개 국가가 UN에 가입했고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권리고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자연권이죠. 근데 디아스포라의 등장과 그들이 겪는 문제라는 게 결국 그런 것들이 전부 다 그냥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들을 지적해 주잖아요.
U 법적 구속력이 민족 국가를 토대로 발현될 때의 증환이죠.
C 국제인권이다 혹은 국제기구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모든 어떤 우리가 믿고 있었던 어떤 상상적인 질서가 고작 상상, 허구 불과했음을 디아스포라가 보여줘요. 법의 이념은 정의이고, 그것을 작동시키는 게 국가다? 개소리죠. 오히려 각 국가는 그냥 각 민족끼리의 이해 공동체, 각 시민 공동체의 이기성을 추구하는 수단에 불과했다는 것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디아스포라라는 것은 현대에서 그저 국가의 민낯 혹은 세계 정치의 어떤 민낯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대목이 아닐까?
U 18세기의 인권이라고 하면 군주정을 위해서 싸웠어요. 그리고 19세기는 경제적 자유를 위해, 20세기는 민족 자결권을 위해 싸웠고, 21세기의 인권은 정체성을 위해서 싸우죠. 시리아 난민을 생각해 보게 돼요. 시리아를 상대로 서방 세계가 얼마나 장난을 쳐 왔어요. 이런 데는 자결권을 보장한다는 논리로 접근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여기선 차라리 미군이 주둔하고 개입해서 치안을 유지하는 게 더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실상 어떤 실제적 인권유린도 자결권이라는 미명 하에 방치하게 되니까요. 제가 성급한 휴머니스트라 이런 접근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한국은 반도적 성격 탓에, 북한과도 고립되어 있으니 국가라는 울타리가 너무 확연해서 이주 문제엔 너무너무 서툴죠. 예멘 난민 이슈만 봐도 그렇고요. 국민만을 책임진다는 범주 너머는 어떻게 상상해야 할까 싶어요.
C 그런 측면에서 이게 당연히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난민 문제가 부각되기 전까지는 사실 국가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들이 어떤 진보적 의제로도 있었잖아요. 국가의 관리나 통제 대상에서 벗어나서, 국가에 등록되지 않으려는 어떤 자유로운 움직임이 진보적 의제였던 시대가 있었다고요. 근데 그 시대가 지나가서 난민 문제가 부각되니까 반대로 진보의 의제가 국가에 등록시켜라라는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하는 거죠. 인간의 권리는 사실 국가에 대한 권리니, 그 권리가 없는 사람들은 국가에 등록시키라고요. 그런데 여기에 정반대로 움직이는 게 자본의 논리에요. 초국적 기업은 국가에 등록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잖아요. 국가라는 울타리에서 계속해서 끊임없이 벗어나려고 하고 혹은 국적을 바꾸는 것조차 너무너무 쉬워요. 페이퍼 컴퍼니를 건설한다든지 조세 회피지로 법인을 이동시키려고 한다든지. 일종의 조세, 세금이라는 국가의 권력이라는 악재를 피해서 자유로운 땅으로 넘어간 거잖아요. 조세 회피지의 기업 또한 자본의 형태를 띤 난민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 그런 난민은 얼마든지 허용이 돼요. 정치적인 난민은 불가하다고 학을 떼면서도요. 자본 혹은 자유주의가 지닌 모순점을 강하게 드러낸 지점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어요.
U 옳소!
C 세금이 무서워서 다른 나라로 법인을 이동시키려고 한다. 얼마나 난민의 구조랑 똑같아요. 조세 회피처로 도피시키고 이주시키고 그리고 식별 안 되는 곳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거고.
U 웹진 세미나 ISSUE 7에 정재훈 필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식별되어야 하는가」[3]라는 글을 썼어요. “나는 이처럼 모두의 풍요로움을 지키기 위해 식별되(하)지 않는 것들이 궁금하다. 불편하기 때문에 있어도 공개할 수 없고, 거북하기 때문에 보여도 가려져야만 하는 현실들이 궁금하다. 일부 시민 단체들의 목소리를 통해 대변되는 단편적인 주장을 넘어서서, 혹은 한 개인들의 극단적인 사례가 끊임없이 언론에서 반복되며 “이렇게 불쌍하게 살아간다”라고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들이 대체 어디서, 무얼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 각자가 처한 현실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고, 그래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하는 이슈는 무엇인지를 구체적인 자료와 연구를 통해 이해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가 어떠한 사회구조 속에 묻혀있는지를 켜켜이 밝혀내보고 싶다.” 식별이란 키워드가 나오니 문득 가져오고 싶었어요. 좋은 글이기도 하고.
C 이주는 동시대적 주제가 맞지.
U 그래. 아트지의 기획이 좋네요. 난해한 동시대미술, 키워드들을 집계해서 식별해 줘야죠.
C 여기까지만 하자.
[1] 최병수, 「나의 체험적 예술행동론」, 『희망의 예술』, 139-140p.
[2]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3602.html얼룩말 세로의 탈출: 우리 시대의 초현실 h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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