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의 힘
본 에세이는 주베트남 영국문화원 프로젝트 <다가올 과거의 유산(Heritage of Future Past)>의 일환으로 2018년 8월 19일 하노이 Six Space에서 진행된 도 반 황(Đỗ Văn Hoàng)의 강연을 글로 옮긴 것이다.[1]
I.
기술적인 의미에서 영화 복원은 35mm 혹은 16mm 영화 필름 인화본을 디지털 파일로 옮기는 작업, 그리고 이 파일에 수정을 가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뭉치거나, 손상 및 변색되거나, 디테일이 날아가버린 부분을 복원하는 과정이 포함될 수도 있죠. 색 보정, 조명 보정 및 오디오 리마스터링 등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영화 작품을 새롭고 더 광범위한 대중에게 선보이기 위한 중요 이정표 중 하나가 바로, 영화 제작사 및 배급사 푸옹 남 영화사(Phuong Nam Film)가 2000년대에 선보인 베트남 고전 영화 DVD 컬렉션 발매 프로젝트입니다. 하지만 해당 컬렉션의 작품을 직접 감상한 결과, 저는 디지털 파일에는 어떠한 수정도 가해지지 않음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디지털 시대에는, 디지털 기반 복원이 영화에 주요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지털화를 통해 소위 ‘구원’된 많은 영화 중 대표적으로 1990년대 대만 고전 명작인 에드워드 양(Edward Yang) 감독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A Brighter Summer Day)>을 꼽을 수 있습니다. 2009년 월드 시네마 재단(World Cinema Foundation)이 4K 해상도로 복원해 공개했지요. 색상 보정은 바로 유명영화감독 왕가위가 맡았는데요, 선배 영화감독과 그 스타일에 존경을 표한 사례입니다.
아카이빙 된 디지털 파일 기반의 복원 프로젝트는 최근 몇 년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대표적으로 크라이테리언 컬렉션(Criterion Collection) 혹은 각국의 영화 관련 국립기관이 나서고 있고, 후자의 예로는 영국 영화 협회(British Film Institute)를 들 수 있겠습니다. 다만, 복원된 버전에서 원본 필름 및 감독의 정신 혹은 기술적 결정이 본의 아니게 희석되어 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1960-70년대 제3세계 영화의 주역인 세네갈 영화감독 지브럴 좁 맘베티(Djibril Diop Mambéty), 브라질 영화감독 글라우버 로샤(Glauber Rocha), 혹은 아르헨티나 및 쿠바의 수많은 영화감독의 작품 복원 사례를 들 수 있겠습니다. 프랑스 누벨 바그(Nouvelle Vague, 새로운 물결을 의미) 운동의 영향을 받은 이 감독들은 적은 예산과 간단한 기술적 도구로 작품을 만들어, 빈곤에 허덕이는 개발도상국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현실을 진실되게 투영하는 영화 스타일을 선보였습니다. 복원된 작품들을 감상해 보니, 개인적으로는 복원본이 지나치게 미화되고 현실로부터 멀어져, 원본을 제작했던 제3세계 감독들의 이념과 정신을 잃고 원본이 담고 있던 괴리와 공백마저 메워버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영화 복원이 이러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 공백을 예술적 기법으로써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영화 복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도 있겠습니다. 부재한 것에 이름을 붙이는 것, 침묵 속에 있는 것을 알리는 것, 그리고 과거의 사회적 맥락과 스타일을 재발견하는 것. 영화는 시각과 음향을 통해 다양한 요소를 현현하는 예술이고, 이때의 요소에는 결여된 것들도 포함됩니다. 그 예로 스타일 관련 결정들, 즉 음향을 통해 증폭된 이미지에 나타난, 보이지 않으나 주변에 산재하는 것들에 대한 감정적 표현이 있지요. 로베르 브레송(Robert Bresson)의 영화 스타일에서 잘 드러납니다.
지금껏 살펴본 바와 같이, 특정 유형의 결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관련 시기의 맥락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트런 부(Trần Vũ)의 작품 <소란스러운 여정(Chuyến xe bão táp)>을 통해 베트남 영화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영화가 제작된 1977년은 매우 특수한 상황으로, 대부분의 베트남 영화가 여전히 남부 자유화와 국가 통일의 노고를 선전하는 프로파간다적 어조에 경도되어 있던 시기입니다. 이 영화는 고유의 초기 접근 방식을 통해 당시 베트남 사회의 어두운 면을 조명합니다. 이야기는 하노이로의 여행을 중심으로 펼쳐지면서 전형적인 인물들을 보여줍니다. 손녀를 부모에게 데려다주려고 시골에서 함께 상경 중인 노부부나 전방에서 귀환 중인 군인 같은 이들이죠. 이들은 모두 여정 내내 밀수꾼과 몰래 결탁한 버스 운전사의 무책임함 때문에 곤란에 처하게 됩니다.
한 장면에서는 귀향 버스표를 사려는 군인이 등장합니다. 관료제와 불합리에 대한 유머러스한 대화 너머로 매표소 홀 내의 소리가 들려오지만, 오디오 채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관객이 들을 수 있는 것은 부산스러운 소음과 희미한 목소리뿐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베트남 영화는 동시녹음이 아닌, 가장 기초적이고 저렴한 기술을 이용해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방식을 따랐습니다. 그렇기에 완성된 영화 속 소리는 대부분 분명하지도, 영화적이지도 않았고 고유의 내러티브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이미지의 이해를 돕기 위한 부가적인 장치였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이러한 기술적 결핍이 당시 사회의 다양한 결핍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영화를 통해 이 결핍을 느끼고 양심의 소리를 듣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같은 영화 속 다른 장면을 보겠습니다. 버스가 유난히 험한 길을 지나는데 이번에도 주변 환경의 소리보다는 승객들의 별 볼 일 없는 물건들이 선반과 좌석에서 떨어지는 소리만 들립니다. 접시, 냄비, 프라이팬, 베트남의 보조금 경제 시기[2]와 밀접하게 관련된 물건들입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예의 그 소녀는 쉽지 않은 여정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어 구급차로 옮겨탑니다. 이때 감독은 버스 회사 이사가 차를 타고 가며 버스 기사들의 생계 개선책을 논하는 장면을 이 장면과 병치시킵니다. 소녀가 탄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는 점점 커지며 다른 소리를 압도하는데, 다소 특이한 연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사가 탄 차가 나오는 장면에서도 관객은 차의 엔진 소리나 대화 소리가 아니라 구급차 사이렌 소리만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용된 음향 기술의 제약으로 인해, 감독은 장면의 본질을 소리로 나타내기 위한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말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 도덕의 소리와 사회적 갈등의 섬세한 묘사입니다.
II.
오늘 강연의 후반부에서는 베트남 영화감독 레 낌 훙(Lê Kim Hưng)의 프로젝트 안을 다루려고 하는데요, 레 감독은 영화 복원을 영화 언어의 한 형태로 보고 있습니다.
극 초창기 베트남 영화이자 녹음된 대화를 실은 첫 북부 영화인 <꽃의 생(Kiếp hoa)>을 감상한 후, 레 감독은 원본 오디오 트랙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영화를 리메이크한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감독과 직접 논의해 본 바는 없으나, 저는 이 리메이크 프로젝트가 현실화된다면 레 감독이 내리게 될 예술적 결정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베트남의 첫 동시녹음 영화인 <꽃의 생>은 1953년에 제작되어 1954년 개봉했습니다. 최근 베트남 내에서 ‘재발견’되어 8년 전 상영된 바 있습니다. 이 영화는 배경이 되는 시기의 사회적 이주와 동요를 다루는데, 당시 청년세대는 한시적이지만 안온한 삶과 혁명의 길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있었습니다. 영화 속 하노이는 결국 사라진 전설이 되었습니다. 영화 속 야외 장면은 베트남, 특히 하노이와 기타 북부 주에서 촬영됐고 실내 장면은 홍콩에서 촬영됐습니다. 각본은 까이 루옹(cai luong)[3] 회사인 낌 충(Kim Chung) 사의 소유주이자 이 영화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트란 랑(Tran Lang, 혹은 트란 비엣 롱(Tran Viết Long 트란 비엣 롱)이 맡았고, 감독과 카메라맨은 광둥계입니다.
<꽃의 생>을 보는 즉시, 수십 년간 베트남 연기 스타일에서 두드러졌던 한 가지 면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바로 배우들이 말하는 방식, 즉 베트남 전통 공연예술과는 달리 단어를 분명하게 강조해 발음하는 방식입니다. 미학적으로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출연 배우들은 정식으로 까이 루옹 혹은 쩨오(cheo)[4]식 가창을 배운 이들로, 낮에는 영화에 출연하고 밤에는 무대에 오른 유명 공연예술인이었기 때문이죠. 음향 측면에서는 동시녹음, 실내 장면 및 무대 공연만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운드트랙과 야외 장면 속 음향은 싱크가 맞지 않고, 풍부하지 못한 배경음은 대부분 영화의 서사적 경계에 머뭅니다.
이러한 결정들로 인해 <꽃의 생>은 뮤지컬 영화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그것이 감독의 목표도 아니었지요. 영화는 내부적 감정의 전개, 움직임, 그리고 장면 구성 방식을 통해 전개됩니다. 실제 음향의 부재는 당시 하노이의 현실을 보여주는 역할도 합니다. 침묵이 그 어떤 것보다도 많은 것을 말해주던 현실, 아무리 작은 소리에도 크게 동요하고 혹여나 어둠 속의 총성은 아닌지 공포에 떨던 현실 말이죠.
<꽃의 생>은 그 공포스러운 공백을 음악으로 채웁니다. 당시의 낭만적인 베트남 노래들은 1954년 하노이의 활기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재현하고, 가수들의 목소리는 모든 것을 잊고자 꿈의 세계에 마지막 작별을 전하는 듯한 감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꽃의 생>의 음악은 벅찰 만큼 극적입니다. 말하자면 <꽃의 생>에는 풍부한 영화적 언어가 없고, 미장센은 빈약하고, 편집을 통한 시각적 리듬도 없습니다. 날 것 그대로의 촬영 방식은 하노이의 파괴를 예견하기라도 한 듯 도시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포착하려는 열망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꽃의 생>의 가치는 (예술적이기보다는) 다큐멘터리 같은 미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레 감독이 영화를 실제로 리메이크한다면, 여타 수많은 베트남 시대극이 안고 있는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배경의 문제, 더 정확하게는 배경의 부재 문제입니다. 영화 야외 장면의 대다수는 호안 끼엠(Hoan Kiem) 호수, 트루크 바흐(Truc Bach) 호수, 응 사(Ngu Xa) 혹은 짜우 롱(Chau Long) 지역 등 하노이 시내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 장소를 당시 모습 그대로 영화에 담을 방법은 당연히 없고, 1950년대의 분위기를 실감 나게 연출하는 것도 매우 어렵습니다. 해외 영화 제작사와 함께라면 사라진 장소들을 CGI 기술로 스튜디오 내에서 재현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현재 베트남의 현실을 생각하면 가능한 선택지는 아닙니다.
이렇게 결핍은 또다시 영화감독들이 현실을 초월할 방법을 찾게끔 합니다. 영화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거나 현실의 단순한 도해가 되어서는 안 되며, 그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레 감독이 이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데에 시각예술, 예컨대 1953년의 배경이 현대 미니멀리즘 스타일로 재해석된 극 형태에서 영감을 얻었으면 합니다. 현실 세계를 그려진 극 무대 같은 배경으로 전환하는 것이죠. 그 속에서 배우들이 이전 작품에 영향받기보다는 자신의 연기 방식을 찾아가게 하는 겁니다. 음향에 의지해서요.
이 방식을 택하는 영화감독이라면 과거의 현실 배경과 정신에 적합한 색과 모양과 구조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시각과 음향의 조화는 상상력이 가능케 한 “사라진 시간의 모색”으로 기능하고, 그 속에서 과거는 음향을 통해 메아리칩니다(응우옌 반 띠(Nguyen Van Ti)가 작곡한 원작 테마곡의 제목 역시 주 엄(Dư âm), 즉 메아리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영화적 언어에 거리감도 부여합니다. 관객은 자신이 보는 것이 재구성된 영화임을 계속 인지하게 되고, 끊임없이 파괴되고 부활하는 도시로서 하노이의 환영을 담은 화면의 감정과 관객 사이에는 거리가 생기는 것이죠. 오직 과거의 소음과 소리와 목소리만이 순수하고 온전하게 보존되는 겁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실로 희귀한 행운이죠.
지금껏 드린 말씀은 <꽃의 생>이라는 영화가 리메이크된다면-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접근방식과 무관하게 영화 복원과 아카이빙이 계속해서 영화 언어의 가능성을 열어주기를 바랍니다. 모름지기 복원 프로젝트라면 원작 제작 시기의 영화 언어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해야 하고, 이로써 원작에 의도적으로 심어진 공백을 메우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변화의 가능성이 과하게 산재하는 현 시대에는 이러한 공백이 완전히 메워지기 십상이나, 영화의 본질은 다름 아닌 그 공백에 있습니다.
저자 소개
도 반 황(Đỗ Văn Hoàng, 1987년생)은 하노이 연극영화 아카데미(Academy of Theatre and Cinema)를 졸업했다. 대표작으로 <Underneath It All (다큐멘터리, 17분)>, <At Water’s Edge (다큐멘터리, 17분)>, <소파에 관한 영화(A Film on Sofa, 단편영화, 17분)>, <A Silent Shout (단편영화, 20분)>, <False Brillante (단편영화, 22분)>, <Drowning Dew (Art Labor Collective 및 트롱 꿰 찌(Truong Que Chi)와의 협업작품)>이 있다. 하노이 DocFest, 야마가타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BFI 런던 영화제 EXPERIMENTA 부문, 파리 퐁피두 센터, 광저우 타임 뮤지엄, 호치민 플레이타임 페스티벌에서 작품이 상영되었다.
역자 소개
윤가람은 시각예술에 뿌리를 두고 말과 글을 만지는 통번역사다. 모어는 시각 언어, 직업적으로는 한국어와 영어를 잇는다. 눈에 띄는 글자와 이미지는 모두 머릿속에서 따라 읽고 그려봐야 직성이 풀리고, 다양한 종교에 관심이 많다. 문화재단 국제교류 프로젝트 및 국제행사 준비 회의, 개발도상국 개발 프로젝트 등에서 통번역을 맡았고, 올 여름에는 미술 관련 프로젝트 및 출판물 번역에 집중하고 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 예술학을 부전공하고 미술가, 기획자, 독립출판인 생활을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영과를 졸업했다.
[1] 역자 주: 본문 속 영화 제목의 경우, 국내에 소개된 영화는 해당 제목을 따르고 그 외의 제목은 사전적 의미에 따라 번역하였습니다. 인명 및 지명의 경우에도, 국내에 소개된 적 있는 이름은 소개된 이름을 따르고 그 외의 이름은 국립국어원의 베트남어 자모표기 세칙을 최대한 준수했습니다.
[2] 역자 주: 베트남 전쟁 이후 1975년부터 1985년까지 대부분의 베트남 국민이 보조금 혹은 배급에 의존했던 시기를 일컫는다. 국민의 70%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산 것으로 추산된다. 출처: https://www.asianstudies.org/publications/eaa/archives/viet-nam-in-the-twenty-first-century-the-unbreakable-bamboo/
[3] 역자 주: 까이 루옹(cai luong)은 베트남 현대 민속극의 한 형태로, 남부 민요, 전통 음악, 중국 기반 전통극, 현대극 등의 융합된 예술 형태다. 20세기 초 시작되어 1930년대 프랑스 식민지 시기에 꽃을 피웠다.
[4] 역자 주: 쩨오(cheo)는 풍자적 성격의 베트남 전통 음악극이다. 출처: https://tourinhanoi.com/guide/cheo-special-type-opera-viet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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