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희 작가론 : 기술혁신 속에서

김태휘
2024.11.30

  2019년 겨울부터 사회를 위축하게 만든 코로나19(SARS-CoV-2)의 흔적은 이제 몇몇 기관과 기업에 정착된 재택근무 정도뿐인 것 같다. 아직 절멸하지는 않았지만, 2024년 5월 한국 정부는 중앙방역대책본부를 해제하여 사회가 엔데믹을 맞이하고 있음을 밝혔다. 21세기에 들어 의학 기술과 보건의료 체계가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바이러스 역시 정체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새로운 사회는 새로이 대두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주하다. 2020년대 초 여러 사회 문제가 감염병 창궐로 표면화 되기 전, 공교롭게도 강은희는 자신의 첫 개인전 《디스턴트 콜링》(17717, 2019)을 통해 연작 ‘디스턴트 콜링(Distant Calling)’을 소개했다. 마치 곧 들이닥칠 바이러스가 가져올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와 그 여파를 예견하듯 말이다.

〈Call1_디스턴트 콜링〉(2019), 강은희, 2채널, 8min.

2019.

  연작을 구성하는 세 편의 영상 중에서 첫 번째 작품 〈Call 1_Distant Calling〉(2019)은 작가(이하 EK)가 미국에서 지내는 친구(이하 MC)와 통화하는 형식을 갖는다. 얼핏 듣기엔 잡담 같은 대화 소리와 함께 화면에서는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도시와 자연의 이미지가 비친다. 이따금 대화의 소재가 되는 이미지가 메신저앱에서 사진이나 영상을 공유하듯 등장하기도 한다. 대화는 미국과 13시간의 시차를 적응 중인 작가가 친구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친구는 잘 보내고 있다고 대답하면서도 뒤이어 태풍 때문에 꼼짝없이 집에 갇힌 점이 기분을 좋지 않게 한다고 말한다. 안부인사에 잘보내고 있다고 대답했지만 이내 대답과 다른 본심을 말하는 MC처럼, EK 역시 이리저리 화젯거리를 바꾸면서 간접적으로 자신의 의식의 흐름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친구 집의 반려 기니피그의 안부를 묻다가 별안간 기니피그가 사육장 밖의 야생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지 궁금증을 갖는다거나, 뉴질랜드 생태보호구역의 멸종위기 조류 타카헤가 비둘기처럼 도시에 적응할 수 있을지 말이다. 화제는 심층적인 토론이나 실천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얕은 대답과 다른 화제로 전환한다.

  애써 이 이야기의 설명에 지면을 할애하는 점은 주체의 무력함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두 사람이 야생이나 도시에 거주할 필요가 없는 동물들의 적응을 대화 소재로 삼는 것은 사육장과 생태보호구역이라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 거주하는 기니피그와 타카헤의 처지는 외출을 방해하는 태풍 또는 먼 거리의 제약으로 타인을 만날 수 없는 인간의 처지와 고스란히 겹쳐져, 심리적인 투사가 발생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 후반부에서는 모종의 이유로 두 인물은 영상통화를 음성통화로 전환하게 된다. 상대방의 얼굴을 대체한 파란 기본 프로필 이미지를 바라보게 됨에 따라 앞선 통화에서 인지하지 못했던 서로 간의 물리적 거리를 체감한다. 작품의 전반부가 태풍처럼 극복할 수 없는 환경을 무의식적으로 견디기 힘들어하면서 다른 대상에 함께 투사하고 동일시했다면, 후반부에서는 오히려 기술과 감각에 대한 제약에 대해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MC는 이러한 상황을 울적하게 받아들이지만, EK는 이 상황을 오히려 상대방의 얼굴과 목소리를 더 상상할 수 있다며 기술의 빈틈을 가능성으로 생각한다. 이 작품의 결말처럼 강은희의 초창기 작품 경향은 주로 기술을 둘러싼 일화를 통해 극복할 수 없는 조건 속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구조를 대체로 보인다.

〈Sunburn, AIBOs, and Memento Mori (2020 / 2022 ver.)〉(2020/2022), 강은희, 단채널, 12분 31초.

2020.

  이듬해 강은희는 유준 하타치와 공동창작한 영상 작품 〈Sunburn, AIBOs, and Memento Mori〉(2020)를 제작했다. 두 작가는 이야기 소재를 틈틈이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며 ‘디스턴트 콜링’보다 가다듬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나씩 꺼낸다. 2018년 두 화자가 이야기를 나눴던 카페가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11월에 영업을 종료하게 되자, 작가는 구글맵 리뷰에 추억이 있는 이 카페의 3D 모델링 파일을 원하면 연락을 달라는 글의 말미에 “RIP”라고 카페에 조의를 표한다. 감상자는 추억이 깃든 공간을 작별하는 작중인물의 행위를 통해 생물에 한정된다고 여겨지는 죽음의 해석이 확장되어 카페 역시 당면할 수 있는 개념임을 인지하게 된다. 다만 작품은 죽음 그 자체보다, 기술이 부여한 죽음에 반응하는 새로운 문화 현상에 중점을 둔다. 사망자의 페이스북 계정 및 데이터 상속을 지원하는 서비스나 소니의 강아지 로봇 아이보(AIBO)의 주인들이 치뤄주는 장례식의 사례는 앞서 카페의 죽음을 3D 모델링 이미지로 아쉬움을 달래는 작가의 행동처럼 인간의 정서가 축적된 비인간에 대한 작별의 과정이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주목한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의 삼면화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1490-1510)이다. 지옥에 해당하는 그림 속 누워있는 인물의 엉덩이에 표시된 악보를 연주한 어느 블로거의 시도를 주목하며, 작가는 매장되었던 것을 발굴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음에 주목한다. 이는 강은희가 자신과 지인 간의 대화와 리서치를 기반으로 창작하는 앞서 소개한 작품들을 일부 연상하게 하면서도, 예술 작품 또는 예술계가 새로운 의미의 갱신을 통해서 미래에도 작별하지 않고 생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한다.

〈여의도 투어: 환상의 버블 (투어를 위한 안내 영상)〉(2021), 강은희, 단채널, 7min 50sec.

2021.

  강은희는 권정현 기획의 단체전 《믿음의 자본》(SeMA 벙커, 2021)에서 〈여의도 투어: 환상의 버블〉(2021)을 제작했다. 엔데믹 이후 각 국가의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 조정과 2010년대부터 비트코인의 가격이 고공행진은 2020년대 초까지 경제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예술계에서도 이 시기 가상화폐, NFT, 메타버스, 주식에 주목하는 여러 시도들이 이어졌고, 강은희도 여의도 증권가와 핀테크(FinTech) 산업 구조에 집중하여 영상 작업과 투어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작가가 이전에 다루던 감각과 정서는 이번 작품에서는 주목하고 있지 않으나 적응 또는 극복할 수 없는 조건에 대해 고민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자본주의는 마치 피할 수 없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여의도 투어: 환상의 버블〉의 영상은 동명의 투어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영상과 이 투어를 후원하는 가상의 어플리케이션 ‘Next Future Pay’의 중간광고가 소개 영상으로 크게 2개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개 영상과 광고의 형식적 특징에 따라 작가가 이전 작품들에서 주로 사용해 왔던 지인과 나누는 대화는 등장하지 않는다. 중간광고가 NFC 결제 시스템을 통해 편의성과 거래, 커뮤니케이션을 결합한 나름의 기능과 비전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투어 프로그램 소개 영상은 과도한 수사를 통해 자본에 대한 환상을 일방적으로 밀어부친다. 내레이션은 여행의 코스나 일정, 가격조차 언급하지 않고 그저 고객에게 투어 너머의 자본주의를 의심하지 말고 편승할 것을 손짓한다.

  작가는 총 7개의 핀에 NFC 태그를 통해 〈여의도 투어: 환상의 버블〉의 투어 관련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웹페이지로 접속하도록 설계하고, 직접 가이드 역할을 수행하며 여행객을 이끈다. 투어 프로그램은 전산화와 자본으로 추동하는 환경 속에서 유일하게 실물 우편을 보낼 수 있는 여의도 우체국이나, 가상화폐와 기념주화에 대한 리서치 등을 공유하면서 여의도를 둘러보는 인식적 지도 그리기의 방식을 취한다. 이를 통해 참여자는 직접 여의도 금융중심 지구단위계획 구역을 걸어다니며 증권시장과 작가가 짚어낸 도시의 이면을 바라볼 수 있다. 특히 투어의 마지막 핀에서 한국투자증권의 빌딩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자본에 대한 환상을 직관적으로 확인하게 한다. “True Friend”의 F와 “友”의 획수와 겹쳐진 한국투자증권 브랜드 아이덴티티(BI)를 통해 친근함과 신뢰로 위장한 동시대의 자본주의의 전략을 감상자에게 공유한다. 한국투자증권은 한국신용평가로부터 AA등급으로 평가받은 대기업인 동시에, 2019년부터 1조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해 왔기에 몇몇 고객은 친근감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최근 5년 압수수색이 진행된 사건만 해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펀드 사태, 새마을금고 PF 불법대출, 파두 뻥튀기 상장에 이른다. 브랜딩이라는 허울이 과연 이 회사의 경영 전략과 일치하는지 비판적 사고의 여지를 남긴다.

〈Dear Freeze〉(2023), 강은희, 단채널, 20min 35sec.

2023.

  가장 최근에 발표한 영상 작업 〈Dear Freeze〉(2023)는 작가 자신을 ‘미래 엄마’로 설정하고, 냉동 난자의 입장에서 서술한다. 사람이라고 칭하기에도 물질이라 칭하기에도 곤란한 ‘난자’는 양측의 속성을 일부 가진 중간자적 입장에서 성장의 잠재력을 갖는다. 냉동 난자는 미래를 위해 인간의 가치관을 배운다. 미래 엄마와 미래 할아버지인 파파캉, 딸을 양육하는 지원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아를 탐색하려는 의지를 다진다. 작중에서는 정체성과 자아에 대한 탐색을 ‘리듬’을 찾고 유지하려는 시도로 표현되고 있으며 나이와 성별과 무관하게 모두가 당면한 문제로 모든 인물들이 스스로 존재하려 애쓴다. 이를테면 지원은 자신의 자녀인 태리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엄마로서의 책임감의 무게를 버티면서, 지원으로서의 자아를 고민하면서 직업 윤리를 생각한다. 자신을 형성하는 삼각형 속에서 지원은 적절한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서 등산을 하면서 내면을 정리하곤 한다. 이전의 작업들에서 다루어왔던 주요 소재가 주체를 무력화하는 단일한 조건이었고 작가는 이를 둘러싼 가능성을 고민하는 태도가 중심이었다면, 〈여의도 투어: 환상의 버블〉과 〈Dear Freeze〉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태도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주안점을 옮긴다.

  앞서 소개한 어른의 경험이 리듬을 유지하려는 사례가 전반부의 주요 내용이라면, 작품의 중반부부터는 리듬을 기반으로 하는 시간 자체에 주목한다. 제이콥 블로흐(Jacob Bloch)의 원형의 연대기 차트 〈Chronological Skeleton Chart〉(1897)는 원의 바깥쪽부터 안쪽으로 현재에서 과거순으로 기록하는데, 파파캉이 등장인물의 삶을 시간 순서에 따라 기록하는 틀이 된다. 시간의 흐름을 가장 겪은 주체이자, 은퇴 후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하는 입장에서 파파캉은 연대기 기입의 적임자다. 과거와 현재까지의 연대기에는 미래가 자리하지 않는다. 이를 감안한 듯 냉동 난자의 미래 할아버지는 차트를 칼로 잘라내어 왕관처럼 원의 중심을 열어젖힌다. 미래 할아버지는 연대기에 자리하지 못하는 냉동 난자에게 약속된 체계를 변형시켜 미래로 향하는 길을 내어줌과 동시에 자신의 리듬이 절대적 시간보다 중요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

  강은희의 영상 작업은 공통적으로 기술이나 인간과 비인간 사이가 빚어낸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 먼저 〈디스턴트 콜링〉과 〈Sunburn, AIBOs, and Memento Mori〉는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과학기술이 야기한 정동과 가능성을 탐구한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는 인간 그리고 인간이 감정을 쏟는 비인간을 다룬다. 기니피그를 두고 자신의 처지를 읽어낸 주체의 정서는 이후 인간과 아이보라는 로봇과 애착관계를 조망함으로써 인간의 욕망과 정서가 물질에게도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보인다. 이러한 작용의 ‘매개체’로서 기니피그와 아이보, 나아가 냉동 난자까지 정동이 관통함으로써 인수의 구분, 인간과 로봇의 구분을 무너뜨리고 있음을 작가를 포함한 화자들은 대화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인식한다. 마치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의 매개체가 박쥐에서 인간으로 범위를 넓히고 막대한 변화를 초래한 것처럼, 작가는 기술 발전이 이끌어 낼 새로운 현상과 변화를 주의깊게 살핀다.

  앞서 대화 형식의 두 작품의 기술은 여전히 인간의 모든 갈망을 해소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흐른다. 그럼에도 결말부에는 작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하는데 이는 여러모로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기술이 자연의 제약에서 인간을 해방에 도움이 된다고 긍정하면서도, 자동적으로 유토피아로 이어지는 수단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술이 인간의 소외를 야기할 수 있기에 구체적으로 유토피아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보았는데, 이 철학자는 그 역할을 예술에게 일임한다.[1] 블로흐는 『희망의 원리』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서 보여주지 않았더라도, 잘못된 세계를 고발한 작가들에 대해 긍정했기 때문에[2] 강은희의 여의도 투어 프로그램은 자본주의 사회와 문화 현상으로 환유된 현실을 비판하는 시각을 참여자들과 나누고자 하는 사명을 띠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강은희의 독백 형식의 두 작업 〈여의도 투어: 환상의 버블〉와 〈Dear Freeze〉는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너머 새로운 세계를 제시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으로 파악할 수 있다. 작가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서 냉동 난자의 시각으로 연대기 차트를 잘라내어 뒤집고 구멍을 내는 행위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작가는 도래하지 않은 모든 가능성에 대해 전복적으로 상상할 것을 주문한다.

  * 이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 특별 기고로 게재되었습니다.


[1] 안성찬,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의 존재론-에른스트 블로흐와 유토피아의 희망」, 『문화과학』, 2011년 겨울호(통권 제68호), 문화과학사, p. 63.

[2] 에른스트 블로흐, 박설호,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의 존재론-에른스트 블로흐와 유토피아의 희망」, 『희망의 원리』, 2004, 열린책들, p.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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