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에 영혼을 개조하라: 문화대혁명의 영화 상영에서 칸예 웨스트의 리스닝 파티까지
양쯔강 어느 기슭, 마오쩌둥은 물에 천천히 몸을 담근다.[1] 1966년은 마오쩌둥에게 끔찍한 해였다. 소비에트 연방을 철권 통치하던 스탈린이 죽었고, 근대화를 가속하려는 취지의 대약진 운동은 대실패로 돌아갔다. 대장정 이후로 마오쩌둥이 공고하게 지켰던 공산당의 수장 지위는 흔들리고 있었다. 마오쩌둥의 퍼포먼스는 푸틴이 러시아의 근대 무술 ‘삼보’를 몸소 시연하는 것과 같은, 지도자의 신체를 국가의 명운과 동일시하는 의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평생 동안 공개석상에서 두 번의 수영을 했고, 그때마다 중국에는 거대한 사건들이 발발했다. 대약진 운동 이전, 그리고 문화대혁명의 바로 전인 지금 이 순간. 1966년, 마오쩌둥이 왼손과 오른손을 교차하며 물살을 가르던 순간은, 문화대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그가 양쯔강을 가로로 잇는 다리를 배경으로 손을 흔들며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사진사는 마오쩌둥의 수영 자세를 절묘하게 포착해 그의 강인함을 강조한다. 이는 세간에 떠돌던 건강이상설을 종식시키려는 듯 했고, 마오쩌둥의 신체를 중국의 그 무엇보다 강인한 사물처럼 그려 냈다. 73세의 마오쩌둥이 선보이는 강인함은, 그를 인간이라기보는 철인왕으로 보이게 했다.
사회주의 신중국을 지배하는 철인왕은 중국이 걸어온 발자취를 쓸어 없애버리면서 동시에 역사에서 기꺼이 길을 잃는다. 그 모습은 꼭 앞으로 나아가며 뒷걸음질 치는 모순적 행위였다. 그는 지병으로 불은 얼굴로 패기 넘치는 홍위병에게 선언한다. ‘중국의 역사는 바로 지금부터(中国的历史,从此开辟了一个新的时代)’[2]라고. 문화대혁명은 0(영)에서 시작하는 현대 중국인의 심성구조를 새롭게 정초하려고 했다. 그러므로, 마오를 컬트적인 아이콘으로 입안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당대 중국인의 집단 ‘무의식(sub-conscious)’을 산파하려는 ‘의식(ritual)’이었다. 그러한 홍위병의 정신에 부합하는 동사는 ‘부정한다’, ‘불태운다’, ‘지워버린다’, 같은 것이었다. 공자상이 산산조각 나고 고전 문헌들이 불길에 휩싸인다. 홍위병은 신중국 이전의 모든 역사적 유산을 부정했다. 마오쩌둥이라는 철인왕은 중국사의 발전단계에서 홀로 선 존재가 아니다. 그는 한 실패자를, 별 볼 일 없고, 그다지 영리하지 않은 한 남자를 정치적 비전과 야심의 롤모델로 삼았다. 중국인의 무의식을 규정하고, 중국이라는 국가를 재구성하려는 욕망. 마오쩌둥이 본 남자의 이름은 홍수전이었다. 과거시험에 연이어 낙방했던 남자는 상심한 나머지, 온몸에 열이 펄펄 끓었고, 그가 꾼 꿈에선 기이한 노인이 출현했다. 노인은 그에게 칼을 건네주며 악령을 물리치라고 명령한다. 꿈에서 깬 후 십자가를 마주한 남자는 자신이 예수의 환생이라고 확신한다. 한 고시 낭인을 덮친 망상에서 출발한 태평천국운동운 칠천만 명의 사상자를 낳고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85년 후 1949년, 베이징 광장에 우뚝 선 마오쩌둥은 인민영웅기념비를 세우며 태평천국의 지휘자였던 홍수전을 ‘중국혁명의 선구자(中国革命的先行者)’[3]라고 상찬한다. 중국인의 영혼을 만든 이들. 두 명의 철인왕이 꿈꾸던 것은 영혼을 개혁하는 것이었다. 마오가 생각하는 사회주의 혁명이란 정치 제도와 시장 구조 등을 변혁하는 것을 넘어, 중국인의 영혼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공동체, 천년왕국을 세우는 것이었다.
프로젝트 ‘인민 만들기’(Building-‘renmin’), 아우라의 복원
레닌과 스탈린을 비롯한 소련 사회주의의 거인들은 영화 매체가 지닌 정치적 중요성을 재차 강조한 바 있다. 영화는 같은 공간에 한날한시에 모인 수많은 인파들에게 사회주의 이념을 설파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도구였기 때문이다. 이 사회주의 성인(聖人)들을 좇아, 1938년 마오는 최초의 ‘전영단(电影团)’을 인민해방군의 기지였던 옌안에서 육성한다.[4] 전문 영화인력의 필요성을 통감한 마오는 이곳에서 1942년부터 1949년 신중국 건립 이전까지 촬영 및 영사 인력을 훈련했다. 이로써 천년왕국 건설의 초석이 다져졌다. 훈련된 인력은 광활한 중국 대지 전역에 파견되었다. 이들은 부패한 국민당과 일본 제국주의 그리고 봉건 예교의 억압으로부터 인민을 해방해야 한다는 숭고한 혁명 정신을 지닌 혁명투사였다. 마오의 십자군들은 한편 수많은 인파가 ‘움직이고 말하는’ 자동기계의 소식에 매료되어, 험준한 지형을 가르고 마침내 새로 신중국에 편입된 편벽한 지방의 한 고원 중턱에 당도한다.
다시 말해, ‘빛이 있으라(Let there be light)’[5]. 전영단은 은색 휘장 위에 사회주의 중국의 초대 국무총리였던 저우언라이가 가져온 영사기로 혁명의 복음을 펼쳐냈다. 전영단의 은색 두루마기에는 산등성이에 잠복해 있는 팔로군이 일본군과 국민당을 순식간에 괴멸하는 장면이 새겨져 있었다. 전영단과 그들이 가져온 필름은 산간벽지에 고립되어 문명에 소외된 이들에게 마오가 한없이 베푸는 자비 그 자체였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머지않아 이룩할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예언하는 일종의 계시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중국 전역으로 은판 위에 무수히 복제된 수많은 마오의 형상과 음성을 실어 날랐다. 전영단이 가져온 필름은 마오의 영상 이외에도, 반제반봉건의 사회주의 혁명 정신을 고취하는 신파적인 혁명극, 특히 게릴라 전투를 다루는 영화가 주를 이루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꼬마 영웅 팔로(英雄小八路)>(1961)가 있었던 만큼, 마오와 전영단은 나이와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최대한 많은 인원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영화를 제작 및 수급하였다.[6] 마오는 고작 몇 대의 카메라와 소수의 훈련된 인원으로 구원에 굶주린 8억 인민의 영혼을 ‘혁명정신(革命精神)’으로 배불리 먹였다.
‘신중국’이라는 기술 복제 시대에서 강화된 마오의 신성한 아우라는 벤야민의 예측을 빗겨나가듯 보인다. 신중국 시대의 혁명 영화에 곁들여지는 전영단의 그림자 극과 해설, 민속 공연이 자아내는 ‘열기’[7]는 마오 그 자신의 인격적 컬트를 증폭했다. 신중국의 영화 경험은 벤야민이 복제 기술을 두고 그토록 염려했던 ‘정치의 미학화’[8]에 들어맞은 예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복제 기술이 ‘아우라’를 다시 되살리는 이 전체주의적 영화 관람 환경은 포스트-시네마적 환경과 연결된다. 가령 모두가 스크린에 오를 수 있는 포스트 시네마적 환경은 불멸의 스타들을 하찮은 스트리머 군집까지로 확장했다. 지금 머릿 속에 한 스트리머를 상상해보아라, 어떤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러한 친밀감은 벤야민이 지적한 과거 예술의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아우라의 제한된 변용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벤야민은 현대 예술에서 일어난 변화를 성공적으로 감지했다. 하나는, 기술이 예술작품의 인지 방식을 전환한다는 것,[9]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전환된 인지 방식이 예술작품과 우리의 관계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10] 원본인 예술작품이 아우라를 지니는 것과 다르게, 기술복제되니 예술작품의 아우라는 탈각된다는 점 말이다.
과거 예술의 아우라는 물리적으로 내 앞에 있지만, 영원히 ‘닿지 못할 것만 같은’[11] 미묘한 거리감에서 비롯된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벤야민의 이론은 신중국의 영화 경험에서 발생하는 신비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영단이 영화의 위에 쏟아부은 은총으로 인해, 마오와 대중 사이의 거리가 적절히 통제되고 유지되면서, 영화의 아우라는 다른 방식으로 구현되었다. 그 은총이란 사회주의 혁명 정신의 표상으로서 마오 자신의 형상이었다. 즉, 우리는 신중국에선 마오-전영단(영화)-인민이 맺는 삼항 관계 안에서 작동한다는 정식을 세울 수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선 꿈-공장이었던 할리우드에서 작동하지 못했던 관계를 작동시켰다. 이는 국가를 시각화하는 것이 곧 지도자를 형상화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이러한 형상화는 이를 감각할 만큼, 하지만 너무나 가깝지는 않은 거리에서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신중국 시기’라는 특수한 역사적 조건은,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매체의 역사에서 역사적 시차를, 그러니까 근현대적인 영화 경험과 영화 매체 이전의 종교적 경험이 병존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비동시성의 동시성’이야말로 작금의 시청각 환경이라 할 수 있다. 포스트 시네마적 환경은 단지 영화가 미래로 투사됨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매체가 퇴행하고 있음을, 원시적인 어트랙션으로 되돌아가고 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신중국 시기 영화 공동체의 출현은 영화 상영 장소가 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이 시기 영화 상영장은 인민이 자신들을 봉건질서와 유교로부터 해방해 줄 구원자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성소(聖所)였다. 전영단은 최대한 많은 인파를 회집할 수 있는 사찰이나 시장에서 ‘노천영화상영’을 진행했다.[12] 전영단은 마오의 충실한 퇴마 사제들이자 선지자들이었으며 장교들이었다. 그들은 괴력난신과 서방의 우상을 숭배하던 사찰과 교회를 사회주의 메시아를 모시는 제단으로 탈바꿈하는 것에서 시작해, 사회주의 이념에 따라 혁명 영화와 마오의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중국의 토착 민중 종교와 기독교같은 허위 의식을 퇴치했다. 이로써 변방의 야만인이었던 군중은 사회주의가 가져온 문명의 세례와 자신들의 의례를 통해 비로소 인민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우리는 신중국 시기 영화 경험에서의 아우라를, ‘아우라의 위축’에 대항하여 영화 매체가 ‘마오’라는 스타를 통해 그 마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13] 그러나 신중국 시기 영화 경험은 벤야민이 경험했던 1920-30년대 유럽의 역사적 조건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으므로, 이에 대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벤야민 시대의 유럽과 달리, 마오의 중국에서 ‘영화 보기’는 ‘영사 기술인을 만나는 것’과 거의 동일시될 정도로 전문 영사 인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신중국은 극장 상영만큼이나 외부 상영이 잦았으므로, 영사 인력들은 극장이라는 공간적 상영 조건을 구애받지 않았다. 이들은 극장-공간의 체험을 전달해주기 보다는, 영화 속 마오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영화 속 마오는 인민 앞에 현현되지만, 전영단이라는 ‘미디어’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 즉, 영화는 전영단이라는 인간 ‘미디어’를 통해 옌안(또는 베이징)의 마오가 인민에게 직접 강림한 듯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러한 영화 상영 방식은 마오와 인민 사이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재정의한다. 이러한 상영 환경 속에서, 마오는 ‘우리 마음 위에 뜬 붉은 태양'[14]으로 숭배되지만, 동시에 스크린 위의 단순한 이미지로 격하된다. 결과적으로, 마오를 우상화하려는 시도는 역설적이게도 그의 신성함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 일련의 과정은 영화를 상품에서 의식(ritual)으로 전환하는 데에 성공한다. 제사장으로서 전영단과 장로와 집사로서 지역 간부들 그리고 독실한 신자들로서 인민은 영화 감상을 은색 두루마기를[15] 둘러싼 수행적인 의례로 탈바꿈했다. 이로써 한 농민의 아들이었던 마오가 우상으로 숭배된다. 이 대전환은 마르크스가 지적한 화폐 물신성, 사회적 관계의 역사적 산물인 화폐가 마치 사회적 관계를 규정하는 더 높은 심급의 존재처럼 보이는 전도(轉倒)를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인다.[16] 하지만 성인(聖人)이 있기에 의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의례가 범인을 성인으로 탈바꿈한다. 신성은 마오-전영단(영화)-인민이라는 역학 속에서 비롯된다. 이같은 역학을 가능케 하는 힘은 이 신성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성인 마오’는 마오 스스로의 탁월함과 훌륭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사회주의 영화 상영 및 관람이라는 시스템의 역사적 산물인 것이다. 대중의 신체, 대중 그 자체가 하나의 미디어가 되는 순간, 미디어 혁명으로서 중국 사회주의 혁명이 마침내 완수된다.
그렇다면 신중국의 영화는 여전히 제의적 가치가 예술의 중추일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복제되어 도처에 널린 예술작품은 그것이 원래 지녔던 제의적 가치가 전시 가치로 전환되면서, 본래 지녔던 아우라가 붕괴된다는 벤야민의 단언은 이제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아우라의 붕괴가, 예술이 갑작스럽게 스스로 족쇄를 풀고 거리에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자. 이러한 아우라는 작품을 향유하는, 익명의 비인격적 힘 그 자체인 공동체가 존재할 때 비로소 획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시리라
(Seek and ‘ye’ shall find)[17]
반세기 전 중국의 편벽한 산골에서 행해졌던 이 의식은 오늘날 한 힙합 아티스트에 의해 올해 8월 23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성공적으로 되풀이되었다. 칸예의 리스닝 파티 역사는 와이오밍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발매된 ‘예(ye)’(2018)의 리스닝 파티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들이 뛰어다니는 목장의 헛간에서 진행된 리스닝 파티는 이후 2019년 4월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진행되었던 소규모 예배 ‘선데이 서비스(Sunday Service)’까지로 이어졌다. 칸예의 선데이 서비스는 일반적인 예배의 형식과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빛이 강조된 미니멀한 공간에서 진행된 예배에 설교나 기도는 없었다. 릭 루빈과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코트니 러브와 찬스 더 래퍼처럼 칸예가 초대한 소수의 인원과 오직 ‘부름과 응답(call and response)’[18]으로 전개되는 찬양과 ‘느낌’(feeling)[19]만이 있었다. ‘선데이 서비스’는 앨범 ‘이저스(Yeezus)’(2013)에서 과감하게 스스로를 신이라고(‘I Am a God’) 말하던 남자가, 자신이 도전하던 신성 앞에 누구보다도 겸손하게 무릎 꿇고 예배하는 자로 ‘다시 태어나는(born again christian)’ 의례였다. 휴대폰으로 무단 촬영한 선데이 서비스 영상[20]이 공개되면서, 사람들은 예배가 띠는 세속성에 칸예의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했다. 이는 어쩌면 그의 장모였던 크리스 제너가 ‘교회-사업체’ 운영인[21]이기에 내릴 수 있는 합당한 추측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뒤집어서 생각해 본다면 Sunday Service는 그 자체로 그가 복음주의 대형 교회에 가하는 신랄한 풍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코첼라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던 부활절 일요일 오전, 그가 캠프장 언덕에서 보라색 옷을 입은 군중과 함께 드렸던 세속적인 의례(secular rituals)는 그가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영적인 구원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공동체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음이 느껴진 대목이었다.
몇 달 후 칸예는 앨범 ‘지저스 이즈 킹(Jesus is King)’ (2019)의 리스닝 파티와 이어진 전미 투어에서, 그간 소수와만 공유하던 밀교적 형태의 선데이 서비스를 만천하에 공개했다. 앨범을 만들고 난 후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남은 커리어를 신을 섬기는 데에 바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인지, 그는 앨범 ‘지저스 이즈 킹’의 주제와 형식을 가스펠과 유사하게 제작, 아니 칸예식으로 신과의 새로운 만남 방식을 도모한다. 칸예는 수록곡의 대부분을 부름과 응답의 형식으로 제작했다.[22] 누가 먼저 노래를 부르면 다른 누가 이에 응답하는 이 형식은, 음악의 사회적 역할이 두드러졌던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유래해 흑인 영가부터 힙합까지 오늘날 흑인 음악의 형식에 토대가 되었다. 칸예는 Sunday Service 합창단과 주고받는 직접적인 차용부터(‘Every Hour’, ‘Everything We need’, ‘Water’) 앨범에서 가스펠을 샘플링하거나(‘Selah’, ‘God Is’) 아니면 사운드의 레이어를 여러개를 쌓아 마치 합창하는 듯한 효과를 내는 간접적인 방식에 이르기까지(‘On God’, ‘Hands On’, ‘Use This Gospel’) 흑인음악의 전통을 자신의 간절한 기도에 녹여낸다. 한 명에 의해 노래가 시작되기만 하면 선창-후창의 객체적인 관계성 안에서 자동으로 운동하는 멜로디는 ‘영원’이라는 숭고한 감각을 경험하게 하면서, ‘흑인성’ 내부에 ‘신성함’을 빚어낸다.
앨범의 수록곡에서만 미적 경험이 선사하는 신비를 체험할 수 있던 것은 아니다. 성령이 강림하듯 육신 안에 들어차는 신비는 ‘지저스 이즈 킹’의 리스닝 파티와 전미 투어에서도 동일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제임스 터렐이 기획한 무대 공간은 추상적인 칸예 음악을 물리적인 건축으로 구현하는 데에 성공했다. 드레이크의 ‘핫 라인 블링(Hot line bling)’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되는 보라색 공간을 기획한 것으로도 잘 알려진 터렐은, 아무 것도 없는 검은 공간의 상공에 오직 원판조명만 남겨두는 것으로 투어 무대를 기획했다.[23] 원판에서 뻗어져 나오는 빛은 순식간에 장내를 파랗게 물들이며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하나의 커다란 푸른색 덩어리처럼 보인다. 만민에게 평등하게 무차별적으로 내리쬐어지는 빛은 구약 성서 이래로 신의 전통적인 유비다. 터렐은 스스로가 독실한 퀘이커 신도임을 밝히며 퀘이커 교의 교리가 자신의 작품에도 반영된다고 고백했다.[24] 퀘이커 교도들의 명상을 통한 내면으로의 고요한 침잠은 신과의 독대를 허락하면서 인간 스스로 ‘내면의 빛’을 찾아가도록 한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빛이 자신의 작업에서 언제나 종교적 유비로 사용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25] 빛을 종교적 상징임과 동시에 기능적 사물로 다루는 그의 예술론은, 터렐의 자신의 천체 관측소인 로덴 분화구(Roden Crater)에서 할 수 있는 체험을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다.
칸예가 앨범 발매와 맞추어 아이맥스(IMAX)로 개봉한 영화 <지저스 이즈 킹(Jesus is King)>은, 아리조나 사막 한 가운데에 위치한 로덴 분화구(Roden Crater)에 터렐이 1977년부터 제작하여 아직도 미완성된 천체관측소를 배경으로 제작되었다. 터렐의 이 장엄한 건축은, 거대한 굴절 망원경으로 기능하는 건축 그 자체를 제외하고, 소위 ‘미디어’로 불리는 그 어떠한 인공적 장치도 경유하지 않고 오로지 ‘빛’으로 우리가 사물과 맺는 관계를 바꾼다. 분기공에서 시작하는 계단을 따라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칠해진 콘크리트를 입장하자마자 보이는 것은, ‘해와 달의 방’(Sun and Moon‘s Chamber)이다. ‘해와 달의 방’은 중심에 위치한 이미지 스톤 위로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관측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핀홀카메라로 작동한다. 이렇게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알파 터널’이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되기도 했던 이스트 포털(East Portal)과 연결하여, 거대한 굴절 망원경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 알파 터널을 지나면서 관객은 신비한 경험을 한다. 분명 원형이었던 터널 비전이 타원형이 되는 경험 말이다. 터렐은 이러한 지각에서의 변화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가 지적으로 알고 있던 신체를 실제로 느끼고 이해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발견하고 포착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26] 이는 교리에 앞서 신앙의 체험을 중요시하는 퀘이커교의 믿음을 상기하면서, 궁극적으로 의례로서의 예술경험이 전통적인 의미의 주체(subject)가 또 다른 ‘주체(agent)’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칸예 웨스트의 리스닝 파티는 영화 매체의 본질적인 특성, 그것이 다양한 객체들에 의해 건축되는 체험이라는 점을 명료히 보여준다. 신중국의 전영단이 마오의 신체 혹은 사회주의 이념을 스크린을 비롯해 야외 상영이 펼쳐지는 편벽하고 가난한 마을, 결정적으로 인민의 시선에 의해 구현된다는 점을 이미 증명했듯 말이다. 제임스 터렐이 만든 로덴 분화구는 칸예 웨스트가 공연하는 무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곳은 아이맥스 영화를 위한 세트장이면서 또한 터렐 개인의 작품으로 인준받는다. 이처럼 칸예 웨스트는 포스트 시네마의 영상이 언제나 수십 겹의 의미를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그의 리스닝 파티는 앞서 말한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을 완벽히 되살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중국의 전영단이 아우라 개념을 국가-미디어-인민 삼항 관계에서 완전히 다른 종류의 감각으로 전환시켰듯 칸예의 리스닝파티 역시 우리가 종교라 부르는 것, 혹은 영화라 부르는 것, 예술이라 부르는 것의 혼종 상태를 아우라를 산출하면서 구현한다. 신중국이 마오가 절대자의 신체를 형상화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이 신체는 묘사될 수 없는 종류의 절대이면서, 항상 복제되어 상연되는 무대였다면, 리스닝 파티 속의 칸예 웨스트는 일종의 창문이다. 스트린베리가 ‘별은 하늘에 난 구멍’이라고 인식했듯, 잡다한 사물들과 인간의 협연으로 이뤄진 리스닝 파티 속의 칸예 웨스트는 모든 시청자의 시선을 이끄는 구멍이다. 이때, 포스트-시네마적 환경에서 아우라의 개념이 재정의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문둥병을 낫게 하는 위대한 왕의 손, 어딘가에 숨어있는 머리 잘린 불상과는 달리, 지극히 비환원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은총’이자 ‘카리스마’다. 이는 언제나 칸예 웨스트의 맥시멀리즘적인 편곡이 그러하듯, 복잡성을 요한다. 혹은 지저스 이즈 킹에서 그러하듯 수많은 코러스들이 몸을 섞는 반향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다. 칸예 웨스트의 아우라는 마오쩌둥이 이미지로 재현되며, 그 절대성을 잃어버렸듯, 다양한 미디어에서 편재된다. 이는 종교적인 것이 오늘날 취한 진정한 문제, 절대적인 것의 상실을 뜻한다.
사회를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실체로 바라본 사회학자 뒤르켐에게, 영혼 개념을 핵심으로 삼는 종교를 이론적으로 해명해 내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는 일이었다. 그는 사회와 종교를 객관과 주관, 밖과 안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대신에, 밖과 안이 순환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설명해낸다. 종교는 세 가지 요소가 순환적 관계를 이루어 구성된다. 성과 속의 구분, 의례, 그리고 교회와 같은 공동체가 어떤 선후관계 없이 서로 얽히고 순환할 때 종교가 발생한다. 성과 속의 구분이 교회로 명명될 수 있는 공동체에서 행해지는 의례에서 이루어진다. 의례는 닫혀있는 단자(monad)적 개인들이 집단적 표상을 매개로 소통할 수 있게 한다. 종교란 이 상징들의 관계망으로 엮어진 표상 체계 그 자체가 되고, 이때 종교는 공동체가 부르짖던 바로 그 대상이 된다.[27] 인격도 역사도 존재하지 않기에 그 어떤 물리적 사물에도 깃들어져 있다고 믿어지는, 바로 토테미즘에서 숭배하는 자연 그 자체로서의 신이다. 포스트-시네마 시대는 이 변용된 아우라의 재현을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아니, 혹은 포스트-시네마 시대의 ‘신’을 재현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뒤르켐이 궁리했던 종교를 작동시키는 동역학이 비로소 베일을 벗는 순간이다.
* 이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 특별 기고로 게재되었습니다.
[1] Vox, (2020년 2월 4일), This Photo triggered China’s Cultural Revolution, Youtube, https://youtu.be/kXByOrRrO7c?si=hrWICi74t5XZdprq, 2024년 8월 12일 접속.
[2] 杜栋、梁琨, (2021년 10월 2일), 1949年毛泽东关于建设新中国的思考和实践, 中共中央党史和文献研究院,2024년 8월 12일 접속.
[3] 江上小堂, (2018년 4월 11일), 从洪秀全到孙中山,再到毛泽东:“政教合一”的一脉相承, Medium,2024년 8월 12일 접속.
[4] Li, Jie. (2023).Cinematic Guerrillas: Propaganda, Projectionists, and Audiences in Socialist China. Columbia University Press. p.7.
[5] 대한성서공회. (2019). 개역한글 성경전서. 서울: 아가페출판사. 창세기 1:3.
[6] Li, Jie. “Cinematic guerrillas in Mao’s China.”Screen61.2 (2020): p.212-213.
[7] 분주함, 소란스러움, 활기참을 뜻하는 ‘열기(热闹;renao)’는 신중국 시기 농촌의 영화 경험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신시기 중국의 영화 관람 환경은 일반적인 영화관의 환경과 차이가 매우 컸다. 영화는 주로 사찰이나 시장과 같은 야외장소에 상영되었고, 전영단은 영화 상영 중간에 해설을 하고나 디스코볼을 사용하면서 관객들의 주의를 분산했다.(Li, jie. 145-162.)
[8] 발터 벤야민, (2017),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심철민, 역), 도서출판비. p.97.
[9] Ibid, p. 82-87.
[10] Ibid, p.73.
[11] Ibid, p.29.
[12] Li, J. (2023).Cinematic Guerrillas: Propaganda, Projectionists, and Audiences in Socialist China. Columbia University Press. p.60-64.
[13] 발터 벤야민, (2017),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심철민, 역), 도서출판비. p.63.
[14] 阿妧云, (2023년 05월 04일),毛主席您是我们心中的红太阳,百度百科,https://baike.baidu.com/item/%E6%AF%9B%E4%B8%BB%E5%B8%AD%E6%82%A8%E6%98%AF%E6%88%91%E4%BB%AC%E5%BF%83%E4%B8%AD%E7%9A%84%E7%BA%A2%E5%A4%AA%E9%98%B3/19301872
[15] 작성자 주. ‘두루마기’는 중 민간 종교에서 제작된 종교적이고 신비주의적 성격을 갖는 산문을 말한다. ‘baojuan’ , https://en.wikipedia.org/wiki/Baojuan, 2024년 8월 17일 접속.
[16] 카를 마르크스, (2023), 자본론 1: 정치경제학 비판(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p.93
“그러므로 상품형태의 신비성은, 상품형태는 인간 자신의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노동생산물 자체의 물적 성격(…)으로 보이게 하며, 따라서 총노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를 그들 외부에 존재하는 관계(…)로 보이게 한다는 사실에 있을 뿐이다. (…) 노동생산물은 상품으로 되며, 감각적임과 동시에 초감각적[즉 사회적] 물건으로 된다.”
[17] Matthew 7;7-8, BibleGateway,https://www.biblegateway.com/passage/?search=Matthew%207%3A7-8&version=NIV, 2024년 8월 23일 접속.
[18] Call and response,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Call_and_response , 2024년 8월 23일 접속.
[19] Jia Tolentino, (2019년 4월 23일),Kanye West’s Sunday Service Is Full of Longing and Self-Promotion, The New Yorker,Kanye West’s Sunday Service Is Full of Longing and Self-Promotion | The New Yorker, 2024년 8월 25일 접속.
[20] Genius, (2019년 4월 22일),’kanye performing “jesus walks” on easter sunday at #coachella is really something else’, X,x.com/Genius/status/1120047391002984448, 2024년 8월 25일 접속.
[21] Alex West, (2024년 6월 24일), The Kardashian Family’s Conneection to Fund a New Church, DISTRACTIFY, https://www.distractify.com/p/what-is-the-kardashian-church, 2024년 8월 25일 접속.
[22] Adam Longman Parker, (2022년 2월 15일), Afriqua Presents Principles of Black Music: Call & Response, https://www.ableton.com/en/blog/afriqua-presents-principles-of-black-music-call-response/, 2024년 8월 25일 접속.
[23] KANYE, (2019년 12월 9일). Kanye West / Jesus is King Tour – Sunday Service Choir / The Forum – 11/3/19, Youtube, https://youtu.be/TPhQM_V7YRA?si=d3QUNiJ7RBFoPmPw , 2024년 8월 30일 접속.
[24] Constance Grady, (2019년 11월 6일). Why Kanye’s new spiritual work keeps borrowing from James Turrell, https://www.vox.com/culture/2019/11/5/20942006/kanye-west-james-turrell-jesus-is-king-roden-crater, 2024년 8월 30일 접속.
[25] Jon Blistein, (2019년 11월 1일).Beginning to See the Light: Kanye West’s Fascination With James Turrell,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news/kanye-west-james-turrell-jesus-is-king-film-roden-crater-904893/, Rolling Stone 2024년 8월 30일 접속.
[26]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2020년 2월 13일).James Turrell’s Roden Crater, https://youtu.be/g0g6JFYRKxQ?si=z5yRYl1sA8gTaEJc Youtube, 2024년 8월 30일 접속. (4분 6초부터)
“that happens here is that this idea of where we begin to actually feel and understand the body thinfs that we intellectually knew. Because it’s not something I discover and then have captured for ypu it’s something that you are there to discover yourself.”
[27] 뒤르켐, 에밀,(1992)].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노치준, 민혜영 역), 민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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