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나: 죽음과 폭력과 슬픔과 시
인간이 소위 ‘시민사회’라는 것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도살장을 반드시 그 사회 바깥 어딘가에 두어야 한다고 (자조적으로) 말했던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로부터 시작한다. 그의 예견대로 도살장은 콜레라를 옮겨대는 배처럼 저주받고 격리된 존재이자 장소로서 저 멀리 추방당했다. 바타유의 시선은 억압당한 폭력성과 충동이 죽음이라는 긴장 상태와 교차하는 자리에 닿는다. 그에게 도살장이란 단순히 동물이 도축되는 물리적 장소라기보다, 시민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사회의 가장 어두운 기반을 잠재적으로 드러내는 상징물이었다. 즉, 도살장에 의한 저주의 희생자는 도축업자나 동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추함을 견디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1] 내면에 새겨져 있는 공포를 직시하지 못하는 이들은 도살장을 사회 바깥으로 밀어냄으로써 어두운 현실을 외면한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인간은 우리 사회의 필연적 이중성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마 파리 북동쪽 끝 라 빌레트(La Villete) 지구가 20세기 말 시행된 프랑스 도시계획에 따라 문화시설로 바뀌지 않았더라면 도축 직후의 핏물로 흥건해진 기피 시설은 영원히 그 자리에서 슬럼화되고 있었을 터였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현대에 이르러 위선이 사라진 건 아니다. 도살장은 보이지 않는 광경으로서 재생산되고 있으며, 이는 다양한 형태로 시각화된다. 우리의 위선은 개인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에 소리 없이 침투해 나감으로써 더욱 은밀하고 교묘한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영상 및 설치를 선보여온 유하나(1987~)는 피 한 방울 묘사하지 않고 도살장의 은유를 풀어낸다. 그는 현대 사회의 인간이 여러 형태의 폭력을 외면하는 과정에서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지 고요히 드러낸다. 본성과 화해하지 못한 무의식적 불안이 기저에 깔린 세계에서, 미사여구가 탈각된 유하나의 영상은 어지러운 경고음을 내며 재생된다.
근대성의 배를 가르며
유하나의 초기작 중 하나인 <시체의 인류학>(2019)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놓인 ‘시체’의 상징성을 전경화하며, 존재와 죽음 중간에 그어진 금을 탐구한다. 실제 시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죽음은 천천히 흩날리며 스크린에 쌓인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시각적으로 ‘재현하지 않기’를 선택함으로써 오랜 시간 은폐된 죽음의 표상을 가시화한다. 이러한 전략은 관객으로 하여금 무형의 죽음이 서서히 축적되는 순간을 간접적으로 마주하게 한다. 바타유의 도살장이 그러했듯이, 근대성은 발전과 진보라는 명목하에 파괴를 정당화하고 그 과정에서 생산된 광경을 오히려 죽음의 가림막으로 남용하곤 했다. 이에 유하나는 산업화나 근대화 이후 제도화된 폭력이 죽음으로 나아가는 장면을 기록하며, 근대성의 배를 가르기 위해 카메라 렌즈를 연마한다.
2020년 작 <초원의 빛>은 젖소에게 가상현실(VR)로 푸른 초원 이미지를 보여주며 불안을 줄이고 우유 생산을 증가시키는 러시아 농식품부의 실험을 바탕으로 한다. 영상 중간 젖소와 과학자가 진행하는 초현실적 대화는 동물과 인간 사이의 기술적 관계성을 탐구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젖소가 그저 ‘원형(prototype)’이 아닌 기술적 ‘장치(apparatus)’로서 등장한다는 비평가 마르타 슈벤데너(Martha Schwendener)의 분석처럼, 동물은 인간의 과학적 실험과 자본주의적 생산 논리에 의해 도구화된다.[2]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다뤄지는 근대적 ‘장치’로서의 젖소는, 일종의 갑을관계 속에서 통제 아래 놓이며 자율성을 상실한다. 뿐만 아니라 젖소의 상황은 림보(limbo) 상태로도 이어진다. 종교적으로 천국과 지옥의 중간 지대를 의미하는 림보는 유하나의 작업에서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상징한다. 이는 명확한 정답이 없거나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작동하는데, 기술 발전과 자본주의 논리 속에서 심화하는 구조적 혼란이 대표적 예시다. 결국 방향 감각을 잃은 현대 사회의 상태는 인간과 동물, 기술과 자연, 생존과 죽음 간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지금도 <초원의 빛> 속 젖소는 현실의 불안정함과 가상의 유토피아 사이에서 덫에 걸려 있다.
한때는 생명이었던 것
동물은 유하나의 작업 곳곳에서 주요 모티프로 등장한다. 위험하거나 더럽다는 부정적 프레임에 갇혀 격리 대상이 된 ‘괴물적’ 존재들은 작가의 2021년 개인전 《챔버》에서 여러 형상으로 변모한다. 일례로, <벌거벗은 생명>(2021) 속 느슨하게 연결된 몇몇 사건은 쥐를 전면에 내세운다. 먼저 베를린 동물복지 연구소의 영상은 쥐가 동물실험 중 실제로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시도다. 그와 반대로, 영국의 한 교외 지역에서 촬영된 비디오 푸티지는 야생 쥐들이 방역업자의 공기총 표적이 되는 장면 모음이다. 이쯤에서 종중심주의(speciesism)을 강력히 비판해 온 캐리 울프(Cary Wolfe)의 주장을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은 자신과 동물을 자의적으로 구분 짓는 것을 넘어, 어떤 동물이 ‘죽일 수 있는’ 혹은 ‘죽여도 되는’ 범주에 포함되는지 (멋대로) 논의해 왔다.[3]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사격이나 실험은 지극히 일상적인 사건이다. 실험이 끝나고 나면 주사 한 번에 손쉽게 처리되고 마는 동물들은 공고한 생태 피라미드에서 경제적 가치로 치환되거나, 철저히 외면당한다. 같은 이유로, 방역업자의 뷰파인더가 자기 방어법에 관한 나레이션과 병치되는 부분은 놀랍지 않다. 방어라는 이름 아래 죽음과 죽임은 동시다발적으로 정당화되며 인간의 삶에 스며든다.
인간과 동물의 구획이 부당하게 설정되는 세계는 <해부학 수업 챕터 2>(2023)에서도 나타난다. 어린 시절 각자의 기억을 꺼내는 세 사람은 오래전 경험한 개구리 해부 실험을 돌이켜보며 같고도 다른 이야기를 펼친다. 누군가는 한때 생명이었던 것으로부터 윤리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에게 놀라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기절한 친구를 오히려 놀리던 학급 내 분위기를 기억해 내기도 한다. 뒤집힌 개구리에 가해졌던 폭력은 그의 몸뚱이가 생명체가 아닌 실험 대상에 불과했음을 상기시킨다. 스스로 가치판단을 내리지 못했던 초등학교 시절의 트라우마는 죄책감의 모양으로 뒤늦게 이들의 생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유하나는 공적 실험과 사적 기억 간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이 영상 작업은 중일전쟁 및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행된 일본 제국군의 생체 해부 실험 관련 보도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주지하듯이 ‘마루타’, 즉 ‘나무 통나무’로 불리던 전쟁 포로들은 실험 대상으로서 인간성을 박탈당한 채 학대와 폭력을 경험했다. 작가는 이러한 거대 서사와 현재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잔인무도함을 연결하며, 인간이 만든 경계와 그로 인해 발생한 참상을 다시금 되짚는다.
(피)실험자의 역설: 인간으로부터 인간에게
2021년 작 <임의의반경의원>에는 가상의 행동 심리학자가 유기체의 궁극적 행동 패턴을 찾기 위해 실험을 반복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그러나 과학자가 종국에 깨닫는 것은 자신이 실험자이자 동시에 피실험자였다는 사실이다. 그가 스스로 만들어낸 모순과 역설에 휩싸일 때, 머신러닝 강의와 심리학자 B. F. 스키너(B. F. Skinner)의 인터뷰, 그리고 시인 이상의 암호 같은 시는 추상적으로 혼재되어 정신 분열 상태를 형상화한다. 실제로 동물실험 중 당장 눈앞에 보이는 행동만을 과학적 증거로 활용하여 유기체를 일차원적 대상으로 축소-이해한 1940년대의 스키너 상자는 비판의 대상이 되곤 했다.[4] 작가가 자문했던 것처럼, 스키너가 구축한 인지 학습 시스템은 현대에 이르러 다음과 같은 질문을 탄생시켰다. 과학자, 동물, 기계장치는 어떠한 관계를 맺는가? 그 불가분의 관계에서 우리는 어디를 직시해야 하는가? 우리에겐 어떤 종류의 편향된 관점이 있는가? 이와 관련하여 이진경은 <임의의반경의원>이 “자연과 문화, 자연과 사회, 기계와 인간을 가르는 선을 ‘살해’하는 하나의 직선 긋기”라 평한 바 있다.[5] 다만 이 관계 지도에서 가장 단조로운 유기체는 인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그 이분법을 해체할 권리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신원정이 주장했듯이, “실험용 쥐의 운명적 비극에는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실존적 자유가 반성적으로 투영”되어 있다.[6] 단채널 알고리즘 기반 영상으로서 정지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무한 재생되는 <낙하>(2021)는 그러한 성찰의 또 다른 예시다. 이 작업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의해 조종되는 쥐들의 행동 패턴을 시각적으로 나타낸다. 쥐들은 특정 과제를 학습 ‘당하지만’, 대부분 수행에 성공하지 못해 지정된 구간 바깥으로 밀려나거나 탈출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들은 영겁의 통제 사이클에 갇혀 기존 영역으로 돌아오고, 검은 직선과 곡선으로 끝없이 데이터화된다. 이는 비단 쥐에게만 적용되는 서사가 아니다. 실질적인 문제는 인간 역시 자율성을 잃은 채 스스로 설정한 경계 너머로 낙하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생태 슬픔(ecological grief)에 저항하는 싱글채널 비디오 <타누 – 우주.건강.고래.령>(2023)의 한 장면에는 “자연에 적대적인 자만이 [마찬가지로] 자연인 다른 인간에게도 적대적일 것”이라는 메시지가 등장한다. 이는 인간이 자연의 구성물과 타인에 가하는 폭력 모두 본질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결국 자연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하는 파괴적 행위는 인간 사회 내에서도 재현될 수밖에 없다. 이토록 여전한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혹은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실험을 어떻게 지속하고 있는가?
느린 죽음
문화이론가 로렌 벌랜트(Lauren Berlant)는 ‘슬로우 데스(slow death)’라는 개념을 통해 점진적인 죽음과 사회적 억압을 결부시켰다.[7] 여기에서 느리게 소멸하는 생명력이란 단순한 생물학적 죽음에 국한되지 않고, 연속적인 압박 속에서 삶의 질이 점차 악화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제 불투명한 경계에서 오랫동안 소모되어 온 유하나의 쥐와 개구리, 그리고 쥐-인간을 떠올려보자. 근대적 도살장에서 고깃덩이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그곳으로부터 그다지 멀리 도망쳐 나오지 못했다. 그저 천천히 죽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앞서 살펴본 작업들은 억압과 죽음의 불투명한 구조를 성찰하게 하는 거울이 된다.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가 예술을 “인간과 비인간 사이 존재하는 연속성 및 불연속성을 탐구하고 재배치하는” 과정으로 보았다면, 유하나의 시도 또한 그 틀을 재차 배치하려는 미적 실천이다. 이때 일렁이는 스크린은 멀찍이서 관조한 결과물을 영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소멸의 파도 속에서 부표 역할을 한다. 그 형태가 덫이든, 도축 기계든, 스키너 상자든, 작가의 영상은 죽음의 알고리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존재들을 호출하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너무 느리게 진행되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죽음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들을 구출해 내기 위한 무언의 외침은 이다지도 무심한 세상에 잔잔히 퍼져 나간다.
* 이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 특별 기고로 게재되었습니다.
[1] Georges Bataille, “Abattoir”, Documents, no. 6, November 1929, pp. 327-329.
[2] 마르타 슈벤데너, “유하나의 후기 역사주의적 소”, 유하나 작가 웹사이트, 2022. https://yoohana.net/Press-Publication.
[3] Cary Wolfe, Before the Law: Humans and Other Animals in a Biopolitical Fram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3 참조.
[4] 학부 시절 심리학을 전공했던 작가의 배경 역시 작품 이해에 있어 고려해 볼만한 점이다. 유하나 작가와의 인터뷰, 2024년 6월 14일.
[5] 이진경, “원을 살해하는, 상자 속의 타자 속, 또 다른 타자들의 궤적”, 유하나 개인전 《챔버》 서문, 2022.
[6] 신원정, “생쥐와 인간 – 유하나의 《챔버》와 경계 이탈의 예술”, 유하나 작가 웹사이트, 2022. https://yoohana.net/Press-Publication.
[7] Lauren Berlant, Cruel Optimism, Duke University Press, 201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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