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연속혁명론’의 말뜻부터 살펴보자. 연속혁명론은 연속혁명 이론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연속혁명은 이론이 아니라 전략이다. 이론은 법칙과 원리ᆞ원칙의 체계다. 반면 전략은 계획, 기본 계획이다. 러시아 혁명 이래로 연속혁명이 일어난 적이 없다. 혁명이 연속되지 않고 중간에 멈췄다. 연속혁명이 ‘이론’이라면 그러지 않았어야 한다. 그러나 연속혁명은 ‘전략’인데 아무도 그런 전략을 세우지 않았거나, 그런 전략을 세운 세력이 너무 미약했기에 실행되지 못했다. 그래서 1927년 중국 혁명은 패배했다. 1949년 중국 혁명은 노동계급의 사회주의적 혁명이 아니라 중간계급의 민족 해방 혁명이었고, 1959년 쿠바 혁명도 마찬가지였다. 그런가 하면 1989년 동유럽 혁명은 민주주의 혁명이었다. 이런 혁명들은 노동계급의 사회주의 지향 혁명으로 연속되지 않고 민족 해방이나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데서 멈췄다. 왜냐하면 이런 혁명들을 이끈 지도부들이 연속혁명 전략을 세우고 그런 전략을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27년 중국 공산당은 노동계급에 기반을 둔 혁명적 사회주의정당이었다. 하지만 소련과 코민테른의 스탈린주의적 지도부의 강요와 그들 자신의 경험 부족으로 우물쭈물하고 주저주저하다가 기회를 놓쳤을 뿐 아니라 장제스와 왕징웨이에 의해 차례차례로 배신당하며 거의 궤멸당했다. 1949년 중국 혁명의 지도부 중국 공산당은 지식인 기반의 정당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미국 제국주의와 부패한 국내 친미 세력을 쫓아내고 국가자본주의적 축적을 추진할 국민 국가를 건설하는 데 헌신해 중간계급들의 지지를 받았다. 특히 지주제도 폐지를 공약해 농민의 지지를 받았다. 1959년 쿠바 혁명의 지도부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도 중간계급지식인들의 정당을 이끌고 미국과 부패한 친미 세력을 쫓아내고 쿠바 국가자본주의를 건설했다. 1989년 스탈린주의 체제를 붕괴시킨 동유럽 지식인들과 도시 중간계급은 국가자본주의를 ‘민영화’(사유화)하고 세계 시장에 개방하고자 정치적 민주주의를 구현했다. 이런(1949, 1959, 1989) 혁명들에서 노동계급은 극도로 제한적이고 수동적인 구실만을 했다. 왜냐하면 혁명 지도부들이 그런 전략을 세워 실행했기 때문이다. 그 지도자들은 민족 독립과 지주제도 폐지, 아니면 정치적 민주주의를 성취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트로츠키 정설주의자들은 트로츠키를 따라 연속혁명을 이론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1949년 중국 혁명과 1959년 쿠바 혁명의 성격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1949년 중국과 1959년 쿠바에서 연속혁명의 원동력은 작용하지 않았고(특히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을 위한 혁명적 행동이 없었다), 카스트로와 마오쩌둥의 정당들도 연속혁명 전략을 채택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트로츠키 정설주의자들은 중국과 쿠바의 혁명들로 ‘노동자 국가’가 세워졌다고 주장했다. 노동계급이 능동적이고 지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어도 노동자 국가가 세워지다니 대단한 신비주의가 아닐 수 없다.
연속혁명: 민주주의의 과업들을 노동자 혁명으로 해결
그러나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은 무엇보다 노동계급이 자체의 민주적 권력 기구(러시아에서는 ‘소비에트’로 불렸다)를 기반으로 권력을 잡고 그 노동자 권력을 통해서 정치적 민주주의와 지주제도 폐지, 소수민족 해방, 그리고 생산의 노동자 통제를 이룩했다. 즉, 사회주의 혁명으로 민주주의의 과업들도 수행했던 것이다. 바로 이를 두고 연속혁명이라고 부른다. 2월 혁명이 10월 혁명으로 연속된 것뿐 아니라, 무엇보다 2월 혁명으로 성취되지 못한 것들을 10월 혁명이 성취하기 시작한 것을 두고 연속혁명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2월에서 10월까지는 연속혁명의 원동력(특히, 노동계급의 소비에트 활동과 농민의 토지 장악)이 근저에서 작용하던 기간이었지만, 연속혁명 자체는 10월 혁명이었다.
그래서 레닌은 1921년 10월 14일에 발표한 ‘10월 혁명 4주년 기념일’이라는 〈프라우다〉 지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부르주아적ᆞ민주주의적 개혁들이 프롤레타리아 혁명, 즉 사회주의 혁명의 부산물이라고 말했고 행동으로 입증했다.” 같은 글에서 레닌은 “위대한 10월 혁명이 일으킨 농업 개혁”이라는 말도 하고 있다. 요컨대 연속혁명 전략이란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해서, 미해결의 역사적 숙제들인 국가 독립이나 정치적 민주주의나 지주제도 폐지, 소수민족 자유화 등을 함께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연속혁명 전략과 반대되는 전략을 두고 단계혁명 전략이라고 한다. 개혁 전략은 또 다른 것인데, 왜냐하면 단계혁명 전략은 그래도 혁명가들이 추구하는 것인 반면, 개혁 전략은 개혁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명적 상황이 심화돼서 노동계급이 자체의 민주적 권력 기구를 세우고 정치 권력 장악을 위협하면, 개혁주의자들과 단계혁명론자들은 서로 수렴할 공산이 크다. 1917년 러시아를 비롯한 역사적 경험들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1917년 2월 혁명 이후 10월 혁명에 이르기까지 단계혁명론자들인 멘셰비키 당은 임시정부의 부르주아 개혁주의자들과 유착해 있었다. 그러느라고 노동계급이 하고 있던 결정적 구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10월 혁명을 팔짱 끼고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민주 혁명 선행론이 제기되는 맥락
이제 연속혁명 문제가 제기되는 맥락을 살펴보자. 혁명이냐 개혁이냐 하는 논쟁은 혁명가와 개혁주의자 사이에 일어나는 반면, 연속혁명이냐 단계혁명이냐 하는 논쟁은 혁명가들 사이에 일어난다. 그러므로 연속혁명이 적절하냐 아니냐 하는 논쟁은 혁명가들 일각에서 사회주의 노동자 혁명 전에 민주주의 혁명이 선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상황을 맥락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혁명의 유형 중에 사회주의 혁명이 있고, 연속혁명이 있고, 또 무슨 혁명, 무슨 혁명 등이 있는 게 아니다. 사회주의 혁명, 즉 노동자 혁명이 가능한데도 그 전에 반드시 민주주의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단계혁명론자들이 존재할 때 혁명의 목표와 수단들을 둘러싸고 연속혁명 전략을 제안해야 하는 것이다.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혁명이냐 개혁이냐 하는 논쟁이 거의 없었다. 개혁주의 입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좌파에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어떤 종류의 혁명이냐를 두고 논쟁했다. 그러나 모두 단계혁명론을 당연시하며 그 안에서 자기들 나름의 전략을 주장했다. 먼저 미국의 간섭으로부터 국가 (자)주권을 확립할것인가(NL), 아니면 먼저 재벌을 대행하지 않는 민중(노동자와 중간계층들)의 정부를 세울 것인가(PD) 하는 게 핵심 쟁점이었다. 그러나 단계혁명론은 민족해방혁명론(NL)이든 민중민주혁명론(PD)이든 노동자 권력을 당면한 역사적 의제에 올려놓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모두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을 뭉뚱그려 혁명의 주체로 보는 민중주의를 넘어서지 못했다. 따라서 당시에는 연속혁명 전략이 주창될 만했다.(그러나 노동계급 투쟁이 가장 고양되던 1989년 말 동유럽 스탈린주의 체제 붕괴 문제가 엄습하고 압도했다.) 오늘날 NL과 PD는 대부분 개혁주의자들이 됐다. 극소수가 1980년대처럼 혁명적인 채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극도로 스탈린주의적이다. 그래서 오늘날 좌파 측에서는 일반적으로 혁명이냐 개혁이냐가 쟁점이다. 비록 혁명가들이 극소수여서 이 논쟁이 별로 활성화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1920년대 중국, 1930년대 프랑스와 스페인, 1970년대 칠레, 1980년대 남아공, 1998~99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는 단계혁명이냐 연속혁명이냐가 실제로 문제가 됐다. 앞으로도 중국과 러시아, 북한 등을 포함해 일부 나라들에서는 혁명적 기운이 고양되면, 민주주의 혁명이 선행된 뒤에야 비로소 사회주의 혁명을 일정에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 특히, 노동계급이 사회집단들 중 가장 크지 않은 데다 산업 노동자들은 더욱 적은 경우에, 과연 노동계급이 그 자신의 힘만으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겠느냐는 타당한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 가령 남수단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니제르, 모잠비크, 라이베리아, 앙골라, 에티오피아, 르완다, 우간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미얀마, 예멘, 아이티 등등 세계 최빈국들은 세계 자본이 외면해 온 데다 종족간 분열과 영토전쟁으로 노동계급이 규모가 축소됐을 뿐 아니라 점점 원자화돼 왔다. 그런 곳들의 노동계급은 특히 도시 빈민의 지지를 받아야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 물론 도시 빈민의 지지를 받아 국내에서 권력을 장악해도 사회적 위기 해결은 자체적으로 불가능하고 산업이 어느 정도 이상 발달한 나라들의 노동계급 권력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비록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팔레스타인의 위기도 이웃 나라(특히 이집트) 노동계급의 행동에 의존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이스라엘 산업에 고용된 팔레스타인계 노동계급이 있지만 매우 소수인 데다 주변적 기능만을 한다. 결정적으로, 이스라엘 국가가 미국 제국주의에 의해 하이테크로 중무장하고 있어서 팔레스타인인들만으로는 이스라엘의 식민 정착자 지배를 패퇴시킬 수 없다. 게다가 주변 아랍국 정권들은 서방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을 돕는 핵심 세력이 됐다. 이집트 대통령 엘시시의 독재 정권이 라파흐 국경을 폐쇄하고 있는 것을 보라. 요르단 왕 압둘라 2세도 이스라엘, 미국과 협력하고 있다. 미군 3000명을 주둔케 하는 대신에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경제 원조를 받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정도 막대한 석유 수입 일부를 사용해 다른 아랍 정권들을 유지시키고 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해방되려면 아랍 정권들이 전복돼야 한다.
물론 이란은 하마스에게 자금을 제공해 왔다. 하지만 이란이든 레바논 헤즈볼라든 지난 반년간 가자의 대학살을 막기 위해 한 일이 거의 없다. 특히 이란 지배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지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는 것은 이를 스스로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더구나 지난해 이란 정부는 끈질기게 저항하는 시위대를 누적 통계로 450명이나 살해했다. 하마스가 2012년 시리아 혁명 때 아사드 독재 정권을 비판하자 이란은 하마스를 길들이려고 하마스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중단했었다. 이런 일들은 이란 정권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동맹이 될 수 없음을 뜻한다.(유감이게도 하마스는 이런 이란 정권과 사이좋게 지내려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 해방은 중동 전역의 노동계급과 도시 빈민의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에 달려 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이런 투쟁의 방아쇠 구실을 할 수 있다. 지금 요르단에서 어쩌면 그런 투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조짐이 보인다. 요르단 시위대는 서안지구와의 경계선까지 행진하려 했고, 정권은 보안군을 통해 시위대에 발포했다. 이런 항의가 노동계급의 생계 유지 투쟁과 맞물리면 실로 거대한 대중 투쟁이 일어날 수 있다.
이집트 혁명의 중요성
결정적 전장은 이집트일 것이다. 인구 1억 1000만 명에 취업 노동자만도 3000만 명인 아랍 정치의 핵심부에서 혁명이 다시 일어난다면 가장 중요한 사건일 것이다. 2011년 이집트 혁명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으로부터 몇 년간 성장해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타흐리르 광장의 대규모 점거는 광범한 노동자 파업들과 연결되면서 결정적인 원동력을 창출했다. 공장뿐 아니라 항만과 병원, 학교, 공무원 등까지 가세해 나라를 거의 마비시키다시피 함으로써 독재자 무바라크를 물러나게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혁명가 조직들은 소규모였고, 그 대신에 매우 대규모이고 개혁주의적인 무슬림형제단이 운동의 주도권을 잡아 마침내 집권까지 하게 됐다. 군부는 이슬람주의에 적대적인 세속주의 정치 세력들의 지지를 받아 2013년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의 반혁명으로 수많은 무슬림형제단 단원들과 혁명가들이 학살을 당했다.
하지만 혁명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오래지 않아 “빵, 자유, 사회정의”라는 구호가 다시 울려 퍼질 것이다. 이집트의 민중은 적빈 상태이다. 국민의 3분의 2가 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다. 반면 5퍼센트도 안 되는 극소수(군장성, 국가 관료, 기업주 등과 그 가족들)가 국민 소득의 절반 이상을 가져가고 있다. 우리는 노동자 투쟁과 반제국주의를 결합시키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들(RS)이 이집트에서 재건되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그들의 연속혁명 전략이 성공한다면 이집트 노동계급은 도시 빈민을 이끌고 군부 통치를 타도하고 정치 권력을 잡아, 이집트에 종교의 자유를 포함해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제국주의와 시온주의의 영향력을 물리치고, 아랍 노동자들의 혁명적 투쟁을 고무하고, 이집트 농민을 족쇄에서 해방케 하는 등의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집트에서 연속혁명이 일어난다면 레바논,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서도 틀림없이 연속혁명의 원동력이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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