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리티-모빌리티: 시간의 주름을 통과하는 이미지
1. 들어가며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에서 ‘로컬리티’는 탈-중심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으며, 종종 각별한 이미지 속에서는 로컬리티라는 개념이 탈-중심과 동의어에 가깝게 혼용되었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제목으로 사용된 로컬리티라는 단어의 쓰임 속에서 이미 탈-중심이 내포되었음은 물론이고 오민욱 감독(b.1985)[1]의 영상작업 속에서 지역의 역사와 서사는 흘러가는 풍경이미지를 통해 증언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감독은 우리의 근현대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소외의 역사 속에서 목소리를 잃은 채 여전히 이름도 없이, 마치 유령처럼 도심을 서성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했다.[2] 제목에 로컬리티 다음에 두 번째로 사용된 ‘모빌리티’라는 개념어 역시 탈-중심을 지향하는 로컬리티와 연결되며 미래를 향해 이동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글쓴이는 서로 다른 시간의 이야기를 연결해주는 이미지 더미의 역량을 보다 명시적으로 지시해 보고자 모빌리티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다. 때문에 오민욱의 영상작업을 통해서 로컬리티와 모빌리티를 연결하는 이미지의 속성을 ‘시간이라는 중첩된 주름을 통과하는 이미지’라고 상정하며 중심주의에서 언급되지 못한 지역의 역사와 개인의 서사를 더듬어 나갈 생각이다.
2. 역사와 서사 사이에서 매립된 풍경들
부산의 영화계에서, 그것도 ‘다큐멘터리 제작현장’에 기반하여 영상작업을 시작하였음에도 누구보다 꾸준히 실험적인 영상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오민욱 감독은 언제나 이미지 속에 기입된(혹은 기억되지 못한) 지역의 역사를 언급하고 있다. 물론 그가 다루는 소재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도시개발과 한국근현대사의 몇몇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재는 특별하지 않지만 시각과 청각 이미지를 결합하여 그가 보여주는 시청각적 이미지의 결과물은 결코 단순해 보이지 않는다. 우선 그의 작업적 특징을 살펴보기에 앞서서 영화사의 거장이기도 한 알랭 레네(Alain Resnais, 1922-2014)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밤과 안개>(1955)을 떠올리며 다큐멘터리[3]의 특성을 언급해보고자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기존의 역사속에서 문자 언어인 텍스트로는 결코 기록하지 못했던 잠재성의 역사를 기록하는 시선으로 소환해 낼 수 있었다. 때문에 어떠한 장르 영화보다도 더 시대가 증언해야 될 시대정신이라는 의미 형성을 위해서 다큐멘터리의 감각은 훨씬 더 다층적인 서사와 이미지의 작용과정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였다.[4] 하지만 그러한 경향성에 온전히 의존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오민욱 감독은 비-균질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과거의 상황들을 이미지를 새롭게 재생산하면서 선보였다. 그는 영상을 바라보는 이에게 지금껏 영화를 보기 전까지 미처 알지 못했던 이면의 세계, 혹은 역사적 순간들을 스크린 위에 투사(project)하고자 했다. 그렇게 지나간 역사를 통해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의 상처 혹은 목소리는 감독의 영상 속 인물들의 제스처를 통해서야 비로소 가시화 되었다. 때문에 그에게 영화는 언제나 “현실을 기록하고 재현”하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목적이 될 수 있었다.[5]
주어진 풍경으로 로컬을 고정화 시킬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역의 역사를 기억하면서 나도 모르게 작은 ‘틈’ 사이의 가능성마저 억지로 매립시켜버리곤 했다. 하지만 오민욱 감독의 영상에 등장하는 로컬 속의 장소들은 관광이미지로 치환되지 않고 우리 앞에 주어진 풍경이 아닌 우리가 직접 거닐 수 있는 풍경으로 익숙하지만 동시에 낯설게 기억될 수 있었다.
오민욱의 영상에서 “로컬리티-모빌리티” 개념을 사용하면서 필자가 구체적으로 연결하려던 부분은 아직도 여전히 시간성을 상실한 채 부유하고 있는 로컬의 역사를 낭독하는 목소리와 풍경을 담아내던 카메라의 몇몇 움직임이었다.[6] 특히 <재(Ash:Re)>(2013), <적막의 경관>(2015), <해협>(2019), <유령의 해>(2022) 등의 여러 영상작업을 통해서 감독은 영화관과 미술관을 넘나들며 재현이 아닌 재연의 역량, 무한히 루프(Loop)되는 영상 속에서 기록되지 못한 로컬의 기억을 끊임없이 재-연쇄 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2013년에 발표된 영상작업, <재>는 백악기부터 형성되어 오랜 시간 지면에 박혀있는 돌([사진 1])과 건설 현장([사진 3-4]) 그리고 부산시민공원의 개장을 축하하는 행사 현장([사진 2]) 등을 대조하며 병렬적으로 여러 이미지를 스크린에 제시하였다. 감독은 다소 직관적으로 콘크리트와 구상반려암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데 이러한 전략적 구성은 아마도 관람객의 시각체계에서 보다 ‘능동적인 보기’를 제안한 실험으로 여겨진다.
<재>가 만들어지고 난 뒤, 2015년 <적막의 경관>에서 감독은 ‘거창양민학살’이라는 사건의 현장을 다시 찾아가며 적막한 풍경[사진 5]과 추모공원 내 영상자료 클로즈업[사진6]은 대조시켰다. 흘러가는 풍경이미지와 고정된 교육영상 사이에서 감독은 개인의 ‘죽음’을 국가는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지를 질문하고자 한다.
<재>(2013)와 <적막의 경관>(2015) 이후 감독은 이미지의 시각적 속성과 청각적 결합을 보다 실험적인 모습으로 확대시켜 나가게 되었다. 이후 2019년에 발표된 <해협>에서 감독은시각적인 이미지를 뚜렷하게 대조하기보다 바그너 음악의 청각적 이미지와 편지를 읽는 인물의 낭독하는 목소리, 즉 청각적 질감을 대비시켰다. <해협>에서부터 감독은 역사와 풍경의 관계를 시각적 이미지를 넘어서서 청각적 이미지를 활용하며 다시금 재편하고자 했다.
이후 비교적 최근 작품인 <유령의 해>(2022)를 통해서 감독은 이전 작업보다 훨씬 긴 호흡으로 한국전쟁부터 군사독재까지의 폭력의 역사를 다뤄보았다. 유령과도 같은 존재들[사진 10], ‘국외자들의 연대기가 새겨져 있는 부산역 일대의 장소들도 과거에는 바다’였으며,[사진 7][7] 히치콕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긴 통로를 부유하던 인물들이 서성이던 초량역 1번 출구 주변은 감독에 의해 익숙하지만 동시에 낯선 풍경으로 포착되었다[사진 11].
3. 항쟁의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 주름들
“한 번도 편한 세월이 없군, 우리 손으로 얻지 못한 해방 후 뒤끝이 결국은 전쟁이라니…”
“죽음뿐인 과거가 무슨 소용이”
“남포동 샛길과 미화당 백화점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 시내 분위기가 심상찮다는 것은 부산데파트 앞에서 버스를 내렸을 때부터 알 수 있었다. 옆구리가 휘말린 타원형 시청건물을 바라보면 광복동 입구에 다다랐을 때 경찰차가 길을 막고 교통순경들이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조갑상, 『밤의 눈』, 산지니, 2012, 142, 286, 370쪽
오민욱 감독의 네 번째 장편영화 <유령의 해>(2022)는 동명(同名)의 “극장 전시”에서부터 이어지고 후에 다큐멘터리 영화작업으로 유지되었다고 한다. <유령의 해>에서 항쟁이 일어나던 부산의 소란스러운 장소들은 어느새 혁명을 외치던 도로 위를 소리 없이 흘러가는 바람과 익명의 인파들의 흐름으로 채워졌다.
감독은 영화 속 배우가 텍스트를 낭독하며 조갑상의 소설 『밤의 눈』(2012)에서 말하고자 했던 한국전쟁과 국민보도연맹의 민간인 학살 이후의 역사를 배우의 목소리로 현존시키고자 했다[8]. 이러한 과정은 소설의 텍스트를 재현하려는 배우의 캐릭터 혹은 목소리의 특성에 방점이 있다기보다 여전히 절망스러운 과거의 역사를 순간의 감각과 소리의 질감으로 현재 속에서 다시금 소생시켜보려는 실험주의적 실천에 가까워 보였다.
때문에 <유령의 해>에서의 완결성이 부재한 느린 리듬과 느슨한 서사적 흐름은 결함이 아닌 항쟁 이후의 성찰에 대한 태도와 깊이 있는 질문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과거로 향할 수밖에 없던 감독의 질문은 영화를 통해 생각보다 간결하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소리와 빛으로 역사를 재구성하려던 감독의 의지는 어둠으로 갈무리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 속에 유난히 빛나던 순간은 언제나 영상을 담지하는 표면(스크린)을 통해서 밝게 빛날 수 있었다[사진 9-10][9].
4. 나가며, 밝은 곳을 향하여
글을 마무리하며, 감독의 시청각적 확장과정을 추가로 잠시 언급해보고자 한다. 가지성(可知性)을 넘어서서 가시화된 세계의 증언과 미래의 풍경을 기약하려던 감독은 영상이미지 위에 병렬적으로 로버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과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 그리고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nberg, 1874-1951)의 음악을 사용하였다.
물론 슈만, 바그너, 쇤베르크의 음악적 특징을 음악의 역사에서 풀어내 본다면 단순하거나 하나의 명징한 주장으로 수렴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오민욱 감독은 시각이미지의 확장성은 물론이고 청각이미지로써의 사운드의 사용에 역량이 충분해 보인다. 음악적 특징이 무척이나 다종다기 하기는 하지만 세 명의 음악가는 조성적인 논리에서 시작하였지만 결코 주어진 역사나 서사에 붙잡히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즉, 그들의 화성(혹은 음악적 태도)은 조성적 논리나 조화로움보다는 청각적 이미지의 극대화를 기대하며 끝없는 뒤틀림을 추구한 예술가였다. 현재라는 불완전한 불협화음 다음의 미래의 새로운 음향적 효과를 기대하게 만들어 주는 음악들이다.
2019년 영상작업인 <해협>에 사용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서곡 중 유명한 트리스탄 코드의 파토스 넘치던 불협화음이 내포하고 있던 유도동기(Leitmotiv)는 언제나 현재의 고통에 직면하고 있는 이에게 도래하게 될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어 주는 마력이 분명 있다. 이후 2022년에 발표된 장편영화 <유령의 해>에서 사용된 슈만과 쇤베르크의 청각적 이미지 효과 역시 그러하다. 슈만 음악의 긴장감은 언제나 불현 듯 멜로디의 흐름을 재편하고자 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 모음곡과 《유령 변주곡》에서 발견되는 이탈되는 음악적 흐름을 야기하는 불완전 종지들. 나아가 쇤베르크는 자신 앞에 주어졌던 조성이라는 역사를 결국 거부하고야 만다. 특히 쇤베르트는 조성음악이라는 결코 무너질 수 없던 서양음악의 오랜 역사 속에서 최초로 기존의 역사를 거부한, 그리하여 처음으로 조성음악이 아닌 무조음악을 시도한 극단적 아방가르드를 추구한 진정한 실험주의자였다. 흥얼거릴 수 없는 쇤베르크만의 이성적인 멜로디들이 오민욱 감독의 시각적 이미지와 결합되어 도달하려고 나아가는 지점은 언제나 픽션과 논픽션이 혼재된, 시간의 주름이 중첩된 이미지(들)이었다.
* 이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 특별 기고로 게재되었습니다.
[1] 부산 출생, 동의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 석사과정에서 매체철학, 커뮤니케이션, 사회학 이론 등을 공부하였다. 영화 <상>(2012), <재>(2013), <적막의 경관>(2015), <해협>(2019), <유령의 해>(2022), <마모>(2023) 등을 제작하였고 현재 부산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부산독립영화협회 대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 “오민욱 감독은 이미 몇몇 인터뷰를 통해 “정보들은 네이버에 있으며, 자신의 영화는 그런 백과사전에 갇힌 정보와는 다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하곤 했다.“ [참고] 오민욱/홍은미, 「언제나 다큐의 시간들」, 『인디크리틱』 제17권, 부산독립영화협회, 2020, 22쪽.
[3] 1214년 프랑스의 『르 로베르Le Robert』 사전에 의하면 ‘다큐멘터리’라는 말은 ‘도큐먼트document’에서 파생되었으며, 라틴어 ‘도큐멘툼documentum: 본보기, 모델, 교훈, 가르침, 증명’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이는 배움을 주다, 가르치다라는 뜻을 가진 ‘도세레docere’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이후 1906년 현대적인 의미에서 “다큐멘터리는 자료화면을 통해 영화의 범주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미지를 통한 증거라는 개념을 도출하게 되었다.” [참고] 프랑수아 니네,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 조화림 외 역, 예림기획, 2012, pp.13-7.
[4] 자크 랑시에르, 「제4부 “영화 우화, 한 세기의 이야기들”」, 『영화 우화』, 유재홍 역, 인간사랑, 2012.
[5] “오민욱의 작업을 둘러싼 비평적 지지의 다수는 그가 구조영화의 형식을 통해 기존의 제시적 다큐멘터리의 관습을 우회하거나 부정한다는 것에서 찾는다.” 서동진, 「쓰러지고 무너져 내리는 이미지들: 역사적인 것과 이미지」,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2023 “슬픈 나의 젊은 날”』(전시도록), 부산시립미술관, 2023, 56쪽.
[6] 오민욱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해협>(2019)은 딸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감독은 대만해협과 대한해협사이를 흐르는 기이한 평화를 영상으로 담아내고자 하였다. 이 작품 속에서도 감독은 영상작업에 실황연주를 인용하였는데, 이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대위법적으로 병치하여 “당시의 사람들과 지금의 순간을 연결”시키고자 하였던 감독의 의도가 잘 드러난 부분이기도 하다.
[7] 오민욱, 「새로운 해」, 『허구의 열차』, 무사이, 2023, 81쪽.
[8] 오민욱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기에 앞서서 2019년 7월 영감을 준 소설가 조갑상 작가를 부산 초량 남성창고 앞에서 직접 만났다고 한다.
[9]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에서 커다란 고목들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숲 속에서 남자 주인공 스카티는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묘령의 여인인 마들렌에게 묻는다. “집으로 데려다 줄까요?” 그의 질문에 마들렌은 대답한다. “밝은 곳으로 데려가 주세요.” [참고] 김나영, 「밝은 방」, 『허구의 열차』, 무사이, 2023, 107쪽(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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