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로판 행성에서 쓰는 글
어딜 가나 그곳엔 카메라가 있는 것 같다. 국내에선 CCTV라는 명칭으로 통용되는 Security-Camera, 감시 카메라는 마치 모든 피사체를 동등하게 바라보는 듯한 기계의 시선을 장착했기에 객관적인 기록 장치라는 신뢰 하에 감시 수단으로 인정받는다. 공중파 뉴스의 앵커는 자료화면인 CCTV 영상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시간순으로 읊으며 사건의 전후 관계를 설명한다. 무생물은 결백하다는 법칙은 장비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공공장소에 설치된 카메라는 공동묘지의 시체를, 주차된 자전거를, 생필품점에 진열된 상품을 의심하지 않는다. CCTV는 움직임을 주시하는 장치이며, 생동적이기에 예측불가능한 대상을 향한 불신 위에 쓰여지는 기록이다. 그것은 불안 요소를 품고 있는 침입자를 감지하고 파괴자를 적발한다. 남겨진 기록물에서 존재감을 발현하는 건 대개 생물체이다. 방범용 카메라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온라인에서 공유되는 구글 스트리트Google street나 트레일 캠trail cam의 순간 포착 사진들의 예를 들어볼 수 있다. 시각 기계가 남긴 자료에서 순간포착되는 장면들이 갖는 밈meme적 가치는 해당 생물체가 그곳에 배치되어 발생하는 상황의 유일무이함에서 나온다. 멍청한 도둑의 실패한 강도질만 모아둔 비디오나 농작물을 훔쳐먹는 마멋 관찰 캠 등은 꾸며내지 않았기에 가치 높은 코미디가 된다.
각본 없는 우연성이 ‘객관적인’ 시점에서 기록되어 만들어진 황당한 사진들은 희소하기에 우대받는다. 러프한 인상을 주는 낮은 화질은 포착자도 피사체도 이토록 특별한 상황에 준비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보증수표로 취급되기도 한다. 전문 조명과 고가 장비를 동반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대중들로 하여금 시선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무심한 모델들에 열광하게 한다. 방범 카메라가 주로 설치되는, 누구나 진입이나 접근이 가능한 장소들의 공공성 또한 의례적으로 발생하는 ‘일상 사이 비일상’적인 상황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도어벨 캠이나 열화상 이미지들과 같은 시큐리티 카메라의 형식을 핵심 재료 삼아 굴러가는 작금의 AI 생성 이미지 밈 생태계의 행보는 의외롭지 않다. 부품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24시간 상시 기록 데이터를 감당하기 위해 저화질로 녹화되는 다수의 CCTV 기록물의 포맷이 이미 대중들에게 익숙해져 있는 지금, 해당 형식이야말로 머리칼의 윤곽을 흐려버리거나 손가락을 엉클어뜨리는 등 디테일면에서 아직 충분히 섬세하지 못한 이미지 생성형 인공지능이 보다 ‘자연스럽게’ 연출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바이럴을 탄 AI산 밈 이미지가 첨부된 게시물엔 종종 “이것은 AI 이미지이다”라고 경고 겸 첨언하는 코멘트가 달리곤 한다. 이미지 생성형 AI에서 시큐리티 카메라 프롬프트가 사용되는 방식은 해당 포맷이 갖는 증거 자료로서의 신뢰감을 하락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이전의 CCTV 푸티지들의ㅡ하필 그 시각 그 물리적 좌표에 신체가 위치해 우연히 발생하는 순간의ㅡ희귀성 또한 강탈한다.
허나 AI 생성 이미지 밈 소비는 인공지능에게 속았다는 거부감을 토로하기보단 프롬프트에 입력되었을 쌩뚱맞은 키워드 조합의 기발한 발상을 칭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며 그로 인한 코미디적 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처럼도 보인다. 프롬프트와 생성된 이미지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Dall-E의 이미지 도출 결과물의 레이아웃은 통째로 밈적 포맷이 된다.
상품 가치가 높은 신체 이미지는 디지털 플랫폼에서 복제가능한 공공재로 소비된다. 스치면 바로 잊혀질 외양을 한 신원미상의 인물이 마트에서 도둑질하는 푸티지와 <스타워즈> 시리즈를 대표하는 마스코트 요다가 동일한 행동을 하는 푸티지가 갖는 소비재로서의 가치는 동등하지 않으며 상품적인 면에서 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팔리기’ 위해선 아무개가 아닌 캐릭터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복제된 캐릭터성은 이전과는 다른 캐릭터성을 창출한다. “개별적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체계 내에서도 그 어떤 것도 단순히 현전하거나 부재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흔적들의 차이와 흔적들만이 도처에 존재한다”[1]고 말한 자크 데리다의 개념에 의존하자면 밈 유희는 차연을 즐기는 놀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캐릭터성은 흔적들 간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장난감과도 같을 테다.
COVID-19가 지배했던 팬데믹 시기의 온라인 VR 메타버스 공간을 배경지로 삼은 <KIN거운 생활:온라인-KIN:online>(2021)에는 출시 86일 만에 서비스 종료라는 결말을 맞은 ‘망겜’ <서든어택 2>의 플레이어블 캐릭터 “미야”가 등장한다. 캐주얼 FPS라는 장르를 감안해도 이질감을 줄 정도로 지나치게 에로틱한 캐릭터 조형 디자인 탓에 ‘시체 관음’ ‘네크로필리아’ 게임이라는 조롱까지 얻은 서든어택 2의 캐릭터 모델링을 우연히 획득해 자신의 아바타로 착용한 등장인물 “지혜”는 타 유저들로 인해 끊임없는 성희롱에 시달린다. <서든어택 2>의 서비스 종료 후, 모델링이 추출당해 게임 내에 성관계 시스템을 추가 가능한 ‘섹스 랩Sexlab’ 모드로 유명한 스카이림이나 3D 툴 기반 비디오 제작 프로그램인 “소스 필름메이커“ 등지에서 디지털 포르노의 ‘프리 소스’로 이용되어 온 간판 캐릭터 ”미야“의 외형을 하고 다닌 탓이다.
포르노 밈적 신체인 미야의 모습을 한 지혜를 비롯한 <KIN거운 생활>의 주연들은 사이버 스페이스로부터 박해받고 상처 입어 휴식을 취하기 위해 모인 VR 플레이어, 그리고 그의 아바타이다. 소유권을 빼앗긴 몸, 메타버스 부적응 현상을 겪는 몸, 포르노 전용 오픈 소스가 되어버린 몸… 그들은 낙후된 사이버 신체들이다. <21세기 사이버 신체 해방 선언21C Cyber Body Liberation Manifesto>(2020)의 제목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 그의 작품 세계관을 관통하는 핵심 테마 ‘기술적 유토피아’는 도나 해러웨이가 《사이보그 선언문A Cyborg Manifesto》(1985)에서 그리는 이상을 기반으로 삼는다. 작가는 해러웨이의 계보를 충실히, 그리고 노골적으로 이으며 여성, 짐승, 로봇에 대해 얘기한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소셜 네트워크의 규모가 방대해질수록 사이버 스페이스의 숙명적인 임무와도 같았던 신체라는 개념으로부터의 해방구 이룩은 점점 멀어지며 모두가 몸에 더 얽매이도록 종용하는 것만 같다. 몸은 숭배받고 혐오받는다. “사이보그의 큰 문제는 국가사회주의는 물론이고 군사주의와 가부장제적 자본주의의 사생아라는 점에 있다. 하지만 사생아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자신의 기원을 배신할 때가 많다. 결국 그들에게 아버지는 있으나 마나 별반 차이 없는 존재다.”[2]라는 해러웨이의 말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생아는 아버지를 배반하지 못한 듯하다. 오히려 사이보그는 부친의 듬직한 직속 후계자로 성장해 오고 있지 않은가. 이대로라면 사생아는 평생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안가영은 여전히 사생아의 전복을 꿈꾼다. 그는 몸들이 무시당하고 소외되고 착취되고 훼손되었음에도 아직 ‘살아 있다’고 믿는다. ‘생’을 증명하기 위해 안가영이 꾸준히 제시하는 키워드는 ‘움직임과 탐사-접촉과 공생‘인 듯 보인다. 작가는 온라인 플랫폼과 온라인 게임을 굳이 명확히 구분 짓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 게임은 소셜 네트워크 문화를 가장 효과적인 방향으로 가시화하고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체험형 매체이다. 외부 환경을 탐사할수록 나와 타자의 관계는 변화한다. 타자가 내게 끼칠 수 있는 영향만큼 내 행위 또한 타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는 이런 사실에서 희망을 본다. 영향은 공생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작가가 제작한 게임 <월딩Worlding>(2018)의 플레이어는 시각 기계가 되어 언어가 다른 객체들을 ‘보는’ 행위만으로 그들에게 영향을 준다. 플레이어에겐 세계의 모습을 선택하고 결정지을 수 있는 권력이 직접적으로 주어지지는 않지만 그의 시선은 게임 내 환경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다. <KIN거운 생활KIN in the shelter>(2021)에서도 플레이어는 NPC(논플레이어블 캐릭터)의 행위를 직접 결정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건 개, 로봇, 피폭자의 모습을 한 ‘하자 있는 몸’들의 생활에 사소하게 간섭하는 정도의 행동들뿐이다. 하지만 상호작용은 반드시 서로를 변화시킨다.
반면 타이베이 비엔날레 2023가 “대결로 인해 부패하는 시체에서 작품의 서사가 서서히 전개될 때까지, 작가와 소프트웨어 사이 데스-매치를 벌이는 작가”[3]로 소개한 Li Yi Fan李亦凡은 디지털 환경을 여과없이 비웃는다. 3D 컴퓨터 그래픽 제작 툴로 가공된 러프함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렉처 퍼포먼스인 <What Is Your Favorite Primitive?>(2023)에서 그가 배경지로 택한 장소는 다름 아닌 디지털 극장이다. 인형극 세트나 퍼펫, 텔레비전 등 온갖 ‘연극성’을 부각시키는 소품들이 동원된다. 작가는 이 디지털 폐극장에서 실시간 작업이 가능한 비디오 게임 엔진 프로그램을 이용해 기술 비판을 전개한다. 영상의 3D 모델링들은 원색 텍스처를 입히는 대신 온몸에 바디 페인트칠을 한 텍스처를 입히는 등, 지저분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느낌으로 디자인되어 의도된 불쾌감을 준다. 이토록 투박한데도 아바타는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에게 아바타는 꼭두각시다.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를 조종하는 대상은 역시 Li Yi Fan을 대변하는 또 다른 몸, VR 기기를 착용하고 그린스크린을 입어 투명해진 몸이다. 단일 신체라기보단 실루엣의 형태에 가까운 몸은 분라쿠文楽의 인형사 쿠로고黒衣(검은 옷)[4]가 소품을 다루는 방식으로 아바타를 다룬다. Li Yi Fan은 꼭두각시 아바타의 입을, 쿠로-고가 아닌 그린스크린-고의 손을 빌린다. 아바타의 서투르고 엉성한 움직임은, 디지털로 구현되는 모든 것은 시스템의 관리하에서만 이뤄진다고 지적하는 것만 같다. 작가는 스팀이나 어도비 등의 대기업들이 구독 기반 비즈니스 모델을 채택함에 따라 소프트웨어를 소유한다는 개념은 사라졌음을 언급한다. 구독자의 창의적인 능력과 기술이 소프트웨어 회사에 의해 임대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가 직접 고안한 3D 디지털 프로그램을 창작 툴로 사용해 당사자성을 부각하며 사유 체계를 지배하는 기술 발전의 편향성이 가진 허점과 꺼림직한 일면을 폭로한다면, 안가영은 직접 가동 가능한 게임 프로그램을 작품의 형식으로 꾸준히 선택하며 기술에게 받은 상처는 기술을 통해 치유해 보길 권유한다. 물론 Li Yi Fan의 지적처럼, 디지털 환경에서 처음부터 이유 없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두가 알듯 해당 환경에선 유동성조차 철저하게 계산된 프로그램의 결과이며 게임에서 이뤄지는 동적 상호작용의 가능성들은 대개 제작자의 의도를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안가영이 제작하는 사이버스페이스는 그 자체로 작가가 제시하는 가변적인 유토피아라기보단, 유토피아를 향하는 개개인이 탑재해야 할 유연한 사유를 구축하게 돕는 시뮬레이션 도구임을 짚는 쪽이 보다 정확ㅡ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차치하더라도ㅡ할 것이다.
육체미 넘치는 폴 댄서가 하늘까지 뻗은 긴 봉에 몸을 지탱한 채 춤을 춘다. “FKA twigs”의 MV<Cellophane>(2019)의 한 장면이다.
어두운 무대에서 춤에 취해 눈을 감고 느리게 위로 향하고 있던 댄서는 하늘에서 천사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발견하며 눈을 뜬다. 유지해 오던 춤의 호흡이 끊긴다. 그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급하게 빛이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위로 올라가 마주하게 된 천사는 금속 날개와 기계 몸을 가진 사이보그 혼종이다. 눈이 마주치자 천사의 얼굴을 덮고 있던 마스크가 벗겨지며 겉껍질이 여러 겹으로 갈라진다. 안에 있던 건 댄서 자신의 얼굴이다. 얼굴에 발을 갖다 대자 도플갱어 천사는 키스한다. 구두 굽이 천사의 얼굴을 관통해 3D 프로그램의 extrude 효과를 적용한 것처럼 모델링의 폴리곤을 반대쪽으로 돌출시킨다. 댄서가 호기심에 발을 전부 넣었기 때문인지 천사의 폴리곤이 그녀의 발을 빨아들였기 때문인지 애매모호할 정도로 순식간에 댄서는 폴리곤 사이로 빠져 추락한다. 급속도로 낙하하는 폴댄서의 주변부에서 잘게 반짝이는 천사의 폴리곤 덩어리는 그녀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셀로판 콘페티처럼도 보인다. <KIN거운 생활>의 지혜는 미야를 성적 노리개에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이펙트를 탑재한 무기 달린 갑옷 커스텀을 추가해 그를 ’테러 아바타‘로 만든다. <What Is Your Favorite Primitive?>는 소셜 미디어에 대한 경고문으로 수차례 등장해 온 통계학자 에드워드 터프티의 문구를 한 차례 더 인용한다. 고객customer을 사용자user라고 부르는 산업은 단 두 가지뿐이다. 불법 마약 시장, 그리고 소프트웨어 시장.[5] 유저들은 사용한다. 몸들은 사용된다. 둘을 분리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착각이자 오만일 것이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뒤덮는 각종 신체 변형 AR 셀피 속 얼굴에 달라붙기 위해 제작된 폴리곤 찌꺼기들이 좀먹고 있을 대용량 데이터 센터의 전력량을 떠올려 본다. ‘y2K‘ 잇템과도 같은 PS2 필터는 초상을 재료로 호러 게임의 미청년들을 대거 출력한다. 작금의 눈 시리게 반짝이는 금속성 텍스처의 유행은 SF 세계관을 향한 동경이 길러낸 미적 취향인가. 이토록 수상하고 못미더운 셀로판 천사들이 정말로 아버지를 배반하고 지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 이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 특별 기고로 게재되었습니다.
[1] Derrida J. 『입장들Les Éditions de Minuit』 박성창(역), 솔출판사, 1992. 50p
[2] Haraway J D. 『해러웨이 선언문』. 황희선(역), 책세상, 2019. 22p
[3] https://www.taipeibiennial.org/2023/content/participant-li-yi-fan
[4] 17세기에 만들어진 일본의 전통 인형극 분라쿠(닌교조루리)에서 인형을 움직이는 건 세 명의 인형사들.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검은 천으로 몸을 가린 인형사들은 각각 각각 인형의 몸통,머리,오른손/ 왼손 /발의 동작을 담당한다.
[5] Jeff Orlowski, 「소셜 딜레마The Social Dilemma」(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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