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동시대적 지역성으로서의 초지역: 어느 지리학자의 그림

* 이 원고는 문헌조사 및 사례취재를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에 허구적 상황을 가미한 사실적 픽션임을 밝힙니다. * 들어가며 *   안녕하십니까. 지리산대학교 지리학과 이지오입니다.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긴장되네요. 폭설로 교통이 불편한데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 주셔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오늘 이 대회에서 제가 발표할 주제는 ‘초지역적 거주의 발생 배경과 양상, 그리고 그에 따른 공간전략’입니다. 초지역,…

친애하는 우리에게

  서간체로 글을 씁니다. 저는 종종 비공개 블로그에 일기를 쓸 때도 서간체로 쓰곤 합니다. 그러면 일기가 연애편지처럼 쓰입니다. 사생활을 나열한 계정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자가 아니라면 그 글을 읽을 수 없을 텐데도, 저는 답장을 기다립니다. 손쓸 수 없을 만큼 고약한 심보입니다. 하지만 이번만은 정당한 심보라고 합시다. 지역성은 상호 호명과 무관하지 않으니까요. 창작자로서 지역을 호명하고, 호명을…

규범 사이를 미끄러지는 변명들: 고요손 개인전 《섬세하게 쌓고 정성스레 부수는 6가지 방법》에 부쳐

  근래 부쩍 늘어난 식음료 브랜드와 미술의 협업을 보면 이는 정체된 동시대 미술에 있어 매우 쉽고 간편한 그리고 매력적인 대안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매체 이후를 상상하는 전략은 매체의 질적 완성 이후에 와야 할 터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양상은 손쉬운 도피로 그치는 탓이다. 이것은 낯선 영역에 대한 시도를, 확장이란 미명 하에 쉬이 긍정해버리는 미술 비평의 나태에…

아카이브라는 에코챔버를 부수고 싶다는 미스테리한 욕망: 최근 관람한 두 개의 전시를 경유하면서

0. 어떤 의심   작가가 그린 그림은 어떻게 어느 한 시절의 특정한 풍경으로 독해될 수 있는 것일까? 그 시절의 풍경을 기억하는 사람이 봤을 때, 그 그림이 실제로 꽤 닮았기에? 아니면 작품의 제목이며, 작품의 제작연도와 지역에서 오래 활동한 작가의 이력이 근거로 작동하기에? 하지만 이걸로 정말 충분한가? 이것은 어째서 자연스러운 것이 되는가? 작품에 대한 인식과 그 조건에…

성병의 재구성

  수전 손택은 질병에 대한 환상이 질병으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이해하고 의미를 빼앗으려 했지만, 근래의 풍경은 “질병은 질병이며,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이다”라는 그녀의 공식을 무심하게 건너뛴다. 감염성 질환은 신체 간의 물질적 교환이나 그녀가 반대했던 질병-의미의 사슬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 전체에 증상을 지핀다.(식별불능에서 비롯되는 공포, 일상의 상실에 대한 불안, 사회적 분위기의 극단적 침체) 그녀의 시도는 애초부터…

은유로서의 무빙 이미지, 그리고 영화의 종언: 콩종크튀르(conjoncture)로서의 포스트모던을 넘어[1]

“힘도, 의미도 없는 허수아비 로고스에 대한 해체는 멈춰도 좋다.로고스는 한낱 자본의 화신으로 존재할 따름이다.가장 실질적이고도 위협적인 해체의 실천은 마르크스주의이다.” 1. ‘무빙 이미지’라는 동어반복   어느 순간부터 ‘무빙 이미지(moving image)’라는 개념이 동시대 미술장에 편재하기 시작했다.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내로라하는 큐레이터들의 서문에서, 작가들의 스테이트먼트에서, 비평가들의 작업에서- 문제의 무빙 이미지가 심심찮게 등장했던 장면들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공모전] 문제. 지역성을 규명하시오

안녕하세요. 퐁은 중심과 주변의 논리를 구축하는 세계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하여, ‘지역성’을 주제로 한 키워드 공모전을 주최합니다. 본 공모전은 최우수상 없이 우수상과 장려상만 선정합니다. 수상 인원에 제한은 없습니다. 심사를 통해 100편의 우수상 원고가 선정되면 100편 모두 상금을 지급할 예정입니다. 설령 상금 지급 후 재정 문제로 퐁이 파산한다면, 매체의 아름다운 최후가 될 것입니다. 상금 우수상: 50만원 장려상:…

노동집약적 환대

  이미지를 창출하는 기술과 그것을 전달할 매체의 형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졌지만, 시각성이 보유하고 있는 독보적인 위상 자체가 줄어든 적이 없다. 비디오는 라디오 스타를 죽였고(“Video Killed the Radio Star”),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을 죽이려다가 그 품에 안기는 선에서 타협했다. 스마트폰 뒷면에 붙은 카메라가 환공포증을 일으킬 정도로 많아지면서 동시에 커지는 현상은 이미지 생산과 유포를 향한 인류의 끝없는 욕망을…

퐁: 로컬리티 워크샵 모집 공고

<퐁: 로컬리티 워크샵>은 지역성 개념을 검토하며 오늘날의 지형도를 상상하려는 프로그램입니다. 각 참여자가 8번의 워크샵을 통해 지역성에 대한 원고 형태의 결과물을 내놓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금을 독점해 기획자들의 개별적인 커리어를 쌓거나 웹진을 위한 마이크로기념비를 만들기보단, 한정된 기금을 공개적으로 분배하고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려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모집인원: 10명 (참여시 1인당 25만원 지급) 1. 일정: 22.11.01. – 22.12.31. 2. 장소: ZOOM…

공공미술의 소요(騷擾)의 틈 속에 소요(逍遙)하기 – <2021 프로젝트 영도> 이후

  부산 영도에서 일어난 소동에 대한 본격적인 글쓰기를 하기 전, <2021 프로젝트 영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다. ‘이 프로젝트는 한 문장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만들지 않겠다”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라는 게 아니라 물리적인 것들, 예를 들어서 벽화나 조형물 같은 공공미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전형의 결과들, 공공의 장소를 반영구적으로 점유하는 어떤 것들을 만들고 남기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