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의 춤〉리뷰: 유니콘의 뿔처럼 가라

  퍼포머가 등장하여 퍼포먼스가 이루어질 공간으로 걸어간다. 몇 개의 이동식 조명이 맥없이 어둠을 흐리는 곳에 작은 스크린이 설치돼 있다. 거기로 가는 중이다. 한 발을 옮기고 지팡이를 짚고 다른 발을 끌어오면서 차근차근 몸의 위치를 옮기는 중이다. 단계적으로 선명하게 구분되는 걸음으로 다다른 벽의 모서리에 지팡이를 기대어 놓고 그러므로 더 위태로워진 이동을 희끄무레한 빛 사이로 들어가 화면을 마주하고…

로망 뷔페: 파편 사이 유랑아[3]

3-2). 극장 월드: 장소성의 허물   TV 시리즈 <커뮤니티Community>[1]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단연 각종 장르물의 도식을 응용한 패러디들이다. 드라마는 “그린데일”이라는 ‘꼴통’ 전문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첩보물, 서부극, 스페이스 오페라 등의 각종 장르 문법에 맞춰 과장하며 전개한다. 물론 캐릭터성에 기대어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진행시키는 시트콤이라는 장르적 특성에 맞게, 장르물의 도식은 대부분 이후의 스토리에 끼칠 영향력보다는 인물들의 고정된 역할에…

로망 뷔페: 파편 사이 유랑아[2]

2-2).   체험가능한 동시에 개인이 영감을 받아 ‘초이스’해서 ‘정체성’으로 발탁시킬 수 있는 소재로 취급되곤 하는 에스테틱 이미지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흥미로운 것은, 리미널 공간 에스테틱의 소비 방식이 일전의 그것들과 비교했을 때 조금 독자적인 양상을 띄고 있다는 점이다. 호러 공간의 심미화는 이미 『나사의 회전[1]』 류의 고딕 호러의 영향 아래 있는 하우스 호러풍의 저택이나, B급 호러물과 관련된…

로망 뷔페: 파편 사이 유랑아[1]

0. 서론   오늘날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어떤 특정한 이미지들은 시청각적 체험을 낭만화시키는 데에 일조한다. 이 때 로망의 향유는 대상의 심미적 요소를 추출한 도식화를 촉진한다. 도식화는 탐미주의에 극도로 매몰된 온라인 팬층으로부터 발전한 북미의 인터넷 문화 ‘에스테틱’ 이미지가 제작되고 확산되는 방식의 기반이 된다. 이미지는 취향을 드러내며 환상을 충족하는 장치이다. 그 중에서도 풍경 이미지는 분위기를…

은행어

  세계은행 보고서의 언어   계량언어학적 분석은 국제 금융 기구들의 운영과 전망에 관해서 무엇을 알려줄 수 있을까? 첫 눈에 보기에 세계은행 연례 보고서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된 단어들은 한결같이 연속적인 것 같아 보인다.[1] 어떤 시기의 보고서에도 세 개의 명사(은행, 차관, 발전)와 네 개의 형용사(재정의, 경제의, 금융의, 민간의)로 구성된 이 일곱 단어는 거의 항상 최상위권에 있다. 이들의 칠중주에 몇몇 다른 명사들도 함께한다. 국제부흥개발은행, 국가, 투자, 이자, 프로그램, 프로젝트,…

Graffiti In Pusan 부산 그래피티 20년, 로컬의 이야기

1.시작과 만남    Pc통신 시절 극소수의 매니아들에 의해 형성된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는 2000년대에 접어들며 인터넷의 발전과 보급의 확대로 동호회 등의 형태로 급속도로 확장된다. 당시 수많은 취미 모임이 생겨난 것과 함께 써브컬처와  언더그라운드 커뮤니티를 갈망하던 매니아들이 온라인 카페 활동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존재가 드러난다.  2000년 부산의 한 고등학생(지알원)이 이런 흐름에 가세하여 하나의 카페를 만들게 된다. 이름하야…

첫 문장에 주목하여 <자본>을 읽자

초록   통념과는 반대로, <자본>에서 전개되는 마르크스의 분석은 상품을 출발점으로 삼지 않으며, 부(富)를 출발점으로 한다. 이 사실은 상당한 이론적, 정치적 함의를 품고 있다. 키워드   <자본>-부-상품-현상형태/가상(假像)[1]-혁명 자본가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富)는 ‘상품의 방대한 집적(集積)으로 나타나며, 개개의 상품은 이러한 부의 기본형태로 나타난다.[2] [The wealth of those societies in which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prevails, presents…

◐ 여전히 말해지지 못한 것들이…

  산 자가 산 자 대신 말하는 대의민주제는 오늘날 완전히 희망을 잃은 듯 보인다. 그런 사정과 별개로, 죽은 자는 여전히 산 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해 말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산 자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배회하거나 같은 자리에 결박된 채 억눌려 있을 뿐이다.   금번의 포럼 ⟨여기에 뼈가 있다⟩는 경산 코발트 광산에 여전히 매장된, 최대 약 삼천 오백…

◐ 추모의 이상향과 우상향의 그래프

사회적 의무로서의 추모   특정 지역과 문화권마다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장례는 시신을 처리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부패하는 시신을 살아있는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격리시켜 질병의 창궐 따위를 막는 중요한 일이다. 조선 시대에서 풍수지리의 중요한 역할은 묫자리를 지정하는 건데, 최대한 시신이 빨리 썩어 흙으로 돌아갈 수 있는 양지바른 땅을 위해 바로 이 풍수지리가 작동했다. 시신이 썩지 못하면 지하수를…

◐ 세 페이지 소설 시리즈(1): ‘소인연구소’ 김XX소장 인터뷰-경산 코발트 광산 방문에 갈음하여

“딱 까놓고 말해 보자구. 남덜 힘든 걸 못 느끼는 게 그게 죄야?당신들 아니할말로 차별 없애자, 없애자 맨날 그러면서. 요새 뭐?공감 능력도 지능이라매? 그럼 지능 떨어지는 사람 차별하자는 거야 지금?”– 소인 연구소 김 소장 사전 인터뷰 중(2023.6) 기록관의 노트   아래는 2023년 7월의 어느 날 연락을 끊은 김 소장을 인터뷰 한 내용입니다. 방문 당일에 잠시 이루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