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미술) 번역의 단맛과 쓴맛
멋모르고 예술(이 글에서는 지금부터 ‘미술’로 통칭하도록 한다) 번역에 뛰어든 건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0 《Trust》에서 웹과 뉴미디어 담당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던 때였다.
멋모르고 예술(이 글에서는 지금부터 ‘미술’로 통칭하도록 한다) 번역에 뛰어든 건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0 《Trust》에서 웹과 뉴미디어 담당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던 때였다.
미술과 시대의 변화를 거센 물살에 비유한다면, 비평가는 맨 앞에서 파도 타는 사람인가, 아니면 맨 뒤에서 첨벙대며 따라오는 사람인가? 광풍을 맞으며 돛대 끝에 매달려 있는 사람인가? 혹시 그는 등대지기인가? 아니면 해변에서 관망하는 사람인가? 무엇이 됐든 유행의 최첨단에 서야 한다는 의무감, 그렇지 않으면 도태될 거라는 두려움. 동시대 미술비평가 중에 이런 군더더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것을 압박감이라 부르든 은밀한 욕망이라 부르든 말이다. 미술과 세계에 대해 한마디 보태려는 사람은, 제일 먼저 인정 욕구라는 강력한 장애물이 자기 안에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남 이야기가 아니고 내 이야기다.
인터넷 방송 문화에서 인기 방송인의 몰락을 이르던 용어인 ‘나락’이 이제 와 확장된 의미를 가지게 된 일이 내겐 신기하게 느껴진다. 본래도 ‘나락(奈落)’은 ‘밑이 없는 구멍’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어원처럼 탈출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를 이를 때 종종 사용되곤 했으나, ‘나락도 락이다’ 밈과 피식대학의 유튜브 콘텐츠 <나락퀴즈쇼>의 성공을 계기로 인터넷 하위문화에서 사용하는 ‘나락’의 의미와 수평적으로 연결된 것 같다. ‘음지’ 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만화가 겸 유튜버 카광의 콘텐츠 <나락의 삶>은 서로 인접해 있는 나락의 두 의미를 시사교양 다큐멘터리의 문법 위에서 매끈하게 통합해 낸 사례인데, <나락의 삶>이 종합하고 있는 ‘나락’의 기호 체계는 음지 문화에서 십수 년간 축적된 밈 이미지들이 질서 없이 뒤섞인 혼성모방을 통해 성립한다. 이 과정에서 나락의 주변적 의미들이 지시하던 여러 수렁과 실패, 좌절들은 나락의 강렬한 이미지와 단어 자체의 말맛으로 인해 휘발되고 인터넷 밈의 지위를 획득했다.[1]
팔레스타인 문학의 푼크툼 문학이란 무엇인가? 그 질문은 곧 문학의 역사를 되묻는 질문이기도 하고, 대문호들이나 빼어난 문학자들의 존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내게 문학은 글로 쓰는 찌르는 행위이다. 찔리면 아프다. 현실에서 찔리면 피를 흘리지만, 문학의 상상계에서 찔리면 눈물을, 좀 더 깊은 층위에서 찔리면 검은 담즙을 흘린다. 문학 용어를 빌리면 멜랑꼴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좋은…
001. 2021년 5월 11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로켓을 쏘자 세계 주류 언론들은 일제히 ‘하마스 대 이스라엘의 폭력’이라고 보도했다. 둘 사이의 폭력에 무고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사람들만 희생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본질을 포착하지 못하는 접근법이다. 002. 이 글에서는 최근 이스라엘이 벌인 팔레스타인 공격의 직접적인 배경을 간단히 짚은 후, 더 근본적인 문제인 중동 지역에서의 제국주의 이해관계와 갈등에 관해 살펴보고,…
먼저 ‘연속혁명론’의 말뜻부터 살펴보자. 연속혁명론은 연속혁명 이론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연속혁명은 이론이 아니라 전략이다. 이론은 법칙과 원리ᆞ원칙의 체계다. 반면 전략은 계획, 기본 계획이다. 러시아 혁명 이래로 연속혁명이 일어난 적이 없다. 혁명이 연속되지 않고 중간에 멈췄다. 연속혁명이 ‘이론’이라면 그러지 않았어야 한다. 그러나 연속혁명은 ‘전략’인데 아무도 그런 전략을 세우지 않았거나, 그런 전략을 세운 세력이 너무 미약했기에 실행되지 못했다. 그래서…
무리수보가 큰 실수의 수행성에 관한 유연한 설화(괄호 안의 글은 독백으로) 머리말 이 이야기는 우연한 실화로부터 출발한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171쪽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조천지서는 약 한 달 전인 3월 6일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경찰관 대부분이 교체돼 상대적으로 방어하기에 불리한 상태였지만, 4월 3일 새벽 무장대의 공격을 받았을 때 한 사람도 피해를 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작물이 자랄 대지의 여건을 살피지 않고 씨를 뿌리는 농부만큼 어리석은 자도 없다. 비평이 임사에 이르렀다 해도 세포의 분열은 지속된다. 당대의 지적인 유행에 부합하는 세련된 텍스트는 그치지 않고 당도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상황을 바꾸진 못할 것이다. 안일한 자기 복제, 낡은 독해, 무해한 의사표명이 혼재된 문자들의 탁류 속에서 도전적이고 참신한 비평을 골라내는 것이 수상 제도의 역할이라고…
“Every thinking person fears nuclear war,and every technological state plans for it.Everyone knows it is madness,and every nation has an excuse.”– Carl E. Sagan 2023년 2월 2일에 나는 이스라엘 남부에 위치한 와이즈만 천문대를 방문 중이었다. 그곳의 천문학자들과 우리 팀 연구원에게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는데, 중력파 신호가 발생했을 때 최대한 신속하게 망원경의 고개를 돌려 중력파의 기원지에서…
“Gravitational-wave data from colliding black holes is called a ‘chirp’: it sounds like a bird when it converted into sound”– Wanda Diaz-Merced I. 우주를 향한 감각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요한 적막을 떠올려보라. 주변의 그 어떤 존재로부터의 소리도 들을 수 없고, 힘껏 내지른 비명이 한 치도 뻗어나가지 못할 절대적 침묵의 공간을 말이다. 그것이 아마도 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