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 Sorry But I Love You

*이 글은 영화 <소년시절의 너>의 강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극장에서 영화 <소년시절의 너>를 보던 중이었다.   뜬금없이 빅뱅의 <거짓말> 뮤직비디오가[1] 떠올랐다.   <거짓말> 뮤직비디오는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 같다. 이 작품은 주인공(권지용)이 도망치다가 어느 여자와 전화를 한 뒤 체포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후 여자가 일상적인 일을 하는 중간중간 흑백 장면이 교차되며 사건의 내막이 드러난다. 여자는 어떤 남자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반격하다가 그를 죽이고…

집단 자살을 소망해도 될까요?

* 본 글에는 독자에 따라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쿠에타핀, 카바마제핀, 리튬, 모든 벤조디아제핀과 비벤조디아제핀계 약물에 영광과 축복 있으라. 부모는 솜씨가 서툴러 손상된 인간을 낳았고 약물이 나를 손보고 있습니다. 반 쪽짜리 인간의 우화를 악착같이 파고들었던 때가 있다. 반편이는 나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주는 불충분한 얘기들. 넉살 좋게 존재론을 주워섬기는 종자들은 제발…

예술을 먹고 기도하라, 때늦은 보수적-낭만적 편지로서 비평

  매우 고통스러운 꿈을 떠올려보자. 나는 출구가 없는 곳에서 뛰고, 또 뛰다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휘말려 끊임없이 가라앉는다. 그 꿈이란 우리 삶에서 우리를 추락시키는 일련의 사건 속에 틀어박혀 있는 것에 가깝다. 그러한 문제적인 삶이란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로 빼곡한 악몽이다. 검은 개들은 꼬리를 흔들며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우울은 퇴치되지 않는다. 온갖 증오 어린 말들이 나를 가격하고,…

여성이라는 난제 : 얄팍한 성기를 넘어선 범주를 상상하기

  지난 6월 3일에서 13일까지의 아주 짧은 기간, 김현주의 <프레임>이라는 전시는 여성과 사회인으로서 느낀 곤란을 점묘 드로잉을 통해 그려내고 있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한 작업 당 6개월에서 2년까지도 소요되는 각고의 소산이다.)   나는 마침 더현대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앤디워홀의 전시를 보고 났던 터라 당혹감이 꽤나 컸는데, 작가의 노력이 주류 미술사가 일궈온 개념들에 관한 개인적 반발처럼 보였기…

집 나간 주체와 망상 기계들 : 서사는 어떻게 공예품이 되었나

1.  1975년, 스위스의 전시 기획자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은 <독신자 기계>라는 이름의 전시를 기획했다. 이 전시는 굵직한 모더니즘 소설들과의 연관을 큰 특징으로 하고 있었는데, 제만은 프랑스 작가 미셸 카루주(Michel Carrouges)가 발표한 『독신자 기계』라는 책을 전시의 중요한 참조점으로 삼았다. 카루주는 마르셸 뒤샹의(Marcel Duchamp)의 그 유명한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1915-1923)(이하 <큰 유리>로 약칭.)에 대단히 매료되었던 작가였고,…

버그와 상동증

  로케이팅은 성공했다. 현실은 변조되었다. 더 정확히는 현실성이. 지난 4월 L.A.D에서 열린 ⟪STUCK⟫ 전은 작업을 보기 위한 전시라기 보단 공간을 이질적으로 개축한 코딩에 가까웠다. 환각의 가미를 위해 L.A.D의 공간성을 한껏 이용한 일은 영리했다.(L.A.D엔 정경을 1인칭 어드벤처 시점의 ‘맵’처럼 표상하는 효과가 기입되어 있다.) 공간을 두고 할 수 있는 여러 고민 중 ‘체험’에만 한정했을 때, 공간-전시-효과-체험의 사슬을…

19) 망가F타로의 죄와 벌 독해

※ 본고는 일본 만화가 망가F타로 작품 ‘죄와 벌’의 줄거리가 실려 있으며, 나체, 피, 구토, 설사 등 충격적인 이미지를 대거 포함하고 있기에 임산부, 노약자, 어린이, 심약자, 미성년자의 열람을 금하며, 본고에 실린 이미지로 인해 초래될 심리적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 ※ 본문에 등장하는 스틸 이미지는 각종 블로그 및 웹사이트에서 캡쳐되었습니다. 시각 자료는 글 해당 부분을 클릭하시면 새 탭에서 열기로…

여가로서의 게임, 노동으로서의 게임, 상품으로서의 게임: 게임 읽기의 혼란과 비판적 개입

  게이머들 사이에서 노가다 게임이라는 비난의 표현은 이제는 상투적일 뿐이다. 하지만 게임에 관한 진정으로 상투적인 인식을 상기해보자면 이는 다소 어색하게 들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게임을 즐기는 일은 흔히 취미 혹은 여가 활동으로 여겨지고 이는 특히 무엇보다도 노동과는 전혀 상반되는 활동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당연하게도 노동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과도한 노동, 속된 말로 노가다를…

¿ 새로운 카바레 볼테르 혹은 새로운 컨벤션 홀 ?

 1.  늘 그래왔듯 무빙 이미지 작업에는 조각난 전자음들이 함께 재생된다. 나아가, 미술관은 이러한 음악들이 더 이상 시각 예술을 위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여기며, 할당된 공간을 점거할 수 있는 또 다른 예술 형식으로 전시한다. 예술가들은 사운드를 전시장에서 우두커니 바라볼 수 있는 무형의 오브제로 출품한다. 알다시피, 이러한 전략은 이미 한 세기 전부터 예견되어 왔다. 다다(Dada)를 거쳐 플럭서스(Fluxus)까지, 미술과…

그러므로 비평으로 돌아가자!

  베르톨트 브레히트(아직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좋으련만!)는 <서푼짜리 오페라>의 후속 작이자 확대판인 <서푼짜리 소설 Threepenny Novel>을 쓰면서 자신이 마주친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의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쓸모가 크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마주친 어려움은 또한 우리가 지금 맞닥뜨린 어려움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서푼짜리 소설>에서 그는 저 유명한 시카고의 선물(先物, futures) 시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