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름론: 역사의 탐정이 되는 법

오영진
2024.11.10

수사착수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모두가 방 안에서 움츠러들 때, 작가 정여름은 게임 <포켓몬 고>로 역사를 탐구하는 흥미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어느 날 공동작업을 하던 피디가 우연히 용산 미군 기지 안에서 평화의 요새(Fortress of Peace)가 포켓몬 고의 평화의 포트리 마을(Fortree of Peace)로 표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현실의 미군 기지는 허가받은 자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반면, 동일한 좌표의 가상 포켓스탑들은 해킹을 통해 자유롭게 접근 가능했다. 이러한 현실과 가상 세계의 대비는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정여름은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매료되어 탐정처럼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첫 영상작업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2020)은 실험영화의 형식을 빌려 <포켓몬 고>라는 현대적 렌즈를 통해 주한미군 기지의 복잡한 역사를 탐구한다. 이 작품은 일제 총독부 군대 주둔 이래로 114년 동안 민간인의 접근이 금지되었던 용산 기지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며, 한국의 근현대사와 맞물린 기지의 변천사를 독특한 시각으로 조명한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들에게 익숙한 게임 인터페이스를 통해 잊혀진 역사의 단면들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역사 서술을 넘어, 디지털 기술과 역사적 내러티브의 창의적 융합을 보여주는 시도로 평가받았다.

<포켓몬 고> 플레이 중 한 장면. 출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01241584411045

 
  그러나 <포켓몬 고>와 한국 근현대사의 독특한 결합이 단순한 유머가 아닌 작가의 본질적인 방법론임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여름의 두 번째 작품 <긴 복도>(2021)에서는 구글 어스를 활용해 원주에 있던 미군 기지 캠프 롱의 누적된 과거 공간을 탐색한다. 작가는 곧 흥미로운 발견을 한다. 캠프 롱이 기밀이라는 이유로 디지털 지구본 상에서 녹색 픽셀 지대로 가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ATM기의 좌표값만은 선명하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군인과 군무원들의 돈이 오갔을 ATM기의 위치가 내부인들에게는 어쩌면 군사 기밀보다 더 중요한 정보일지도 모른다는 아이러니를 발견한 작가는 이시도라와 페도라라는 탐정들을 내세워 전 세계 미군 기지 내 ATM기의 위치를 집요하게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는 작가의 조부모가 일했던 캠프 롱에 대한 추억과 연결되며, 미군 기지와 공생해 온 원주민들의 역사를 조명한다. 미군 기지로 인해 집을 잃었지만, 그곳에 고용되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실제로 한국 미군 기지에서는 막대한 양의 면세품이 암거래로 유통되었고, 이는 한국인이 미군과 함께 살아온 방식이자 엄연한 질서였다. 그러니 ATM기는 글로벌 군사 네트워크와 식민적 자본의 흐름이 만들어낸 증상 같은 것이다. 우연히 발견한 ATM기의 좌표값은 작가 조부모의 개인사를 넘어 한반도의 역사를 추적하는 실마리가 된다.

<긴 복도>(2021), 한 장면. Ⓒ 정여름.

 
  이처럼 가장 사소한 체험에서 거대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것이 정여름 작가의 특기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용산 거주 시절 기지에서 들리던 총성 같은 미국 독립기념일 폭죽 소리가 묘한 긴장감을 자아내며 끊임없이 신호를 보냈고, 이것이 후에 작업의 촉매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상적 경험은 작가에게 단순한 소음 이상의 의미를 전달한다. 폭죽 소리는 미군 기지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한국의 복잡한 역사와 현재의 지정학적 상황을 암시하는 상징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기지 내 폭죽소리와 글로벌 전쟁 네트워크가 연관을 맺는가? 얼핏 보면 이 둘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폭죽 소리는 축제와 기쁨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전쟁의 포성을 연상시키는 이중성을 지닌다. 아무런 연관을 맺지 않지만, 이 폭죽 앞에서 전쟁이라도 난 줄 알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마음 앞에서 양자는 우스꽝스럽지만 엄연한 현실로서 조합된다. 이는 단순한 오해를 넘어서는 집단적 트라우마의 표현이다. 한국전쟁의 기억과 지속되는 분단 상황이 만들어낸 긴장감이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일상 속에서 오로지 작가만이 느낄 수 있는 균열은 비밀스럽지만 가볍게 드러나곤 한다. 일종의 부조리다. 작가는 이 부조리를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들을 탐구한다. 그녀의 작품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 사회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개인의 경험을 재해석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정여름은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역사의 흔적을 읽어내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끌어내는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작업 방식은 미시사적 접근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작업일지에 일상에서 단서가 스스로 말하는 장면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어떤 풍경은 확신을 준다. 비밀은 말한다. 비밀은 진지하다. 비밀의 진지한 성질은 비밀을 가볍게 만든다.”[1]

  풍경이 스스로 자신의 비밀을 말하되, 진지한 만큼 가볍다는 이 진술은 정여름의 작업이 보여주는 사소한 것과 거대한 것 사이의 대비와 유머가 우연이 아님을 확인시켜 준다. 이는 작가가 역사의 흔적에서 진실을 캐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단계다. 정여름은 역사가 기록하는 대문자 역사보다는 그사이에 숨겨진 소문자 역사에 주목한다. 그녀의 접근 방식은 매우 집요한 탐구, 즉 ‘탐정되기’의 방식으로 수행된다. 직감과 분석, 명시적 증거를 넘어선 유비추리 등을 통해 탐정은 대문자 역사가 기록하지 않거나 누락한 진실을 파헤친다.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는 『탐정소설』(1925)에서 선보이고, 이후 『군중의 장식』(1927)에도 실은 「호텔 로비」라는 에세이에서 탐정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탐정이 사람들이 숨겨놓은 비밀을 발견하듯, 탐정 소설은 미학적 매체를 통해 현실이 결여된 사회의 비밀과 실체 없는 마리오네트의 비밀을 드러낸다.”[2]

  탐정은 경찰과 달리 허락된 합법성의 테두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그 너머의 논리를 활용해 세계의 총체적 진실을 탐구한다. 탐정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호텔 로비는 현실을 잃은 채 “찾지도 않고 찾지 않는 자, 그래서 항상 찾는 자, 그래서 공간의 손님인 이들을 위한 공간, 그들을 아우르는 것 외에는 아무 기능도 없는”(「호텔 로비」) 장소다. 탐정은 이들의 영혼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크라카우어는 손님은 많지만 익명성만 가득한 탐정소설 속 호텔 로비를 “하나님의 집의 역전된 이미지”(「호텔 로비」)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탐정과 호텔 로비의 관계는 모든 이가 떠나가고 포켓몬 같은 디지털 유령만 남은 용산 기지터와, 공허하게 좌표값만 남은 ATM기를 품은 캠프 롱의 긴 복도 앞에 선 작가 정여름을 연상시킨다. 파편들 속에서 아이러니를 길어내고, 파헤쳐 더 심각한 아이러니를 마주하며, 그 안에서 진실을 대면하려는 작가의 의지는 탐정의 태도와 닮아있다. 실제로 그녀는 <긴 복도>의 연출의도에서 크라카우어의 “역사에서 떨어져 나온 잔고(restbestand)”[3] 개념을 언급하고 있다. 크라카우어는 역사에서 배제된 잔고들이 오히려 실상에 가까운 견해를 제공한다고 역설했다. 이들은 단순한 부산물이 아닌, 역사의 본질을 파악하는 중요한 조각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역사는 완결된 이야기로 남기보다는, 역동적인 모호성 속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시각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되어야 한다. 포켓몬 고로 시작하는 한국사는 단순한 유머를 넘어 또 다른 진실 추구 방식이 될 수 있으며, 정여름 작품에 스며든 으스스한 정조는 탐정의 탐구심을 자극하는 모호성의 기초가 된다. 일전에 필자는 정여름의 작품이 추리와 미스터리의 장르문법을 사용한다고 지적했으나 그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했다.[4] 사실 그녀에게 추리와 미스터리는 매번 달라질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라 일관된 방법론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2020), 한 장면. Ⓒ 정여름

 
취조와 증언

  파편에서 역사를 길어 올리기 위해서는 질문을 물고 늘어지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에서 작가는 “가상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묻던 중 세 가지 단계의 논리적 도약을 성공적으로 해낸다. 첫째, <포켓몬 고> 속 몬스터와 포켓스탑은 의심할 여지 없는 가상의 존재와 장소인가? 둘째, 114년 동안 일반 국민이 밟지 못한 현실의 용산 기지 터는 현실과 가상 중 어느 영역에 속하는가? 셋째, 전략적 목적으로 영화 세트처럼 꾸며놓은 미군 기지에서 살아가던 미군은 가상과 현실 중 무엇을 경험한 것인가?

  작품 속에서 이 세 가지 질문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결국 역설적이지만 불가피한 결론에 도달한다. 포켓몬 고의 몬스터가 가상이라면, 114년 동안 금지된 땅도 가상이고, 시뮬레이션된 현실 속에 살아가던 군인도 가상이며, 우리 모두가 가상 속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로써 현실이 없이 ‘찾기 위해 찾기만 하는 손님들인 우리’가 사는 곳이 호텔 로비와 같은 공허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긴 복도>에서는 질문이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발전한다. 첫째, 구글 어스에 남아있는 미군 기지 내 ATM기의 좌표값은 군사기밀도 숨길 수 없는 욕망의 흔적인가? 왜 이것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글로벌 군사 네트워크와 금융 시스템의 불가분의 관계를 조명한다. 미군 기지라는 폐쇄적 공간 속에서도 돈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는 점은 현대 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둘째, ATM기는 오히려 결백한 욕망이고, 더 중요한 것은 PX 주변을 살아가는 기생경제 주체들의 욕망이 아닌가? 이 질문은 우리로 하여금 군사 기지를 둘러싼 복잡한 경제 생태계를 고민하게 만든다. PX를 중심으로 형성된 기생경제는 단순히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식민지 역사의 산물이자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종속성과 생존 본능의 충돌을 보여주는 예시다. 셋째, 오늘날 태극기 부대가 품은 욕망은 자발적 식민주의와 애국주의 사이 어디에 있는가? 왜 피해자는 가해자를 닮아가는가? 이 질문들은 현대 한국 사회의 정체성 혼란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과거의 피해 경험이 내면화되어 극단적 애국주의로 표출되는 현상은 심리학적으로도 흥미로운 주제다.

  이 같은 집요한 질문의 연쇄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능력을 탐정의 취조 능력으로 규정해 보자. 그런데 이 취조를 돕는 증언들은 기계들의 몫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정여름 작가가 역사의 파편을 발견하는 데 활용하는 게임이나 구글 어스 같은 디지털 기술들은 단순한 가상 환경 제공을 넘어, 우리 삶의 가상성과 허위를 적극적으로 증언하는 존재로 소환된다. 이들이 믿을 만한 증언자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인격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포켓몬 고, 구글 어스, CCTV, 인공지능 감정분석기,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짧은 영상 등은 작가의 표현대로 ‘천부적 증인(Natural Witness)’들이다. 이러한 ‘천부적 증인’들의 특징은 그들이 인간의 주관적 해석이나 편견에서 자유롭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고 저장할 뿐, 그 의미를 판단하거나 왜곡하지 않는다. 이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역사 서술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선택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계의 무심한 기록은 때로는 인간이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누락시킨 진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천부적 증인께>(2021)는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공습 상황을 담은 시민들의 영상으로만 8시간의 상영 시간을 가진 작품이다. 뉴스에서 보도하지 않거나 서술하기 어려운 파편적인 경험들이 야밤의 실시간 공습 상황과 병치되어 상영된다. 8시간이라는 긴 상영 시간 때문에 일반 관람객들은 전체를 보기 어렵겠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해변을 걷고, 과일을 사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일상도 공습의 폭력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이 작품의 의의는 단순히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일상의 연속성, 즉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지속되는 삶의 리듬을 포착한다. 공습경보가 울리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먹고, 자고, 웃고, 울며 살아간다.

<천부적 증인께>(2021), 한 장면. Ⓒ 정여름

 
  이 영상에는 인덱스나 내러티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건너뛰기가 무의미하다. 우리가 누락한 ‘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도되지 않은 전쟁의 참상이나 진실 같은 수사여구로는 포함되지 않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의미한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능동적인 해석과 의미 부여의 과정에 참여하게 만든다. 각자의 경험과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는 이 ‘열린 텍스트’는 단일한 내러티브의 한계를 넘어선다. 작가는 기계를 통해 무분별하면서도 무심한 시선을 끌어내고, 이 증언을 바탕으로 집요한 취조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정여름은 단순한 관찰자나 기록자의 역할을 넘어선다. 그녀는 기계의 냉정한 시선과 인간의 따뜻한 공감을 절묘하게 결합시킨다. 기계적 객관성과 인간적 주관성의 경계에서, 작가는 새로운 형태의 역사 서술 방식을 모색한다. 영화평론가 박동수는 정여름의 작품을 “촬영없는 영화”로 규정한 바 있다. 그녀의 작품 분량의 상당수가 푸티지 필름을 사용한 특징을 지적하면서 (예를 들자면) “용산 기지라는 가상의 아우라는, 직접 촬영되지 않은 푸티지들의 몽타주로 인해 파괴”[5]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파편적 실재들이 연합한 몽타주가 현실을 압도하는 파생실재를 만들어내 현실의 이데올로기를 위태롭게 하는 역전이 도리어 일어난다는 것이다. 덧붙여 의견을 말하자면 필자는 기계의 무심한 시선의 결과인 파편적 실재야말로 진정한 실재이기에 현실이라는 가상 속에 침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정여름의 작업은 역사, 기술, 예술의 교차점에서 새로운 진실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여정이다. 그녀는 기계의 객관성을 빌려 인간의 주관성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가상의 세계를 통해 현실의 본질에 다가가려 한다. 이러한 시도는 우리로 하여금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역사와 현실,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달한다. 아래는 <긴 복도>의 제작 중 작가가 갑자기 떠올랐던 말을 적은 메모다. 작가는 기계의 알고리즘이야말로 탐정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알고리즘은 미래에서 발견될 얼룩을 닦아내지 않은 역사의 연장선이다. 알고리즘은 기록된 것을 잊지 않는다. 탐정의 기질이다. 나는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없지만,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 망각의 흔적을 느낀다. 기록에서 망각을 유추할 수 있다. 기록 바깥을 추리하는 것, 그것은 반드시 탐정이 해야 할 일이다.”[6]

<조용한 선박들>(2023), 한 장면. Ⓒ 정여름

 
자살 천사로서의 탐정

  정여름의 최근작 <조용한 선박>(2023)은 자살에 실패한 화자가 베트남으로 가 다크투어를 하면서 겪는 내면의 심경을 에세이 필름형식으로 담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몇 가지 언어유희로 시작하여 관객을 미묘한 인지적 혼란으로 이끈다. 특히, 영어 단어 ‘slip’의 여러 의미를 활용하여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다음은 영화의 초반부 스크립트다.

  강의 명치에서 내가 미끄러졌습니다.
  From the pit of the steel, I slipped.

  나는 조각인가?
  Is it I, that slip?

  ‘slip’이 동사로 쓰일 때는 ‘미끄러지다’를 의미하고, 명사로 쓰일 때는 ‘조각’을 뜻한다. 작품에는 두 개의 ‘강의 조각(Slip of the steel)’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하노이의 후 티엡 호수에 격추되어 관광 명소가 된 B-52 폭격기의 잔해이다. 두 번째는 북베트남군의 훈장이다. 이 두 ‘강의 조각’은 원래의 맥락에서 분리되어 관광객의 구경거리나 기념품으로 변모했다. 즉 미끄러져 나온 조각들인 것이다. 이러한 ‘조각들’의 변화는 역사의 단편화와 재해석 과정을 상징한다. 전쟁의 흔적이 관광 상품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역사의 연속성과 단절, 그리고 기억의 변형을 목격하게 된다. 결국 B-52 폭격기는 어느덧 어떤 바의 이름이 되어 하노이의 취객들을 맞이한다. 작가는 이러한 언어와 물질의 ‘미끄러짐’을 통해 역사 인식의 복잡성과 아이러니에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강철은 강도만큼이나 신장율을 가지며, 잘못 제련해 너무 강해지면 도리어 부서진다. 강철은 강한 주체들만 가득한 전쟁에 대한 은유이며 유연함을 가지지 못한 강철같은 존재들이 왜 결국 조각들로 부서지는지 암시하는 은유다.

  이후 케산 전투에서 발휘된 북베트남군의 전술이 소개된다. 미군의 격한 반격을 우려해 오히려 대치선 경계의 웅덩이에 일부러 총을 쏜 저격수의 이야기다. 의도를 인지한 미군 또한 근처에 총소리가 나면 오히려 안심을 하는 아이러니가 펼쳐졌다고 한다. 전쟁이란 이렇듯 언뜻 강철들의 심각한 충돌처럼 보이지만 허공에 휘두르는 검들의 우스꽝스러운 대결이기도 한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균열을 찾아내는 데 소질이 있다. 이러한 작은 이야기는 거대한 역사를 파편화하는 단초가 된다. 강철에 생긴 균열들이다.

  <조용한 선박>은 작가가 직접 찍은 정지사진과 나레이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 작품들과 달리 푸티지 필름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기계의 객관적 시선 없이 역사를 탐구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주관적인 인간 화자로의 회귀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자살 시도 실패 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화자를 통해, 인간적 주체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매개체를 제시한다. 이때 작품의 영문 제목 ‘The Silent Bearers’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Bearers’는 단순한 선박이 아닌, 무언가를 전달하는 주체로 해석될 수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자신을 역사와 현실 사이의 ‘미디어’로 위치시키며, 객관성과 주관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역사 탐구 방식을 제안한다. 이러한 접근은 작가의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준 기계적 객관성과 인간적 주관성의 결합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여름은 자신을 ‘조용한 전달자’로 설정함으로써, 역사적 사실과 개인의 해석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한다.

  이어 작품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천사 이야기는 천사의 본질적 속성인 ‘전달’의 의미를 깊이 탐구한다. 미셀 세르는 ‘천사’를 뜻하는 ‘angel’이 ‘메신저’를 의미하는 ‘angelos’에서 유래했음을 지적하며, 현대 공항을 무수한 천사들의 소통과 연결의 장소로 해석한다.[7] 이러한 맥락에서 정여름의 작업은 기계를 ‘천부적 증인’으로 승화시키며, 작가 자신마저 ‘미디어-천사’로의 변모를 시도한다. 수년 전 포켓몬 고와 구글 어스를 통해 추리물의 문법으로 역사에 접근해 왔던 정여름 작가는 단지 도구에 대한 탐구를 넘어서 도구성 자체에 대한 탐구로 자신의 관심사를 발전시키고 있다.

  왠지 기시감이 드는 대목인데, 작가가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에서 포켓몬 고의 가상적 사냥행위에서 시작해 미군 기지의 가상성을 끌어내고 결국엔 우리의 삶이 가지는 본질적인 가상성을 폭로하는 논법을 보여줬을 때, 그녀는 질문의 변증법을 통해 우리의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줬다. 자기 자신을 향한 죽음충동을 스스로 미디어 되기로 승화한 예를 우리는 좀처럼 본 적이 없다. 외부로 파고드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내부를 파괴하는 무서운 재능이다. 우리가 이 탐정의 행보에 대해 계속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 이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 특별 기고로 게재되었습니다.


[1] 한국영상자료원, <181회 독립영화 쇼케이스: 오늘 만난 단편영화들>(기간: 2021.11.19.금 ~ 11.21.일) 자료집, 「정여름 감독의 제작일지」 p. 186

[2]「호텔 로비」의 영역버전을 참조함. Siegfried Kracauer To cite this article: Siegfried Kracauer (1999) The hotel lobby, Postcolonial Studies: Culture, Politics, Economy, 2:3, p. 293

[3] 앞의 글, 「정여름 감독의 제작일지」 p. 182

[4] 오영진, 「과거가 영원히 현재로 온다」[4] (뉴 래디컬 리뷰, 2021.09, 창간호)

[5] 박동수, 「세계를 응시하는 복수의 눈,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 2020.11.15 http://www.critic-al.org

[6] 한국영상자료원, <181회 독립영화 쇼케이스: 오늘 만난 단편영화들>(기간: 2021.11.19.금 ~ 11.21.일) 자료집, 「정여름 감독의 제작일지」 p. 188

[7] 미셀 세르, 『천사들의 전설: 현대의 신화』, 그린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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