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축복[1]- <피규어 오브 패밀리(Figure of Family)>(2023)에 대한 고찰

홍예지
2024.11.10

  부모를 거부할 때 나는 무엇을 잃는가? 나는 존재 전체를 잃는다. 부모를 통해서 오는 삶의 축복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2] 그래서 고통스럽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계속되고,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을 망가뜨리게 된다. 나는 바로 서지 못한다. 가족을 바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가족 관계의 장(場)에서 누군가 배제되면, 나머지 가족 모두가 그 빈자리 때문에 고통받는다. 부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엄연히 존재한다. 언제나. 모두가 그를 외면한다고 해도 그는 존재한다. 그를 외면할수록 그의 영향력은 커진다. 이러한 가족 관계의 얽힘을 풀지 못하면 평생 과거에 얽혀 살게 된다. 그때 그 장소, 그 사람에게서 영영 헤어나오지 못한다. 정지 화면에 갇힌 사람처럼. 나는 못 박힌 듯 그 자리에 서서, 달아나지도 못하고 다가가지도 못한 채 살아간다. 나는 온전한 나로 살 수 없다. 부모를 있는 그대로 존중할 때까지.

  ‘나는 당신처럼 살지 않을 거야. 당신처럼 되지 않을 거야.’ 이 생각이 족쇄가 된다. 나는 스스로 나를 옭아맨다. 그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더 강박적으로 그를 떠올리게 된다. 반면에 내가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없는’ 무언가를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면, 비극의 수레바퀴는 저절로 멈추고 평온이 찾아온다. ‘가족세우기’ 기법으로 수많은 가족을 치유해 온 버트 헬링거(Bert Hellinger)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받아들임’에 있다고 말한다.

  원만한 성장의 기본은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됨과 생명의 받음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부모가 어떠한가는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부모의 어떤 점을 경멸하면 나중에 자기 삶에서 그 점을 다시 (…) 반복하게 됩니다. (…)
  부모를 존중하고 부모를 온전하게 받아들이면 부모가 가진 좋은 점을 다 받아 가지게 됩니다. 그 안에 흐릅니다. 신기한 것은 부모를 온전하게 받아들이면 힘든 운명과 약점들은 밖에 머문다는 것입니다.[3]

  나는 ‘어떤’ 아버지를 갖고 있는가? 이 ‘어떤’에 해당하는 수식어를 모두 덜어낸 채 아버지를 마주할 수 있는가? 나는 ‘어떤’ 아들인가? 평생 ‘어떤’ 아들이 되기 위해 노력했는가?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끼는가? 때때로, 아니 항상, ‘나’라는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가? 똑바로 보기 어렵겠지만,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존중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나를 아들로 존중하지 못한 것처럼. 그리고 이 문제는 아버지의 아버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또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로. (물론 어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대대로 이어져 온 슬픔을 바라볼 때다. 나와 아버지 사이에, 그리고 아버지와 할아버지 사이에 사랑받지 못한 아픔과 폭력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똑같은 고통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내 손에서 끊어 낼 것인가? 이는 모든 후손에게 주어진 문제다. 이 질문의 무게는 매우 무겁다. 하지만 감당 못 할 정도는 아니다. 이 문제를 풀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게 더 버겁다.

  “신경 끄라는 말은 우리 사이에 해선 안 되는 말이야. 그건 이제부터 없는 말이야. 우리는 아버지 앞에 부끄러워해야 해. 같은 잘못을 반복해선 안 돼. 우리는 아버지를 모른 체 했잖아. 나는 그걸 복수라고 생각했어.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고 그에 따른 결과는 응당 아버지가 짊어져야 할 벌이라고 생각했어. 돌이켜 보면 아버지는 진짜 좋은 친구였어. 그 친구를 그냥 보내버렸어. 외롭게. 형아랑 나는 친구야. 둘도 없어. 이제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 신경 끄는 순간, 그걸로 끝이야. 형아는 나한테 사과해야 해.”[4]

  이 진실을 알아차린 김용선은 가족을 세우기 시작한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레고처럼 하나씩 인물을 놓고 사건을 재구성한다. 아버지의 원가족과 어머니의 원가족을 세운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을 세우고 그들 뒤에 서 있는 각각의 운명을 본다. 형이 꾸린 가족과 자신이 만들어 갈 가족을 세운다. 그들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본다. 그들 간의 거리를 가늠한다. 어떤 자세로 서 있는지, 몸의 방향은 어디로 돌아가 있는지 본다. 이 모든 광경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에서 치유가 시작된다. ‘그렇군요. 그랬군요.’ 어떤 비난도 없이. 다만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그 누구도 어쩌지 못한 죽음과 삶이 여기에 있다. 이제 김용선은 있는 것을 있다고 말한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느낀다. 단순하게. 이렇게 느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느낌은 회복의 열쇠다. 치유되기 위해서는 먼저 느껴야 한다.

  부모님과 같이 아픔을 깊이 느낌으로써 치유가 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아쉬웠습니다. 단지 아쉬웠습니다.” 여기에는 비난이 없습니다. 단지 공통의 아픔만 있을 뿐입니다. (…)
  이 “아쉽습니다.”는 가치가 있습니다. 일어난 사건을 없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고백은 앞으로 좋게 작용하는 살아 있는 힘이 됩니다.[5]

김용선, <피규어 오브 패밀리(Figure of Family)>, 스틸 컷, 2023.

 
  김용선이 자신의 결혼을 앞두고 54분짜리 다큐멘터리 영상 <피규어 오브 패밀리(Figure of Family)>(2023)를 만든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버지를 배제하고서 삶의 새 장을 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아버지의 축복’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신의 근원을 보지 못한 채 생명의 흐름을 이어 갈 수는 없는 법이다. 아버지를 통해서 내게 흘러 들어온 것은 무엇인가? 살아 있는 한, 나는 그중에서 무엇은 받고 무엇은 거절할 수 없다. 내겐 그럴 권리가 없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로 다루며 온전히 ‘받아 가져야’ 한다. 김용선의 무의식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피규어 오브 패밀리>는 일종의 ‘가족세우기’ 의례다. 그는 자신의 상견례를 위해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였을 때,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를 든다. 카메라 앞에 선 가족들은 저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담담히 풀어낸다. 영상에서 김용선 자신은 잠시 물러서 있다. 가족세우기 워크숍에서 의뢰인이 잠시 물러나 상황을 관찰하는 것과 비슷하다.[6]

  <피규어 오브 패밀리> 이전에 나온 사진 작업 ‘구로동 429-XX’(2017-2021) 시리즈는 이 받아들임의 과정에 꼭 필요한 준비 과정이었다. 이 의식적인 애도 작업 아래에 깔린 진짜 동기는 사랑이다. 김용선은 아버지를 사랑했다. 미워한 만큼이나. 아버지 역시 그를 사랑했다. 그에게 잘못한 만큼이나. 김용선이 기억하는 유년 시절의 아버지는 폭력적이었다. 그렇다,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왜 그리워하는지”[7], 김용선은 스스로 물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솟아나는 복잡한 감정을 부인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그런 감정이 있음을 이해하고 시인하는 것. 여기서 경험을 배움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경험일지라도.

김용선, <아버지가 살던 집 천장>, Pigment Print, 4×6inch, 2017.
김용선, <아버지 49제는 어머니와 아내가 함께했다>, Pigment Print, 42×59.2cm, 2023.

 
  ‘구로동 429-XX’ 시리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가 살던 구로동 집에 들어가 살면서 마주한 것들을 담아냈다. ‘아버지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보는 것’ – 이 동작 하나에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다.[8] 이러한 행위는 아버지와 나를 포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단순히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시도도 아니다. 그보다는 아버지가 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내 안에 있는 아버지를 오롯이 느껴 보는 작업이다.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자기 인식의 과정이 된다. 이러한 자기 인식은 접촉을 전제로 한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희귀병에 걸려 평생 무균실에 갇혀 살아야 하는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을 만나려면 누구든지 반드시 살균 처리된 장갑을 끼고 무균실에 들어가야 했다. 어느 날 소년은 죽음을 감지하고 마지막 소원을 이야기했다. 바로 무균실 밖으로 손을 내밀어 아버지를 직접 만져 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죽음을 앞당기게 된다는 걸 알았지만 소년은 손을 뻗어 아버지의 맨손을 잡았다.[9] 극단적인 예시이지만, 무균실 안의 소년은 가정 안의 우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부모는 바깥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가정이라는 무균실을 만들지만, 역설적으로 아이가 겪는 최초의 고통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부모는 갓난아이를 보호하는 존재이자 첫 번째로 상처 입히는 존재다. 부모가 본능적으로 아는 것처럼 “서로 간의 접촉은 고통을 가져오고 심지어 위험을 수반”한다.[10] 그러나 아무리 울타리를 치며 바깥의 접촉을 최소화한다고 하더라도, 가족 안에서 부대끼며 생기는 상처를 막을 수 없다. 나를 돌보는 동시에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 아이는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이 입장에서 부모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무균실의 소년이 결국 아버지에게 손을 뻗었듯이,[11] 우리가 삶을 진짜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과 접촉할 수밖에 없다. “고통스럽더라도 접촉이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12]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구로동 429-XX’ 시리즈와 <피규어 오브 패밀리>에서 느껴지는 시선은 촉각적이다. 김용선은 카메라 뒤에 숨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통해 가족에게 손을 뻗고 있다. 형의 눈물 젖은 얼굴을 어루만지고, 어머니의 쉰 목을 뚫고 나오는 숨소리를 느끼고, 사랑스러운 조카를 번쩍 들어 올려 안아 준다. “카메라가 켜지지 않는 날은 세상에서 아주 없는 날이라고 생각했다”[13]는 김용선의 고백은 진실이다. 그에게 사진 찍는 행위는 살아가는 행위와 같다. 카메라는 매일의 접촉을, 매일의 삶을 가능하게 해 주는 몸이다.

  무균실이 더 이상 무균실이 아니게 될 때, 서로가 서로에게 뿜는 독이 너무 지나칠 때 가족은 해체되고 붕괴한다. 개인은 자기 안에 갇힌다. 개개인의 메마른 삶은 채워지지 않는 공허를 지속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이 근본적인 결핍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김용선의 형은 “우리가 함께 살아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용선은 그 말에 따라 현재 형이 살고 있는 호주로 건너가 1년을 보내기도 했다. 이때 형의 식구들과 함께한 시간, 그리고 아버지의 구로동 집에 들어가 살던 시간이 사진에 충실히 담겨 있다. 이러한 ‘구로동 429-XX’ 시리즈가 ‘자식이 만드는 가족 앨범’이라면[14], <피규어 오브 패밀리>는 이야기가 멈춘 자리에서 다시 흐르기 시작한 가족의 삶이다. 즉 한데 모일 수 없었던 가족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잃어버린 접촉을 회복하고, 부서진 거울 조각을 맞대어 보는 과정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상 초반부에서,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납골당에 처음 방문한 형이 한숨 쉬며 내뱉는 말처럼.

  가족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일은 납골당에 가서 전시된 아버지의 유골함을 올려다보는 행위처럼 의식적이고 낯선 것이었다. 우리에게 ‘가족’을 이야기하는 것은 가족 내부를 향한 것이 아닌 어딘가에 걸려 있는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우린 거울을 잃어버렸다.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아버지만 남겨 두고 형을 따라 구로동을 떠났던 날이었을까. 엄마를 따라 홍등가로 들어가 지내던 때였을까. 아버지는 엄마가 밉냐고 물었다. 엄마는 구로동에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와 엄마의 말에 모두 동의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내심 서로 어떻게 사나 궁금한 기색이 있었지만 나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여태껏 ‘누구의 말’에 따라 휘둘렸다. 가족을 위해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 방식이든 한 번은 만나야 한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이 아버지만의 죽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홍등가를 관통한 우리는 무엇이 됐나.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우린 무얼 끌어안고 있는가. 아버지는 자신이 없을 땐 형이 아버지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야기했다. 형은 우리가 함께 살아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이제 영영 구로동에 갈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종종 그간 내가 하지 않은 일과 버리지 못한 물건에 대해 생각한다.[15]

  혼자 맞추는 퍼즐 놀이는 한계가 분명하다. 관계의 정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관계를 시작하고 끝맺는 것도, 변형하고 재정립하는 것도. 그리고 나와 너 사이에는 제3의 무엇이 있다. 그 무엇을 더듬어 탐색하는 것, 그 작업은 존재를 존중하고 바로 세우는 일과 같다. 카메라는 이 일을 수행하는 도구다. 나와 너의 거리감, 내가 보는 너와 너가 보는 나, 우리를 바라보는 제3의 시선. 이런 것들이 사진의 내용이자 형식이 된다. 영상은 분절된 형태로는 파악할 수 없는 흐름을, 우리 사이의 상호작용을 포착하고 기록한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우리 사이에 일어났다. 일어난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관계의 역동을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멈춰 있던 사랑을 움직이게 하는 것. 그것이 영상의 목표이자 존재 이유다. <피규어 오브 패밀리>는 단절된 관계를 잇고 그 채널을 통해 축복이 흐르게 하는 의식이다. 보이지 않는 근원으로부터 흘러나온 나, 너, 우리의 생명을 기념하고 온전히 받아 가지는 장(場)이다. 온 가족이 모여 촛불을 켜는 장면이 가슴에 남는다. 처음 느끼는 온기처럼 낯설고 애틋하다.

김용선, <탄생, 비탄생, 탄생> 인스턴트 필름 1678장 연작 중 일부, 8.6×7.2cm, 2024.

 
  <피규어 오브 패밀리> 이후, 김용선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난 6월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 방문했을 때 그의 얼굴은 담담했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고 넘어가기 위한 작업이었지만 그 과정이 완전히 종결된 건 아니었다. 영상 하나로 부족했다기보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애초에 과거에 한정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죽음은 변형이며 또 다른 형태의 삶이다. 끝이자 시작이다. 아버지는 살아 있다. 카메라를 통해서. 김용선은 아버지가 사 준 삼십만 원짜리 카메라로 오늘을 살아간다. ‘구로동 429-XX’ 시리즈를 찍었던 바로 그 카메라로. 그는 크고 무거운 카메라에 인스턴트 필름을 끼워 지금 눈앞에 있는 것들을 마주하고 기록한다. “찍으려고 찍는 것 말고, 담으려고 담는 것 말고”, “홀가분함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무거움과 가벼움. 이 역설 자체가 삶이라고 생각했다. 홀가분한 그를 보는데 숨통이 트였다. 김용선은 계속 찍겠구나, 이렇게 살아가겠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를 계속 보고 싶다고, 그가 잘 있는 것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의 사진은, 그리고 영상은, 어쩌면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으니까. 계속 살아갈 용기가 필요한 나 같은 사람에게 김용선의 작업은 실로 위로가 된다. 함께 살아 있음을 보여주니까.

  살아낸 이야기가 작품이 될 때, 그 작품은 다시 삶으로 향하는 길이 된다. 그 통로를 지나는 숨결과 사랑과 축복을 느끼며, 김용선의 다음 장면을 기다린다.

김용선, <아버지가 사 준 카메라>, Pigment Print, 29.7×21cm, 2024.

 
  * 이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 특별 기고로 게재되었습니다.


[1] 이 글의 제목은 가족 관계의 얽힘을 풀어내는 ‘가족세우기’ 기법의 창시자, 버트 헬링거의 『존재의 존중』(2013)에 수록된 글 「아버지의 축복」에서 빌려 왔다.

[2] “인간은 부모에게서가 아니라 부모를 통해서 태어납니다. 삶은 먼 곳에서 오지만 우리는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곳을 보는 것이 종교적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가까운 곳이 아니라 근원을 규명하지 않고 근원을 봅니다. / 이 아들은 아버지에게 큰절하고 축복을 간청함으로써 생명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게 됩니다. 그래서 이 축복은 아버지로부터 뿐만 아니라 먼 곳에서도 옵니다. (…) 이 축복의 힘은 아버지의 수중에 있지 않습니다.” 버트 헬링거, 『존재의 존중』, 박이호 옮김, 고요아침, 2013, p.21.

[3] 버트 헬링거, 『존재의 존중』, pp.141-142.

[4] 김용선, 『했었었었다』, 공공일공, 2021, p.144.

[5] 버트 헬링거, 『존재의 존중』, p.146.

[6] 필자는 ‘가족세우기’를 직접 경험해 보기 위해 2024년 8월 10일 ‘온숨자연스런치유 힐링센터’에서 ‘서울 가족세우기 세미나’에 참여한 적 있다. 당시 ‘촉진자’라고 불리는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각 참여자의 사연을 토대로 배역을 세우고, 인물 간에 일어나는 역동을 관찰하며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 나갔다. 예를 들어, 남동생의 죽음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의뢰인의 사연을 다룰 경우, 다른 참여자들이 즉흥적으로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 의뢰인의 역할을 대신하여 가족세우기 과정에 들어간다. 이때 촉진자는 의뢰인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가족사에서 숨겨진 죽음이 있는지, 조상들이 겪은 트라우마와 관련된 사건이 있는지 검토하며 배역들을 움직이게 한다. 의뢰인은 일련의 상황을 관찰하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가족들이 서 있는 자리, 관계도를 가시화하는 기회를 얻는다. 진행 과정에서 아직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거나 사건과 직접적 관련이 없어 보였던 새로운 인물들(예: 조부모, 외조부모, 친척 등)이 추가되기도 하며 집안에서 대물림되는 죄책감, 슬픔과 같은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된다. 세션 후반부에는 진행자의 제안에 따라 의뢰인 본인이 가족세우기 장에 합류하게 된다. 자신에게 알맞은 자리를 찾아 들어가고, 직면해야 할 상대방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한다. “동생아, 나는 너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너는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다.” “아버지, 저는 당신의 운명에 동의합니다.” “아버지, 저를 축복해 주세요.” “아버지, 저는 저의 삶을 삽니다.” 등의 말을 하며 상대에 대한 존중과 함께 건강한 분리에 대한 선언을 하게 된다. 가족세우기의 관점에 따르면, 가족 내 구성원이 각자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배제된 누군가 혹은 다른 누군가의 역할을 대신하며 짐을 짊어질 때 고통이 발생한다. 우리는 가족세우기를 통해 표면적인 불화 이면에 흐르는, 엉켜 있는 관계망에 주목함으로써 쉽게 해결되지 않았던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문제의 뿌리를 들여다볼 수 있다. 필자가 참여한 가족세우기 세미나와 관련된 상세 정보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온숨자연스런치유 공식 카페: https://cafe.naver.com/newaeon/998 (검색일; 2024년 8월 22일) 그리고 한국의 현실에 맞게 적용된 가족세우기 사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유명화, 『트라우마 대물림을 치유하는 법 –얽히고설킨 아픔을 풀기 위한 가족세우기 수업』, 김영사, 2020을 참고할 것.

[7] 2024년 6월 23일,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김용선 작가와 나눈 대화에서 인용.

[8] 김용선, 『했었었었다』, p.139.

[9] 어니스트 커츠·캐서린 케첨, 『불완전함의 영성』, 장혜영·정윤철 옮김, 살림, 2009, pp.410-411.

[10] 어니스트 커츠·캐서린 케첨, 『불완전함의 영성』, p.411.

[11] 김용선의 형 또한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아마도 아버지의 폭력과 관련된 상황 속에서) 동생에게 비슷한 행동을 한 적 있다. 굉장히 함축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실제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필자는 다음의 에피소드를 ‘접촉’의 맥락과 연관 짓는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열린 해석으로, 독자의 자율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밝혀 둔다. 관련 내용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인용문 내 강조는 필자.)

“김용, 뭐 하냐.”
“죽기 전에 용선이 만지는데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김용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했었었었다』, p.131.

[12] 어니스트 커츠·캐서린 케첨, 『불완전함의 영성』, p.411.

[13] 김용선, 『했었었었다』, p.138.

[14] 2024년 6월 23일,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김용선 작가와 나눈 대화에서 인용. 김용선의 설명에 따르면 가족 앨범은 원래 부모가 만드는 것이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김용선의 표현을 빌리자면 ‘징그러워지면서’) 어느 순간 사진이 끊기고 공백이 생기게 된다. 만약 자식들이 가족 앨범을 다시 만든다면, 부모가 만든 앨범과 다르게 만든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구로동 429-XX’ 스냅을 비롯해 자전적 에세이와 소설이 담긴 책 『했었었었다』는 이 물음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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