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웹진 퐁. 낱말 퐁은 물이 고인 곳으로 사물이 빠져 들어가는 상황을 형용합니다. 반대로 와인의 코르크 마개가 빠져 나오는 상황에도 사용됩니다. 우리는 텍스트가 이미지에 기대어 의미를 형성하는 이 과정에 합류합니다. 이미지로 빠져 들어가서 텍스트로 빠져 나옵니다.
The word pong describes a situation where an object slips into a pool of water. Conversely, it is also used to describe a situation where the cork in a bottle of wine slips out. We join this process where text leans on images to form meaning. Slip Into the image and slip out to the text.
비평웹진 퐁
그러므로 비평으로 돌아가야 한다. 비평은 감각적 재현에서 현실의 진실이 드러나는 방식에 대하여 묻고 따져야 한다. 모든 종류의 작업들을 역사화하되 그것을 정체성 운운의 사회학적이거나 개인의 전기적 배경에서 연역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추상적으로 연결된 세계와 그것에 내장된 모순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후벼 파고 타성화하는지, 전면적으로 물신화된 세계에서 변변찮은 의식적인 반성을 하며 살아가는 것의 비참함과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무의식적인 혹은 불가역적인 유토피아적 충동이 어떻게 찰나에 번쩍이는지, 그리고 그 빛이 어디에 출현하는지 위치를 찾아야 한다. 이것은 비평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비평으로 돌아가자! <퐁>이 그러한 비평의 요새가 된다면, 더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퐁>의 창간을 축하한다. 퐁, 퐁, 퐁!
We must therefore return to criticism. Criticism must ask and examine the ways in which the truth of reality is revealed in sensory representations. It should historicize all kinds of work, but resist the temptation to deduce it from the sociology of identity rhymes or the biographical background of individuals. We need to locate where the abstractly connected world and its inherent contradictions, how they subvert and sexualize individual lives, how the misery of living in a wholly objectified world with its inadequate conscious reflection, and the unconscious or irreversible utopian impulse to escape from it, flashes in moments and where the light emerges. This is something only criticism can do, so let’s get back to criticism! If Fon becomes a bastion of such criticism, so much the better. <Congratulations on the publication of Pong. Pong, pong, pong!
퐁 – 별도의 정렬 작업을 거치지 않고 보관된 자료의 덩어리를 이르는 기록학 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