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센서-이미지/데이터: 시각성 이후 영상 비평을 위한 이론적 조건의 탐색(1)

따라서 재현적인 이미지의 세계와 기능적 이미지의 세계를 대비하며 후자를 우리가 처한 이미지 세계의 주된 지배종이라고 파악하는 것은 억지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세계를 드러내고 밝히는 재현적 이미지를 제작함으로써 현실을 상징화할 수 있도록 이끌었던 이미지의 세계가 재현적 이미지의 세계였다면 더 이상 우리가 볼 수도 없고 보지도 않는 수많은 이미지로 포화한 세계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이미지가 재현적인 시각적 객체로서의 이미지가 아니기에 그것을 이미지로 파악해야 하는지 아니면 범용 연산 장치인 컴퓨터가 수집, 저장, 분산, 공유, 전송, 처리하는 숱한 데이터 가운데 하나로서 정의하여야 하는지 여전히 옥신각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지의 리얼리즘이라는 꿈을 꾼다. 완전자율주행 자동차의 꿈이 시각 기계의 완벽한 리얼리즘을 향한 꿈이라면 어떨까. 예컨대 테슬라 Tesla나 포드 Ford, 메르세데스-벤츠 Mercedes-Benz, 현대의 자율주행 자동차는 인공지능 제어를 통해 인간 행위자의 개입과 참여 없는 완벽한 자율주행을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을 지탱하는 것은 이미지 센서가 포착한 이미지가 자율주행을 가능케 하는 완벽한 ‘보기’를 보장한다는 기대이다. 그러므로 자율주행이란 곧 주행을 위한 완전한 ‘보기’ 혹은 보기에 따른 운용(operation)으로서의 주행을 가리킨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단상들 : 서스펜스 스페이스suspence space

  1.   시계탑 내에서 톱니바퀴 틈새를 오가는 전투가 벌어진다. 도둑과 백작이 드디어 결판을 내는 것이다. 아직 국민들은 주연들이 떠난 결혼식에 남겨져 있다. 칼리오스트로 공국은, 세계는 곧 이전으로는 영영 돌아갈 수 없게 된다. 공주님은 벽의 계단에 붙어 전투를 관전한다. 해당 장면은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 성ルパン三世: カリオストロの城」(1979)의 결말부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시계탑 대결 씬은 언제나…

숨을 박탈당한 정원들: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의 픽처레스크 열망에 대해

안일하고 느슨하게 생명을 정의하기   생명을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의 문제는 태고의 철학에서부터 현대의 생물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공간에서 논의되어 온 사안이지만, 본 고에서는 생명을 ‘태어나고 죽는 것’으로 부르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안일한 정의는 ‘태어남’의 의미와 ‘죽음’의 의미를 되묻게 하기에 다시금 추가적인 질문들을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태어남’과 ‘죽음’의 의미를 일종의 공리로 대우한다면, 이 정의는 그 안일함만큼…

디지털 몰입형 예술 전시 : 캔버스에서 스크린으로 그리고 그 너머

  문화와 사회의 변화는 우리의 삶, 예술 창작 그리고 예술 경험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예술은 진화해 왔으며, 다양한 매체와 새로운 기술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예술은 디지털 미디어와 결합하여 예술가에게 새로운 창작 도구를 제공하고, 관람객에게 새로운 경험 방식을 선사한다. 19세기 후반부터 과학 기술 발전은 원본 작품의 아우라를 약화시키며 예술의 대중화를…

애니멀 히스토리 호스피탈

동물이 나오는 영상물   동물이 나오는 세상의 모든 영상물들은 동물의 모습만 담겨있는 영상과, 동물과 인간이 함께 담긴 영상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 두 분류는 다시 야생을 배경으로 한 영상과 문명을 배경으로 한 영상으로 각기 분류된다. 도식화하여 사례를 들자면 아래와 같다.   A의 경우 야생 속의 동물의 모습을,  B의 경우 야생 속의 인간과 자연의 모습을,  C의…

과시와 추종에 사로잡힐지언정 – 류성실 작가론

일등시민권   BJ 체리장은 일인 방송을 통해 자신이 일등시민권을 받았다고 말한다. 북한이 핵을 발사하는 동안에도 그동안 경고해 왔음을 알리며 예언을 허투루 취급한 당신들을 책망하고, 죽어서도 행복하려면 후원하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스펙과 능력을 과시하는 데 열중이다.   그는 꿈을 꾸면서 숫자의 비전을 보고 난수 방송을 해독하면서 그것이 위험을 예고하는 신호임을 읽는다. ‘오빠’를 통해 전해 들은 미래를…

서정이여, 다시 한 번 – 황예지의 사진

1.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너무 많은 ‘서정’이 있다. 서정은 이제 충분하다는 얘기다. ‘일상’이라는 터전, ‘내면’이라는 수단, ‘자연’이라는 이상을 꼭짓점 삼은 삼각형에 안착한 서정은, 더 이상 스타일이기보다 메커니즘으로서 소진된다. 주변의 사소한 존재를 돌아보고 보듬는, 그로써 진부한 하루에서 특별하고 소중한 감동을 낚아 올려 깨달음에 도달하는 서정의 논리는 미술 안에서 형식으로서 반복되거나, 혹은 미술 그 자체로 여겨진다. 그러나…

핑크팡이

  0.   미미는 공주다. 미미는 공주이기 때문에 상스러운 욕을 입에 담지 않고, 손등으로 숙녀 박수를 치며, 레이스와 리본으로 꾸민 자신의 왕국에 산다. 더군다나 미미는 핑크 공주다. 핑크는 공주의 색이니깐. 그는 분홍 천으로 옷을 직접 지어 공주의 품격에 걸맞게 치장하고 가꾼다. 그의 작업도 미미를 닮아 속없이 해맑아 보인다. 세상 물정 꿈에도 모르고 배시시 웃는 미미의…

유하나: 죽음과 폭력과 슬픔과 시

  인간이 소위 ‘시민사회’라는 것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도살장을 반드시 그 사회 바깥 어딘가에 두어야 한다고 (자조적으로) 말했던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로부터 시작한다. 그의 예견대로 도살장은 콜레라를 옮겨대는 배처럼 저주받고 격리된 존재이자 장소로서 저 멀리 추방당했다. 바타유의 시선은 억압당한 폭력성과 충동이 죽음이라는 긴장 상태와 교차하는 자리에 닿는다. 그에게 도살장이란 단순히 동물이 도축되는 물리적 장소라기보다, 시민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사회의…

|

바깥으로: 리크릿 티라바닛 x 이유진. 2024년 12월 12일 태국 치앙마이에서.

액세스가 있다면 적극 활용해야지. 어떤 문제의식이 있다면 관련 정보를 자세히 공유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플랫폼으로 활용해야지. 그러한 과정에서는 어떤 것도 ‘캔슬(cancel)’하지 않아.
  이 말만은 꼭 하고 싶어.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올바르게 살아가고 자신의 예술은 올바른 방식으로 펼쳐나가면 돼. 시위를 하고 소리 지르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야.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예술은 올바른 방식으로 펼쳐나가면 돼. 내가 사람들에게 타협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타협하지 말라는 거야. 그렇지만 처음부터 타협하지 않는다면 아마 예술가는 될 수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