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보이는 「풍요」의 장치

문화란 우리를 싸고 있는 일상성이다. 거주, 식생활, 교통, 소통 매개, 그 매개를 움직이는 문화적 코드까지 모든 것이 일상이자 세계이다. 그런 면에서 상품의 속성들은 이 시대 문화를 노골적이고 가감 없이 보여준다. 우리는 그 속에 그것들을 이용하면서 산다. 말하자면 예술가는 감각적이거나 개념적인 세계와 맺는 관계를 그의 삶의 맥락 속에서 지속 가능한 세계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현재가 제공하는 환경에 거주한다. 그의 작업의 매개인 상품들, 오브제들은 세내어 쓰는 일시적인 사용체일 뿐이다. “예술가는 문화에 세 들어 사는 사람”[4]인 셈이다.

검열: 가능성을 다시 쓰기 위한 전략

현대예술이 규정하는 놀이성은 우리가 상상력, 기억, 그리고 다양한 삶의 경험에 있어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는 발상에서 비롯되며, 이로써 경계를 열어젖힌 채 튀어나온 여러 요소들은 현실 속에서 환상을 야기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상상력, 기억, 삶의 요소들이 얽히고 섥힌 상태는 현대예술이 하나의 규격에 획일하게 맞춰질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검열은 극도로 경직돼 있다. 마치 고대 미라처럼 철저하게 봉인된 채, 절대로 다가오지 말 것을 경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술작품은 본질적으로 무질서와 혼돈을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검열을 받는 과정에서조차 권력의 규칙에 장난을 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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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sorship: A Strategy to Rewrite Possibilities

Censorship and licensing procedures for artworks or art events in Vietnam remain a dark horse. Intolerable territories, tragicomedy plays and rusted machineries – such images metaphorically make up the nowadays discourses on censorship, a system that always seems to be ridiculously ambiguous. Are there any alternative modes of speaking, or viewing censorship in Vietnam? In…

국립역사박물관 – 세계의 주인이 되기 위한 다섯 단계

우선 진보라는 주제부터 살펴보자. 역사가 어떤 운명 위에서 전개되는지를 역설한 헤겔의 관점은 꽤 흥미롭다. 그 생각은 일면 진보적 느낌을 자아내고 있지만, 자유라는 개념에 너무 의존하고 있어 나에게는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역사적 원동력을 우리나라의 맥락에 더 적합한 ‘독립’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하는 것이 좋겠다. 반면, 후쿠야마의 이론은 다소 단순한 데가 있다. 전 세계가 운명적으로 자유 민주주의를 취할 것이라는 생각은 현실과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모든 나라를 구제한다고 단정지어서도 안 된다.[5] 현대적 맥락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로 작동하는 것 같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상대적으로 앞선 다음에야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자각하는 것이다. 또한, 어떤 나라들에게 있어 민주주의는 단순히 덤일 뿐이다. 게다가 민주주의의 본질은 다양한 형태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어, 나는 중국몽을 통해 명확하게 적을 설정하는 방법을 고찰한다. 이 방법은 현재의 소속감을 보다 강화하고 도전에 맞서려는 의지를 더욱 탄탄하게 다질 수 있다는 데 그 유용성이 있다. 그러나 나는 ‘중국몽’이라는 말에서처럼 특정 국가를 연결시키는 발상에는 반대한다. 이러한 연계는 보편적인 성공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동남아시아에서의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특정 지역에 뿌리를 두고 강대국의 거대 서사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역사와 미래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핵심은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다. 역사는 창의적으로 다시 쓸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말하지 못한 목소리조차 차츰 들릴 수 있다. 의지만 있다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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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Museum of History – The Five Stages to World Mastery

This essay is an edited excerpt from Hà Ninh Pham’s work-in-progress PhD dissertation titled Metaphysical Cartography for the Future. In this dissertation, he explores an imagined country called Country X, a place where “I feel a deep sense of belonging. The people of Country X come from different physical places and times, but we are…

공백의 힘

같은 영화 속 다른 장면을 보겠습니다. 버스가 유난히 험한 길을 지나는데 이번에도 주변 환경의 소리보다는 승객들의 별 볼 일 없는 물건들이 선반과 좌석에서 떨어지는 소리만 들립니다. 접시, 냄비, 프라이팬, 베트남의 보조금 경제 시기[2]와 밀접하게 관련된 물건들입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예의 그 소녀는 쉽지 않은 여정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어 구급차로 옮겨탑니다. 이때 감독은 버스 회사 이사가 차를 타고 가며 버스 기사들의 생계 개선책을 논하는 장면을 이 장면과 병치시킵니다. 소녀가 탄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는 점점 커지며 다른 소리를 압도하는데, 다소 특이한 연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사가 탄 차가 나오는 장면에서도 관객은 차의 엔진 소리나 대화 소리가 아니라 구급차 사이렌 소리만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용된 음향 기술의 제약으로 인해, 감독은 장면의 본질을 소리로 나타내기 위한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말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 도덕의 소리와 사회적 갈등의 섬세한 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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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wer of the Void

This essay was transcribed from a talk by Đỗ Văn Hoàng, which took place on 19 August 2018 at Six Space, Hanoi as part of the British Council Vietnam project Heritage of Future Past. I. Film restoration, in a technical sense of the term, refers to the transferring of 35mm or 16mm film prints to…

“매듭” 풀기: 베트남 민족학 박물관 내 천주교 문화 관련 전시에서 큐레이터의 책무

  2008년 11월에 베트남 민족학 박물관(이하 “VME”)에서 천주교 문화 관련 전시가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같은 해 8월, 숙고 끝에 전시를 12월로 연기하기로 결정되었다. 그즈음, 호안 끼엠(Hoàn Kiếm) 지구) 나 쭝(Nhà Chung)가 42번지 및 동 다(Đống Đa) 지구) 응우옌 루옹 방(Nguyễn Lương Bằng)가 178번지 토지를 둘러싼 하노이 시 정부와 교회 간의 갈등은 점차 심화하여 시위가 열리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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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ying the “Knots”: Responsibilities of Curators in the Exhibition onof Catholic Culture at the Vietnam Museum of Ethnology

Back in August 2008, the plan to organize an exhibition on Catholic culture at the Vietnam Museum of Ethnology (VME) in November was carefully considered and rescheduled for December of the same year. Near that time, the tension between the church and the city government of Hanoi over land disputes at 42 Nhà Chung (Hoàn…

큐레이터를 일컫는 말들: “지암 뚜옌(Giám tuyển)”에서 “삭 뜨리엔 난(Sách triển nhân)”까지

본 글은 용어의 변화를 들여다보며 지난 20년 간의 미술사 담론을 재조명할 것이다. 베트남 근대 미술의 태동기에 여러 “외국어”가 등장했다. 2000년 이전까지 “큐레이터”는 그러한 “외국어”였으나 난데없이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외국어” 단어는 당시 미술계에서 어떻게 인식되었는가? 단어를 둘러싼 오해는 없었는가? 당시 “큐레이터”의 역할은 어떻게 정의되고 인식되었는가? 2000년대 이후, 이 “외국어”에 대한 번역어로 “지암 뚜옌(giám tuyển)”이…